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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봉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683
한자 藥峰集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705년연표보기 - 『약봉집』 간행
간행 시기/일시 1927년연표보기 - 『약봉집』 중간
소장처 한국 국학 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220
성격 문헌|전적
저자 서성(徐渻)
편자 서문중(徐文重)
간행자 서문유(徐文裕)
권책 4권 2책
규격 22.3×16.7㎝

[정의]

1705년 간행된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인 서성의 시문집.

[저자]

서성(徐渻)[1558~1631]은 조선 중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본관은 대구, 자는 현기(玄紀), 호는 약봉(藥峰), 서거정(徐居正)의 현손, 서해(徐嶰)의 아들, 이이(李珥)·송익필(宋翼弼)의 문인이다.

1586년(선조 19)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인천부 교수·검열·대교·전적·예조좌랑·병조좌랑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호종하다가 황정욱(黃廷彧)의 요청으로 그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함경도로 길을 바꾸었다가 국경인(鞠景仁)에 의해 임해군(臨海君)·순화군(順和君)·황정욱 등과 함께 결박되어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에게 가게 되었으나 탈출하였다.

왕명으로 지평·병조 정랑 등을 지내고 명나라 장수 유정(劉綎)을 접대하였고, 삼남지역에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민정을 살피고 돌아왔다. 경상우도 감사로 삼가(三嘉)의 악견산성(嶽堅山城)을 수리하였고, 도승지로 경연에서 이항복(李恒福)·이덕형(李德馨)을 신구(伸救)하고 성혼(成渾)정철(鄭澈)을 헐뜯는 정인홍(鄭仁弘) 일파를 배척하다가 왕의 미움을 받았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연루되어 단양에 유배되었다가 인조반정으로 방환되어 이후 형조판서·대사헌·판중추부사·병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도 왕을 강화도까지 호종하였고, 숭록대부로 승격하였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편찬/간행 경위]

병란을 거치면서 남지 않은 유문을 증손 서문중(徐文重)이 문중 사람들과 의논하여 족보를 간행할 때에 가장해 오던 유집을 바탕으로 수집·편차하여 원집 2권, 부록 2권으로 간행하려고 하였으나 이루지 못했다. 그 후 1705년 아우인 서문유(徐文裕)가 전라도 관찰사로 나가게 되자, 전주에서 『사가집(四佳集)』과 함께 본집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초간본). 그 후 후손인 서광전(徐光前)이 서병곤(徐丙坤)·서정달(徐廷達)과 의논하여 초간본에 수록되었던 내용 외에 저자의 유문 몇 편을 더 찾아 원집 뒤에 보유로 부기해서 1927년 활자로 중간하였다(중간본).

[형태/서지]

4권 2책의 활자본으로, 크기는 22.3×16.7㎝이다. 한국 국학 진흥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약봉집(藥峰集)』은 권1에는 170여 수의 시가 시체별로 편차되어 있는데, 임진왜란 때의 경험과 감상을 서술한 시, 단양 유배시에 지은 시, 중국 사신의 접반관이 되었을 때 사신과 차운한 시 등이 있다. 권2에는 시·잡저·보유로 이루어져 있는데, 시 중에는 평양 감사로 재임시에 지은 것 등이 있다. 잡저는 선조인 서거정에 대한 제문과 대사헌을 사직한 상소, 아들 달성위(達城尉)에게 주는 경계의 글 등이 있다.

보유에는 시 18수, 서(序) 3편, 발(跋) 1편, 「태백산 사고 수직 절목(太白山史庫守直節目)」이 실려 있다. 권3~권4는 부록으로, 김상헌이 지은 행장과 신도비명, 조희일(趙希逸)이 지은 묘지명·가장·사제문(賜祭文)·제문·만사·집승정사적(集勝亭事蹟) 등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약봉집』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국난기의 조선의 관인으로서의 입장과 시대인식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특히 「태백산 사고 수직 절목」은 임진왜란으로 내사고의 실록이 불타 버리자 3년간의 공력으로 다시 인출하여 1606년 태백산 사고를 세우고 보관할 당시 수직 민호와 승려를 지정하고 재정과 폭쇄 등 수직에 관해 적은 절목으로, 왜란 후 사고의 운영 실태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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