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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잡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663
한자 農巖雜識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709년연표보기 - 『농암집』 편찬
소장처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성격 문헌|전적
저자 김창협(金昌協)
편자 김창협(金昌協)
권책 『농암집』 권31~34 중 내편 3권, 외편(外篇) 1권
규격 21.5×14.6㎝

[정의]

1709년 간행된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창협의 저술.

[저자]

김창협(金昌協)[1651~1708]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삼주(三洲)이다.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고, 나성두(羅星斗)의 외손이며,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동생이다.

1669년(현종 10) 진사에 합격하고, 1682년(숙종 8) 증광 문과에 전시 장원한 후 병조좌랑·사헌부 지평·이조좌랑·함경북도 병마평사·이조정랑·예조참의·대사간 등을 지냈다. 기사환국으로 아버지가 진도에서 사사되자 사직하고 영평(永平)에 은거하였다. 1694년 갑술옥사 후 아버지가 신원됨에 따라 이조참판·대제학·예조판서·지돈령부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평소에 부드럽고 화기가 가득하였지만, 의리를 변핵함에 있어서는 성조(聲調)를 높여 기절(氣節)이 강개하여 담봉(談鋒)을 범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학문은 이황(李滉)이이(李珥)의 설을 절충하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형태/서지]

활자본[운각인서체자(芸閣印書體字)]으로, 크기는 21.5×14.6㎝이다. 1709년(숙종 35)에 간행되었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농암집』 중 잡지(雜識)인 권31은 내편(內篇) 1, 권32는 내편 2, 권33은 내편 3, 권34는 외편(外篇)이다. 내편 1~2에는 경전(經傳)·주자서(朱子書)·『성리대전(性理大全)』·『이정전서(二程全書)』·「태극도(太極圖)」·『성학집요(聖學輯要)』·불서(佛書)·『대학연의(大學衍義)』·「상촌휘언(象村彙言)」·「계곡만필(谿谷漫筆)」 등의 구절에 대해 저자의 견해를 덧붙인 글과 남명(南冥) 조식(曺植)·퇴계 이황·율곡 이이 등에 대한 인물평이 실려 있으며, 내편 3은 『논어』 구절에 대한 글이다.

외편은 이규보(李奎報)·이행(李荇)·장유(張維)·이식(李植)·신흠(申欽) 등의 시문(詩文), 한유(韓愈)의 글, 『사기(史記)』, 송시(宋詩), 비지문자(碑誌文字) 등을 논한 시화잡설(詩話雜說)이다.

[의의와 평가]

『농암잡지(農巖雜識)』는 중국과 조선의 시와 시인을 비교하여 비평한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내편 3의 『논어』 구절에 대한 글은 주자의 논어에 대한 주석의 의미와 경계를 뚜렷이 하여 노론학계의 논어학에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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