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6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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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扶餘 官北里 遺蹟 |
영어공식명칭 | Archaeological Site in Gwanbuk-ri, Buye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33 외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김대영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2년~1992년 - 부여 관북리 유적 A구~I구 발굴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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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1년 2월 5일 - 부여 관북리 유적 사적 제428호 지정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1년~2008년 - 부여 관북리 유적 가지구~바지구 발굴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8년~2022년 - 부여 관북리 유적 구아리 13-1번지, 51-1번지 등 발굴 조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부여 관북리 유적 사적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부여 관북리 유적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33 외 |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충절로2316번길 34[외리 산1-1] |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부여박물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동남리 산16-1] |
성격 | 복합 유적 |
면적 | 131,467㎡ |
소유자 | 부여군 등 |
관리자 | 부여군 |
문화재 지정 번호 | 사적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에서 확인된 백제 시대 복합 유적.
[개설]
부여 관북리 유적(扶餘 官北里 遺蹟)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일대에서 확인된 백제 사비 시기를 중심 시기로 하고 있는 복합 유적으로, 백제 왕궁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2001년 2월 5일 사적 제42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사적으로 변경되었다.
[위치]
부여 관북리 유적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33번지 일대에 있다. 부여읍 시가지의 북쪽 부분으로 외곽[나성]으로 둘러 쌓인 사비도성의 북쪽 중앙부에 있는 부소산[높이 106m]에서 남서쪽으로 내려오는 지형이 평탄지와 연결되는 지점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78년 상가 건립을 위한 기초 공사 중 백제 시대 배수로로 추정되는 유구가 발견되면서 조사가 시작되었다. 1982년부터 1992년까지는 충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A구~I구의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으며, 2001년 사적 제428호로 지정된 이후부터 2008년까지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 의하여 가~바 지구의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이후 한동안 발굴 조사는 소강 상태를 보이다가 2018년부터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중장기 발굴 조사 계획을 수립하여 조사를 재개하였고, 구아리 13-1번지, 51-1번지 등의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대형 전각 건물지, 도로유구, 연못, 상수도 시설, 저장 시설, 성토대지 등이 조사되었다.
[형태]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는 백제 시대부터 근현대까지 7개의 생활면이 조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백제 하부 생활면인 제1생활면, 백제 상부 생활면인 제2생활면, 통일 신라 시대 생활면인 제3생활면, 고려 전기 생활면인 제4생활면,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 생활면인 제5생활면, 조선 후기 생활면인 제6생활면, 조선 말 이후 생활면인 제7생활면이 있다. 유적의 중심 시기는 백제 시대 생활면인 제1·2생활면이다.
백제 시대 1생활면은 관북리 유적 일대가 대단위로 성토되기 이전의 생활면으로 유적 중앙부 곡부 지역에는 연지를 조성하였으며, 동남쪽으로 흘러 내리는 능선에는 생산과 관련된 유구, 서남쪽으로 흘러내리는 능선에는 저장과 관련된 유구를 배치하고 있다. 백제 시대 제2생활면은 부여 관북리 유적 일대가 성토된 이후 조성된 생활면으로 대형 건물지와 상하수도 시설, ‘+’형태로 교차하는 도로유구 등이 조성되고 있다. 제2생활면이 조성되면서 유적의 범위가 확장되는데, 제1생활면에 유구가 분포하고 있던 범위보다 북쪽과 서쪽으로 유적의 확장이 두드러진다. 유적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은 유적의 서쪽에 있는 대형 전각 건물지로, 가로 35m, 세로 18.5m 또는 가로 35m, 세로 19.25m의 규모로 판단된다.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는 금동광배와 함께 사람 얼굴이 그려져 있거나 ‘북사(北舍)’명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 토기가 출토되었다. 또한 지붕에 올렸을 수많은 장식기와, 백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각종 목제품과 목간, 짚신, 과일 씨앗 등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현황]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현재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와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부여 관북리 유적은 백제부터 근현대까지 부여 지역의 변천 과정을 보여 주는 대표 유적이다. 부여 관북리 유적 서쪽에 있는 대형 전각 건물지는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확인된 대형 건물지와 구조와 크기가 거의 유사하여 백제 말기 왕궁급 건물 모습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