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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쉬홍군 향이문무일속」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1965
한자 抱川倅洪君餉以文無一束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병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634년 - 「포천쉬홍군 향이문무일속」 저자 김석주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84년 - 「포천쉬홍군 향이문무일속」 저자 김석주 사망
성격 한시
작가 김석주

[정의]

조선 후기 김석주가 포천 현감 홍수량이 보낸 나물을 받고 지은 오언 절구의 한시.

[개설]

「포천쉬홍군 향이문무일속(抱川倅洪君餉以文無一束)」은 조선 후기의 문신 식암(息庵) 김석주(金錫胄)[1634~1684]가 포천 현감 홍수량(洪受湸)[1626~1696]이 나물 한 다발을 보내자 이에 사례하면서 지은 한시이다.

김석주는 자가 사백(斯百)이고, 호는 식암, 절재(節齋), 지재(趾齋) 등을 사용했다. 본관은 청풍(淸風), 봉호는 청성 부원군(淸城府院君), 시호는 문충(文忠)으로, 숙종 묘정에 배향된 인물이다. 1657년(효종 8) 진사시에 수석으로 합격하고, 1662년(현종 3) 전시에서 1등을 하여 전적이 되었다. 도승지를 거쳐 1675년(숙종 1) 병조 판서, 그 후 이조 판서·예조 판서·병조 판서를 지내고, 1682년(숙종 8) 우의정에 올랐다. 51세에 갑작스런 병으로 졸하였다. 그는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산당(山黨)과 대립하던 한당(漢黨) 김육(金堉)[1580~1658]의 손자이자 명성 왕후의 사촌으로 서인 외척 세력이었다. 병권을 쥐고 기찰 정치를 행하여 사실상 숙종 전반기의 정국을 주도한 인물이다.

「포천쉬홍군 향이문무일속」은 『식암선생유고(息庵先生遺稿)』 권(卷) 5에 수록되어 있다. 『식암선생유고』는 원집 23권과 보유, 별고 2권으로 모두 1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 1~7은 사부(詞賦)와 시(詩)이다. 권 5는 절구로 오언 37수, 육언 12수, 칠언 72수 등이 실려 있다.

[내용]

일속춘산채(一束春山菜)[한 움큼의 봄 산나물을]

다정각향오(多情却餉吾)[정을 담아 도리어 나에게 보냈네.]

문무진자죄(文無眞自罪)[문무[봄 산나물의 일종(?)]는 죄업으로부터 순진하니]

참괴학손오(慙愧學孫吳)[손오[춘추 전국 시대의 병법가인 손무(孫武)와 오기(吳起)]의 병법을 배운 것이 부끄럽네.]

[특징]

사후에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왕방산(旺方山)에 묻힌 김석주는 오언 장구(五言長句)에 가장 뛰어났으며, 시의 격식에 매우 엄정하였다고 한다. 포천 현감의 정성과 그가 보낸 ‘문무’라는 봄 산나물의 청정함을 기리는 작품이다.

[의의와 평가]

김석주는 사부에 뛰어나 좋은 평판을 받았고, 상소문은 당대의 사대 소차가(四大疏箚家)에 꼽힐 정도로 문명을 떨쳤다.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1651~1708]은 근세의 문장가 중에 계곡(谿谷) 장유(張維)[1587~1638]와 택당(澤堂) 이식(李植)[1584~1647]을 작가로 추존할 수 있는데, 그 뒤로는 저자의 참신하고 진속(塵俗)을 벗어난 솜씨가 택당에 비견할 만하다고 극찬하였다. 「포천쉬홍군 향이문무일속」도 그러한 평가에 해당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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