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681
한자 松江行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692년연표보기 - 『송강 행장』 간행
소장처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성격 문헌|전적
저자 김수항(金壽恒)
편자 김수항(金壽恒)
간행자 김수항(金壽恒)
권책 1책 23장
규격 27.9×17.3㎝

[정의]

1692년 간행된,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수항이 재편찬한 송강 정철의 행장.

[저자]

 김수항(金壽恒)[1629~1689]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구지(久之), 호는 문곡(文谷)이다.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의 손자이고, 동지중추부사 김광찬(金光燦)의 아들이다.

1646년(인조 24) 진사시에, 1651년(효종 2) 알성 문과에 장원하였고, 병조좌랑·경기도사 등을 거쳐 1753년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55년 수찬을 거쳐 응교·사간·보덕을 지냈으며, 문과 중시에서 급제한 후 형조참의·승지·부제학을 지냈다.1662년 예조판서에 발탁된 후 육조의 판서를 두루 거쳤다. 특히 이조판서로 있으면서 명사들을 조정에 선임하는 데 힘썼다. 1672년 이후 우의정·좌의정을 지냈다.

서인 송시열 등이 왕의 경원을 받고 물러나자 남인인 재상 허적(許積)을 탄핵한 대간을 변호하다가 판중추부사로 물러났고, 사은사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74년 갑인예송에서 서인이 패하여 영의정이던 형 김수흥(金壽興)이 쫓겨나자 대신 좌의정으로 다시 임명되었고, 숙종 즉위 후 허적·윤휴(尹鑴)를 배척하고 종실 복창군(福昌君) 이정(李楨)·복선군(福善君) 이남(李柟) 형제의 추문을 들어 처벌을 주장하다가 집권파인 남인의 미움을 받아 영암에 유배되고 1678년(숙종 4)에 철원으로 이배되었다.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영중추부사로 복귀하여 영의정이 되었고, 1689년 기사환국으로 다시 진도로 유배, 위리안치되었다가 사사되었다. 1694년 신원, 복관되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편찬/간행 경위]

김집(金集)[1574~1656]이 지은 행상을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 재편찬한 것이다. 유성운(柳成運)의 발문이 있는데, 1692년(숙종 18)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형태/서지]

1책 23장의 목판본으로, 크기는 27.9×17.3㎝이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송강 행장(松江行狀)』정철이 여러 번 당화(黨禍)를 입고 유배 생활을 한 전말과 그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쓰인 것이다. 정철의 고조[정연(鄭淵)]·증조[정자숙(鄭自淑)]·할아버지[정위(鄭潙)]·아버지[정유심(鄭惟沈)]를 밝히고 그의 출생부터 을사사화에 연루되고, 강화도에 은거하여 죽을 때까지의 행적을 기록했다. 율곡 이이의 말이 많이 인용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송강 행장』은 노론의 입장에서 쓴 것이라 하더라도 동서 분당이나 이에 대한 이이의 입장‚ 건저 문제 등에 관하여 자료적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