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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 성씨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025
한자 世居姓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기도 포천시
집필자 박경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여산 송씨 세거지 -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현 2리 강구동
세거지 여산 송씨 세거지 -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기산리 생이 부락
세거지 여산 송씨 세거지 -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 정자동
세거지 전주 이씨 세거지 -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상성북 2리
세거지 전주 이씨 세거지 -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지현 3리 비성동
세거지 전주 이씨 세거지 - 경기도 창수면 오가 2리 가노리
세거지 전주 이씨 세거지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초가팔리 능말
세거지 김해 김씨 세거지 -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거사 2리
세거지 양성 이씨 세거지 -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 1리
세거지 고성 이씨 세거지 -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좌의리
세거지 연안 이씨 세거지 -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 연릉동
세거지 청해 이씨 세거지 - 포천시 창수면 추동 2리 하추동
세거지 나주 정씨 세거지 - 경기도 포천시 신읍동
세거지 밀양 변씨 세거지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계류 2리 변촌말
세거지 안동 권씨 세거지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 한성골
세거지 풍천 임씨 세거지 -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운산리
세거지 풍양 조씨 세거지 -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정교 1리 조촌
세거지 풍양 조씨 세거지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 2리 조가채리

[정의]

경기도 포천지역에 오랫동안 세거하였던 성씨.

[개설]

경기도 지역 세거 성씨는 영남과 달리 형성되었다. 영남은 도산 서원 진성 이씨, 병산 서원 하회 유씨, 임천 서원 의성 김씨, 옥산 서원 여강 이씨 등 유력 성씨들이 문중을 기반으로 성씨 간에 학통과 혼인을 통해 세거 성씨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경기도 지역은 이주가 빈번하고 서울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 중앙 정계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왕래가 잦아 향촌적 기반이 발달하지 못했다. 포천을 비롯한 경기 북부 지역의 세거 성씨가 형성된 것은 대략 17세기 전후이다.

1930년과 1953년에 조사된 포천의 세거 성씨는 97개 정도였다. 그 사이에 몇 개 성씨의 호수는 증가하였지만 대부분은 줄어들었다. 특히 김씨는 237호, 박씨는 231호, 이씨는 170호 줄었다. 허씨·차씨·임씨·함씨·전씨·현씨·양씨 등은 차지하는 비율은 낮았지만 급감하였다. 세거 성씨의 형성은 짧게는 130년, 길게는 500년이 넘었다.

성씨별로는 전주 이씨가 1,047호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김해 김씨가 485호, 밀양 박씨 470호, 경주 이씨 170호, 청주 양씨 165호, 아산 이씨 120호, 죽산 박씨 101호 등의 순이었다. 80호~100호 미만은 안동 김씨·안산 김씨·경주 최씨 등이고, 60~80호 미만은 광산 김씨·여산 송씨·한양 조씨·동래 정씨 등이고, 40~60호 미만은 청풍 김씨·양성 이씨·고성 이씨·전주 신씨·남양 홍씨·총풍 양씨·풍양 조씨·파평 윤씨·문화 유씨·청송 심씨 등이며, 20~40호 미만은 강릉 김씨·경주 김씨·안동 권씨·능성 구씨·벽진 이씨·예안 이씨·진주 최씨·나주 정씨·보성 오씨·대구 서씨·수원 백씨·연안 차씨·평택 임씨·장수 황씨 등이며, 10~20호 미만은 한산 이씨·담양 전씨·밀양 변씨·원주 원씨·청해 이씨·충주 최씨 등이 있었다.

[세거 성씨의 형성과 해체]

세거 성씨가 형성된 경우를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피난지 기반

임진왜란 이나 병자호란 등의 난을 피해 이주하여 세거 성씨를 이룬 경우이다. 여산 송씨인 경상 감사 대제학 송상(宋商)이 포천시 가산면 감암리 담뱅이에 낙향하여 정착하였으나 세거 성씨를 이루지 못하였는데, 송상의 손자 시강원 문학(侍講院文學) 송준(宋濬)이 유년 시절인 임진왜란 때에 화현면 화현 2리 강구동으로 이주하면서 비롯되었다. 그 뒤 여산 송씨일동면 길명리 정자동에도 세거 성씨를 이뤘다.

포천시 군내면 상성북 2리의 전주 이씨는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 순천 군수를 지낸 이봉룡(李鳳龍)이 정착하면서 비롯되었다. 김해 김씨인 이조 정랑 김담수(金澹壽)가 포천시 영중면 거사 2리로 피난하여 정착하였다. 양성 이씨는 이시현(李時顯)이 임진왜란 때 양주군 미금면 일패리에서 이동면 도평 1리에 이주하면서 세거 성씨를 이뤘다.

2. 사패지 기반

경기 지역은 다른 지역과 달리 사패지가 많았고, 이를 기반으로 세거 성씨가 형성되었다. 고성 이씨이성길(李成吉)임진왜란 때 의병을 거느리고 적을 세 번이나 격퇴시킨 공으로 선조로부터 포천시 군내면 명산리를 사패지로 하사받아 정착하였다. 이를 계기로 군내면 명산리좌의리고성 이씨 집성촌을 이뤘다. 1934년 65호, 6·25 전쟁 직후인 1953년에 40호였는데, 2000년대에는 좌의리에만 15호가 남아 있다.

여산 송씨인 도승지 대제학 송극인(宋克訒)선조 때에 일동과 이동 지역을 사패지로 하사 받으면서 정착하였고, 이후 일동면 기산리 생이 부락에 세거 성씨를 이뤘다. 연안 이씨는 대제학을 지낸 연릉 부원군(延陵府院君) 병조 판서 이호민(李好閔)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에 가 외교관으로 활동한 공을 인정받아 화현면 화현리 연릉동 두리봉산을 사패지로 하사받은 이후 정착하면서 비롯되었다. 연릉동이라는 지명도 연릉부원군에서 유래되었다. 청해 이씨는 조선 개국 공신 이지란(李之蘭)의 후손인 이중로(李重老)인조에게 포천시 창수면 추동 2리 하추동에 사패지를 받아 세거 성씨를 이뤘다.

3. 왕실 묘역 기반

왕실과 관련된 묘역 근처에 전주 이씨 후손들이 정착하여 세거 성씨를 이룬 경우이다. 광평 대군(廣平大君)[1425~1444]의 9세손이 현종 10년경 광주군 대왕면 수면리에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포천시 화현면 지현 3리 비성동의 전주 이씨는 태종의 7남 온녕군(温寧君)의 후손인 참봉 이덕채(李德采)가 이주하여 정착하면서 세거 성씨를 이뤘다.

4. 낙향지

중앙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세거 성씨를 형성한 경우이다. 포천시 소흘읍 초가팔리 능말의 전주 이씨는 300여 년 전 이진이 손자 이장(李墇)과 함께 서울에서 낙향한 뒤에 형성되었다. 창수면 오가 2리 가노리의 전주 이씨는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박순(朴淳)이 노후에 낙향하여 훈학할 때 따라왔던 외손자 이택자(李澤字)에 의해 비롯되었다.

나주 정씨는 정언욱(丁彥頊)이 1621년 포천읍 신읍 4리[현 포천시 신읍동] 호병동으로 낙향한 뒤에 세거 성씨가 형성되었다. 광해군 때 사헌부 지평을 지낸 아버지가 정조(丁造)·윤신(尹訊) 등의 폐모론자(廢母論者)들을 규탄하는 상소문을 올렸다가 외직 군수로 좌천된 후 결국 관직에서 은퇴하자 이곳으로 낙향한 것이다. 고원 군수를 지낸 밀양 변씨 변효일(卞孝逸)은 사육신 중의 한 사람인 하위지(河緯地)의 사위였는데, 세조 때 연좌법의 화를 피하기 위하여 포천시 신북면 계류 2리 변촌말로 낙향한 이후 세거 성씨가 비롯되었다.

안동 권씨는 권대관이 300여 년 전 서울에서 소흘읍 고모리 한성골로 낙향, 정착하면서 세거 성씨가 형성되었는데, 그 뒤 월촌·야촌 등으로 세력을 넓혀 나갔다. 고모리에는 1934년 40호, 6·25 전쟁 직후인 1953년에 39호가 세거했는데 2000년 현재까지도 이를 유지했다.

풍천 임씨는 현감 임사철(任四哲)이 300여 년 전 퇴직 후 포천시 창수면 운산리에 낙향한 뒤에 세거 성씨를 이뤘는데, 1934년 60호, 2000년 당시 60호가 남아 있었다. 가산면 정교 1리 조촌한양 조씨는 조광조(趙光祖)의 손자인 조응남(趙應男)이 선조 때 기묘사화(己卯士禍)의 화를 피하기 위하여 낙향 정착하면서 비롯되었다. 신북면 가채 2리 조가채리한양 조씨는 이조 판서를 지낸 조경(趙絅)이 조선 중기에 낙향하여 정착하면서 형성되었고, 1934년에 33호였는데 2000년 당시에는 10호 정도만이 남았다.

5. 이주와 해체

이밖에도 세거 성씨는 다양한 형태로 형성되었다. 세거 성씨가 형성된 이후 인구의 증가 등으로 분가하여 새로운 집성촌을 이뤘다. 세거 성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농토를 통한 사회 경제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때문에 인구가 농토의 규모를 초과할 때에는 분가하여 이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6·25 전쟁 으로 해체된 경우도 있었다.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에는 김해 김씨가 1934년 18호였는데 해체되었고, 6·25 전쟁 이후 남하한 피난민들에 의해 촌락이 형성되었다. 관인면 냉정 1리에는 강원도 철원 출신과 황해도 옹진 출신자들이 토착민 등과 함께 촌락을 이뤘다.

또한 군부대 주둔으로 군사 도시로 변모하면서 고향을 떠나거나 외지인들이 이주하여 세거 성씨가 무너지기도 했다. 포천시 이동면 연곡리안산 김씨 52호가 거주하고, 도평리에는 양성 이씨가 64호로 세거 성씨를 이뤘지만 해체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세거 성씨가 사라지고 말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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