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8년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발간한 영암의 마을 유래에 관한 책. 우리나라 서남부의 지리적 요충지에 자리한 영암은 이미 삼국 시대 때부터 해상 교통의 중심지로 번성하여 많은 문화유산을 오늘에 남기고 있다. 선조들이 남긴 전통과 유산은 영암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 잡아 왔다. 그러나 번성한 문화유산에 비해 영암의 유래와 전통, 풍속, 전설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자료가 없어서 많은...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칡넝쿨과 같이 길게 형성되었다 하여 치릿실, 치릿 또는 갈촌동이라 불렸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갈곡리(葛谷里)라 했다. 갈곡리는 조선 시대 말까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에 속했다. 비음면은 1906년에 나주군에서 영암군으로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종오리(終吾里)와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의 신...
-
신수를 시조로 하고 신후경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거창 신씨(居昌愼氏)의 시조인 신수(愼脩)[?~1101]는 원래 송나라 개봉부 사람이었으나 고려 문종 때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하여 정착하였다고 한다. 신수가 죽은 뒤 신수의 아들인 신성(愼成)이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 내려가 살면서 거창 신씨의 시원이 되었다. 영암 지역의 거창 신씨는 참판공파 후손들이며, 최덕...
-
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반기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경주 이씨(慶州李氏)는 신라 박혁거세(朴赫居世) 때 아찬(阿粲)에 올랐고 32년(유리왕 9) 양산촌(楊山村) 이씨(李氏)로 사성(賜姓) 받았다고 전하는 이알평(李謁平)이 시조이다. 우리나라 이씨는 중국에서 귀화한 몇몇을 제외하면 거의 경주 이씨 이알평의 후손에서 분파하고 있다. 이알평의 후손에서 이개(李開)...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산리(龜山里)는 마을 뒷산이 거북이처럼 생겨서 거북 구(龜) 자에 뫼 산(山) 자를 써서 구산(龜山)이라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아홉 구(九) 자를 쓰는 구산(九山)으로 바뀌었다. 거북 구의 획수가 많고 쓰기가 어려워 쓰기 쉬운 아홉 구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구산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북이시면(北二始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학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구정(九亭)의 구(九) 자와 학송(鶴松)의 학(鶴) 자를 따서 구학리(九鶴里)라는 이름을 붙였다. 구정 마을은 마을 지형이 거북과 같이 생겼고, 거북 머리가 있고 그 옆에 우물이 있어서 거북 구(龜) 자와 우물 정(井) 자를 써서 구정(龜井)이라고도 불렀다. 현재는 거북 머리도 도로 확장을 위해서...
-
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영암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이다. 1939년 진행된 간척 사업으로 인해 넓은 해수면이 농토로 바뀌었다. 조선 시대에는 영암군의 서쪽 첫머리여서 서시면(西始面)이라고 하였다. 성지천(省之川) 등 34개 마을을 관할하였는데, 1898년(광무 2) 지방 행정 개편에 따라 서종면(西終面)의 서호정(西湖亭) 등 19개 마을을 병합하고, 영암군의 서쪽이므로 군...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금강리에 세거하고 있는 광산 김씨 집성 마을. 광산 김씨(光山金氏)는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인 신무왕(神武王)의 셋째 아들 김흥광을 시조로 한다. 김흥광은 고려가 삼한을 통일하자 경주를 떠나 무진주(武珍州) 서일동(西一洞)[지금의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에 은거함으로써 광산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 후 고려 태조가 김흥광을 광산 부원군(光山府院君)에...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강리(錦江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금산리(錦山里)의 금(錦) 자와 강정리(江亭里)의 강(江) 자를 따서 개설되었다. 금산 마을은 마을 뒤쪽에 금성산이 있어 마을 이름을 금산이라 하였다. 강정 마을은 영암천과 금강천에 둘러싸여 있어 강 강(江) 자와 정자 정(亭) 자를 붙여서 강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금강리는 1914년 행...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금계(金鷄)라는 새가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金鷄抱卵) 형국의 등성이와 뒤편으로는 영산강이 흐르고 있어 금강(錦江) 마을이라 칭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영산강 물이 비단처럼 맑고 깨끗해 금강(錦江)이라 칭했다는 설이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종면(昆二終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된 마을 중 윤금(潤金)의 금(金) 자와 계천(溪川)의 계(溪) 자를 따서 금계리(金溪里)라 했다. 금계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초안(草岸), 초동(草棟), 윤금, 신풍(新風), 계천 지역이 병합되어 곤이시면 금계리로 개설되었다. 1932...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금계리에 있는 해주 오씨 집성 마을. 해주 오씨(海州吳氏)의 시조는 고려 성종 때 중국에서 건너와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낸 오인유(吳仁裕)이다. 금계리 해주 오씨 집성촌은 오찬주가 지금의 초안(草岸) 마을에 정착한 이후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금계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윤금리(潤金里)...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생금(生金)[캐낸 그대로의 금], 생수(生水)가 많이 나와 쇠 금(金)과 물 수(水)를 따서 금수리(金水里)라 했다. 금수리는 조선 시대 말까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에 속했으며,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평류동(坪柳洞), 화정리(花亭里), 만년리(萬年里)를...
-
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금정면(金井面)은 조선 시대 나주군의 금마면(金磨面)과 원정면(元井面) 지역이었다. 1895년 영암군으로 편입되고, 그 후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금마면의 금(金) 자와 원정면의 정(井) 자를 따서 금정면이라 했다. 금마면은 사금(砂金)이 많이 나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남송(南松)을 포함하여 57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었다. 원정면...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금내리(錦內里)의 금 자와 달지리(達池里)의 지 자를 따서 금지리(錦池里)라고 하였다. 금내리는 원래 나주군 종남면(終南面)의 소재지로 종남(終男), 본촌(本村), 금내, 금지라고도 불렸다. 금지리는 조선 시대에 나주군 종남면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용소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때 효자비. 김상순(金商順)은 경주 김씨(慶州金氏) 김병희(金秉喜)의 아들이고 백촌 김문기의 후손으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김상순의 효성은 하늘에서 내린 것이라고 칭찬하며 지역 유림들이 효자비를 세웠다. 김상순 효자비(金商順 孝子碑)는 1925년에 건립되었다. 영암군 학산면 용소리 천해 마을에 있다. 김상순 효자비는 갓석과 지대석을...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태간리에 있는, 1868년 김시혁이 백성을 구제한 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김시혁(金時爀)은 본관이 김해이고, 호는 송은(松隱)이며 진사(進士)이다. 김시혁은 유순한 성격을 가졌고 부모를 잘 섬겼으며, 백성을 구제하고 폐단을 개혁하고자 노력하였다고 한다. 김시혁 제민 불망비(金時爀 濟民 不忘碑)가 있는 신송 마을은 윗마을인 구송 마을과 함께 송간(松間)...
-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김한성(金漢城)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김해 김씨는 조선 중기에 영암 지방에 입향한 성씨로, 영암군 서호면 일대에 집거하고 있다. 입향조 김한성의 증손인 김완(金完)이 영암 향안 중수 작업에서 주동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김극희(金克喜), 김함(金涵), 김여옥(金汝沃) 등 다수의 인물이 국란을 당하여 창의하거나 군공을 세웠다. 김극조·김...
-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영산강 하굿둑 공사 전까지 나불리(羅佛里)는 다섯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나불도(羅佛島), 외도(外島), 문도(文島, 門島), 계도(鷄島), 오가리섬[吾可里島] 중에서 제일 크고 중심인 섬이 나불도인데, 1914년 중심이 되는 이 섬의 명칭을 따서 나불리(羅佛里)라 했다. 나불도라는 명칭은 섬의 모양이 나발같이 생겨서 나불도라고 했...
-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저두리(猪頭里), 매산리(梅山里), 난대리(蘭臺里), 도음전(道音田), 윤덕리(允德里), 검길리(檢吉里), 당두리(堂頭里)를 병합하면서 난대리의 난(蘭) 자와 도음전의 전(田) 자를 따서 난전리(蘭田里)라 했다. 조선 시대에 곤일종면(昆一終面) 지역이었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곤일종면 난전...
-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 곤미현(昆湄懸)의 남쪽 산 밑에 터를 잡은 마을이라 하여 남산(南山)이라고 부르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남산리(南山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남산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는데,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쳐서 곤일시면(昆一始面)이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송리(南松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이 지역의 옛 이름이었던 남송(南松)에서 이름을 따 왔다. 본래 나주군 금마면(金磨面) 지역으로 남송이라고 불렸으며,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입석리(立石里), 지초리(芝草里), 용반리(龍盤里), 요동(堯洞), 반계리(盤溪里), 인곡...
-
문다성을 시조로 하고 문맹화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문다성(文多省)은 신라 제20대 왕인 자비 마립간 때의 인물로 남평현[현재의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면] 출신이었다. 신라 지증왕과 진흥왕, 진지왕 대에 걸쳐 고위 관직을 지내고 남평 문씨(南平文氏)의 시조가 되었다. 문맹화(文孟和)[?~1487]가 세조의 왕위 찬탈을 계기로 관직을 버리고 처인 서흥 김씨(瑞興...
-
최흔을 시조로 하고 최진하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영암군에 기반을 둔 낭주 최씨(朗州 崔氏)는 신라 말 인물인 최흔(崔昕)을 시조로 하였다. 최흔의 아들 최지몽(崔知夢)[907~987]은 구림[현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서 태어나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서 고려 개국에 힘썼다. 최지몽이 죽은 뒤 신라계가 고려 왕실의 주도권을 가진 후부터 동족 기반이...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내동리는 낮은 산의 안쪽이라 하여 안굴[내동]이라 하였다. 내동리 쌍무동 마을은 내동리의 으뜸 마을로서 주변에 고분인 쌍무덤이 있어 마을 이름이 붙었다. 내동리는 본래 진도군 명산면(命山面) 지역이었다. 조선 고종 32년(1895)에 영암군에 편입되어 시종면 내동리라 명하였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도군의 화산리(花山里),...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노송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류천리(柳泉里), 송외리(松外里), 송내리(松內里), 노노리(老老里), 홍암리(紅岩里), 부항리(夫項里), 신동리(新東里), 옥동리(玉洞里)를 병합하면서 노노리의 노(老) 자와 송내리의 송(松) 자를 따서 노송리(老松里)라 하였다. 송내리는 1438년 연촌 최덕지가 남원 부사를 사직하고 귀향하여 심...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에 있는 거창 신씨 집성 마을. 영암의 거창 신씨(居昌愼氏)는 신수(愼脩)[?~1101]를 시조로 하고 신후경(愼後庚)을 입향조로 한다. 신후경이 전주 최씨 최덕지(崔德之)[1384~1455]의 사위로 덕진면 영보리에 입향하면서 영암 지역에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하였고, 신희남(愼喜南)[1517~1591], 신천익(愼天翊)[1592~1661] 등 화려한...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서호정 마을에 있는 낭주 최씨 문중의 재실.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서호정 마을에 있으며 국암사 옆에 위치한다. 덕성당(德星堂)은 낭주 최씨(朗州崔氏) 문중의 재실로 창건 연대나 창건 주체자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 수 없다. 1940년에 중건되었다. 1972년에 낭주 최씨 선조이자 고려 개국 공신인 최지몽(崔知夢)[907~987], 최안우(崔安雨),...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에서 매년 단오절에 덕진의 공덕을 기리고자 지내는 추모제. 덕진(德津)은 통일 신라 때 사람으로, 지금의 영암읍과 덕진면을 경계로 하는 영암천 냇가에서 주막집을 하면서 영암천을 건너는 행인들이 불편을 피할 수 있도록 하려고, 땅속에 항아리를 묻어두고 푼푼이 모아 온 개인 재산으로 돌다리인 대석교(大石橋)를 창건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 공덕을 기리고자 매...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안모실을 내촌(內村)으로 이름을 바꾸고, 신정(新亭), 교변(橋邊) 마을과 통합하면서, 덕진 다리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덕진리(德津里)라고 하였다. 예전에 주막을 경영하던 덕진이라는 과부가 이 지역에 다리가 없어 많은 행인들이 불편한 것을 보고 푼푼이 모아 둔 돈을 모두 털어 큰 돌로 다리를 놓았고, 여인의...
-
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행정면. 덕진 다리[德津橋] 전설과 전해지는 덕진리가 면소재지가 되면서 덕진면(德津面)이라 부르게 되었다. 예전에 주막을 경영하던 덕진이라는 과부가 이 지역에 다리가 없어 많은 행인들이 불편한 것을 보고 푼푼이 모아 둔 돈을 모두 털어 큰 돌로 다리를 놓았고, 여인의 이름을 따서 다리에 덕진교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지역이다....
-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인덕리(仁德里)의 덕 자와 완화리(完化里)의 화 자를 따서 덕화리(德化里)라 부르게 되었다. 인덕 마을은 마을 앞에 개울이 있었으며 어질고 덕이 많은 사람이 많이 산다고 해서 인덕(仁德) 마을이라고 하였다. 완화 마을은 구러리, 구래울, 구유월, 완화, 완월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포리는 도싯개, 도삿개, 또는 도시포, 도포라고 하였다. 도포리의 동쪽에 있는 동도포 마을 뒷산인 저산(猪山)[37m]의 한글 이름이 돛뫼이다. 이 돛뫼 밑 개[浦]를 돛개라 하였으며, 한자로 옮기면서 도포(都浦)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도포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종남면(終南面)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나포리를 병...
-
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전라남도 영암군 북쪽에 위치한 면으로, 도포만 연안의 넓은 간석지를 방조제로 막아서 간척지를 형성하고 있다. 도포면(都浦面)은 도포리(都浦里)가 있어 유래한 이름인 듯하다. 도포리는 도싯개, 도삿개, 도시포, 도포라고 했다. 도포리의 동쪽 동도포 마을에는 저산(猪山)[37m]이 있는데, 한글로는 돛뫼이다. 돛뫼 밑 개[浦]를 돛개라 하였으며, 이것...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마을의 하천변에 소시장에 크게 열려 송아지 독(犢) 자와 내 천(川) 자를 써서 독천리(犢川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독천리는 조선 시대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산직촌(山直村), 덕수정(德水亭), 벽계동(碧溪洞), 구흥동(九興洞), 영복리(永福里), 광산리(光山里)...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군서면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남쪽은 학산면 용산리, 서쪽은 군서면 서구림리, 북쪽은 성양리, 동쪽은 도갑리와 인접해 있다. 자연 마을은 구림 마을, 동계 마을, 법석골 마을, 신근정리 마을, 쌍와촌 마을, 학암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구림(鳩林)이라는 지명은 도선 국사의 탄생과 관련 있다. 신라 때 성기동 최씨원(崔氏園)에 사는 최씨 처...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에 있는 해주 최씨 집성 마을. 해주 최씨(海州崔氏)는 시조를 최온(崔溫)[?~1268]으로 하고, 최석증(崔碩曾)을 입향조로 하여 군서면 동구림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세거하고 있다. 최온은 벼슬이 판이부사(判吏部事)에 이르렀으며, 해주(海州)의 목민관(牧民官)으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어 누대에 걸쳐 그곳에 세거하면서 해주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구림...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호리에 있는 탐진 최씨 집성 마을. 탐진 최씨(耽津崔氏)의 시조는 최정(崔靖)의 아들 최사전(崔思全)[1067~1139]이다. 영암의 탐진 최씨는 효노파 진사공파 후손들로 돈재 최대천이 입향한 이래 지금까지 세거해 오고 있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서종면(西終面)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에 당시 동변리(東邊里)와 서시면(西始面)의 지남...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산강 지류의 동쪽에 호수처럼 생긴 반도라 하여 동호리(東湖里)라 하였다. 본래 영암군 서종면(西終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서종면의 동변면(東邊面)과 서시면(西始面)의 지남(指南), 탑동(塔洞)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군서면 동호리로 개설되었다.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호동강이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서호리(西湖里) 동쪽에 위치하여 동호리(東湖里)라 하였다. 동호리는 조선 시대 곤일종면(昆一終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동역리(東驛里), 동변리(東邊里), 감치리(甘峙里), 백야리(白也里)를 병합하여 동호리로 개설되었다. 1917년 곤일종면이 삼호면(三湖面)로 이름을 바꾸면서 삼호면...
-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두억봉[도산천] 밑이어서 두억리(斗億里)라 하였다. 두억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다.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치면서 곤일시방이 곤일시면(昆一始面)으로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월정리(月亭里), 수산리(水山里), 학평리(鶴坪里), 청현리(晴...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말처럼 생긴 산 밑에 있다 하여 말 마(馬) 자와 뫼 산(山) 자를 써서 마산이라 하였다. 17기의 고인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영암군 서시면(西始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오목천(五木川), 오산(蜈山), 잠사두리, 척동(尺洞), 자경동(自耕洞), 저동(苧...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만수리는 만석굴이라고도 하는데,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전하는 바가 없다. 만수리는 조선 시대 진도군 명산면(命山面)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금천리(錦川里), 회동(回洞), 구송리(九松里) 일부와 나주군 종남면(終南面) 신기리(新基里)를 병합하여 만수리라 하고, 시종면에 편입하...
-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화동리(化洞里), 오복리(烏伏里), 망우정리(望牛亭里), 장산리(長山里), 목우촌리(牧牛村里) 일부를 병합하면서 망우정리의 망(望) 자와 장산리의 산(山) 자를 따서 망산리(望山里)라 했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종면(昆一終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망산리로 개설되었다. 1917...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망호리에 있는 경주 이씨 집성 마을. 영암 지역의 경주 이씨(慶州李氏)는 이알평(李謁平)을 시조로 하고, 익재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9세손 이반기(李磻琦)를 입향조로 하고 있다. 원래는 영암군 군종면(郡終面) 지역이었던 곳으로 망호정(望湖亭) 정자가 있어서 망호정리(望湖亭里) 또는 망호리(望湖里)라고 불렸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병합한 마을 중 매곡리(梅谷里)의 매(梅) 자와 대월리(待月里)의 월(月) 자를 따서 매월리(梅月里)라 했다. 전국의 호수(戶數)와 인구수를 기록한 책인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에서 주룡(注龍), 매곡(梅谷), 미교(美橋) 등의 지명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동리(明洞里)에는 옥정 마을, 와우동 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옥정 마을은 마을의 바위틈에서 샘물이 솟아 구슬 같은 샘물이라 하여 구슬 옥(玉)과 우물 정(井)자를 합하여 옥정(玉井)이라 했다. 와우동 마을은 서룽골이라 부르기도 하며, 큰 암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 하여 업드릴 와(臥) 자와 소 우(牛) 자를 합쳐서 와우동(臥牛洞)이...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모산리(茅山里)에 관한 명칭 유래는 두 가지가 전한다. 첫 번째로 예로부터 마을 안에 못이 있어 못안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못산으로 변하고 다시 모산으로 변했다고 한다. 또 하나는 마을의 주변에 띠[茅(모)]가 무성하여 바람이 불어오면 띠 잎이 난무하여 금물결을 이루었다. 수려한 산세와 울창한 수림이 아름다워 띠 모(茅)와 뫼 산(山)을 합...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에 있는 문화 유씨 집성 마을. 영암 지역의 문화 유씨(文化柳氏)는 유차달(柳車達)을 시조로 하고 있으며 유용공(柳用恭)[1492~1551]을 입향조로 하고 있다. 관향은 지금의 황해남도 신천군 문화면이다. 모산리는 본래 나주군 비음면(非音面) 지역으로 마을 앞에 연못이 있어 못안이라 하였는데 못안이 모산으로 변해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1914년...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모정(茅亭)이라는 이름은 마을 내에 있는 쌍취정(雙醉亭)과 관련이 있다. 임구령(林九齡)에 의해 지남제가 축조된 뒤, 영풍정 자리에 쌍취정이라는 별장을 지어졌다. 하지만 나라에서 너무 호화롭다는 이유로 철거 명령이 내렸다. 그때부터 기와지붕에 띠를 엮어 사용하였고, 띠 모(茅) 자와 정자 정(亭) 자를 써서 모정이라 하였다. 본래 영암군 서...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에 속하는 법정리. 몽해리(夢海里)라는 이름은 김완(金完) 장군과 관련이 있다. 김해 김씨 김극조(金克祧)가 풍수에게 아천 포구 앞이 명지라는 권유를 받고 이거하였다. 김극조는 엄길리에 사는 천안 전씨와 결혼하였고 김완 장군을 낳았다. 김완 장군을 임신할 당시, 마을 앞 영암만 바닷물이 부인의 치마폭으로 몰려드는 꿈을 꾸었다 하여 마을 이름을 몽해라고 했다고...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묵동리(墨洞里)는 옛부터 먹을 만드는 곳이라 하여 묵동 혹은 먹뱅이라고 하였다. 혹은 마을 북쪽에 병풍처럼 산이 펼쳐져 있어 옥녀가 글을 쓰려는데 붓과 벼루는 있는데 먹이 없어서 마을 이름을 먹뱅이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1940년경에 먹뱅이라는 명칭의 어감이 좋지 않아 명동(明洞)이라 개칭하였다. 1950년 6·25 전쟁 때 마을이 모두...
-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진행된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한 마을 중 미촌리(美村里)의 미(美)자와 흑암리(黑岩里)의 암(岩)자를 따라 미암리(美岩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미암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다.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쳐서 곤일시면(昆一始面)으로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
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1928년 면의 중심인 미암리의 이름을 따서 미암면(美岩面)이라 하였다. 미암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미촌리(美村里)의 미(美)자와 흑암리(黑岩里)의 암(岩)자를 따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미암면은 백제 때 고미현(古彌懸)의 중심지였다. 신라 경덕왕 대에 이르러 이름을 곤미현(昆湄懸)으로 바꾸었다. 곤미현은 다시 두 개의 방으로 나뉘는...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여러 마을이 합해지면서 동백정(冬栢亭)의 백(栢) 자와 청계리(淸溪里)의 계(溪) 자를 합하여 백계리(栢溪里)라 하였다. 동백정 마을의 마을 이름은 당초에는 동백나무라는 뜻인 백동(栢冬)이라 하였으나 언젠가부터 동백나무 숲 가운데 정자가 있어 동백정(冬栢亭)이라 바뀌었다고 전해온다. 청계 마을은 마을 앞으로...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입향조인 봉암(鳳巖) 강연(姜淵)과 관련하여 마을에 봉소정(鳳巢亭)이 있어 봉소리(鳳巢里)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봉소리 연동 마을은 부근에 연동지라는 못이 있었는데 연이 많이 자생하였으므로 거주민들이 연꽃 연(蓮)자와 마을 동(洞)자를 써서 연동(蓮洞)이라 불렀다고 하며, 괴목정 마을은 예전에 태산봉 남봉에 괴목으로 지은 정자인...
-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봉호리(鳳湖里)는 둠벙이 있어 둠벙개라고 부르다가, 이것이 변하여 봉개, 붕개 또는 봉호정, 봉호정리라 불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여러 마을을 병합하면서 봉호리가 되었다. 봉호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북일종면(北一終面)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송죽정(松竹亭), 태산리(泰山里), 망교리(望橋里), 신호...
-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봉호리에 있는 제주 양씨 집성 마을. 제주 양씨(濟州梁氏)의 시조는 탐라 개국 설화(耽羅開國說話)에 나오는 삼신인(三神人) 중의 맏이인 양을나(良乙那)이다. 양을나는 제주도 한라산 북쪽 기슭 모흥혈(毛興穴)에서 고을나(高乙那), 부을나(夫乙那)와 함께 용출(湧出)하여 탐라 개국 군왕(耽羅開國郡王)이 되었고, 양을나의 자손은 대대로 왕위를 계승하여 921년(고...
-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을 통폐합 당시 산호정(山湖亭)이라는 정자 이름을 따서 산호리(山湖里)라 했다. 조선 시대에 곤일종면(昆一終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동암리(銅岩里), 경재리(京才里), 신호정리(新湖亭里), 장도리(獐島里), 금곡리(金谷里), 산호정리(山湖亭里)를 병합하여 산호리로 개설되었다. 1917년 곤일종면이...
-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삼봉리(三峯里), 엄포리(奄浦里), 간내항(艮乃項), 영호정(永湖亭)을 병합하면서 삼봉리와 엄포리의 이름을 따서 삼포리(三浦里)라고 했다. 혹은 엄포리와 간내항, 영호정의 세 개의 포구(浦口)를 상징하여 삼포리(三浦里)라 했다고도 전한다. 조선 시대에 곤일종면(昆一終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
-
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읍. 조선 시대에 곤미현(昆湄縣)의 끝 지역이므로 곤일종면(昆一終面)이라 하다가, 1914년 명칭이 삼호면(三湖面)으로 변경되었다. 삼호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현재는 명칭대로 영산호(營山湖), 영암호(靈岩湖), 목포 내해(內海)로 둘러싸여 지명과 같이 삼호(三湖)가 되었다. 삼호읍은 조선 시대의 1789년 『호구 총수...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한 마을 중 상사동(上舍洞)의 상(上) 자와 월하촌(月下村)의 월(月) 자를 따서 상월리(上月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상월리는 조선 시대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부곡리(富谷里), 월하촌, 유천동(柳泉洞), 쌍암리(雙岩里), 상리(上里), 상사동을 병합하여...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암군 군서면 남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서쪽은 서호면 엄길리, 남쪽은 서호면 몽해리, 동쪽은 군서면 동구림리, 북쪽은 군서면 모정리와 인접하고 있다. 서호정 마을, 남송정 마을, 백암동 마을, 상대포 마을, 신흥동 마을 등이 있다. 구림(鳩林)이라는 지명은 도선 국사의 탄생과 관련 있다. 신라 때 성기동 최씨원(崔氏園)에 사는 최씨 처녀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낭주 최씨 집성 마을. 낭주 최씨(朗州崔氏)의 시조 최흔(崔昕)은 신라 진성왕 때 사람으로 원보상(元輔相)을 지냈다. 최흔이 낭주에 정착하여 가세가 크게 번창하자 후손들이 낭주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하지만 최흔 이후는 세대가 확실치 않아 고려 말 전객령(典客令)을 지낸 최희소(崔希沼)를 중시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잇고 있다. 서구림리의...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와 동구림리에 있는 창녕 조씨 집성 마을. 서구림리와 동구림리의 창녕 조씨(昌寧曺氏)는 부제학 충정공 조상치(曺尙治)의 6세손 남은(南隱) 처사 조세풍을 입향조로 하는 부제학공파 후손들이다. 7세손 조기서(曺麒瑞)[1556~1591]는 영암군 서호면 일대의 유력 성씨인 선산 임씨 임혼(林渾)의 사위가 되었고, 1589년(선조 22) 기축옥사 후 영암으...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와 동구림리에 있는 함양 박씨 집성 마을. 함양 박씨(咸陽朴氏)는 조선 전기에 박성건(朴成乾)[1418~1487]의 구림 입향 이후 영암 지방의 유력 성씨로 발전하며 그 기반을 조선 후기까지 유지·존속시켰다. 박성건의 구림 입향 이후 처족(妻族)이자 구림 마을에 먼저 정착한 성씨였던 난포 박씨(蘭浦朴氏)와 연결되었으며, 뒤에 입향한 선산 임씨(善山林氏...
-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에는 마을의 모양이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형국이고, 주변에 울창한 소나무가 많다 하여 학 학(鶴) 자와 소나무 송(松) 자를 따서 학송(鶴松)이라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는 미곡의 집산지이자 창고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영암군의 서쪽에 있는 창고라는 뜻으로 서쪽 서(西) 자와...
-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합 당시 동호리(東湖里)의 서쪽이 되므로 서편(西便), 세편이라 부르다 서호리(西湖里)라 하였다. 서호리는 조선 시대 곤일종면(昆一終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신동리(新洞里), 응치리(鷹峙里), 토동리(兎洞里), 변두리(邊頭里), 송죽정(松竹亭), 냉천리(冷泉里), 목우촌(牧牛村)의 일부를 병합...
-
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영암군의 서쪽인 영산강에 접해 있어 서호면(西湖面)이라고 불린다. 백제의 곤미현(昆湄懸)에 속하였지만, 신라 때 영암에 편입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곤미현에 속하였던 지역의 끝자락에 있다 하여 곤이종면(昆二終面)이라 불렸으며 아천(牙川) 등 32개의 마을을 관리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곤이시면(昆二始面)의 신소정(新沼亭) 일부를 병...
-
임양저를 시조로 하고 임만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선산 임씨는 전라남도 영암군에 세거하는 성씨 가운데 하나이다. 입향조는 선산 임씨 중시조인 임만(林蔓)으로, 1388년에 영암에 입향한 이래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하였다. 선산 임씨는 신라 경순왕의 손주 사위인 태사공(太師公) 임양저(林良貯)를 시조로 하고 있다.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하려 하자 그 부당함을 고하...
-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의 선황산(仙皇山)에 서낭당이 있어서 서낭당, 선황당, 화산 또는 당리(堂里)라 불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선황리(仙皇里)라고 하였다. 선황리는 조선 시대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다.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치면서 곤일시면(昆一始面)으로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계양리(桂...
-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성덕리(聖德里)의 성(聖) 자와 우산정(牛山亭)의 산(山) 자를 따서 성산리(聖山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성덕 마을은 배산임수의 평화롭고 어진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으로 성덕(聖德)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산정 마을은 용동 마을 남쪽에 있던 마을로 1920년경에 폐동되었다. 성산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에 속하는 법정리. 성재리는 풍수지리학적으로 성인이 태어날 명당지라 하여 성재(聖才) 또는 성재동(聖才洞)이라 하였다. 각 자연 마을 이름은 학파 농장을 조성한 현준호 일가의 이름과 관계가 깊다. 무송동은 현준호의 호, 남하동은 현준호의 맏형 현용호의 호를 따서 지은 것이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종면(昆二終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
-
전라남도 영암군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해서 살아오고 있는 성씨. 우리나라 성씨의 연원은 고조선 시대로 올라가는데, 성씨가 본격적으로 정착하게 된 시기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하여 고려를 개국한 이후이다. 고려 이전 고대 국가에서 성씨는 왕족과 일부 중앙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지방 귀족, 이른바 호족들이 고려의 개국과 후삼국 통일에 적극 참여하여...
-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평야가 좁고 계곡이 많아, 그 형세가 실버들나무 같아서 가늘 세(細) 자에 버들 류(柳) 자를 써서 세류리(細柳里)라 했다. 세류리는 본래 나주군 금마면(金磨面) 지역이었는데,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봉황리(鳳凰里), 세류정(細柳亭), 열사리(列沙里), 칠성리(七星里), 내동(內洞)을...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소흘리의 소(蘇) 자와 송산리의 산(山) 자를 따서 소산리라고 이름을 붙였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종면(昆二終面) 지역이었다. 1914년 4월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소흘리와 송산리를 병합하여 북이종면 소산리로 개설되었다. 이후 1930년 북이종면이 서호면으로 이름을 바꿈에 따라 서호면 소산리가 되었다...
-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수산리(水山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유수동(流水洞)의 수(水) 자와 당산리(堂山里)의 산(山) 자에서 이름을 따 왔다. 유수동 마을은 마을 수원이 좋아서 어느 곳을 파도 물이 난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당산리는 마을 뒤에 있는 산의 당산나무에서 당산제를 지냈는데 매우 영검해 마을 이름을 당산(堂山)이라 하였다. 수산리는 조...
-
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전라남도 영암군 북쪽에 위치한 면으로, 저지대에 간척지를 형성하고 있다. 시종면은 조선 시대에는 영암군의 북쪽 첫머리가 된다고 하여 북이시면(北二始面)이라 하였다. 1914년 나주군 종남면(終南面)의 25개 마을과 진도군 명산면(命山面)의 14개 마을을 합할 때, 북이시면의 시(始) 자와 종남면의 종(終) 자를 따서 시종면(始終面)이라 하였다. 시...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한 마을 중 신흥(新興)의 신(新) 자와 덕흥(德興)의 덕(德) 자를 따서 신덕리(新德里)라고 이름 붙였다. 용산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신흥, 덕흥, 부귀동(富貴洞), 화암리(禾岩里)를 병합하여 곤이시면 신덕리로 개설되었다. 1932년 곤...
-
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신북면은 조선 시대 말까지 영암군의 북쪽 끝에 위치해 있다고 하여 북이종면(北二終面)이라 하였으며, 수현(水峴) 등 65개의 마을을 관할하였다.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를 보면 영암군 북이종면에 159호, 656명(남자 327명, 여자 329명)의 주민이 살았다는 기록을 확인 할 수 있다. 나주군 비음면에는 275호 862명(남자 392...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연리(新嚥里)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신사리(新沙里)의 신(新)자와 연소리(燕巢里)의 연(燕)자를 따서 신연리가 되었다. 신연리의 연소(燕巢) 마을은 본래 나주군 종남면(終南面) 지역인데 마을 모양이 제비집 같다 하여 제비 연(燕), 집 소(巢)를 따서 연소라 하였다. 신연리는 조선 시대에 나주군 종남면 지역이며, 1895년(고...
-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포리는 과거 기동 마을 북쪽에 있는 배들이 마을까지 배가 드나들었던 작은 포구(浦口)가 있었다. 포구 주변에 새로운 마을이 생겨 신포리(新浦里)라 불렸다. 신포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다.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치면서 곤일시방이 곤일시면(昆一始面)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학리(新鶴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당시 자연 마을 중 신항(新項)의 신(新) 자와 학림(鶴林)의 학(鶴) 자를 따서 신학리(新鶴里)라고 이름을 지었다. 신항 마을은 도포면 원항리 마을에 식수가 모자라 잔등 너머에 새 터를 잡아 마을을 만들었기 때문에 신항(新項)이라 하였다는 지명 유래가 내려오고 있다. 학림 마을은 마을 야산의...
-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된 마을 중 한정리(漢亭里)의 한(漢) 자와 신정리(新亭里)의 신(新) 자를 따서 신한리(新漢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신한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다.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치면서 곤일시방이 곤일시면(昆一始面)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흥리(新興里)는 새로 마든 마을이라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신흥리의 신원 마을은 세원이라 부르기도 하며, 이 마을은 새로 생겼다 하여 새로울 신(新) 자와 으뜸 원(元) 자를 따서 신원(新元)이라 부른다. 화수 마을은 마을에 꽃피는 나무가 많아서 꽃 화(花) 자와 나무 수(樹) 자를 따서 화수(花樹)라 하였다. 신흥리는 조선 시대에 나주...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신풍리(新豊里)와 영풍리(永豊里)의 이름에서 풍(豊) 자를 따와 쌍풍리(雙豊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종면(昆二終面) 지역이다. 1914년 4월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영풍리, 신풍리, 월평리(月坪里), 수양리(水良里)를 병합하여 곤이종면 쌍풍리로 개설되었다. 이후 1930년 곤이종면...
-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효자 형제가 살았다 하여 쌍효리(雙孝里)라 하였다. 쌍효리는 본래 나주군 금마면(金磨面) 지역이었는데,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모효리(慕孝里), 석교리(石橋里)를 병합하여 쌍효리라 하고 금정면에 편입하였다. 석교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간 마을이다. 계곡 사이에 좁고...
-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쌍효리에 있는 하동 정씨 집성 마을. 하동 정씨는 정도정(鄭道正)을 시조로 하고 있으나, 계통을 달리하는 세파가 있다. 한 계통의 시조는 하동 지방의 호족 출신으로 923년(경명왕 7) 후백제군이 신라를 침범할 때 하동성을 지킨 정도정(鄭道正)이고, 다른 한 계통은 고려 덕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금자광록대부 도첨의좌정승(金紫光祿大夫都僉議左政丞)을 지낸 정응(...
-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아천리(鴉川里)라는 명칭은 아천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아천 마을은 백룡산(白龍山) 동남쪽 아래 제일 큰 마을로 골짜기를 따라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을 관통하는 하천이 운치 있고 아름다워서 조선 시대에 밀양 박씨(密陽朴氏)의 후손이 살면서 하천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을 아천이라 하였다고 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아천 마을의...
-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안노리(安老里)의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전하는 바가 없다. 다만 백제 때 아실 또는 안로, 안로촌이라 하였으며, 고려 시대에 안로현(安老縣)으로 개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주변의 마을을 병합하면서 안노리라 했다.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의 마을 명칭 중에서 안노(安老)를 확인할 수 있다. 안노리는 백제 때 아로...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양쪽의 시내가 합하여진 마을이라 하여 양계(兩溪)라 불리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양계리(兩溪里)라 하였다. 양계리는 조선 시대 말까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에 속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백우리(白羽里), 금계리(金溪里), 서동(西洞)와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의 남산점(南山店), 대갑리(大甲里), 나주군...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전에 소금을 구어 염장(鹽場) 또는 양장(羊場)이라 하였다. 본래 영암군 서종면(西終面)의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군서면 양장리로 개설되었다. 원래는 동쪽 모정(茅亭)을 접한 반도(半島)였지만, 1500년대에 임구령(林九齡)이 지남제를 조성한 이후 마을이 생겼다. 1940년 현준호의 학파 농장 조성, 1970년 영산...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속하는 법정리. 마을 지명은 입향조와 관련이 있다. 강진군 태동에서 전승무(全丞武), 전승문(全丞文) 형제가 엄길에 기거한 이후, 후손들이 문과와 무과에 다수 급제하였다. 이에 후손들이 입향조를 존경한다는 의미에서 존경할 엄(嚴)과 전승무·전승문 형제의 아호인 길촌(吉村)·길림(吉林)의 길(吉)를 따서 엄길(嚴吉)이라 하였다. 하지만 ‘엄길’에서 존경할 엄...
-
민칭도를 시조로 하고 민문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여흥 민씨는 전라남도 영암군에 세거하는 성씨 중의 하나로 현 거주지인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는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이전에 나주군 금마면 지역에 속했다. 입향조는 거창 신씨(居昌慎氏) 영암 입향조 신후경(愼後庚)의 사위 민문이다. 여흥은 경기도 여주시의 옛 지명이다. 시조 민칭도(閔稱道)는 공자(孔子)의...
-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차내리(次乃里), 보촌리(寶村里), 연산리(連山里), 양계리(兩溪里), 다련리(多蓮里), 다보리(多寶里)를 병합하였고, 연산리의 연(連) 자와 다보리의 보(寶) 자를 따서 연보리(連寶里)라 했다. 연보리는 본래 나주군 금마면(金磨面)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연소(燕巢) 마을의 이름을 따서 연소리라 했다. 연소 마을은 지형이 제비집 형국을 하고 있어 제비 연(燕) 자에 집 소(巢) 자를 써서 이름을 지었다. 연소리는 본래 나주군 금마면(金磨面) 지역이었는데,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금오동(金烏洞), 연소리...
-
현담윤을 시조로 하고 현윤명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연주 현씨(延州玄氏)는 조선 시대 영암에 입향한 세거 사족으로, 조선 전기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로 입향한 현윤명(玄允明)의 후손들이 향촌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며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현윤명의 증손 현건(玄健)은 구림에서 동족 기반을 다지는 데 노력하였으며, 구림 대동계 중수에 참여하고 회사정(會社亭...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의 열무정에 보관되어 있는 사포계 문서. 열무정(閱武亭)은 일명 사정(射亭)이라 불리는 정자로, 1797년(정조 21) 열무정 구성원들이 사정을 유지하기 위해 사포계(射布契)를 창설하였다. 열무정은 1797년의 사포계 창설을 계기로 계속 지역 사학들의 보호 아래 관리되다가 1880년(고종 17) 당시 군수이던 민창호(閔敞鎬)의 협조로 중수되었다. 열무정...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망동리(望洞里), 영흥리(永興里), 장등리(長嶝里)를 병합하면서 영흥의 영(永) 자와 장등의 등(嶝) 자를 따서 영등리(永嶝里)가 되었다. 영흥리는 마을 근처에 운중반월형(雲中半月形)의 명당이 있어 이곳에 살면 영원히 흥할 것이라 하여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장등리는 덕진면 영보리에서 영정(永亭)에 이르는...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에 있는 여산 송씨 문중의 재각. 영모재(永慕齋)는 여산 송씨(礪山宋氏) 문중에서 세운 재각이다. 여산 송씨는 고려 시대에 공을 세워 여산군(礪山郡)에 봉해진 송유익(宋惟翊)이 시조이다. 본래 여산 송씨는 경기도 파주에서 세거하다가 전라북도 옥구로 이거하였으며, 그 뒤 송문형(宋文亨)이 영암으로 이사하였다. 여산 송씨의 영암 입향조인 송문형은 시조인 송...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보리(永保里)는 청암도(靑巖道)[조선 시대에 전라도 나주의 청암역(靑巖驛)을 중심으로 한 역도(驛道)] 찰방이 딸린 영보역(永保驛)이 있어서 영보역, 역촌(驛村), 역몰, 영보촌이라고 불렸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냉천(冷泉), 관곡(寬谷), 내동(內洞), 서당(書堂), 은행정(銀杏亭)을 병합하면서 영보리라 하였다. 영보리는...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 있는 전주 최씨 집성 마을. 영보리의 전주 최씨(全州崔氏)는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가 입향한 15세기 초반 이후 영암 지방 사족 활동을 주도하였다. 전주 최씨 집성촌인 영보리는 조선 초기의 학자 최덕지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후학을 가르친 곳이다. 영보리에는 최덕지의 셋째 아들 진사공 최숙(崔淑)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
조선 시대 영암 구림리의 구림 대동계 관련 문서. 『영암 구림 대동계 문서』는 구림 대동계 청사(廳舍)인 강수당(講修堂)에 소장되어 있으며,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98호로 지정되어 있다. 구림 대동계(鳩林大同契)는 1565년(명종 20)에서 1580년(선조 13) 사이에 박규정(朴奎精)·임호(林浩)·이광필(李光弼)·박성정(朴星精)·유발(柳潑)·박대기(朴大器)·임완(林浣) 등이...
-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호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영평리(永平里)의 영(永) 자와 회호정(回湖亭)의 호(湖) 자를 따서 영호리(永湖里)라고 했다. 영평 마을은 운월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영원히 풍요롭고 평안하라는 뜻으로 길 영(永) 자와 평안할 평(平) 자를 써서 영평 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회호정 마을은 어느 도사의 말을 믿고 바다에 둑을 쌓다...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옥야리(沃野里)는 마을에서 기와를 구웠기 때문에 왯골, 외얏골, 오야촌, 오야, 옥야, 효동이라고 불렸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옥야리라고 명명하였다. 옥야리는 조선 시대에 나주군 종남면(終南面)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종남면 신산리(新山里), 서촌리(西村里)...
-
육보를 시조로 하고 육기평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옥천 육씨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로, 입향조 육기평(陸基平)이 학산면 매월리에 입향한 이래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옥천은 충청북도 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지금의 충청북도 옥천군이다. 시조 육보(陸普)는 당나라 사신으로 신라에 파견되었다가 귀화하였고, 경순왕의 총애를 받아 부마가 되었다. 관성군...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와우리(臥牛里)는 지형이 누운 소 모양이라 하여 누리 또는 와우(臥牛)라고 불렀다. 와우리 와우 마을은 앞산의 생김새가 마치 소가 누워 되새김을 하고 있는 모양이라 와우리(臥牛里)라 부르고 있다. 와우 마을에서 안산 잔등을 넘어가면 소의 아래라 하여 소아래 마을이라고도 부르는 우정(牛井) 마을이 있다. 와우리는 조선 시대 영암군 북이시면(北...
-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화산리(花山里), 분수리(汾水里), 신기리(新基里), 양와리(羊臥里), 강변리(姜邊里), 운동리(雲洞里), 기동(基洞)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고, 양와리의 와(臥) 자와 운동리의 운(雲) 자를 따서 와운리(臥雲里)라 했다.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의 원정면에서 양와, 기동 등의 마을 기록을 확인...
-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원용당(元龍塘) 마을의 이름을 따서 용당리(龍塘里)라 했다. 원용당 마을 동쪽에 구태 못[池]이 있어 사철 마르지 않아 주변 농토의 농업용수로 이용되었다. 이 못에 용(龍)이 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용당(龍塘)이라 부르고, 주변 마을 중 중심이 되는 마을이라 하여 원용당이라 하였다. 조선 시대에 곤일종면(...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산리(龍山里)는 용처럼 생긴 산이 있어 이름이 유래하였다. 용산리 원용산 마을은 용의 머리에 해당하여 원용산(元龍山)이라 하였다. 용의 머리를 ‘암태고랑’이라 하여 암택이라 부르기도 한다. 용산리는 본래 북일시면(北一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우, 용동, 기동, 당산, 치등, 신기촌 일부를 병합하여 용산리를 개설...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주변의 백용산, 오봉산이 용의 형국과 비슷하다 하여 용산(龍山)이라 하였다. 용산리는 본래 영암군 원정면(元井面) 지역이었으며, 1914년 4월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신흥리(新興里), 서당리(書堂里), 용계리(龍溪里), 기동(基洞) 마을 일부와 나주군 금마면(金磨面)의 서천리(西川里)를 병합하여 용산리(龍山里)라 하여, 금정면에 편입되었...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용지리(龍池里)의 용(龍) 자와 복산리(福山里)의 산(山) 자를 따서 용산리(龍山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용산리는 조선 시대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용지리, 복산리, 구산리(龜山里), 신소정리(新沼亭里)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곤이시면 용산리로 개설되었다. 1932년 곤...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되었던 천해(泉海) 마을 남쪽에 있던 깊은 소(沼)에서 용(龍)이 승천하였다 하여 용소리(龍沼里)라 하였다. 용소리는 조선 시대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지소(紙所), 용계(龍溪), 신안정(新安亭), 천해(泉海), 도림정(桃林亭)을 병합하여 용소리로 개설되...
-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용두리(龍頭里), 궁항리(弓項里), 모가두(毛可頭), 상앙리(上仰里), 하앙리(下仰里), 앙감(仰甘), 호동(虎洞)을 병합하고, 용두리의 용(龍)과 앙감의 앙(仰)을 합하여 용앙리(龍仰里)라 했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종면(昆一終面)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곤일종면 용앙리가 개설되...
-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봉덕리(鳳德里), 용두리(龍頭里), 용강리(龍江里), 용현(龍峴), 안기리(安基里), 우적리(牛跡里), 세흥리(世興里), 안적리(安適里), 학동(鶴洞), 용천리(龍泉里), 흥리(興里) 일부 지역을 병합하고, 용두리의 용 자와 세흥리의 흥 자를 따서 용흥리(龍興里)라 하였다. 용흥리는 본래 나주군 금마면(金磨...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운암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운곡(雲谷) 마을의 운(雲) 자와 선암(船岩) 마을의 암(岩) 자를 따서 운암리(雲岩里)라 하였다. 또한 덕진면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자리하고 있고, 오봉산(五峰山) 기슭이라 항시 구름이 끼고 암석이 많아서 운암리라고 했다고도 전해진다. 운암리의 운곡 마을은 선암 위에 있는 마을로 마을에 구름이 많...
-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원목(元木)의 원(元) 자와 항동(項洞)의 항(項) 자를 따서 원항리(元項里)라 부르게 되었다. 원목 마을은 마을 길가에 원목점이라는 주막이 있다 하여 원목점이라고 부르다가 행정 개편 이후 원목 마을이라고 개명하여 부르고 있다. 항동 마을은 마을 남쪽에 있는 개[浦]의 지형이 구부정하여...
-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원항리에 있는 현풍 곽씨 집성 마을. 현풍 곽씨(玄風郭氏)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에서 고려로 귀화한 곽경(郭鏡)[1117~1179]이다. 곽경은 중국 관서(關西)의 홍농인(弘農人)으로 고려에 귀화한 후, 1138년(인종 16) 과거에 급제하여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냈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올랐으며, 포산군(苞山君)에 봉해졌다. 이후 곽경의...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암군 군서면사무소가 위치한 곳이다. 남쪽은 월출산을 경계로 군서면 도갑리, 서쪽은 군서면 성양리, 동쪽은 영암읍 회문리, 북쪽은 군서면 마산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월산(月山)의 월(月) 자와 호곡(虎谷)의 곡(谷) 자를 따서 월곡리라 하였다. 본래 영암군 서시면(西始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롱리(月弄里) 원월롱(元月弄) 마을 앞에 커다란 연못이 있었는데, 어느 날 마을에 거주하는 한 노인이 깊은 달밤에 연못가에 나와 달을 구경하다가, 출렁이는 물결을 따라 움직이는 달그림자가 사람을 희롱한다고 하여 달 월(月) 자와 희롱할 롱(弄) 자를 따서 월롱(月弄)이라 하였다는 구전이 있다. 한편 원월롱 마을에서 남으로 야트막한 고개를...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이 합해지면서 망월리(望月里)에서 월(月)자와 송산(松山)의 송(松)자를 따서 월송리(月松里)가 되었다. 월송리는 조선 시대 영암군 북이시면(北二始面)의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명목리, 치리(峙里), 신당(神堂), 송산, 회덕리(回德里) 일부와 진도군 명산면(命山面)의 망월리를 병...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악리(月岳里)는 지형이 반달처럼 생겼으므로 다라기 또는 월동, 월악이라 불렸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월악리라 명명하고, 시종면에 편입하였다. 월악리의 중계 마을은 예로부터 달악리, 다라기, 달애기, 다래기 등으로 불리다가 중월(中月)과 하월(下月) 마을로 이름을 바꿔, 1955년까지 이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하월이란 이름...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에 달못[군산천]이 있으므로 달못 또는 월지(月池)라 불렀다. 월지리는 본래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달신기(達新基), 중촌리(中村里), 백옥동(白玉洞), 호동(虎洞), 칠거리(七距里), 덕림정(德林亭) 일부와 나주군 종남면(終南面)의 복룡동(伏龍洞) 일부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의 방...
-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평리(月坪里)라는 명칭은 월평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마을 앞으로 금천(金川)이 흐르는데 금천 건너 삼망산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넓고 비옥한 논이 무리지어 있는 때논들[群畓坪]이 금천과 어울려 월형(月形)을 이뤄 월평이라 했다고 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통합한 마을의 중심인 월평 마을의 이름을 따서 월평리라 했다. 아천리는 본...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들에 달풀이 많아 달들 또는 월평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월평리(月坪里)라 했다. 월평리는 본래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간은리(干隱里), 병정리(並亭里), 안정리(安亭里), 호산점(虎山店), 여동(汝洞), 수양리(水良里) 일부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의 모산리(...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의 지형(地形)이 닭 벼슬 형국(形局)이라 하여 닭실, 또는 닭 유(酉) 자와 골 곡(谷) 자를 써서 유곡(酉谷)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유곡리(酉谷里)라 했다. 유곡리(酉谷里)는 조선 시대 말까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에 속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유곡(酉谷), 옥정리(玉井里), 용덕리(龍德里...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은적산(隱蹟山) 아래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은곡리(隱谷里)라 했다. 1789년 전국의 호수(戶數)와 인구수를 기록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서 은곡(隱谷)이라는 지명을 확인할 수 있다. 은곡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양지리(陽地里), 음지리(陰地...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 마을인 이목동(梨木洞)의 이(梨) 자와 천동(泉洞)의 천(泉) 자를 합하여 이천리(梨泉里)라 했다. 이천리는 본래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남계리(南溪里), 이목동(梨木洞), 신덕동(新德洞), 천동(泉洞), 월평리(月坪里) 일부, 북일종면(北一終面)의 탑...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긴 산에 둘려 쌓여 있다고 하여 산장산(山長山)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장산리(長山里)라 했다. 장산리는 본래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수현리(水峴里), 신동(新洞), 대월촌(大月村), 산장산(山長山), 가막산(加幕山), 서당동(書堂洞), 기정(奇亭), 행사동(...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장선리는 덕진면 소재지 서쪽에 있는 마을로 긴 산등성이 밑에 자리하여 장선 또는 장산(長山)이라 하였다. 또 마을의 지형이 긴 배[船]와 같다 하여 길 장(長), 배 선(船)을 써서 장선(長船)이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장선리는 조선 시대에 북일시면(北一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옹점리, 자경리, 광길리, 당촌리,...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에 있는 남평 문씨 집성 마을. 남평 문씨(南平文氏)는 입향조인 문맹화(文孟和)[?~1487]가 세조의 왕위 찬탈을 계기로 관직을 버리고 아내인 연촌 최덕지의 외손녀 서흥 김씨의 고향인 영암에 은거하면서 장암리를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게 된 성씨다. 남평 문씨는 문익주(文益周)를 위시하여 문익행(文益行), 문익현(文益顯), 문후소(文後素) 등...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장동(長洞)의 장(長) 자와 상천리(上川里)의 천(川) 자를 따서 장천리(長川里)라고 하였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종면(昆二終面)에 속해 있는 지역이었다. 1914년 4월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천리, 괴음(槐陰), 도리정(桃李亭), 장동을 병합하여 곤이종면 장천리로 개설되었다. 이후 1930년 곤이종...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에 있는 천안 전씨 집성 마을. 천안 전씨(天安全氏)는 전섭(全聶)을 시조로 하며, 1504년(연산군 10)에 전승문이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 태동에서 장천리로 입향하면서 지금까지 세거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종면(昆二終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상천리(上川里), 괴음리(槐陰里), 도리정(桃李亭), 장동(長洞)을 병합...
-
이한(李翰)을 시조로 하고 이상춘(李尙春)·이군화·이대남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전주 이씨는 영암군에 세거하는 성씨 중 하나이다. 주요 세거지는 금정면 와운리와 도포면 성산리, 서호면 성재리 등이다. 전주는 전라북도 중앙에 위치한 지명이다. 전주 이씨 시조 이한[?~754]은 신라 태종무열왕의 10세손 김은의(金殷義)의 딸과 결혼하였고, 문성왕(文聖王) 때...
-
최순작을 시조로 하고 최덕지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전주 최씨(全州崔氏)는 고려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최순작(崔純爵)이 시조이다. 최순작의 후손 최수강(崔秀岡)이 고려 말에 낙향해, 후손들이 최수강을 중시조로 삼고 완산(完山)[현재의 전라북도 전주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는 『동국여...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비. 함양 박씨(咸陽 朴氏)는 오한 박성건의 후손으로 하동 정씨 정석렬(鄭錫烈)의 부인이다. 함양 박씨는 18세 때 정석렬과 혼인하여 시부모를 정성스럽게 모셨으며, 남편 정석렬이 병에 걸렸을 때 자신의 다리 살을 베어 먹여 남편을 살리고 36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정석렬 처 함양 박씨 열녀비(鄭錫烈 妻 咸陽 朴氏 烈女碑)는 함양...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매월리에 있었던 나루. 주룡포는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매월리 미교 마을 나릿개에서 영산강을 건너 전라남도 무안군 일로읍 청호리를 왕래하던 나루이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 “주룡진(駐龍津)은 남쪽 50리에 있으며 영암의 경계로 통한다.”라고 한 곳이다. 주룡은 영암과 무안 사이를 흐르는 지금의 영산강 물길을 말하는데, 약 500m의 좁은 물목이다. 조선...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봉소리에 있는 근대의 문인 강대주의 사우. 죽산사(竹山祠)는 진주 강씨(晉州姜氏) 봉현(鳳峴) 강대주(姜大胄)[1878~1945]를 배향한 사우(祠宇)이다. 강대주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강희맹(姜希孟)[1424~1483]의 17세손이자, 진주 강씨 영암 입향조 봉암(鳳巖) 강연(姜淵)의 12세손이다. 강대주는 기우만(奇宇萬)의 제자인 강천수(姜天秀)의 제자로,...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학동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때 정자. 지학정(止鶴亭)은 1942년 3월에 민병구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지역 사람들의 교학을 힘쓰기 위해 건립하였다. ‘지학정’은 아버지의 호를 딴 것이다. 영암군 신북면 학동리 백학동 마을 입구 왼편에 있다. 1942년에 여흥 민씨 민병구가 건립하였다. 팔작지붕의 누정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 전 1퇴, 후 1퇴의 특이한...
-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같은 성(姓)과 본관(本貫)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집성촌은 한 성씨가 주도하는 동족 마을을 포함해 나타나는 여러 성씨들이 모인 이성 잡거(異姓雜居) 형태의 촌락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동족 촌락, 동족 부락, 동성 촌락, 동성 마을, 동족 마을이라고도 한다. 영암 지역의 집성촌에 대한 기록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 식민지 지배를 목적으로 조사된 『조선...
-
조계룡(曺繼龍)을 시조로 하고 조행립(曺行立)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창녕 조씨는 영암 지역의 사족 성씨 중의 하나이며, 조행립을 입향조로 하고 있다. 조행립은 영암 구림 대동계 중수의 주역으로서 영암 향촌 사회에서 창녕 조씨의 위상을 높인 인물이다. 창녕은 경상남도 북부에 위치한 곳으로 옛 창녕현(昌寧縣)과 영산현(靈山縣)이 합하여 이루어졌다. 시조 조계룡...
-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로부터 지초를 많이 캔 곳이라 하여 캘 채(採) 자와 지초 지(芝) 자를 써서 채지리(採芝里)라 하였다. 채지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다.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치면서 곤일시방이 곤일시면(昆一始面)으로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망월정(望月亭), 비래산(飛來山), 화암...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에 있는 밀양 김씨 집성 마을. 밀양 김씨 집성촌인 청용리 노동(蘆洞) 마을은 갈대가 많다고 해서 청용리 입향조인 김홍발(金弘發)[1582~1643]이 붙인 이름이다. 그 전에는 마을을 감싼 은적산에 위치한 옥룡암이 있기 때문에 옥룡동(玉龍洞)으로 불렸고, 지형이 바짓가랑이를 연상하게 해서 윗 가랫골이라고도 했다. 16세기 초에 김윤신(金潤身)[1848...
-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에 덕령산[도산천]의 청룡날 밑이 되므로 청용(靑龍)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청용리(靑龍里)라고 했다. 청용리는 본래 나주군 금마면(金磨面) 지역이었는데,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동산리(東山里), 월암리(月岩里), 성자리(聖子里), 기암리(機岩里),...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에 속하는 법정리. 주변의 푸른 숲과 신흥 마을·영모정 마을의 주산인 용지봉(龍池峰)을 담아 청용리(靑龍里)라고 하였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종면(昆二終面) 지역이었다. 1914년 4월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노동리(蘆洞里), 연정리(連亭里), 영모정(永慕亭), 신흥정(新興亭), 안산(安山), 신월정(新月亭)을 합하여 곤이종면 청용리를 개설하였다. 이후 19...
-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춘동 마을의 입항조인 밀양 박씨(密陽朴氏) 박광춘(朴光春), 박광년(朴光年) 형제가 선황산에 올라가 춘동 마을 지역을 내려다보니 황소가 쟁기를 찬 형상이라 크게 번창할 곳이라 믿고 정착하여, 희망을 가져다준다는 뜻에서 춘(春) 자를 따 마을 이름을 춘동(春洞)이라고 붙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춘동에서 이름을 따 춘동리(春洞里...
-
최사전(崔思全)을 시조로 하고 최대천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탐진 최씨는 영암에 세거하는 여러 성씨 중의 하나로, 고려 시대 인물인 최사전을 시조로 하고 있다. 영암 입향조는 조선 후기 수군절도사를 지냈던 최원립(崔元立)[1618~1690]의 양아들 최대천이다. 탐진은 전라남도 강진군에 속한 옛 지명이다. 1417년(태종 17)에 병마도절제사영을 도강현(道康...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태간리(泰澗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태산리(泰山里)의 태(泰) 자와 송간리(松澗里)의 간(澗) 자를 따서 태간리가 되었다. 태간리 명산 마을은 조선 시대에 진도군 명산면(命山面) 지역으로, 그 지명을 따라 명산(命山)이라 한다. 송간 마을은 구송 마을과 신송 마을로 나뉜다. 구송 마을은 태간제 저수지의 북쪽에 있으며, 송간...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태평정(太平亭)의 태(太) 자와 백운동(白雲洞) 백(白) 자를 따서 태백리라 칭하였다. 한편 태평정이라는 이름은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이 있다. 왕건이 나주목을 정벌하기 위해 영산강 지역에 내려갔지만, 거센 물살로 인해 승기를 잡을 수 없었다. 이때 책사인 태평의 계략에 따라 태평정 마을 앞으로 적을 유인하...
-
정도정를 시조로 하고 정의중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하동 정씨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로, 영암 입향조는 장령공파의 정의중(鄭宜仲)이다. 하동은 경상남도 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동 정씨는 본관을 같이하면서 계통이 다른 세 파가 있다. 한 계통의 시조는 하동 지방의 호족 출신으로 923년(경명왕 7) 후백제군이 신라를 침범할 때 하동 호장...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학계리는 본래 마을에 넓은 바위가 있어서 광암(廣岩)이라 불렸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가학산(駕鶴山) 아래 위치하고 앞으로 맑은 계천이 흐르고 있어서 가학산의 학(鶴) 자와 계천의 계(溪) 자를 따서 학계리(鶴溪里)라 하였다. 학계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학계 마을...
-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에 있는 연주 현씨 집성 마을. 연주 현씨(延州玄氏)는 현담윤(玄覃胤)을 시조로 한다. 현담윤은 고려 의종 때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하고, 명종 때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올랐고 연산군(延山君)에 봉해졌다. 현담윤의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하고 연주(延州)를 본관으로 삼았다. 연주 현씨는 현담윤의 세...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의 지형이 황새처럼 생겼다 하여 한새울 또는 학동(鶴洞)이라 하였다. 학동리(鶴洞里)는 조선 시대 말까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에 속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신월리(新月里), 연곡리(連谷里), 연동(連洞)과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의 태산리(泰山里)를 병합하여 신북면에 편입하여 학동리라 했다. 마을 동쪽의 태산[86....
-
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학산면(鶴山面)은 1932년 개설될 당시 관내 학계리(鶴溪里)의 학(鶴) 자와 용산리(龍山里)의 산(山) 자를 따서 이름을 붙였다. 학산면은 본래 고미현(古彌懸)의 중심지였으며, 신라 경덕왕 대에 이르러 명칭을 곤미현(昆湄懸)으로 바꾸었다. 곤미현은 다시 두 개의 방으로 나뉘는데, 학산면 지역은 으뜸이 되는 지역이라는 뜻으로 곤일방(昆一坊)이라 하...
-
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조광재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한양 조씨(漢陽趙氏)는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인하여 조광조(趙光祖)가 화를 당하자 후손인 조광재가 영암군 미암면 채지리 지종 마을에 내려와 살게 되면서 영암에 정착하였다. 시조인 조지수(趙之壽)는 중국에서 귀화한 인물이다. 그러나 언제 귀화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고려 때에 명종·신종·희종...
-
박언신을 시조로 하고 박성건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박언신(朴彦信)은 신라 박혁거세의 29세손인 경명왕(景明王)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속함대군(速咸大君)으로 봉해졌는데, 후에 속함(速咸)[경상남도 함양군의 옛 지명]이 함양으로 개칭됨에 따라 관향을 함양으로 삼아 함양 박씨(咸陽 朴氏)의 시조가 되었다. 함양 박씨는 조선 전기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14...
-
이언(李彦)을 시조로 하고 이돈(李墩)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함평 이씨는 영암군에 세거하는 성씨 중의 하나로, 미암면 미암리에 집성촌이 있다. 입향조는 이돈이다. 함평(咸平)은 전라남도 서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함풍(咸豊)과 모평(牟平) 두 현이 합쳐진 지명이다. 함평 이씨 시조 이언(李彦)은 고려 태조 때 신무위 대장군(神武衛大將軍)을 지냈고 후에 함풍군...
-
오인유를 시조로 하고 오유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해주 오씨(海州吳氏)는 영암 지역의 사족이다. 1490년경에 입향조 오유(吳裕)가 음직으로 청풍원 참봉(靑風院參奉)에 부임하면서 강진에서 영암으로 이주하였다. 해주는 황해남도 남해안에 위치한 곳으로 현재 황해남도 도청 소재지이다. 해주 오씨 시조는 중국 송(宋)나라에서 학사로 이름이 높았던 오인유(吳仁裕)인데...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때부터 영암의 해로 입구로 조세를 수집·보관하던 창고가 있어 해창(海倉)이라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전라도 영암군조를 보면 영암에는 총 네 곳에 해창이 있었으며, 지금의 해창 마을은 군에서 15리에 위치한 곳으로, 목포로 가는 중요한 길목 중 하나였다. 영암군 서시면(西始面)의 지역이었으며, 조세 창고가 있는 관...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은행나무 정자가 있으므로 은행정 또는 행정이라 불리었다. 행정리는 본래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옥봉리(玉峰里), 송암리(松岩里), 조동(早洞), 화산리(花山里), 광산리(光山里), 광암리(光岩里), 유호정(柳好亭)을 병합하여 신북면에 편입하고 행정리(杏亭里)라 했다. 동쪽에 호산[15...
-
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역사와 지리, 유래, 전설, 풍속, 산업 등을 조사·연구하여 기록한 책. 향토지는 중앙의 자료집과 달리 해당 지역사[지방사] 연구의 기초 자료로서 그 중요도가 매우 높다. 향토애(鄕土愛)를 근간으로 지역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저술한 책이 바로 향토지(鄕土誌)이다. 향토지 발간의 초기 단계에서는 단순히 지역의 출신인물이나 유적 소개에 머물던 것이 점차 그 영역을...
-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한 호음곡(好音谷)의 호(好) 자와 문수포(汶水浦)의 포(浦) 자를 따서 호포리(好浦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호포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다.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치면서 곤일시방이 곤일시면(昆一始面)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에 있는 김해 김씨 집성 마을. 조선 중기에 입향조 김한성(金漢城)이 강진에서 영암 서호 구음평[현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몽해리]으로 이주하였고, 김한성의 아들인 김사종(金嗣宗)이 풍수지리에 의해서 산세가 좋고 기름진 땅이 있는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화소 마을에 터를 잡아, 김해 김씨의 집성 마을이 이루어졌다. 화소(華所)는 늙은 학이 집을 찾아와 알...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학동리에 있는 효자비. 황정주(黃正周)는 철종 때 사헌부 감찰을 역임한 인물로 본관은 장수이다. 효성이 깊은 인물로 할머니가 병석에 눕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서 나온 피로 생명을 연장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황정주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장수 황씨(長水黃氏) 종중과 지역 유림들이 황정주 효자비(黃正周 孝子碑)를 건립하였다. 장수 황씨 종중과 지역 유림들이 황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