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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리 마을 유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853
한자 城洞里-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성동5리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김덕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삼국 시대 - 성동리 마을 유적 조성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8년 5월연표보기 - 성동리 마을 유적 경기도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현 소재지 성동리 마을 유적 -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성동5리
성격 마을 유적
면적 약 181,818.19㎡[55,000평]

[정의]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성동 5리에 있는 삼국 시대 백제와 신라의 생활 유적지.

[개설]

성동리 마을 유적은 발굴 결과 주거지 9기, 소형 유구(遺構) 45기, 구상 유구(溝狀遺構) 1기 등이 확인 조사되었다. 출토 유물과 유구의 중복 관계를 바탕으로 신석기 시대 단계, 원삼국 시대 단계, 한성 백제 시대 단계, 신라 시대 단계, 조선 시대 단계 등 대체로 5단계의 유구 점유(占有)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중에서 3단계인 한성 백제 시대와 4단계인 신라 시대의 주거지 및 소형 유구가 중심을 이루는 마을 유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건립 경위]

성동리 마을 유적은 1998년 5월 경기도 박물관에서 영평천(永平川) 유역에 대한 정밀 지표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되었다. 지표 조사 당시에 확인한 면적은 약 181,818.19㎡[55,000평]의 대규모 유적이며, 채집된 유물의 성격과 지역의 지형으로 미루어 한성 백제에서 신라에 이르는 복합 마을 유적일 것으로 추정하였다. 특히 유적 내의 하천 하류 쪽에서는 주로 백제 토기가 채집되고, 상류 쪽에서는 신라 토기가 발견되어 시기에 따른 마을의 이동이 추정되었다.

유적 내에는 토사 채취로 노출된 유구의 흔적이 여러 곳에서 관찰되었다. 이 중에서도 특히 포천시 영중면 성동 5리 644-1번지와 644-2번지 일대의 약 1,652.90㎡[500평]는 유적이 조성된 구지 표면 아래에까지 흙이 깎여 다수의 주거지(住居址) 및 용도 불명의 소형 유구가 지표상에 노출되었다. 이에 따라 경기도 박물관에서는 멸실 위기에 처해 있는 문화 유적을 보호하고 경기 북부 지역의 삼국 시대 문화 양상을 파악하기 위한 기초 자료 확보를 목적으로 1998년에 긴급 발굴 조사를 하였다.

[위치]

포천시 포천읍에서 국도 43호선을 타고 북쪽으로 14㎞ 정도 가면 영중면의 38휴게소를 지나서 성동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이동면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800m 정도 직진하면 도로 오른쪽으로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이 비포장도로는 영평천을 가로지르는 백교(白橋)와 연결되는데, 성동리 마을 유적은 백교를 건너 5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한성 백제 시대의 유구는 주거지 4기, 소형 유구 12기, 구상 유구 1기 등이 조사되었다. 출토된 토기의 기종 구성상으로는 원삼국 시대 말기로 이해되지만, 새로운 평면 형태의 주거지가 채용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잠정적으로 한성 백제 시대의 마을 유적으로 파악되고 있다. 신라 시대의 유구는 주거지 2기, 소형 유구 21기 등이 조사되었다. 출토된 고배의 특징을 바탕으로 중심 연대는 6세기 후반인 것으로 판단되고, 하한 연대는 7세기 이후로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황]

성동리 마을 유적포천시 영중면 성동리 전체 유적 가운데 불과 1% 미만에 해당하는 지역만을 조사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에 유적 전체의 규모 및 성격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앞으로 성동리 마을 유적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조사가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마을 유적과 관련된 생산 유적, 무덤 유적 등과 더불어 관방 유적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성동리 마을 유적은 현재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고, 또 영평천 유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골재 채취로 유적의 파괴가 심각하게 우려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성동리 마을 유적에 대한 연구가 여러 분야에서 다각도로 이루어지고, 이와 더불어 유적에 대한 철저한 보존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의의와 평가]

성동리 마을 유적은 한성 백제 시대의 성립 과정을 밝혀 줄 수 있는 대규모의 마을 유적일 뿐만 아니라 한강 유역 이북 지역에서 처음으로 조사된 신라의 마을 유적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경기 지역은 6세기 중반 이후에 신라의 세력권 아래로 들어가지만, 이와 관련된 문화 유적은 고분이나 산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실제 한강 유역에 진출한 신라 세력의 문화 양상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기는 여러 가지로 부족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성동리 마을 유적은 향후 경기 북부 지역으로의 신라의 세력 확장과 관련된 많은 의문점을 풀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라의 마을 구조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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