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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유격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560
한자 -遊擊隊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양영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50년 11월연표보기 - 독수리 유격대 설립
최초 설립지 독수리 유격대 - 경기도 포천시
성격 민병대

[정의]

6·25 전쟁 당시 경기도 포천 지역에 있었던 반공 청년 유격대.

[개설]

독수리 유격대는 서울 수복 직후인 1950년 11월 경 경기도 포천군 일동면에서 자생적으로 민간인 유격대를 결성하여 북한 지역이나 적진에 침투하여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독수리 유격대는 최종성과 최종철 형제를 비롯한 63명이 결성했으며 장총, M1소총 등으로 무장하여 수복 후 패잔병 소탕과 치안 유지에 노력하였다. 중공군이 개입한 후 철원을 거쳐 포천군 일동면 화대리로 철수하자, 주둔하고 있던 제2사단 제17연대 1대대장 김영필 대위가 그 활동을 인정하고 같은 부대의 유격대로 편입하였다. 그리고 소총, 실탄, 수류탄, 배낭, 피복 등을 지급 받아 작전에 참가했으나 중공군의 공세로 국군과 함께 청평, 양평을 거쳐 충청북도 중원군 동량면 목행리까지 철수하였다.

이때 김영필 대위가 32연대 3대대장으로 부임해 가면서 자신과 함께 했던 유격대원을 공식적인 절차 없이 자신의 부대로 소속시켜 작전을 수행하였다. 당시 유격대원들은 장비나 보급품 등의 대우 면에서 현역 군인과 차이가 나는데 대해 불만이 있었고, 이에 자신들의 입장을 잘 이해하는 김영필 대위를 따랐다고 한다.

1951년 2월초 유격대원들의 집단 이동을 알게 된 제17연대 제1대대장 유창훈 소령은 헌병 4명을 보내 유격대원 전원을 제17연대로 다시 복귀시켰다. 2월 중순 유격대원들은 김익수를 대장으로 유격대를 조직하여 당시 충청북도 단양에 주둔하고 있는 제32연대 3대대의 유격대로 또다시 편입하였다. 이후 경상북도 의성·청송·안동·예천, 충청북도 제천, 단양 등 후방 지역에서 좌익 빨치산 토벌 작전에 참가하였다.

[현황]

포천 지역의 반공 청년 63명이 1950년 11월 포천군 신읍에서 조직하였다. 이어 국군 제2사단 17연대와 합류하여 경상북도 의성·청송·안동·예천·풍기 지역과 충청북도의 제천·단양 지역에서 인민군 제10사단과 공비들을 토벌하고 금화 지구 전투에 참전하였으며 16명이 전사하였다.

유격대는 민간인 신분으로 자생적으로 조직되었으나 국가에서도 이를 기억하지 못해 잊혀져오다가 1989년에야 국방부의 전적을 확인받았다. 그리고 이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국방부·재향 군인회·포천군·육군 3070부대 등의 후원과 생존 대원 및 전몰 대원 유족들의 정성을 보태 포천 문화원의 주선으로 관음산 기슭에 비를 세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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