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6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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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扶餘 定林寺址 石造如來坐像 |
영어공식명칭 | Stone Seated Buddha at Jeongnimsa Temple Site, Buyeo |
이칭/별칭 | 부여정림사지석불좌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림로 83[동남리 364]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소현숙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3년 1월 21일 - 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 부여정림사지석불좌상 보물 제108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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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0년 8월 25일 - 부여정림사지석불좌상에서 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으로 명칭 변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 보물로 변경 지정 |
현 소장처 | 부여 정림사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림로 83[동남리 364] |
성격 | 불상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 5.62m[전체 높이]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부여군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부여 정림사지에 있는 고려 시대 석조 불상.
[개설]
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扶餘 定林寺址 石造如來坐像)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중심지에 있는 6세기 후반 백제 시대 유적인 부여 정림사지 강당 터에 봉안되어 있다. 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은 국보인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함께 사찰의 중심축선 위에 있다. 부여 정림사지에서는 고려 시대 정림사의 중창을 알려주는 ‘태평 8년[1028년(고려 현종 19)]’ 글자가 있는 기와가 출토되었는데, 석불도 이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화강암으로 제작되었으며, 대좌를 포함한 석상의 전체 높이 5.62m이다. 1963년 1월 21일 ‘부여정림사지석불좌상’으로 보물 제108호로 지정되었고, 2010년 8월 25일 ‘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보물로 변경되었다.
[형태]
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은 불상이 크게 손상되어 원래의 모습을 알기 어렵다. 머리에 얹은 보개[寶蓋]는 불상에 어울리지 않는 밀짚모자 형태로, 석불 제작 당시의 것이 아니라 후대에 추가한 것이다. 현존하는 불상의 무릎 부분에 양감이 있는 것과 달리 얼굴은 매우 평판하고 기이하여 원래의 것이 아닐 것이다. 몸체의 훼손과 마멸이 매우 심하지만, 어깨 폭이 좁고 아래로 쳐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양팔 모두 흔적만 남았지만,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은 형태가 보여 지권인을 한 비로자나불상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대좌는 불상에 비하여 비교적 양호하며, 전체적으로 8각형이다. 이중으로 된 받침돌 위에 삼단의 대좌를 안치하였다. 대좌는 조각이 매우 섬세하다. 상단과 하단의 연꽃무늬, 중단의 안상(眼象) 무늬는 고려 전기의 장식적인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대좌의 받침돌에는 안상을 연속적으로 표현하고 그 속에 꽃무늬나 조각을 장식하였다. 이런 형태는 1011년에 제작된 인근의 개심사 오층석탑과 충청남도 논산시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 입상 앞의 배례석(拜禮石) 등 고려 시대 11세기 석조물에서 다수 출현한다.
[특징]
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은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지권인의 손 모양과 팔각 대좌가 통일 신라 시대 조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전체 높이 5.62m에 이르는 크기로 미루어 고려 시대 정림사의 주요 불상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은 백제의 주요 사찰이 고려 시대에 정림사로 운영되었음을 보여 주는 유물이다. 대좌에 묘사된 안상에는 중앙에서 꽃무늬가 올라오는 형태가 조각되었는데, 중국 오대(五代)와 북송 시기 불상, 불탑, 공예품 등에서도 많이 나타나므로 고려 시대 불교 미술의 대중 관계 연구에 매우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