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02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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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松沈氏 |
영어의미역 | Cheongsong sh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집필자 | 김원준 |
[정의]
심홍부를 시조로 하고 심효겸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청송심씨의 시조는 고려 고종[1214~1259] 때 문림랑(文林郞)으로 위위사승(衛尉寺丞)을 지낸 청이군 심홍부(沈洪孚)이다. 증손 심덕부(沈德符)가 우왕 때 청성충의백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청송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심덕부는 청송심씨를 중흥시킨 인물로 후손들에 의해서 중시조로 받들어 지는 인물이다. 공민왕[1389~1392] 때에는 왜구를 격멸시키는 전공을 세워 문하시중에 올랐고, 조선 개국에도 공을 세워 정종 때에는 좌의정에 올랐다.
반면 심덕부의 동생 심원부(沈元符)는 고려 말에 전리판사를 지냈으나 조선이 개국되자 벼슬을 거부하고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의를 지켰다. 심원부의 직계 후손들도 심원부의 유훈을 받들어 대대로 벼슬을 멀리 하였다. 조선이 개국되면서 중시조 심덕부에 의해 명문으로서의 기반을 닦은 청송심씨는 심덕부의 아들 7형제 대에서 크게 융성하여 가장 화려한 인맥을 이루었다.
[현황]
신천공파 후손들은 7대 210여 년을 인천과 부천의 경계지역을 중심으로 살았다. 1943년 소유지가 일제에 의해 군용지로 빼앗기면서 부천 지역 여러 곳으로 흩어졌고, 현재는 240여 세대 1,500여 명이 살고 있다. 인수공파 23세손 심경식에 의하면 여주, 이천에 살던 후손들이 부천시 심곡본동 부천남초등학교 부근으로 이주하여 농사를 짓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신도시 개발과 직장 관계로 현재는 중동과 상동으로 이주하여 살거나 타 지역으로 이주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