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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현영명류대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1972
한자 抱川縣迎命留待作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정흥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48년 - 「포천현영명류대작」 저자 곽열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30년 - 「포천현영명류대작」 저자 곽열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900년 - 「포천현영명류대작」을 수록한 『서포집』 간행
성격 한시
작가 곽열

[정의]

조선 중기 곽열이 포천의 관사에서 명나라로 떠났던 사절단을 영접하기 위해 기다리면서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개설]

「포천현영명류대작(抱川縣迎命留待作)」은 조선 중기의 문신 곽열(郭說)[1548~1630]이 포천의 관사(館舍)에서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사절단을 영접하기 위해 기다리면서 지은 한시이다. 「포천현영명류대작」은 곽열의 문집 『서포집(西浦集)』 권(卷) 4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유대황화사절환(留待皇華使節還)[명나라로 간 사절이 돌아오길 머물러 기다리는데]

일장공관와간산(日長空舘臥看山)[해는 길고 한적한 관사에 누워 산을 바라보니]

수무성명관신념(雖無性命關身念)[비록 성명(性命)은 없으나 몸과 마음은 관계하니]

차박진애반일한(且博塵埃半日閒)[흙먼지 가득 날리고 반나절이 지나 버리네]

시의 본문에 ‘황화(皇華)’라는 말이 있다. 이는 중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포천형영명류대작」의 창작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곽열은 중국의 명·청 교체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곽열이 살았던 시기의 대부분의 조선 사대부들은 숭명 배청(崇明排淸)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황화’는 명나라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포천현영명류대작」은 조선 시대 포천을 배경으로 한 한시(漢詩) 가운데 사절(使節)의 행차와 관련된 시이다. 곽열의 시는 화려하지는 않으나 전아(典雅)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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