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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운악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1916
한자 遊雲岳山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흥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376년 - 「유운악산」 저자 기화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433년 - 「유운악산」 저자 기화 사망
배경 지역 운악산 -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
성격 한시
작가 기화

[정의]

조선 전기 기화가 포천의 운악산을 유람하며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개설]

「유운악산(遊雲岳山)」은 조선 전기의 승려 함허(涵虛) 기화(己和)[1376~1433]가 포천현에서 동쪽으로 12㎞ 정도 떨어진 지점의 운악산(雲岳山)을 유람하며 지은 한시이다. 기화는 법호가 득통(得通)이고, 당호(堂號)는 함허이며, 자는 수이(守伊)이다. 속성(俗姓)은 유(劉)이며, 충주 출생이다. 21세에 관악산 의상암에서 출가하였다. 이듬해 양주(楊州) 회암사(檜巖寺)에 가서 무학 왕사(無學王師)를 보고 법요(法要)를 들은 뒤 여러 곳으로 다니다가 다시 회암사에 가서 한방에 혼자 있으면서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그 뒤부터 공덕산 대승사, 천마산 관음굴, 불회사에 있으면서 학인을 교도하고, 자모산 연봉사에서 작은 방을 차지하며 함허당(涵虛堂)이라 이름하고 3년 동안 부지런히 수도하였다. 희양산 봉암사를 중수하고 죽으니 나이는 58세, 법랍(法臘)[승려가 된 뒤로부터 치는 나이]은 38세였다.

[내용]

영상고개천리목(嶺上高開千里目)[꼭대기에 올라서는 천리 눈을 높이 뜨고]

산중영득일신한(山中嬴得一身閑)[산중에 들어서는 이 한 몸의 한가함이 넉넉하다]

투공처처진기절(投筇處處塵機絶)[지팡이 두는 곳곳마다 속세 생각 끊기고]

거족행행체자안(擧足行行體自安)[발을 들어가는 곳마다 몸이 절로 편안하다]

본문에는 속세의 번뇌를 잊은 함허 기화가 한가로이 운악산을 유람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의의와 평가]

포천과 관련되어 승려가 지은 한시는 얼마 되지 않은데, 「유운악산」은 그중의 하나로 꼽힌다. 함허 기화가 포천에서 가까운 양주의 회암사에서 승려 무학을 스승으로 삼아 수도하였다고 하니, 「유운악산」은 기화가 회암사에 있을 당시에 가까운 운악산을 유람하며 지은 한시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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