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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742
한자 水入里支石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수입2리 8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김동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2년 - 조선 총독부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에 소개됨
문화재 지정 일시 1986년 04월 09일연표보기 - 수입리 지석묘 포천시 향토 유적 제33호로 지정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6년 9월연표보기 - 수입리 지석묘 단국 대학교 사학과에서 지표 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8년 4월연표보기 - 수입리 지석묘 단국 대학교 사학과에서 지표 조사 종료
소재지 수입리 지석묘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수입 2리 8지도보기
성격 고인돌
양식 탁자식 고인돌
크기(높이 덮개돌 30㎝|받침돌 20㎝[동쪽], 24㎝[서쪽]
지름) 덮개돌 320㎝|받침돌 210㎝[동쪽], 217㎝[서쪽]
문화재 지정 번호 포천시 향토 유적 제33호

[정의]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수입 2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개설]

수입리 지석묘(水入里支石墓)에서 남쪽으로 50m 거리에 있는 마을 창고 주변에[포천시 일동면 수입 2리 6-4번지] 고인돌 1기가 더 있었는데 마을 진입로를 포장하면서 파괴되어 흩어지고, 일부는 마을에 묻혀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문화재 관리국에서 1977년에 제작한 『문화 유적 총람』에 현재 남아 있는 1기만 기록하고 있어서 1977년 이전에 파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입리 지석묘를 세우는 과정에 있었던 이야기가 전하는데, 그 내용은 마귀 할머니가 머리와 두 손으로 돌을 옮겨 만들었다는 노고 설화(老姑說話)이다. 또한 마을 사람들은 수입리 지석묘를 다른 이름으로 ‘괸돌’ 또는 ‘아양 바위[앵 바위]’라고 부르고 있어, 우리의 전통적인 믿음 체계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위치]

국도 47호선을 타고 일동면 소재지를 지나 운담 삼거리에서 산정 호수 방면으로 난 지방도 387호선을 따라 1㎞ 가면 포천시 일동면 사직 4리[아양 바위] 입구를 알리는 표지석이 우측으로 보인다. 이 표지석을 따라 마을로 진입하면 길 오른쪽에 수입리 지석묘가 위치한다. 입지는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하천 변 평지에 해당한다. 서편으로는 수입천이 남북 방향으로, 북쪽으로는 사직천이 동서 방향으로 흘러 영평천에 합류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96년 9월~1998년 4월 단국 대학교 사학과에서 지표 조사를 하였다.

[형태]

수입리 지석묘는 탁자식 고인돌이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말각 오각형이면서 배 모양을 하고 있다. 암질은 거정 화강 편마암(巨晶花崗片麻巖)이다. 장축 방향은 수입천의 흐름과 일치하는 남북을 향한다. 덮개돌의 규모는 320×275×30㎝이다. 상면에는 지름 10㎝, 깊이 3.5㎝ 정도의 알 구멍이 1개 확인되며, 알 구멍과 유사한 10개의 흔적이 1㎝ 미만으로 얇게 파여 있다. 알 구멍은 굼, 성혈(性穴) 등이라고도 한다.

경기도 지역의 고인돌 가운데 알 구멍이 있는 고인돌은 여러 기가 모여 있을 경우는 그중 가장 큰 고인돌의 덮개돌에 주로 새겨져 있고, 독자적으로 위치한 경우에는 많은 수의 알 구멍이 새겨져 있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알 구멍이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인가를 기원하기 위하여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중 하나로 인간에게 가장 간절한 생명 연장의 소망이 있었을 것이다. 즉 당시에 질병 치료의 목적으로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덮개돌 남쪽 끝 부분과 서쪽 면에서 채석 흔적이 보이며, 끝단을 치석하여 보기 좋게 마무리하였다.

받침돌은 동서 2개만 남았는데 각각 장방형으로 동쪽 받침돌이 210×85×20㎝, 서쪽 받침돌이 217×87×24㎝이다. 서쪽 받침돌의 ‘반공’과 ‘토암(土岩)’이라는 글자가 한자로 희미하게 새겨져 있는데, 언제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 확실하지 않다. 동쪽 받침돌은 외면과 내면 상면에 채석한 흔적이 뚜렷하고 안쪽으로 뾰족하게 다듬어 마무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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