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4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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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州李氏世居地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민아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전주 이씨 세거지.
[개설]
전주이씨(全州 李氏) 시조는 신라 때 사공(司功)을 지낸 이한(李翰)이다. 조선 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한의 21세손이다. 전주이씨는 이성계 이후 수많은 분파가 이어져 내려오는데, 그 가운데 도봉 서원 마을에 전주이씨 영산 부정공파(榮山副正公派)의 세거지가 있다. 영산 부정공파는 효령 대군의 증손에서 갈라진 제종 형제 분파(諸從兄弟分派)이다.
[명칭 유래]
도봉 서원의 아래, 혹은 도봉산 자락[도봉산 안]에 조성된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안골이란 이름이 붙어졌다.
[형성 및 변천]
안골에 전주이씨들이 언제 입향하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전주이씨 영산 부정공파 5세 이석과(李碩果) 이후 17세 이근의(李根儀)에 이르기까지 자세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2004년에 나온 『도봉산 서원 마을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전에 있었던 안골의 전주이씨는 소위 ‘이 대감집’이라는 세력가의 집안이었다. 이 대감집은 99칸 규모의 저택에 거주하며 양주 목사도 지낸 무관집이었다. 이들은 현재 안골에 거주하는 전주이씨들과는 파가 다르며, 안골에 거주하지도 않는다.
현재 안골에 거주하는 주민 이태원에 의하면, 이 대감집이 크고 좋다는 소문이 임금에게까지 알려져 어느 날 임금이 직접 집을 구경하러 왔으나, 바깥 대문을 작게 하고 안대문을 크게 지은 집이어서 별로 크지 않은 집인 줄 알고 멀리서만 보고 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안골과 통해 있는 상다락원이 대로변이고 또한 풍수상의 이유 등으로 외부와 집을 차단하여 이 대감집이 밖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환경이어서 위와 같은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황]
안골 마을은 도봉산역에서 내려 등산로를 따라 올라오다 오른쪽 길을 따라 가면 나온다. 앞에는 도봉산, 뒤에는 수락산이 보인다. 안골은 도봉산역 환승 주차장 뒤편에 위치한 마을로 2004년 현재 70여 호 정도가 살고 있다. 현재 안골에 거주하는 전주이씨는 영산 부정공파 22세에서 23세로, 17세 이하의 당내친(堂內親)들이라고 할 수 있다.
도봉구에는 도봉동의 전주이씨 영해군파 묘역, 방학 3동의 회산군 묘역, 방학 사거리에서 우이 계곡 방향으로 있는 임영 대군파 오산군 묘역 등 전주이씨의 묘역이 여럿 존재한다. 이는 도봉구가 도성과 가까이 있어 왕족의 장지로 이용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며, 장지가 있어 세거지가 마련된 것은 아님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