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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545
한자 五八事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계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단 시기/일시 1945년 09월 02일 - 맥아더 사령관 ‘미국 육군 태평양 지역 총사령부 일반 명령 제1호’ 포고
발생|시작 시기/일시 1947년 05월 08일연표보기 - 5·8 사건 발생
종결 시기/일시 1953년 7월연표보기 - 5·8 사건 종료
발생|시작 장소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
종결 장소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
성격 사건

[정의]

1947년 5월 8일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에서 일어난 미군과 소련군 간의 총격 사건.

[역사적 배경]

1945년 9월 2일 맥아더 사령관이 전후 처리를 위한 ‘미국 육군 태평양 지역 총사령부 일반 명령 제1호’를 포고하였다. 이에 한반도에 있는 일본군에게 명령이 하달되었다. 즉 38°선 이남에서는 맥아더 사령관에게, 이북에서는 소련 극동군 총사령관에게 항복하라는 것이었다. 이후 남북한에 미·소 점령군의 군정이 들어서면서 5·8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경과]

38°선이 위도에 따라 정확하게 그어지면서 포천군 영중면 양문리는 남과 북으로 갈렸다. 양문리에는 전부 100여 가구가 살았는데, 60여 가구는 남쪽에, 40여 가구는 북쪽에 위치하였다. 얼마 동안 마을 주민들은 38°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였고 양쪽을 넘나들며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1946년 2월부터 38°선이라 씌어진 푯말이 양문리에 세워지고 미군과 소련군이 마을에 들어와 보초를 서기 시작하면서 마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선이 그어졌다. 38°선 이북 마을에 노동당 사무실이 들어서 공산주의 추종자들이 생겨났고, 마을은 친일 분자 색출로 인해 살벌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런 가운데 1947년 5월 8일 미군과 소련군 사이의 총격전인 5·8 사건이 터졌다. 5·8 사건 이후 미·소 양군의 38°선 경계는 더욱 삼엄해졌다. 북한 측은 38°선 초소마다 인민군들을 촘촘히 배치해 ‘인간 장벽’을 쌓아 주민들의 통행을 차단하였다. 더 이상 마을 사람들의 왕래는 불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미·소 양군은 38°선에서 수상한 사람만 발견해도 총격을 가했다. 양문리 주민들은 9·28 서울 수복 때는 국군에 쫓겨 북으로, 이듬해인 1·4 후퇴 때는 반대로 인민군에 쫓겨남으로 피난해야 했다.

[결과]

1953년 7월 남북 간의 포성이 멈추고 휴전이 이뤄진 뒤에서야 양문리는 다시 하나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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