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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석령과 오백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2040
한자 祝石嶺-吳伯周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기도 포천시
집필자 이병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4년 - 「축석령과 오백주」 『포천 군지』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0년 - 「축석령과 오백주」 『포천의 설화』 수록
성격 효행담|지명 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오백주|탁발승|호랑이
모티프 유형 오백주의 효행 이적|축석령의 지명 유래

[정의]

경기도 포천지역에서 오백주(吳伯周)의 효심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축석령과 오백주」는 실존 인물이었던 오백주[1643~1720]의 효심에 탄복한 호랑이가 부친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벌꿀을 구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는 효행담이자, 오백주가 바위에 축원 드린 곳이라 하여 축석령이라고 불렀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현재 포천 지역에는 「효자 오백주 이야기」와 같이 오백주와 관련된 여러 편의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84년 포천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포천 군지』 하권에 수록되어 있다. 2000년 이근영·이병찬 등이 엮고 포천 문화원에서 간행한 『포천의 설화』에도 전재되어 있다.

[내용]

포천읍 어룡리는 옛날 부사를 지낸 오백주라는 사람의 고향이었다. 그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었다. 어느 해 벼슬로 고향을 떠나 있는데, 고향에 계시는 부친이 중병에 걸려 위독하다는 기별을 받았다. 이 기별을 받고 그가 고향으로 달려오다가, 어느덧 해가 저물어 지금의 축석령을 밤중에 넘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큰 범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으며 으르렁댔다. 오백주는 범을 보자 큰 소리로 꾸짖었다.

“이 못된 것아, 내가 지금 아버님의 병보(病報)를 듣고 달려가는데, 감히 네가 어찌 길을 가로막느냐? 썩 물러서지 못할꼬!”

그러자 범은 말귀를 알아듣기라도 한 듯이, 꼬리를 사타구니에 묻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리하여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오백주는, 부친의 위독한 병을 근심했으나 당장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 이튿날이었다. 탁발승 하나가 왔길래, 오백주는 시주를 하며 부친의 병세를 이야기하고, 처방이 없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처방이 있긴 해도 좀 어려워서…….”

“스님, 그걸 가르쳐 주십시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스님이 시키는 대로 해 보겠습니다. 제발 그걸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 병에는 생삼에, 바위 구멍에서 친 벌꿀을 구해다 이겨서 드리면, 그것이 바로 약입니다.”

그러고는 탁발승은 어디론지 가 버렸다. 오백주가 생각하니 실로 난감한 일이었다. 그때가 마침 겨울이라 어디서 생삼을 구하며, 또 바위 구멍에 친 벌꿀을 어찌 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오백주는 그것을 구해 보려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이 골짝, 저 산 등을 헤매어 다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뜻밖에도 간밤에 만났던 큰 범이 오백주 앞에 나타나더니, 쭈그리고 앉아 등에 타라는 시늉을 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오백주가 그 범의 등에 타자, 범은 쏜살같이 달려 지금의 축석령에 이르러 오백주를 내려놓고 어디론지 가 버렸다. 오백주는 하도 이상한 일이라 그곳 사방을 휘둘러보니, 꿀벌 한 마리가 바위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옳지, 저 사이에 벌집이 있는 것이로구나! 이건 필시 하늘이 도운 것이다.”

오백주는 몹시 기뻐했으나, 워낙 큰 바위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바위 앞에 꿇어 앉아, 벌꿀을 점지해 달라고 그 바위에게 축원을 드렸다.

그런데 얼마 후에 참으로 신기한 이변이 일어났다. 그 바위 구멍으로부터 벌꿀이 줄줄 흘러내렸다. 오백주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리 보아도 어김없는 벌꿀이었다. 그는 바위를 향해 몇 번이고 절을 하고는, 벌꿀을 받아 모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또한 수소문하여 생삼을 가진 사람을 찾아내어 생삼도 사 왔다. 오백주는 탁발승이 시키는 대로 벌꿀에다 생삼을 이겨 부친에게 드렸다. 그러자 과연 큰 효험이 나타났다. 얼마 후에 그의 부친은 중병을 털고, 거짓말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로, 주엽산(注葉山) 서녘 기슭에서 오백주가 바위에 축원 드린 곳이라 하여, 그곳을 축석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설화는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오백주보성 오씨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아버지가 기이한 병에 걸렸는데, 의사가 말하기를 생삼과 석밀을 얻어 복용하면 효험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백주는 즉시 깊은 산에 들어가 정성을 다하여 약을 구하여 아버지에게 드렸다. 병이 과연 나았다.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부사에 이르렀다. 경종 계묘년에 정려를 내렸다[吳伯周寶城人 性至孝 父得奇疾 醫言得生蔘和石蜜服之可效 伯周卽入深山竭誠求 得和藥以進父 病果廖 武科官府使 景廟癸卯命旌閭].”

[모티프 분석]

「축석령과 오백주」의 주요 모티프는 ‘오백주의 효행 이적’, ‘축석령의 지명 유래’ 등이다. 「축석령과 오백주」는 주인공의 효심에 하늘이 감복하여 산신령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호랑이로 하여금 도움을 주는 이야기이다. 여기에는 오백주의 효성과 짐승[호랑이]의 도움[천우신조] 모티프가 결합되어 있다. 오백주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해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돌로 제단을 쌓아 매일 지성으로 하늘에 기도한 끝에 아버지의 병을 고쳤다고 하여, 1723년(경종 3)에 나라에서 정려를 내린 실존 인물이다. 「축석령과 오백주」는 실존 인물인 오백주를 등장시켜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 사실임을 강조하면서 은연중에 효행을 권장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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