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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1004
한자 宋持養
이칭/별칭 호연(浩然)/낭산(朗山)/송진당(宋眞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병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82년연표보기 - 송지양 출생
몰년 시기/일시 1860년연표보기 - 송지양 사망
묘소|단소 송지양 묘소 -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무송정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여산(礪山)
대표 관직 이조 참판

[정의]

경기도 포천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가계]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호연(浩然), 호는 낭산(郎山). 좌승지 설촌(雪村) 송시철(宋時喆)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송보명(宋普明)이고, 할아버지는 송익해(宋翼海)이며,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송위재(宋偉載)이다. 어머니는 이조 판서 서명응(徐命膺)의 딸이고, 동생은 송지행(宋持行)이다. 부인은 두 명을 맞이했는데, 첫째 부인은 이영화(李永華)의 딸이고, 둘째 부인은 김계동(金啓東)의 딸이다.

[활동 사항]

송지양(宋持養)[1782~1860]은 1810년(순조 10) 식년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825년(순조 25) 알성 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 가주서에 등용되었다. 이후 세자시강원 문학과 홍문관 교리, 사헌부 지평 등 삼사(三司)의 요직을 두루 거쳐서 1843년(헌종 9) 사간원 대사간에 올랐다. 1847년(헌종 13) 여주 목사로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의 개수에 참여하였고, 다시 대사간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동지사 사절단에 부사로 참여하여 청나라 연경에 다녀왔다. 1852년(철종 3) 성균관 대사성에 임명되었으나, 승보시(陞補試) 문제로 탄핵되었다. 1856년(철종 7) 다시 사간원 대사간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이조 참판에 제수되었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낭산문고(郎山文稿)』가 있는데, 한문 단편 소설 「다모전(茶母傳)」 등이 실려 있다.

[묘소]

묘는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무송정에 있다.

[상훈과 추모]

사호(賜號)는 송진당(宋眞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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