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7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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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敏章墓-墓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산2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엄익성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620년 - 이민장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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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 시기/일시 | 1694년![]() |
조성 시기/일시 | 1699년![]()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694년 2월 24일 - 이민장 사망 |
현 소재지 | 이민장 묘 및 묘비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산22![]() |
성격 | 묘|묘비 |
양식 | 단분 합장묘|원수 방부형[묘비] |
관련 인물 | 이민장(李敏章)[1620~1694]|함평 이씨(咸平李氏) |
봉분 크기/묘역 면적 | 묘역 면적 약 475㎡[143.69평]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민장 부부의 묘와 묘비.
이민장(李敏章)[1620~1694]은 효종 때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이경여(李敬輿)의 큰아들이다. 벼슬은 음보(蔭補)로 1651년 전설사 별검(典設司別檢)에 임명된 후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위솔(衛率)과 익찬(翊贊),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 사직서령(社稷署令) 등을 역임하였다. 또 연안(延安)·단양(丹陽)·원주 등지에서 지방관으로 지냈다. 사후에 아들 이천명(李泉命)이 2품직에 오르면서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 배위 함평 이씨(咸平李氏)는 도정(都正) 이초노(李楚老)의 딸로 슬하에 4남 3녀를 두었다.
포천 시내에서 국도 47호선 내촌면 내촌 중학교를 지나 음현 2리 삼거리에서 좌측 금강로 2110번길로 약천사까지 진행한다. 약천사를 지나 계곡 끝의 농장 초입에 ‘이경여 신도비’가 있고, 이 신도비에서 약 250m 더 농장 안쪽 작은 산길로 올라가면 이민장 묘가 나타난다. 주소지는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산22번지이다.
봉분은 이민장과 부인 함평 이씨를 합장한 단분이다. 묘역 상단에는 봉분·묘갈·혼유석 등이 있으며, 하단에는 상석·향로석·문인석 1쌍·망주석 1쌍 등이 배치되었다. 양관 조복(梁冠朝服)의 문인석은 갸름한 얼굴에 두 손은 가슴 앞에서 홀을 잡은 모습이다. 묘역 면적은 475㎡[143.69평]이다.
봉분 앞에 세워진 묘갈의 앞면에는 ‘유명 조선국 증 이조 참판 행원주 목사 이공 민장 지묘 증 정부인 함평 이씨 부좌(有明朝鮮國 贈吏曹參判 行原州牧使李公敏章之墓 贈貞夫人咸平李氏祔左)’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 ‘이민장 묘갈(李敏章墓碣)’이라 시작되는 음기는 조카 이이명(李頤命)[1658~1722]이 글을 짓고,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던 막내 사위 김진규(金鎭圭)[1658~1716]가 글씨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