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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1019
한자 兪崇
이칭/별칭 원지(元之),관재(寬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신대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61년연표보기 - 유숭 출생
몰년 시기/일시 1734년연표보기 - 유숭 사망
묘소|단소 유숭 묘소 -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창원(昌原)
대표 관직 공조 참판

[정의]

경기도 포천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가계]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원지(元之), 호는 관재(寬齋). 증조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유여해(兪汝諧)이고, 할아버지는 참판 유창(兪瑒)이다. 아버지는 의금부도사 유회일(兪晦一)이며 외할아버지는 예조참판 이준구(李俊耈)이고, 부인은 이강(李綱)의 딸이다.

[활동 사항]

유숭(兪崇)[1661~1734]은 1699년(숙종 25) 증광 문과 을과로 급제하여 1702년(숙종 28) 사간원 정언, 이듬해 사헌부 장령으로 특제(特除)되었다. 1713년(숙종 39) 사간이 되어 호남 연해 고을 수령을 무신으로 임명할 것을 청하였고, 또 편당(偏黨)의 폐를 없애기 위하여 이조판서 직을 윤번으로 임명할 것을 진언하였다. 1715년(숙종 41)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1719년(숙종 45) 강원도 관찰사에 이어 대사간으로 재직하였다.

1723년(경종 3)에 함경도 관찰사가 되었으며, 1725년(영조 1) 공조참의에 이어 다시 함경도 관찰사가 되었는데, 당시 북변 고을의 수령을 누구나 기피하므로, 이곳 수령으로서 허물 있는 자는 파직시키지 말고 결장(決杖)으로 다스리도록 청하여 실시하게 하였다. 이듬해 다시 대사간이 되고 도승지·호조참판 등을 거쳐 1727년(영조 3) 경기도 관찰사가 되어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등용되자 이를 반대하다가 파직, 문외 출송(門外黜送) 당하였다. 이듬해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호서 소모사로 기용되고, 이어서 도승지·대사간·공조 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학문과 저술]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시조 1수가 전한다.

[묘소]

묘는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용호동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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