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1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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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奇男 |
영어음역 | Bak Ginam |
이칭/별칭 | 자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권만용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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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 |
성별 | 남 |
생년 | 1559년 |
몰년 | 미상 |
본관 | 죽산 |
대표관직 | 중림도찰방 |
[정의]
조선 중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자수(子秀). 증조부는 양녕대군(讓寧大君)의 손자인 취성군(鷲城君) 이영(李潁)의 딸과 혼인한 박철정(朴鐵貞)이고, 아버지는 지금의 부천시 역곡1동 안동네에 정착하여 살던 진사 박문필(朴文弼)이다. 어머니는 숙인(淑人) 창녕성씨(昌寧成氏)이고, 통훈대부 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을 지낸 박영남(朴英男)이 동생이다.
[활동사항]
박기남은 임진왜란 당시인 1597년(선조 30) 경상도에서 정세 탐문을 담당하였으며, 왜적들과의 교전 때 선봉에 나서는 등 여러 차례 공을 세웠다. 1606년 증광생원시에 3등으로 합격한 이후 관직에 진출하였다. 1607년(선조 40) 중부참봉(中部參奉)으로 재직하던 중 뇌물수수 혐의로 파직당하기도 하였다. 광해군 때에는 진보(鎭堡)의 수장(守將)으로 종6품직인 양회권관과 현감을 지냈으며, 종3품 통훈대부로 부천 지역에 인접한 중림역(重林驛)[현 시흥시 관내]의 역참일을 맡아보던 찰방(察訪)을 지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부천시 범박동 산10번지에 있다. 묘 앞에는 상석·문인석·향로석·혼유석 등의 석물이 남아 있는데, 훼손이 심한 상태이다. 비좌원수형 비석의 비신은 3등분되어 주변에 흩어져 있는데, 조각난 묘비를 맞추어 보면 ‘통훈대부행중림도찰방박공기남지묘(通訓大夫行重林道察訪朴公奇男之墓)’라고 음각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