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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993
한자 徐景雨
이칭/별칭 시백(施伯),만사(晩沙)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거사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의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601년 - 서경우 진사시 입격
출생 시기/일시 1573년 4월 29일연표보기 - 서경우 출생
몰년 시기/일시 1645년 3월 1일연표보기 - 서경우 사망
출생지 서경우 출생지 - 서울특별시 중구 중림동 약현
부임|활동지 정주 목사 - 평안북도 정주시
부임|활동지 경기도 관찰사 - 경기도 수원시
묘소|단소 서경우 묘소 -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거사리
성격 문신
성별
본관 대구(大丘)
대표 관직 우의정

[정의]

경기도 포천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가계]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시백(施白), 호는 만사(晩沙). 증조할아버지는 서고(徐固)이고, 할아버지는 서해(徐嶰)이며, 아버지는 약봉(藥峰) 서성(徐渻)이다. 어머니는 목사 송영(宋寧)의 딸인 여산 송씨(礪山宋氏)이고, 부인은 성희순(成希舜)의 딸인 창녕 성씨(昌寧成氏)이다. 동생은 서경수(徐景需), 아들은 서원리(徐元履)이다.

[활동 사항]

서경우(徐景雨)[1573~1645]는 1601년(선조 34) 진사시에 입격하였고, 1603년(선조 36) 정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 후 주서(注書)와 전적을 지냈으며, 1607년(선조 40) 서장관으로 중국에 다녀온 후 정언·홍문관 교리·지제교가 되었다. 1612년(광해군 4) 장악원 정(掌樂院正)과 정주 목사를 지냈고, 이듬해 계축옥사(癸丑獄事)로 아버지 서성이 유배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인조반정으로 아버지가 유배지에서 풀려나고 어머니의 삼년상을 마친 후인 1625년(인조 3) 예조 참의를 지냈고, 이어 동부승지가 되었다가 1626년(인조 4) 대사간이 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에서 왕을 호종하였다. 1630년(인조 8) 좌승지가 되었고, 이듬해에 아버지 상을 당해 삼년상을 마치고 대사성이 되었다. 1637년(인조 15) 대사헌이 된 후 형조 참판과 이조 참판을 역임하고 경기도 관찰사를 거쳐 형조 판서가 되었다. 1643년(인조 21) 진하사(進賀使)가 되어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다음 해 우의정이 되었으며, 70세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1645년(인조 23) 판중추부사가 되었다.

[묘소]

묘는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거사리 금화봉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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