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7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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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恩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강종원 |
[정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 의자왕의 왕비.
[가계]
은고(恩古)[?~?]의 출신은 분명하지 않다. 의자왕 말기 사씨(沙氏) 세력의 위상으로 볼 때, 부여 지역을 기반으로 한 사씨 출신으로 추정된다.
[활동 사항]
은고는 백제 제31대 의자왕의 비이다. 의자왕 말기에 권력을 장악하고 전횡하였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의하면, 은고는 무도하여서 국병(國柄)을 마음대로 빼앗고 현량(賢良)들을 주살하여 백제가 망하는 화를 초래하였다. 부여 정림사지에 있는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에는 왕비 은고가 정권을 전횡하는 상황에 대하여 “밖으로는 곧은 신하를 버리고 안으로 요부를 믿어 충량한 신하들만 형벌을 받고 아첨하는 자들은 총애를 받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의자왕은 644년(의자왕 4) 융을 태자로 삼았으나, 660년에는 효가 태자로 확인된다. 태자를 융에서 효로 교체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지만, 의자왕 재위 중에 태자가 바뀐 것으로 미루어, 왕비 은고의 영향력이 작용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은고는 ‘요녀(妖女)’ 또는 ‘요부(祅婦)’로 지칭되는데, 왕비 은고가 의자왕 말기에 측근들을 중용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국정을 농단한 상황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은고는 660년 7월 나당 연합군에 의하여 사비성이 함락되자 의자왕의 항복으로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에게 붙잡혀 의자왕과 여러 왕자, 대신·장수 88인, 백성 1만 2807명 등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갔으며, 사망 시기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