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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서 토기·자기·기와 등을 굽는 가마가 있던 터. 도자기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각 도자기에는 해당 시기의 문화와 일상생활의 패턴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왔다. 따라서 각 시기에 제작된 도자기들의 양식과 시기별 변화 양상을 살펴보면서 과거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시기에 따라 생활 문화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유추해 볼 수 있게 되었으며, 각 시기에 제작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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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에서 남연군(南延君) 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가야산 산신령」은 천하의 명당자리가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가야산 산신령이 명풍수인 지령대사를 혼내 주었다는 풍수담이다.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행한 『서산의 지명사』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이 자료가 1994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스산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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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때 상갈리(上葛里)·하갈리(下葛里)의 ‘갈(葛)’자와 산북리(山北里)의 ‘산(山)’자를 따서 갈산리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위갈테[上葛里]·아갈테[下葛里]·산북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갈산동(葛山洞)은 조선 시대의 서산군 노지면 산북리와 갈치리 지역으로, 1895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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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갈고개 밑에 형성된 마을로 갈고개, 갈현, 갈고리라고 하였다. 갈고개는 갈현리(葛峴里)에서 왕정리(旺井里)로 넘어가는 고개로 칡이 많아서 생긴 이름이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갈고[葛古里], 용현리(龍峴里), 과동(果洞), 갈현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1914년에 행정 구역 개편 시 갈현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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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대요리에서 이괄(李适)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행한 『서산의 지명사』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이 자료가 2002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스산의 숨결』 110에 게재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지곡면 대요리의 대말마을 서남쪽에 황소가 엎드려 있는 것과 같은 곳이 있는데, 이를 강두산(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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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삼고개리(三古개里)에서 ‘고’자와 아남리(牙南里)에서 ‘남’자를 따서 고남리(古南里)가 되었다. 삼고개리는 세 고개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며, 아남리는 사람의 어금니처럼 생겼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삼고[三古介], 아남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아남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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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의 집성촌은 조선 시대에서 여러 성씨가 입향하여 대대로 거주하며 동족 마을을 이루고 있다. 고북면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성씨로는 양천 조씨(楊川趙氏), 산밑 김씨, 가구 김씨(加口金氏), 통개 최씨, 봉생 엄씨(鳳生嚴氏), 황골 문씨[黃谷文氏], 날새 오씨, 금도 박씨(金島朴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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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두산마을에 있는 고려 후기~조선 전기의 기와 가마터. 고산리 두산 기와 가마터는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와 수당리를 잇는 지방도 609호선 변에 위치하고 있다. 지방도 609호선을 사이에 두고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두산마을과 마주 보는 지역에 해당한다. 고산리 두산 기와 가마터는 아직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사례가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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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고산리 백자 가마터는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와 수당리를 잇는 지방도 609호선 변에 자리한 고산리 사기점골마을에 위치한다. 서산시 운산면 고산리 사기점골마을은 고풍저수지 동편에 위치한 높이 280여 m의 험준한 산지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가지 능선 남동향 사면에 자리한다. 아직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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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파도리(古波島里)는 본래 파지도(波知島)라 하였는데, 1974년에 간행된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고려 때 파지도영(波知島營)을 두었다가 조선 태종 때 호리로 수영을 옮기게 되면서 옛파지섬 또는 고파지도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세조실록(世祖實錄)』에 “파지도만호(波知島萬戶)의 수영이 바다 가운데 30리에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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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도의 수군 편제에 따라 서산에 속해 있던 방어 시설. 고려 후기 서해안 지역에 왜구가 자주 침입하여 1373년(공민왕 22)에는 태안군이 폐군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 서해안 일대에 군사 시설을 마련하면서 파지도에 성을 쌓게 되었다. 조선 전기에 들어와서는 고파도에 파지도만호진을 설치하였고, 태종 때에 파지도만호영을 태안 호리로 옮기면서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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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관기리의 ‘관’자와 하류곡리의 ‘유’자를 따서 관유리(館柳里)가 되었다. 조선 시대 해미현 동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해미군 동면 관기리와 하류곡리를 합쳐 서산군 지성면 관유리로 개편되었다. 1917년 지성면을 해미면으로 고치면서 해미면 관유리가 되었고,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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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전승되어 전해 내려오는 문학. 구비 전승은 행위나 물질이 아닌 말로 전승되는 민간 지식·문화의 총체를 의미한다. 하지만 협의의 의미로는 구비 문학(口碑文學)을 가리키기도 한다. 구비 전승의 갈래로는 설화·민요·판소리·탈춤·속담·수수께끼 등이 있으나 서산 지역의 지역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는 설화와 민담이 있다. 서산 지역의 설화는 자연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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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서 국수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행한 『서산의 지명사』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이 자료가 1999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스산의 숨결』 193에 게재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부석면에 소재한 매봉산의 산봉을 국수봉(國首峰) 또는 국사봉(國師峰)이라고 한다. 구전에 따르면 조선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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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도는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포구 마을이다. 본래는 천수만 내에서 안면도에 딸린 황도와 더불어 가장 큰 섬이었다. 그러나 1982년 10월 26일 물막이 공사가 이루어지면서 대대로 갯가에 의지하여 살아온 간월도는 뭍으로 변했다. 가구 수는 80여 호에 250여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자연 마을로는 큰말·벗말·달박골·갱말 등이 있다. 이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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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귀밀리(貴密里)는 조선 시대 해미현(海美縣) 남면 지역으로, ‘귀밀’이라는 명칭 유래는 알려진 바가 없다. 『서산의 지명사』에 의하면 예전부터 귀밀리는 비록 그 규모는 작을지라도 세대를 이어 살기에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고 한다. 특히 귀밀리 논은 어떤 풍흉에도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좋은 경작지로 인근에 소문이 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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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금곡리의 ‘금’자와 추학리의 ‘학’자를 따서 금학리(金鶴里)라 하였다.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쇠골[金谷里], 츄학리[秋鶴里], 마져리[麻田里], 쇼길리[小吉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금학리는 조선 시대의 서산군 영풍창면과 노지면 지역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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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금학1리 사기점골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서산시 서북단 가로림만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팔봉면에서 성연면으로 향하는 지방도 634호선 변에 있는 금학1리 소길마을[우길마을]에 위치한다. 서산시 팔봉면 금학1리 소길마을 입구에서 연화산 쪽을 향한 동북~남서 방향의 긴 계곡 초입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연화산으로부터 남서쪽을 향해 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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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기지리(機池里)는 조선 시대 해미현(海美縣) 남면 지역으로, 마을 논에 두레 10개로 퍼도 마르지 않을 이름난 샘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샘이 무너지지 않도록 둘레에 나무 빈지를 쌓았던 것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기지리, 19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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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남산리의 ‘남’자와 정동의 ‘정’자를 따서 남정리(南井里)라 하였다.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남산뫼[南山里], 공슈골[葛山里], 얌골[井洞]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남정리는 조선 시대의 서산군 인정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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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심곡리(深谷里), 신흥리(新興里),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한틔골, 집푸실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대곡’이라는 명칭은 『조선지지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신흥리의 한글 표현 한틔골의 한자 표기인 대치(大峙)의 ‘대’자와 심곡의 ‘곡’자를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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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의 집성촌은 대체로 16세기 내지 17세기에 입향하여 정착한 성씨들이다. 대산읍 집성촌의 성씨는 본관과 지명을 함께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곰섬 김씨[김해 김씨], 갈머리 김씨[경주 김씨], 개화동 김씨[경주 김씨], 탑골 김씨, 그마재 장씨[인동 장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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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수동[古水洞], 요동(要洞), 대조리(大鳥里)가 합해지면서 대조리에서 ‘대’자와 요동리에서 ‘요’자를 따서 대요리(大要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지와 요[要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대요리 지역은 원래 지곡면 고수철리와 대조곶리(大鳥串里)였으며, 1895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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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대동의 ‘대’자와 황곡의 ‘황’자를 따서 대황리(大黃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대동리와 방길리(方吉里),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동[大同], 황골[黃谷里], 방길리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조선 시대에는 서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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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덕동(德洞)의 ‘덕’자와 상송리의 ‘송’자를 따서 덕송리(德松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덕동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덕동, 위숄말[上松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조선 시대에는 서산군 문현면 지역으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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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이 합해지면서 구도동에서 ‘도’자와 전당리(錢堂里)에서 ‘당’자를 따서 도당리(道堂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구슈동[求水洞], 화락리(花落里), 젼당리, 상암리(上巖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구수동, 왕시랑이, 구도동 지역과 부산리(富山里) 일부 지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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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도원리(桃源里)의 ‘도’자와 성동(星洞)의 ‘성’자를 따서 도성리(道成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돗다란리, 셩동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저주리(猪走里)이던 마을이 1895년 성동과 도원리의 두 개 리로 분리되었다. 1914년 도원리와 성동리가 합쳐져 서산군 지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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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 쇠팽이에 있는 야철 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충청도(忠淸道) 해미현(海美縣) 호장(戶長) 김연(金鍊)이 서산군(瑞山郡) 임내(任內) 지곡현(地谷縣) 땅에 은돌[銀石]이 있다고 하니, 관가에서 사람을 보내어 파내어서 납[鉛] 1근 8냥쭝[兩重]을 녹이었는데, 정련(精練)한 백은(白銀)이 1전 3푼이었다. 또 다른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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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과거 이곳에 몽웅역(夢熊驛)이 있어 역말, 역촌, 역리라 불리던 것이 동암리(冬岩里)로 바뀌었다고 한다.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도 동암리의 한글 표현은 역말로 기록되어 있다. 『서산의 지명사』에서는 마을이 동쪽 산 밑에 위치하고 있어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져 특히 겨울은 더욱 춥고 길게 느껴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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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둔산리(芚山里)의 ‘둔’자와 당산리(堂山里)의 ‘당’자를 따서 둔당리(芚堂里)라 하였다.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둔산[芚山里], 당갈미[棠山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둔당리는 조선 시대 서산군 인정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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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마룡리에서 아기장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행한 『서산의 지명사』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이 자료가 2002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스산의 숨결』 200에 게재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마룡리 짚은개마을에 있는 난곡농장은 1929년 매립되기 전까지는 바다였다. 이곳에는 바닷물이 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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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에서 철마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행한 『서산의 지명사』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대산읍기」에서 이 전설을 인용하였다고 밝혀 놓았다. 망일사는 대산리 망일산 산중에 위치한 사찰이다. 이 절은 고려 현종 때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절 대웅전의 왼쪽에는 암대(岩臺)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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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에서 가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매남리 쌀바람」은 이웃은 극심한 가뭄이 들어 기우제를 올릴 형편인데도 매남리의 어느 농부는 우리는 아무 걱정이 없다는 이기적인 말을 하여 원님에게 징벌을 받았다는 가뭄전설이다. 매봉재 남쪽이 된다하여 붙여진 매남리는 대산리에 속한 하나의 자연 마을이다.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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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에 흐르는 냇물이 여울져 늘 나는 물소리가 우는 소리 같아 우르내, 울내라 하였다. 울내 주변에 형성된 마을을 울내말이라고 하였으며, 한역을 하여 명천(鳴川)이라고 하였다. 1914년에 행정 구역 개편 시 명천리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우루[鳴川里], 말우리[馬鳴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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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모기대리(毛其大里)의 ‘모’자와 양월리(梁越里)의 ‘월’자를 따서 모월리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모기대리, 양월리 등의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모월리는 조선 시대의 서산군 인정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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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이 합해지면서 무수리(舞袖里)에서 ‘무’자와 부장동리(部將洞里)에서 ‘장’자를 따서 무장리(舞將里)가 되었다. 무장리는 조선 시대의 두모곡리(豆毛谷里), 돈지리(頓地里), 부장동리 지역이다. 1895년 두모곡리는 원천리로, 돈지리는 신동으로, 부장동리는 사동으로 분리되었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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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소동리(小洞理), 장양리(章陽理), 회찬리(回贊里) 등 3개 리와 문기리(文起理) 일부를 합치면서 문기리에서 ‘문’자와 장양리에서 ‘양’자를 따서 문양리(文陽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뭉구리[文起里], 쇼동[小洞], 장양동(章陽洞), 회쳔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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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시 반계리(磻溪里)의 ‘반’자와 만양리(晩陽里)의 ‘양’자를 따서 반양리(磻陽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만양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만양니[晩陽里], 고현[磻溪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반계리의 한글 표현인 고현이란 명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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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무장리에서 범동굴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행한 『서산의 지명사』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이 자료가 1992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스산의 숨결』 104에 게재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서산시 지곡면 무장리 절미마을 너머에 범동굴이 있다. 이곳은 예로부터 나무와 덩굴이 무성하였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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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부흥동(富興洞)에서 ‘부’자와 산저리(山底里)에서 ‘산’자를 따서 부산리(富山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산져리, 부흥골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의 두치면(豆峙面) 산저리와 부흥동이 1895년 산저리, 부흥동, 율리(栗里), 점촌(店村)으로 분리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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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에는 강당 이씨(江堂李氏) 회안대군파가 입향하여 대대로 거주하며 집성촌을 이루고 있고, 지산리에 지산 조씨[평양 조씨] 등이 있다. 강당 이씨는 전주 이씨로 부석면 강당리 일대에 거주하여 얻은 별칭이다. 또한 면(面)의 옛 이름인 화변에서 따서 화변 이씨(禾辺李氏)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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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부다리(富多里)에서 ‘부’자를 장산리(長山里)에 ‘장’자를 따서 부장리(富長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가울[蘆乃洞], 장산리, 셩동[星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동암면 부다리와 노내동리(蘆乃洞里), 동음암면(冬音巖面) 부산리(富山里), 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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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사기리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사기리 당제는 음력 12월부터 1월 1일 사이에 액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마을 입구에 장승을 깎아 세운 후, 당나무[큰 소나무]가 있는 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였다. 천수만 연안에 위치한 사기리는 범선이 접안하기에 유리한 포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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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산저리의 ‘산’자와 동막리(東幕里)의 ‘동’자를 따서 산동리(山東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산저리·동막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산져리[山底里], 동막리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산동리는 조선 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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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산동(山洞), 내동(內洞), 부성동(富城洞)이 합해지면서 산동에서 ‘산’자와 부성동에서 ‘성’자를 따서 산성리(山城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부셩동, 산동, 내동 등의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지곡면 이살리였으나, 1895년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부성동, 산동, 내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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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당산리(堂山里)의 ‘산’자와 수원동(水源洞)의 ‘수’자를 따서 산수리(山水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당산리, 수원동,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수원골[水源洞], 당산니[堂山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산수리는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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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삼봉리(三峯里)의 ‘삼’자와 송치리(松峙里)의 ‘송’자를 따서 삼송리(三松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삼봉리, 송치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삼봉니, 솔틔, 위터골[上基里], 위버드실[上柳谷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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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상노치리(上蘆峙里)에서 ‘상’자와 홍천리(紅川里)에서 ‘홍’자를 따서 상홍리(上紅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위가, 아가[下蘆峙里], 즁노치[中蘆峙里], 홍쳔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두치면(豆峙面) 노치리(蘆峙里)와 홍천리였으나, 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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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천수만 안쪽 창리 해안에 위치한 포구. 창리포구는 부석면의 남쪽 끝 해안에 위치한다. 동·서·남 3면은 천수만과 접해 있고, 서쪽으로 태안군 남면, 남쪽으로는 안면도와 마주보고 있다. 창리에 속한 자연 마을은 창말·목말·구장터 등이 있고, 부속 도서로 대섬·쏘아섬·닭섬·검조도·시루섬·토끼섬 등을 거느리고 있다. 창리포구는 본래 서산군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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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에 있는 서산 해미성당 소속 공소. 공소는 신부가 상주하는 성당과 멀리 떨어진 마을이나 소도시에서 신부의 임명을 받은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신자 공동체이다. 공소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지만 성당에 소속되며, 대개는 교우촌인 경우가 많았다. 공소에는 1년에 두 차례 ‘판공성사’[신자들이 일 년에 두 번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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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차리에서 명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행한 『서산의 지명사』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이 자료가 1998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스산의 숨결』 174에 게재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인지면 차리에는 예로부터 뛰어난 명당이 있다는 구전이 전한다. 이 고장의 중심 산은 서각산(犀角山)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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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시 석지리(石旨里)의 ‘석(石)’자와 남원리(南院里)의 ‘남(南)’자를 따서 석남리(石南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율곶면에 남원리, 셕지리, 구만이[九萬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석남동은 조선 시대에 서산군 대사동면 남원리로 41호에 150여 명이 사는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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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때 석지리(石旨里)의 ‘석(石)’자와 죽림리(竹林里)의 ‘임(林)’자를 따서 석림리라 하였다. 석림동은 조선 시대의 서산군 대사동면 석지리 지역으로 1895년 서산군 대사동면 평리(坪里), 석지리, 죽림리로 나뉘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때 평리, 석지리, 죽림리를 합하여 서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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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옛날부터 구전되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설화는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 형태의 민간 서사를 가리키는 말로 통상 그 갈래를 신화, 전설, 민담 등으로 삼분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서산시에 전승되고 있는 설화는 주로 전설과 민담이다. 전승되고 있는 작품의 수량으로 비교한다면 민담이 압도적으로 많다. 전설은 증거물과 진실성을 바탕으로 전승된다. 때문에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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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마을이 쥐뿌리재라는 고개 아래에 있어 잿골 또는 성동(城洞)으로 불렸으나, 의성 김씨가 살게 되면서부터 잿 ‘성(城)’자를 이룰 ‘성(成)’자로 바꾸어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1914년 이전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나 『구한국지방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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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마을 어귀에 북극성 및 북두칠성이란 이름을 가진 바위들이 있어 별바위 또는 별바위마을이라 불리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성암리가 되었다. 조선 시대에 홍주목(洪州牧) 운천면(雲川面) 보산리였으며 홍주목의 월경처였다. 1895년 해미군(海美郡) 운천면으로 바뀌면서 모산리, 성암리(星岩里), 장산리로 분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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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성연면(聖淵面)에 위치한 왕정리(旺井里)에 옥동샘이라는 우물이 있었다. 옥동샘에서 용이 승천한 다음부터 마을에 좋은 일이 생기고 번성하였다고 하여 면의 이름을 성스러운 연못이라는 뜻인 ‘성연(聖淵)’이라 지었다. 조선 시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성연면에 성연부곡(聖淵部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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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의 집성촌은 조선 시대에 여러 성씨가 입향한 후 대대로 거주하며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성연면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성씨로는 오사리 이씨[전주 이씨], 새방 한씨[청주 한씨], 예덕리 민씨[여흥 민씨], 일람리 박씨[밀양 박씨] 등이 있다. 오사리 이씨(梧沙里李氏)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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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에서 송덕암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행한 『서산의 지명사』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이 자료가 1994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스산의 숨결』 130에 게재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송덕암은 해미면에서 덕산으로 넘어가는 지방도 가에 위치해 있다. 이 암자에는 미륵불을 봉안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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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에서 쇠북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행한 『서산의 지명사』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이 자료가 1992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스산의 숨결』 109에 게재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옛날 지곡면 도성리 솔섬 앞에 쇠로 만든 북이 있었다고 한다. 이 북은 지름이 4m이고 높이가 1m인 거대한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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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수당리에서 당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행한 『서산의 지명사』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이 자료가 2002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스산의 숨결』 220에 게재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수당리는 서산시와 당진군의 경계 지역에 위치한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조선 시대부터 지속되는 당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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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수당리에서 마을의 무사와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수당리 장승제와 산신제는 이틀에 걸쳐서 진행된다. 즉 음력 1월 14일 저녁에는 산신제를 지낸 뒤 이튿날인 정월 대보름 아침에는 3개소의 장승에 각각 장승제를 지낸다. 장승제는 장승이 세워진 방위에 따라 동쪽 장승은 ‘동방맥이’, 북쪽은 ‘북방맥이’, 중앙은 ‘중앙맥이’라고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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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때 수동(壽洞)의 ‘수(壽)’자와 강석리(江石里)의 ‘석(石)’자를 따서 수석리(壽石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동암면에 직동(直洞), 익동(益洞), 회동(會洞), 쥴동[內注乙洞], 외쥴동[外注乙洞], 강석리, 슈동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수석동은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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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산수리에서 용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수원 용추전설」은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행한 『서산의 지명사』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이 자료가 1994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스산의 숨결』 132에 게재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와 수원골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합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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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수평1리 점골에 있는 야철 터.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와 수당리를 잇는 지방도 609호선 변에는 고산리, 수평리 등의 마을이 있는데, 수평리 야철 터는 수평1리 점골에 위치하고 있다. 수평리 야철 터가 자리한 곳은 고풍저수지의 동쪽에 위치한 높이 278m의 험준한 산지가 북동쪽으로 뻗어 내린 가지 능선의 말단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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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신동(新洞), 오이동(梧伊洞), 장림동(莊林洞)을 합하면서 신동에서 ‘신’자와 장림동에서 ‘장’자를 따서 신장리(新莊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신동, 오리골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동암면 탄동리로 되어 있다. 1914년 신동, 오이동, 장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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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애당리의 ‘애’자와 언정리의 ‘정’자를 따서 애정리(艾井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애당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쓕당리[艾堂里], 은졍리[彦井里] 등의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애정리는 조선 시대의 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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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야촌(野村)의 ‘야’자와 당산리(堂山里)의 ‘당’자를 따서 야당리(野堂里)라 하였다.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들말[野村], 원당리(元堂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야당리는 조선 시대의 서산군 인정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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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사양동의 ‘양’자와 우길리, 방길리(方吉里)의 ‘길’자를 따서 양길리(陽吉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방길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방길리, 사양골[斜陽洞], 우길리(牛吉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조선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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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양림리(良林里)는 조선 시대 해미현(海美縣) 남면 지역으로, 마을이 평평한 곳에 입지하여 햇볕이 잘 들므로 일명 ‘해말’ 또는 ‘양동(陽洞)’이라고도 한다. ‘양림’이란 명칭은 비록 한자는 다르지만 양동의 ‘양’ 자와 마을 곳곳에 조성되어 있던 소나무 숲을 의미하는 ‘수풀 림(林)’ 자를 합쳐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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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2리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어송2리 산신제는 매년 삼월 삼짇날[음력 3월 3일] 저녁 팔봉산의 바위 제단에서 마을의 평안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제의 비용은 마을에서 십시일반으로 갹출하여 충당한다. 제물은 메, 삼색실과, 포, 술 등이다. 산신제를 주관하는 제관은 생기복덕(生氣福德)을 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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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어은동(漁隱洞)의 ‘어’자와 송치리의 ‘송’자를 따서 어송리(漁松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어은동리(漁隱洞里), 정자리(亭子里),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어은동, 졍자동[亭子洞], 숄테[松峙里] 등 관련 명칭이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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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1리 곧우실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충청남도 서북단에 위치한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곧우실마을에 자리한다. 팔봉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05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약 500m 내려오면 도로의 동쪽에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곧우실들 계곡이 동서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 일대는 높이 350m의 팔봉산 서향 가지 능선 말단부에 해당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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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2리 대문다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충청남도 서북단에 위치한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대문다리마을에서 확인된 백자 가마터로, 서산시와 태안군을 잇는 국도 32호선의 중간 정도 부분에 위치한다.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 일대는 서산과 태안을 오가는 교통의 요지일 뿐만 아니라 고려 시대 영풍창(永豊倉)이 설치되었던 지역으로, 현재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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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3리 창개마을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어송리 창개 산신제는 음력 1월 초에 인일(寅日)[범날, 호랑이날]을 택하여 팔봉산 상봉 밑의 산제당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창개마을은 동북쪽으로는 팔봉산을 등지고, 마을 앞으로는 가로림만의 가장 깊숙한 포구에 자리한다. 제관은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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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억대리(億垈里)는 조선 시대 해미현(海美縣) 남면 지역으로 업더지[億垈里]·업터지 등으로도 불린다. 그 명칭은 『서산의 지명사』에서는 옛날 살기가 어려웠을 때 마을 사람들이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억척스럽게 일을 하며 살았던 것에서, 또는 해미장과 근거리에 있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데서 연유하였다고 추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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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가사리에서 샘물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여기정 전설」은 한 관원을 사이에 둔 두 기생이 서로 질투하다가 서산 기생이 샘물에 투신하여 죽었는데, 이 샘을 여기정(女妓井)이라고 불렀다는 우물유래담이다. 또한 이곳을 넘어 오가던 고개를 여기령(女妓嶺)이라고 하였다는 고개유래담이기도 하다.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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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점말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및 옹기 가마터. 서산시 운산면의 여미리 점말은 여미리 윗장터로도 불리는데, ‘점말’은 바로 장터의 다른 이름으로, 여미리 일대가 조선 시대 시장 혹은 도자기와 같은 수공업품 생산지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여미리 점말 백자·옹기 가마터는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마을에 있는 높이 85m의 전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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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남쪽의 연화산과 주변의 산지에 의해 형성된 분지인지라 마을의 형태가 물 위에 핀 연꽃과 같다고 하여 연화리(蓮花里)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문현면에 연화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연화리는 조선 전기에는 문지촌이었고 후에는 문현면 이화리로 변경되었다. 이 지역은 1914년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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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솔예동(上率禮洞)과 하솔예동(下率禮洞)의 유씨, 박씨, 장씨의 세 성씨가 수백 년간 예와 덕을 숭상하며 살아 왔다고 한다. 따라서 솔예에서 ‘예’자와 마을 중앙을 관통하는 덕천에서 ‘덕’자를 따서 예덕리(禮德里)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하성연면에 덕쳔[德川里], 위쇼리[上率里], 아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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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리(草綠里)는 충청남도 서산시의 맨 아래 끝자락인 고북면 동쪽에 자리한 마을로, 이웃한 장요리와 함께 홍성군 갈산면 대산리에 인접해 있다. 초록리는 조선 후기 판소리 중고제의 명창인 고수관(高壽寬)[1764~1849]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초록리는 18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옹기, 질그릇, 쇠솥 등을 만들어 팔았던 그릇 장인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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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시 상여전리(上余田里)·하여전리(下余田里)의 ‘여(余)’자를 따려 한 것이 ‘예(禮)’자가 되고 모천리(毛川里)에서 ‘천(川)’자를 따서 예천리(禮川里)라 하였다. 유래에 대한 다른 견해로는 나무장골의 옛 지명인 예천을 사용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노지면에 공림리(公林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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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내오산리(內吾山里)의 ‘오(吾)’자와 대남지리(大南池里)·소남지리(小南池里)의 ‘남(南)’자를 따서 오남리(吾南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오산면에 안오뫼[內吾山里], 남광지[大南里], 쇼남광지[小南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오남동(吾南洞)은 조선 시대에 서산군 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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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오지리(梧枝里)의 ‘오(梧)’자와 사동(砂洞)의 ‘사(砂)’자를 따서 오사리(梧砂里)가 되었으나, 광복 전후까지만 하여도 조선 시대의 이름인 사장골[沙場골]로 불렸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성연면에 오지평[梧枝村], 직동(直洞), 사장[砂洞], [生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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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오동(烏洞)의 ‘오’자와 백학동(白鶴洞)의 ‘학’자를 따서 오학리(烏鶴里)가 되었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오동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가금골[烏洞], 아골[白鶴洞]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오학리는 조선 시대 해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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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에서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오학리 산신제와 샘제는 음력 1월 초에 인일(寅日)[범날, 호랑이날]을 택하여 산제당과 공동 우물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던 제사이다. 오학리는 해미 향교가 자리한 마을이다. 때문에 오학이란 마을 이름보다는 향교말로 더 알려져 있다. 마을에서는 그 연원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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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 왕정리에서 옥동샘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옥동샘」은 노부부가 뒤늦게 본 아기가 마을 사람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죽은 아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였다는 살아담(殺兒談)이자 신이담이다.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행한 『서산의 지명사』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이 자료가 1996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스산의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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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온천이 나왔다는 전설에서 온동(溫洞)이라 하였으며, 뒷산에 바위가 있어 입석리(立石里)라 하였다.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때 온동의 ‘온(溫)’자와 상입석리(上立石里)·하입석리(下立石里)의 ‘석(石)’자를 따서 온석리(溫石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대사동면에 위션돌[上立石里]·아션돌[下立石里]·온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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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1895년 행정 개편 당시 왕동(旺洞)의 ‘왕(旺)’자와 세정동(細井洞)의 ‘정(井)’자를 따서 왕정리(旺井里)라 하였다. 또는 성왕산의 ‘왕’자와 우물의 ‘정’자를 따서 지어진 것이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상성연면에 왕동, 세정리[細井洞], 직동(直洞) 등의 관련 지명이 보인다. 1895년 왕동, 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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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에서 용못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행한 『서산의 지명사』에 수록되어 있다. 그 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호서읍지(湖西邑誌)』에도 기록되어 있다. 대산읍 독곶리 백사장에 한 호수가 있는데 이를 용추독호(龍湫篤湖) 또는 덕호(德湖)라고 한다. 아울러 마을에서는 이 못에 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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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2리 아랫강댕이에서 가정 및 마을의 안녕과 무사태평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용현리 아랫강댕이 산제와 미륵제는 매년 음력 1월 17일 사시(巳時)[오전 9~11시]에 개인의 무탈함과 마을의 평안, 풍요, 무사태평 등을 위하여 지내는 제의이다. 따라서 용현리 아랫강댕이 산제와 미륵제는 개인제와 동제(洞祭)의 성격을 동시에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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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웅소성리(雄梳城里)는 마을 동쪽 지붕재 남쪽 끝에 웅소성[어리성]이라는 토성이 있어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웅소성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어루셩니[雄梳城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조선 시대 해미현 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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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유산리(遊山里)에서 ‘유’자와 명계리(明溪里)에서 ‘계’자를 따서 유계리(遊溪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동암면에 베틀말[機村], 노루뫼, 가벌[石川里], 셕바탕이[石亭里], 명게리, 다리[大橋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동암면 대교리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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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율리(栗里)에서 ‘율’자와 목과동리(木果洞里)에서 ‘목’자를 따서 율목리(栗木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두치면에 밤실, 시골[排時洞], 모과울[木果洞], 즘말[店村], 장양동(章陽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두치면 배시동과 목과동이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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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문양1리의 들림바위[音岩, 소리 나는 바위, 두룸바위]에서 유래되었으며, 원래 동음암면(冬音岩面)이었으나 1914년에 행정 구역 개편 시 동을 떼고 음암이라고 불렀다. 또한, 동음(冬音)은 둥글다는 뜻인 둠의 표기로 쓰였으며, ‘동음암(冬音岩)’은 둥근 바위라는 뜻이다. 문양1리 두룸배[일명 들음배] 마을은 말발굽같이 둥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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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읍내동(邑內洞)은 서산의 중심지로서 조선 태종 때 쌓았다는 읍성의 내부에 있던 지역으로 성내마을, 중앙촌, 성밑마을 등의 지명에 근거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대사동면(大寺洞面)의 동문리(東門里), 군내면의 셔문리[西門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의 서산군 대사동면 읍내리, 남문원리와 군내면 노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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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읍내리(邑內里)는 조선 시대 서산 해미읍성이 있던 해미현의 중심 마을이었던 것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서산 해미읍성은 1418년(태종 18) 덕산에 있던 병마절도사영이 해미현으로 옮겨진 후 1651년(효종 2) 다시 청주 상당성으로 옮길 때까지 233년간 충청병마절도사의 병영성이었던 곳이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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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응평리(鷹坪里)는 조선 시대 해미현(海美縣) 남면 지역으로, 마을에 산이나 언덕, 숲 등이 없이 거친 흙으로 이루어진 넓은 들판이 있어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서산의 지명사』에는 옛날 동암리가 역말이었을 때 말들이 병들어 죽게 되면 거친 벌판에 버렸고, 그 죽은 말고기 때문에 매들이 모여들게 되어 ‘매벌’이 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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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서 인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행한 『서산의 지명사』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이 자료가 2002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스산의 숨결』 227에 게재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용현리 쥐바위를 조금 지나면 길 우측에 벼랑을 이룬 큰 바위가 있는데, 이를 인바위라고 한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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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인정면(仁政面)의 ‘인’자와 노지면(蘆旨面)의 ‘지’자를 따서 인지면(仁旨面)이라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서산군 인정면·노지면·군내면(郡內面) 지역으로,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인정면·노지면에 속한 여러 동리(洞里)와 군내면 역리, 마산면 월계리 일부를 합쳐 서산군 인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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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일호리(日豪里)와 남동리(籃洞里)에서 한 자씩 따서 일람리(日藍里)라 하였다. 일호(日毫)는 마을을 개척할 때 햇무리가 나타나 햇무리 또는 햇물말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역하면서 일운이 또는 이후니라 부른 것으로 보이며, ‘일운(日暈)’의 오기로 추정된다. 람동(籃洞)은 마을 뒷산에 소나무가 울창하여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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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때 잠동(潛洞)의 ‘잠(潛)’자와 마을 앞을 흐르는 홍천(紅川)에서 ‘홍(紅)’자를 따서 잠홍리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대사동면(大寺洞面)에 쟌골[潛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잠홍동(潛紅洞)은 조선 시대 서산군 대사동면 잠동리 지역이었다. 1895년에 잠동, 홍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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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마을 전체의 모양이 노루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 하여 노루 장(獐)자를 써서 장동(獐洞)이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오산면에 쇼장동[小獐洞], 장동[大獐洞], 왜장이[下獐洞]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장동은 조선 영조 때 발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보면 서산군 오산면 장동리 지역이었다. 18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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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군 팔봉면 흑석리에서 아기장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행한 『서산의 지명사』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이 자료가 1999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스산의 숨결』 184에 게재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팔봉면 흑석2리 바닷가에 높이 10m, 폭 5m의 큰 바위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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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장이치리(長而峙里), 어현리(於賢里), 독주동(犢走洞)이 합해지면서 장이치리에서 ‘장’자와 어현리에서 ‘현’자를 따서 장현리(長賢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지곡면에 장이[長而洞], 어현이, 독쥬[犢走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지곡면에 속한 어현리와 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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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저성리(猪城里)는 조선 시대 해미현(海美縣) 남면 지역으로,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 지형이 두툼하여 도투성 또는 저성이라 불렸다는 설이 있다. 또 일설에는 옛날 마을 주변에 있던 작은 토성의 생김새가 마치 돼지처럼 생겼다 하여 돼지성으로 불렀는데, 당시 방언으로 돼지는 ‘돗’으로 불렀기 때문에 돼지성을 돗성 또는 도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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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전천리(前川里)는 조선 시대 해미현(海美縣) 남면 지역으로, 마을 앞에 해미천이 흐르고 있어 앞내·전내 등으로 불렸다 하는데, 이것의 한자 표기가 ‘전천(前川)’이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상전천리·하전천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위쳔[上前川里]·아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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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정자리에서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며 지내던 제사. 정자리 선돌제는 매년 음력 정월에 선돌 앞에서 가정의 무탈함과 안녕을 위하여 개인적으로 지내던 제사이다. 서산시 고북면 정자리에는 2기의 선돌이 있다. 이 선돌은 마을에서 신성시하여 함부로 건드리는 것을 금기시했으며, 매년 정초에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기도 했다. 다만, 선돌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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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산리(造山里)는 조선 시대 해미현(海美縣) 동면(東面) 지역으로, 1974년 간행된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해미읍을 위해 과거 조그마한 산을 만들고 숲을 조성하였던 것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조산리가 위치한 해미읍 서남쪽은 서해로 열려진 허허벌판이기 때문에, 바람이나 추위에 대한 일종의 방어막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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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죽전리(竹田里)에서 ‘죽(竹)’자를 따고 을호리(乙湖里)에서 ‘을호’의 별칭인 석성제언의 ‘성(城)’자를 따서 죽성리(竹城里)가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견해로는 죽성 지역은 대나무 밭이 무성했던 곳으로 주변 마을이 대나무 성처럼 둘러친 것 같아 보여서 지어진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율곶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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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중리(中里)와 왕산리(旺山里)가 합해지면서 중리에서 ‘중’자와 왕산리에서 ‘왕’자를 따서 중왕리(中旺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지곡면에 즁뫼, 왕산리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왕산리와 중촌리(中村里)로 되어 있었으나 1895년 중촌리의 명칭이 중리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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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서 쥐 형국과 고양이 형국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행한 『서산의 지명사』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이 자료가 2002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스산의 숨결』 212에 게재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운산면 용현리 일대에는 쥐바위와 괭이바위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쥐바위는 용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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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삼국 시대에는 백제의 지육현(知六縣)으로 불리다가 통일 신라 시대에 지육현(地育縣)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고려 시대에 지곡현(地谷縣)으로 변경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다. 삼한 시대에는 마한의 54개국 중의 하나인 치리국국(致利鞠國)이었으며, 삼국 시대에는 지육현(知六縣)으로 변경되었다. 통일 신라 시대에는 부성군에 예속된 지육현(地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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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진산리(榛山里)의 ‘진’자와 장북리의 ‘장’자를 따서 진장리(榛墻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고성리, 장북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진산리, 고셩리[古城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조선 시대에는 서산군 영풍창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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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북쪽에 위치한 금강산과 장군봉 사이 수리봉[車峯, 鷲峯] 또는 현재 차리1리와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인 수랑재와 관련이 있는 지명으로 보인다. 1974년 간행된 『한국지명총람』에는 수리재 아래 마을이 자리 잡고 있어 수릿골 또는 차동(車洞)이라 부른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1911년 간행된 『조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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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창리 은안티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서산시 부석면 창리 일원은 부남호를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 태안반도를 마주하고 있는 지역으로, 인지면으로부터 시작하여 남서 방향으로 향하는 낮은 구릉성 산지의 말단부에 해당하는 곳이다. 본래 지형은 구릉성 산지의 사면 하단부가 바다와 닿아 있었지만, 일제 강점기 이후 대대적인 간척 사업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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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초록리 1구에 있는 조선 시대 토기 가마터. 초록리 토기 가마터는 서산시 고북면 초록리 신촌마을 인근의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아직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사례가 없으며, 『서산시지』와 『문화유적분포지도』에 간략한 정황이 서술되어 있다. 초록리 토기 가마터는 서산시 고북면 초록리 신촌마을의 계곡 안쪽에서 확인되었는데, 험준한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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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칠전리 사기점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서산시 부석면 칠전리는 부남호를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 태안반도를 마주하고 있는 지역으로, 인지면으로부터 시작하여 남서 방향으로 향하는 낮은 구릉성 산지의 말단부에 해당하는 곳이다. 칠전리 사기점 백자 가마터가 확인되는 지역은 서산시 부석면 칠전리 사기점마을에 위치한 야산의 서사면 말단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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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이 합해지면서 탑동(塔洞)에서 ‘탑’자와 중곡리(中谷里)에서 ‘곡’자를 따서 탑곡리(塔谷里)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동음암면에 탑동, 즁곡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조선 시대에 안치리(雁峙里), 가토곡리(加土谷里), 고양동리(高陽洞里)였으며, 현재의 부산리(富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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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팔봉면(八峰面)은 면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팔봉산(八峰山)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보인다. 1619년(광해군 11)에 간행된 『호산록(湖山錄)』에 의하면 “팔봉산은 군의 서쪽 바닷가에 있는데 여덟 봉우리가 기이하게 산 위에 나열되어 있으므로 팔봉산이라 부른다”라고 하여 그 유래를 설명해 주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서산군 영풍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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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 평평한 지형에 생긴 마을이라 평리(坪里) 또는 벌말이라고도 하며, 신라 시대에는 벌이라고 불리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하성연면(下聖淵面)에 상평쵼[上坪村], 신당리(新塘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평촌, 파평촌, 신당리가 한 마을로 통합되어 서산군 성연면 평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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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설을 기초로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땅과 자연 형세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지리(風水地理)는 인간의 삶이나 죽음과 관련된 장소, 가령 묘지, 가택, 관청, 사찰, 마을, 도시, 수도 등의 입지 선정 및 방위 배치, 공간 구성 등에 사용해 온 한국의 전통 지리학이자 공간 인식 체계이다. 풍수는 인간의 삶과 관련된 자연환경 그리고 인간과 환경 간의 관계 등에 관심을 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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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풍전리(豊田里)는 조선 시대 금정도찰방(金井道察訪)에 속한 풍전역(豊田驛)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도 풍전역을 확인할 수 있어 그 명칭의 기원이 조선 전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789년(정조 13)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역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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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유계2리 한다리마을은 경주 김씨의 동족 마을이다. 한다리마을은 서산시의 동남쪽으로, 음암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7㎞ 거리에 있다. 마을의 동남쪽 전방으로 대교천(大橋川)이 흐르고, 그 주변에는 넓은 농경지인 매벌들이 펼쳐져 있다. 이러한 현재 모습은 남쪽에 서산 A지구 방조제가 건설된 이후의 지형이다. 이전까지 서해 바다는 내륙 깊숙이까지 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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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서 동물의 상생과 견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행한 『서산의 지명사』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이 자료가 1992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스산의 숨결』 107에 게재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에는 각각의 지명에 따른 상징적 동물이 존재한다. 이들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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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모월리에서 학돌재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행한 『서산의 지명사』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이 자료가 1997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스산의 숨결』 169에 게재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인지면 모월리와 신동리의 경계 지점의 길가에 직경 2m 정도의 바위가 놓여 있다. 이곳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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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1407년(태종 7) 정해현의 ‘해’자와 여미현의 ‘미’자를 따서 해미면(海美面)이라 이름하였다. 조선 시대에 해미현의 동면과 남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동면과 남면에 속한 동리와 서산군 동암면 석천리 일부를 합쳐 서산군 지성면으로 개편하고, 관유리, 귀밀리, 기지리, 대곡리, 동암리, 반양리, 산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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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는 다양한 성씨가 입향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다만 현재에도 조사를 통해 그 유서가 확인된 해미면의 집성촌은 대체로 임진왜란 이후에 입향한 조선 후기의 성씨들이 형성한 마을들이 대부분이다. 해미면에는 대곡리 전주 이씨, 대곡리 경주 김씨, 황락리 여양 진씨, 관유리 전씨[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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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바다에서 침입하여 들어오는 도둑을 막으려고 3면이 바다에 접한 해안에 성을 쌓은 데서 연유하여 해성(海城)이라고 하였다. 1914년에 행정 구역 개편 시 해성리(海城里)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하성연면에 셩쵼[內城村], 외셩쵼[外城村]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1895년 행정 개편 때 내성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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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호리(虎里)는 마을의 지형이 마치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호랑이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호두리, 그리고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에 내호두리(內虎頭里), 외호두리(外虎頭里)라는 명칭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풍수(風水) 형국상 호랑이 모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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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홍천리(紅泉里)는 조선 시대 해미현 동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해미군 동면의 분홍리, 천곡리, 동산리와 서산군 동암면 석천리 일부를 합쳐 홍천리로 하고 서산군 지성면에 속하게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분홍리(分紅里)가 보이며, 1911년 간행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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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상홍리에서 아기장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행한 『서산의 지명사』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이 자료가 2002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스산의 숨결』 212에 게재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옛날 두치면 홍천리[현재 음암면 상홍리]에 사는 한 부부가 겨드랑이에 큰 비늘이 있는 아기를 낳았다. 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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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화곡2리 산수골에 있는 고려 시대 청자 가마터. 화곡리 청자 가마터는 충청남도 최서북단에 위치한 대산반도의 북쪽 끝자락인 대산읍 화곡리 산수골 일대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서산시 대산읍의 독곶과 대호방조제를 잇는 국도 29호선의 중간 부분 정도에 유적이 위치하는데, 서쪽을 향해 ‘Y’자 형태로 갈라지는 화곡리 산수골 계곡의 곡간 능선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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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화계리(花溪里)의 ‘화’자와 수현리(秀峴里)의 ‘수’자를 따서 화수리(花秀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성산리(星山里),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분토골[花溪里], 반계리(磻溪里), 수현리, 성산리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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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천리 지역은 조선 시대에는 지곡면에 위치한 흑점리(黑店里)와 율곡리(栗谷里)였다. 1895년 흑점리가 화동으로 바뀌고 율곡리가 율리(栗里)와 목곡리(木谷里)로 각각 나뉘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원천리를 편입하여 화천리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지곡면에 머[遠川里],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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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환성리(環城里) 지역은 마을 모습이 문고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골환이[谷環里]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시 문곶리(門串里)와 지곡면 대요리(大要里) 사이에 동서로 쌓은 토성(土城)인 나성(羅城)이 있었으므로 골환이의 ‘환’자와 토성의 ‘성’자를 따서 환성리가 되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 서산군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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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에서 황금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이은우가 집필하고 서산시에서 발행한 『서산의 지명사』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이 자료가 1994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스산의 숨결』 123에 게재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황금산은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의 서북면 최 끝단에 위치한다. 예로부터 이 산에는 금이 있었다고 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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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황조촌(皇朝村)의 ‘황’자와 일락촌(日洛村)의 ‘락’자를 따서 황락리(皇洛里)라 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일악동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일낙골[日洛洞], 터골[皇朝村],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에 일락동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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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부엉이처럼 생긴 부엉바위가 있어 유래한 지명으로 보인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도 부엉바위를 의미하는 휴암리(鵂巖里)라는 명칭이 확인된다. 후에 ‘부엉이 휴(鵂)’자가 ‘쉴 휴(休)’자로 바뀐 것 같다.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도 부흐산[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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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들 가운데 볏섬 크기 정도의 커다란 검은 바위가 있었다고 하여 검은돌, 거문들, 흑석 등으로 불렸다고 전하지만, 농지 정리 작업 과정에서 없어져 현재는 확인할 수 없다. 일설에는 대황2리 마을 바닷가에 있는 검은 바위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1789년(정조 13)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흑석리(黑石里),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