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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675
한자 白沙集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635년연표보기 - 『백사집』간행
소장처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성격 문헌|문집
저자 이항복(李恒福)
편자 이현영(李顯英)|이명준(李命俊)|정충신(鄭忠臣)|이종성(李宗城)
간행자 이현영(李顯英)|이명준(李命俊)|정충신(鄭忠臣)|이종성(李宗城)
권책 목판본, 원집 6권, 별집 6권, 부록 등 10책
규격 20.8×16㎝

[정의]

1635년 간행된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인 이항복의 시문집.

[저자]

이항복(李恒福)[1556~1618]은 조선 중기와 후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본관은 경주, 자는 자상(子常), 호는 필운(弼雲)·백사(白沙)이다. 참찬 이몽량(李夢亮)의 아들이고, 권율(權慄)의 사위이다.

1580년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예문관 검열을 지내고, 선조가 『강목(綱目)』 강연(講筵)에서 고문을 천거하라고 명하여 이이(李珥)에 의해 이덕형 등과 천거되어 한림에 올랐다. 1589년 예조정랑으로 역모 사건의 친국에 참여하여 선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고,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을 처리한 공로로 평난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임진왜란 이 일어나자 왕비를 개성까지 호위하고, 왕자를 평양으로,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였다. 또 이덕형과 명나라에 원병을 청할 것을 건의하는 한편, 근왕병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여 윤승훈(尹承勳)을 호남으로 보내 근왕병을 일으키게 하였다. 이후 병조판서·이조판서, 홍문관과 예문관 대제학을 겸하여 안으로는 국사에 힘쓰고 밖으로는 명나라 사절의 접대를 전담하였다. 1598년 우의정 겸 영경연사·감춘추관사에 올랐고, 1600년 영의정 겸 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사, 세자사(世子師)에 임명되고 다음해 호종 1등 공신에 녹훈되었다. 광해군 때 북인의 표적이 되어 1613년(광해군 5) 인재 천거를 잘못하였다는 구실로 공격을 받고 물러나 별장 동강정사(東岡精舍)를 짓고 동강노인(東岡老人)으로 자칭하였다.

1602년 정인홍(鄭仁弘) 사건에서 성혼을 비호하고 나섰다가 정철의 편당으로 몰려 영의정에서 사퇴하였고, 광해군광해군의 친형인 임해군의 살해 음모에 반대하다가 정인홍 일당의 공격을 받았다. 1617년 인목대비 김씨가 서궁(西宮)에 유폐되고, 왕비에서 폐위하자는 주장에 맞서다가 관작이 삭탈되고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어 적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편찬/간행 경위]

『백사집(白沙集)』 가장(家狀)에서 “문집 12권, 조천창수록(朝天唱酬錄) 1권, 주의(奏議) 2권, 계사(啓辭) 2권, 사례훈몽(四禮訓蒙) 1권, 노사영언(魯史零言) 15권 등이 집안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저자 자신이 임진왜란 이후 저술을 일차적으로 정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가장되어 있던 유문(遺文)을 강원도 관찰사 이현영(李顯英)·강릉 부사 이명준(李命俊) 등 문인들이 원집 6권, 별집 6권, 부록 등 10책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강릉본].

6년 후인 1635년 경상 우병사 정충신(鄭忠臣)이 진주에서 본집을 원집 6권, 별집 4권, 부록, 보유를 8책으로 간행하였다[진주본]. 하지만 본집의 개각(改刻)에 대하여 남인 사이에서 정치적 이유가 거론되어 5세손 이종성(李宗城)이 강릉본과 진주본이 모두 착오가 많고 시문의 출입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비난을 받은 원인이 되었기 때문에 원집 23권, 부록 7권 합 15책으로 편찬하여 목판으로 간행하였다[영영신간본(嶺營新刊本)].

[형태/서지]

10책의 목판본으로, 크기는 20.8×16㎝이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백사집』은 원집 6권, 별집 6권, 부록 등 10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원집의 권4와 별집의 권5는 상하로 나뉘어 있다. 원집의 권1은 시로, 오언 절구·칠언 절구·율시·고시 325편이 저작 연대별로 수록되어 있다. 권2는 잠(箴)·명(銘)·서(敍)·기(記)·발(跋)·제후(題後)·서(書)·잡저(雜著)·묘지(墓誌)가 실려 있는데, 「전라도산성도후서(全羅道山城圖後敍)」는 1594년 4월 전라도 지역의 산성을 순심하고 남원 교룡산성·담양 금성·동복 옹성·나주 금성산성·강진 수인산성·정읍 입암산성 등의 현황을 그림과 함께 보고한 것이다.

권3에는 묘지·묘표·묘갈·비명(碑銘), 권4 상에는 비명, 하에는 유사와 행장이 있다. 권5~권6은 차자(箚子)인데, 권6에는 1611년 4월 정인홍(鄭仁弘)의 유적(儒籍) 삭제를 주장한 성균관 유생을 색출하라는 광해군의 명에 반대하여 올린 차자 등이 있다.

별집의 권1~권2는 100여 편의 계사(啓辭)가 실려 있고, 권3은 90여 편의 헌의(獻議), 권4는 저자 어머니의 생활 규범을 나타내는 일화부터 임진왜란 직전에 태조의 건원릉에서 귀신소리가 들린 일 등 여러 가지 일화인 잡기(雜記)가 실려 있다. 권5 상·하는 1598년(선조 31)부터 이듬해 4월까지 이정구(李廷龜)·황여일(黃汝一)과 함께한 사행 기록인 조천록(朝天錄)이고, 권6은 간독(簡牘)이다.

[의의와 평가]

『백사집』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조선의 정국을 주도한 저자의 생애와 외교 활동, 교유 관계 등을 상세하게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이정구이항복을 “관작에 있기 40년, 누구 한 사람 당색에 물들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만 오직 그만은 초연히 중립을 지켜 공평히 처세하였기 때문에 아무도 그에게서 당색이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며, 또한 문장은 이러한 기품에서 이루어졌으니 뛰어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고 평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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