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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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산리는 가산면이 관할하는 법정리 8개 가운데 하나로 면의 남서부에 위치한다. 화산 아래에 있다고 해서 화산말 또는 화산이라 불렀다. 한편으론 마을에 시우정(時雨亭)이 있어서 시우골, 시우동으로도 불렀다. 1912년 행정구역상 포천군 가산면 가산리였다. 1914년 지방 행정 구역을 개편할 때 가산면 추곡리와 방축리 일부를 병합하여 가산리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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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에 속하는 행정 구역. 가산면은 포천시 소속 11개 면 가운데 동남부에 위치한 행정 구역으로서 8개 법정리[마산리·방축리·정교리·우금리·감암리·가산리·금현리·마전리]와 23개 행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본래 이름인 화산면(花山面)은 관내에 있는 화산(花山)에서 유래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청량면 소속의 3개 리를 합하면서 동네가 더해졌다는 뜻으로 가산면(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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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는 양반 사회였다. 따라서 양반은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 양반을 사대부(士大夫)라고도 하는데, 이는 사(士)와 대부(大夫)를 통칭한 말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朴趾源)은 소설 「양반전」에서 “글을 읽는 사람을 선비[士]라 하며, 벼슬길에 나아가서 대부(大夫)가 된다.”라고 하였다. ‘선비’란 벼슬하지 않고 글을 읽으며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풀이할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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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의 경주 이씨 입향조.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국정(國正).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이숭수(李崇壽)이고, 아버지는 증직 이조판서 이성무(李成茂)이다. 아들은 이몽량(李夢亮)이고 손자는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이다. 이예신(李禮臣)[1466~1536]은 1466년(세조 12)에 태어났다. 일찍이 진사에 급제하였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일가를 이끌고 포천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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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포천 출신의 효녀. 첨지 정기(鄭璣)의 처 최씨(崔氏)는, 출가하기 전에 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가자 단검을 들고 울부짖으며 하늘에 맹세하고 호랑이에게 다가갔다. 이에 호랑이가 슬그머니 물러나 도망하였다. 최낭(崔娘)으로도 전한다. 조정에서 정려를 하사하였다. 정려는 포천현의 남쪽 20리 떨어진 화산(花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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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한양.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의 막내 동생인 목사(牧使) 조숭조(趙崇祖)의 현손이다. 조익창(趙益昌)은 포천현 남쪽 20리 떨어진 화산(花山) 정교촌(鄭橋村)[현 포천시 가산면 정교리]에서 살았다. 천성이 곧고 자못 상의기부(尙意氣賦)하였으며, 효우(孝友)하였다. 노모를 모시는 데 성의를 다하여 몸소 정성껏 봉양하였고, 네 동생과 화합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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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효자. 조항일(趙恒一)은 자는 여중(汝中)으로, 포천현의 남쪽 20리 떨어진 화산(花山)[현 포천시 가산면 가산리]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용주(龍洲) 조경(趙絅)에게 학문을 배웠다. 성장해서는 홀로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아버지가 병으로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혈서를 써서 천지신명께 빌며 자신의 수명을 줄여서라도 아버지의 수명을 연장케 해 달라고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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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수성. 형은 효자 최천주(崔天柱)이고, 최천후(崔天後)의 사촌 형이다. 부인은 광주(廣州) 김씨이다. 고려 시대에 수성백(隋城伯)에 봉해진 최영규(崔永奎)의 후손이다. 『포천 군지』에 수록된 효자 최천후(崔天候)는 사촌 동생 최천후(崔天後)와 같은 인물로 추측된다. 최천극(崔天極)[1602~1636]은 포천의 읍치 남쪽 20리 떨어진 화산(花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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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년 성해응이 이항복을 모신 화산 서원의 중수를 기념하여 지은 기문. 「화산 서원 중수기(花山書院重修記)」는 1825년(순조 25) 연경재(硏經齋) 성해응(成海應)[1760~1839]이 이항복(李恒福)[1556~1618]을 모신 화산 서원(花山書院)을 손질하여 고친 것을 기념하여 지은 중수기(重修記)이다. 화산 서원은 1720년(숙종 46)에 국가에서 인정한 사액 서원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