일제강점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328
한자 日帝强占期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전우용

[정의]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가 식민 통치한 서울특별시 강남구 지역의 역사.

[개설]

[지방행정구역의 변화]

1910년 8월 한국을 강점한 일제는 한동안 대한제국의 지방제도를 유지하다가 1913년 10월부터 1914년 4월에 걸쳐 대대적인 지방제도 개편을 단행하고 1914년 3월 1일과 4월 1일을 기해 일제히 시행하였다. 도시부의 개편은 일본인 거주민의 편의를 증진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며, 농촌 지역에 대해서는 군, 면을 통폐합하여 지방 행정 경비를 줄이는 데 역점을 두었다. 이에 따라 전국의 면(面)은 4,322개에서 2,521개로 줄었다.

일제 강점기 오늘날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지역은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언주면(彦州面)대왕면(大旺面)의 일부 지역에 해당하는데, 1914년 면 통폐합 당시에도 언주면대왕면은 변화가 없었다. 9월 4일에는 경기도고시 제46호로 경기도내 각 면의 사무소 위치를 고시하였는데, 언주면 사무소 소재지는 염곡동(廉谷洞)[현 서초구 염곡동], 대왕면은 괴하동(槐下洞)[현재의 율현동]이었다. 더불어 각 면내의 마을들도 행정적으로 통폐합하였는데, 언주면의 경우 포일동(浦一洞)과 반곡동(盤谷洞) 일부를 통합하여 반포리(盤浦里)로, 저자도리(楮子島里), 무동도리(舞童島里), 부리도리(浮里島里)를 통합하여 삼성리(三成里)로, 신촌(新村)과 사평리(沙坪里)를 통합하여 신사리(新沙里)로, 방하교리(方下橋里), 역촌(驛村), 말죽거리를 통합하여 역삼리(驛三里)로, 신원동(新院洞)과 신정동(新亭洞)을 통합하여 신원리(新院里)로 하였다. 이에 따라 언주면은 대치리, 반포리, 삼성리, 청담리, 압구정리, 논현리, 학리, 신사리, 역삼리, 양재리, 포이리, 염곡리, 신원리, 내곡리의 14개 리(里)로 편성되었다. 이중 오늘날의 강남구에 속하는 마을은 대치리, 삼성리, 청담리, 압구정리, 논현리, 신사리, 역삼리, 포이리의 8개였고, 나머지는 서초구 소관이 되었다.

대왕면의 경우 사촌리(沙村里)와 송현동(松峴洞) 일부를 통합하여 사송리(沙松里)로, 금현동(金峴洞)과 둔토리(遁土里)를 통합하여 금토리(金土里)로, 노상리(路上里)와 노하리(路下里)를 통합하여 상적리(上笛里)로, 등자리(登子里)와 고산동(高山洞)을 통합하여 고등리(高登里)로, 음곡동(陰谷洞)과 세천리(細川里)를 통합하여 세곡리(細谷里)로, 괴하동(槐下洞)과 율현(栗峴)을 통합하여 율현리(栗峴里)로, 지곡동(池谷洞)과 자양동(紫陽洞)을 통합하여 자곡동(紫谷洞)으로 했고, 일원리(逸院里)에는 언주면 반곡동(盤谷洞) 일부를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대왕면에는 신촌리(新村里), 오야리(梧野里), 심곡리(深谷里), 시흥리(始興里), 둔전리(屯田里), 수서리(水西里), 사송리(沙松里), 금토리(金土里), 상적리(上笛里), 고등리(高登里), 세곡리(細谷里), 율현리(栗峴里), 일원리(逸院里), 자곡리(紫谷里)의 14개 리가 속하게 되었는데, 이 중 현재의 강남구에 해당하는 마을은 수서리, 세곡리, 율현리, 일원리의 4곳이었다.

[인구와 산업]

일제 강점기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대왕면 지역은 서울로 연결되는 교통이 불편한 한적한 농촌 마을이었기 때문에, 지역 사정의 변화과정을 상세히 알 수는 없다. 1920년대 중반 이 지역의 인구는 2만 명 정도였고, 해방 무렵에는 2만 3천 명 정도로 늘었다. 강남구 지역에 국한하면, 1만명 남짓 되었을 것이다. 1930년 현재 광주군 전체의 인구 83,827명 중 유업자(有業者)는 33,292명이었는데, 그 중 88.6%인 29,495명이 농업에 종사하였고, 나머지는 대개 관공리와 상인들이었다. 언주면, 대왕면 인구의 직업 구성도 이와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언주면의 경우 일본인 인구의 상대적 비율이 광주군 내 다른 면보다 높았다.

[민족운동]

현재의 서울시 강남구 지역에도 일제 강점기 항일 민족운동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일찍이 1895년 을미의병이 봉기할 당시부터 남한산성 인근의 경기도 광주군 일대는 의병의 주요 활동 무대였다. 1907년 정미의병 때에는 언주면대왕면에서 출생한 사람들이 의병부대를 조직하거나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일본군과 격전을 치렀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에도 대왕면민들이 집단적으로 참여한 기록이 있다. 3.1운동 때에는 역삼동율현동 등지에서 횃불 시위 등을 벌였으며, 1927년 신간회가 결성되자 강남구의 지식인과 유지들은 신간회 광주지회에 참여하여 민족운동을 펼쳤다. 그밖에 삼성리청년단 등의 농민 계몽운동을 펼친 단체들도 설립되었다. 강남구 출신으로 중국에 망명, 독립군이 된 인물도 적지 않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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