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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소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1080
한자 康允紹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영평리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덕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237년연표보기 - 강윤소 출생
출생지 강윤소 출생지 -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영평리
성격 내시|무신
성별
대표 관직 판삼사사

[정의]

고려 후기 포천 출신의 내시이자 무신.

[활동 사항]

강윤소(康允紹)[1237~?]는 원래 왕족인 신안공(新安公) 왕전(王佺) 집안의 노비 출신이었다. 처음에 내시(內侍)[환자(宦者)]가 되었다가 몽고어 해독을 잘하는데다 교활하고 아첨을 잘하여 원종의 총애를 받았다. 1264년(원종 5) 5월 낭장이 되어 원나라 사신 호도(胡都)·강화상(康和尙)과 원나라에 가는 등 여러 번 원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공을 인정받아 여러 관직을 거쳐 장군이 되었다.

1268년(원종 9) 12월 평소 친근하였던 임연(林衍)과 제일 먼저 모의하여 김준(金俊) 무리를 죽일 때 도운 공으로 일등공신이 되어 대장군에 올랐으며, 1269년(원종 10) 정월에는 원나라에 가서 김준을 죽인 사실을 보고하였다. 같은 해 6월 임연원종을 폐립(廢立)하여 용암궁(龍巖宮)에 유폐하고 안경공(安慶公) 왕창(王淐)을 새로운 왕으로 세우려고 하자 왕을 배반하였다. 그러나 원종이 곧 복위하여 원나라로 가게 되자 심복이 되어 스스로 왕을 호종하였고, 돌아와서 상장군에 올랐다.

1271년(원종 12) 정월 원나라에서 일본으로 파견되는 국신사(國信使)로 비서감(秘書監) 조양필(趙良弼) 등이 그와 함께 가기를 청하였으므로 원종이 할 수 없이 그 청을 들어 주었다. 한편 강윤소는 일찍이 홍다구(洪茶丘)에게 아부하여 고려에서 많은 군량을 쌓아 두었다고 거짓말을 하였는데, 이것을 홍다구가 원나라 중서성에 고하여 3월 원나라에서 단사관(斷事官) 심혼(沈渾)을 고려에 보내 군량을 내놓으라고 독촉하였다. 같은 해 6월에는 세자 왕심(王諶)이 대신 자제들을 거느리고 원나라 조정에 입시하였는데, 강윤소는 거기에 선발되지 못했음에도 왕에게 아무 말도 없이 원나라에 가서 머리를 몽고식으로 깎았다. 이듬해 2월 유초(庾超)가 원나라 황제에게 강윤소 등이 배반하려 한다고 고발하였다.

1273년(원종 14) 8월 원나라 황제 생일에 강윤소가 몽고 옷을 입고 스스로 원나라의 사신처럼 행세하며 원종을 보고도 절을 하지 않았다. 원종이 노하였으나 제어할 수 없었고, 다른 관원들도 감히 힐난하지 못하였다. 이듬해 11월 강윤소원종과 함께 고려에 돌아왔다.

1275년(충렬왕 원년) 군부판서 응양군 상장군에 올랐는데, 천예(賤隸) 출신이라 하여 감찰사의 탄핵을 받고 면직되었지만 얼마 후 밀직부사에 올랐다. 1278년(충렬왕 4) 4월 왕과 왕비와 세자가 원나라로 갈 때 시종하여 수행하였다. 1279년(충렬왕 5) 10월 왕으로부터 자주 사냥을 연습하라는 훈계를 받았고, 같은 해 11월 대장군 김자정(金子廷)과 함께 사패(賜牌)를 사칭하여 많은 민전(民田)을 빼앗다가 발각되어 신흥창(新興倉)에 땅이 귀속되었다. 이후 1283년(충렬왕 9) 12월 판삼사사(判三司事)로 승진하여 치사(致仕)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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