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6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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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扶餘 軍守里 寺址 |
영어공식명칭 | Temple Site in Gunsu-ri, Buye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 19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홍보식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에 있는 백제 시대 절터.
[개설]
부여 군수리 사지는 관련 기록이 고문헌에서 확인되지 않고, 발굴 조사에서도 사명(寺名)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절터가 있는 마을 이름을 따서 ‘부여 군수리 사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1963년 1월 21일에 사적 제4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로 변경되었다.
[위치]
부여 군수리 사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서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으로 가는 나지막한 구릉지에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을 관통하는 백마강 인근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부여 군수리 사지는 1935년부터 1936년까지 조선고적연구회에 의하여 2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고, 발굴 조사 결과 백제 사비 시기의 사찰임이 확인되었다. 조선고적연구회의 조사 과정에서 목탑지 하부의 심초석 상부 조사에서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과 부여 군수리 금동미륵보살입상이 출토되었다.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과 부여 군수리 금동미륵보살입상은 각각 보물 제329호와 보물 제330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각각 보물로 변경되었다.
이후 70년 동안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다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 의하여 2005년, 2006년, 2007년에 각각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부여 군수리 사지 사역 전체의 윤곽이 확인되었다. 발굴 조사 결과, 중문-목탑-금당-강당이 남북 일직선상으로 배치되었고, 중문~강당 외곽을 둘러싼 회랑(回廊)과 동·서 회랑 바깥측에 별도의 건물이 배치된 구조임이 확인되었다. 이후 2022년에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 의하여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발굴 조사 결과 백제 사찰의 중문지와 남회랑지 기단석이 발견되었다.
[형태]
목탑지로부터 남쪽으로 18.18m 떨어진 곳에서 기와무지가 확인되었는데, 중문지로 추정되었다. 목탑지는 금당지 남측 기단에서 9.09m 떨어져 있다. 기단은 이중이며, 하층 기단 규모는 동서 13.94m, 남북 13.94m의 정방형이다. 하층 기단 가장자리는 전돌을 세워 마감한 전적 기단이 조성되었다. 목탑지 정중앙부에는 심초부가 있고, 심초부 하부에 심초석이 놓여 있었다. 목탑지 서측 기단 가장자리에서 80㎝ 떨어져 심초부로 향하여 경사진 사도가 확인되었다. 사도는 길이 4.74m, 너비 1.8m 규모이고, 사도 내부 바닥에는 단이 형성되었다. 목탑지의 남·북 중앙에 계단지가 확인되었다.
금당지는 목탑지로부터 북쪽으로 9.09m 떨어져 있으며, 남북 18.18m, 동서 27.27m의 장방형이다. 기단의 남측면은 수직 횡렬식 와적 기단이고, 나머지 측면은 합장식 와적 기단이다. 하층 상면의 초석과 초석이 빠진 위치와 간격 등을 고려하면, 금당 하층 기단에는 8개의 기둥이 배치된 전면 7칸의 건물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금당지에서 유리옥류, 금동 방울, 금동제 금구, 덩이쇠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강당지는 금당지 북쪽에 위치하며, 남북 18.18m, 동서 45.45m 규모이다. 기단 외곽에서 동서 방향으로 뻗은 평와열이 확인되었다. 목탑지 중심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25m 떨어진 지점에서 남동쪽 모서리에 놓인 기단석과 기와 무더기가 확인되어 중문지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가 파악되었다. 중문의 기단 규모는 동서 길이로 약 14m로 추정된다.
남회랑지에서는 남쪽 기단석과 기와 무더기 일부가 확인되었는데 중문보다 좁은 기단을 갖춘 회랑이 중문의 동쪽으로 약 10m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문과 남회랑의 서쪽 부분은 사찰 폐기 후에 축조된 백제 시대의 도로로 인하여 심하게 파괴된 상태이다. 중문과 남회랑의 기단은 석축 기단이 특징이다. 중문의 기단석은 ‘ㄱ’자 형태로 잘 다듬은 모서리 지대석(地臺石)으로, 윗면에 턱이 마련되어 있다. 윗면의 턱에 우주석(隅柱石)을 끼워 놓고 다시 위에 납작한 갑석(甲石)을 얹은 가구식(架構式) 기단 구조로 추정된다.
부여 군수리 사지에 대한 지금까지의 발굴 조사에서 불상 2점, 인동문 금동제 광배 조각, 와제 광배 조각, 금고리, 옥류, 금동제 방울, 금속 제품, 덩이쇠, 토기, 와당류 등이 출토되었다.
[특징]
부여 군수리 사지는 1탑 1금당식의 가람 배치를 보여 주는 전형적인 백제 사비 시기의 불교 사찰이다. 특히 목탑지와 강당지의 기단에는 수직 횡렬식 전적 기단이 조성되었고, 금당지와 동방기단지의 기단 측면에는 수직 횡렬식 와적 기단과 합장식 와적 기단이 조성되었다. 이러한 형태는 건물지의 기단 측면을 와적 기단으로 장식하는 백제의 독특한 건축 양식의 요소로 평가된다.
[의의와 평가]
부여 군수리 사지는 초창 당시의 사명은 알 수 없지만, 사비도성의 서측 외곽에 자리한 주요한 사찰임은 분명하다. 부여 군수리 사지 목탑지에서 출토된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입상과 부여 군수리 금동미륵보살입상은 백제 사비 시기 초의 불상 양식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서 주목된다. 그리고 목탑지, 금당지, 강당지, 동방기단지 등 부여 군수리 사지를 구성한 건물의 기단 외측에 조성된 와적 기단은 백제의 다른 불교 사찰뿐만 아니라 일본의 초기 불교 사찰의 기단 조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또한 중문지와 남회랑지는 부여 군수리 사지의 중심 사역 범위와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중문의 가구식 기단은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것으로, 백제 사찰의 중문 복원을 위한 자료로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