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1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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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威鳳寺 |
영어의미역 | Wibong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하판리 산877(구 위봉사)|송학1길 22-176[송학리 880-1](현 위봉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현대/현대 |
집필자 | 황정숙 |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송학리에 있는 사찰.
[개설]
『칠곡군지』에 의하면 본래 위봉사는 가산면 하판리에 있는 봉림지 못 자리에 위치했던 고찰(古刹)이었다고 한다. 전하기를 약 1천 년 전 신라 말에 창건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기록 자료가 없어 확인할 수 없다.
[건립경위 및 변천]
위봉사와 관련해서 다음의 이야기가 전한다.
위봉사를 지은 도목수는 12세의 어린 소년이었는데, 모든 재목을 목침과 같은 나무토막으로 연결해 지었다고 한다. 어린 도목수는 계속 나무토막만 다듬어 수만 개를 챙겨 놓고 “내일은 상량을 한다”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같이 일하던 목수가 어린 도목수를 시험해 보려고, 그 많은 목침 중 한 개를 일부러 감추어 놓았다. 이튿날 어린 도목수가 현장을 살펴보고 나서는, “아- 하나를 빠뜨렸구나. 나의 계산능력이 이렇게 모자라면서 감히 절을 지으려 하다니…” 하고 연장을 챙겨 떠나려 하였다. 그 목재를 숨겼던 목수는 탄복하며, 사실을 실토하고 어린 도목수를 만류해 절을 세웠다고 한다.
또한 위봉사에는 ‘장군수’란 샘물이 있어 장복하면 기운이 왕성하고 장수했다고 하는데, 절의 스님이 장복한 나머지 기력이 너무 왕성해, 밤에는 축지법으로 원근을 배회하면서 여인들을 농락하자, 나라에서 스님을 체포하여 사형시키고, 그 후 신도들이 불계를 조직하여 빈 절을 유지해 왔으나, 못이 만들어지면서 폐찰되었다고 한다.
한편 위봉사에 대해서는 원래 유학산 중턱 암벽 밑에 있었는데, 절 뒤 바위 구멍에서 매일 공양에 필요한 만큼의 쌀이 나와 절이 융성했는데, 한 스님이 욕심이 생겨 막대기로 구멍을 넓히려고 쑤셨더니, 쌀 대신 빈대가 쏟아져 나와 폐찰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현황(조직, 시설현황 포함)]
현재 가산면 송학리에 위봉사라는 명칭의 사찰이 있는데 이는 1957년 창건한 사찰로 구(舊) 위봉사 폐찰 후 창건된 것으로 보이나 서로간의 연관 관계는 확인하기 어렵다. 현 위봉사는 2007년 칠곡군 사찰 현황자료에 의하면 주지 서명우(법명 성주), 신도수 700명 규모의 현대 사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