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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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영리를 목적으로 한 물품 매매업. 18세기 중엽까지는 농촌과 도시의 재화 유통이 주로 당사자 간의 직접 교환에 의한 물물 교환이 주를 이루었다. 이어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까지는 상행위가 전문화하는 단계였고, 이와 함께 모든 산업은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하였다. 20세기 독점 자본주의 단계에 돌입하자 자본주의의 제반 모순이 격화되어 종래의 영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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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성동리에 있는 삼국 시대에서 고려 시대에 이르는 산성. 성동리 산성(城洞里山城)의 명칭이나 축성 시기, 시설물 등에 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으며, 다만 조선 중기 이후 각 지리지에 성동리 산성으로 추정되는 옛 성의 폐성 기사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 기사들에서 성동리 산성을 나타내는 것은 “영평현 동쪽 12리 둘레 1리의 옛 석성”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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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회(元會), 호는 청헌(聽軒). 이항복(李恒福)의 6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삭령 군수를 지낸 이세장(李世章)이고, 할아버지는 사도시 첨정을 지낸 이홍좌(李弘佐)이다. 아버지는 증 이조 참판 이종열(李宗說)이나 의빈부 도사를 지낸 이종악(李宗岳)에게 입양되었다. 부인은 학생 박사은(朴師殷)의 딸인 반남 박씨(潘南朴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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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弓裔)가 세운 태봉(泰封)의 수도는 강원도 철원이었다. 따라서 궁예와 포천 지역은 일견 아무 관련도 없는 듯하다. 궁예와 관련한 설화는 주로 철원 지역에서 많이 전해 오며, 그 외에 연천·안성 등지에서도 전한다. 하지만 포천 지역 또한 철원과 인접한 곳으로, 지금까지도 유적·유물이나 산·고개·바위 등 지명 등에 태봉[궁예]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포천시는 행정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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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평 대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인평 대군(麟坪大君) 이요(李㴭)[1622~1658]는 조선 후기 왕족으로 자는 용함(用涵), 호는 송계(松溪)이다. 인조의 셋째 아들이자 효종의 동생으로 1630년 인평 대군에 봉해졌다. 저서로 『송계집(松溪集)』·『연행록(燕行錄)』·『산행록(山行錄)』 등이 있고, 사후 효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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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성보(成甫), 호는 과재(過齋). 포천 현감을 지낸 동방 진인(東邦眞人) 북창(北窓) 정렴(鄭石+廉)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참봉 정유신이고, 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정기안(鄭基安)이다. 어머니는 목사 김상정의 딸인 안산 김씨(安山金氏)이다. 정만석(鄭晩錫)[1758~1834]은 1783년(정조 7) 생원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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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 경기도 포천지역에 천주교를 전파한 인물은 홍교만[1738~1801]이다. 한양에 살다가 포천으로 이주한 홍교만은 경기도 양근에 사는 고종 사촌 권일신(權日身)[?~1791] 집을 드나들다 천주교 신앙을 알게 되었다. 권일신은 1782년(정조 6) 이벽(李蘗)[1754~1786]의 권유로 천주교에 입교했고, 청나라에서 영세를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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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성동 2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익종의 태봉. 태봉(胎封)은 왕자·왕녀의 태반을 매장하는 장소를 말하며, 태반을 항아리에 보관한 후 미리 정해진 태봉에 태실(胎室)을 조성하고 태 항아리와 지석을 묻는 절차를 장태(藏胎) 혹은 안태(安胎)라고 한다. 익종(翼宗)[1809~1830]은 조선 제23대 순조의 세자이며, 제24대 헌종의 아버지이다. 이름은 영[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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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상성북 2리에 있는 조선 후기 포천 출신 효자 이명의 비. 이명(李蓂)은 효행이 뛰어나 향리에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부친상을 당하여 여막(廬幕)을 짓고 삼년간 아침저녁으로 묘에 올라 곡을 하였고, 묽은 죽 한 그릇만 먹으며 지냈다. 어느 날 흰 까치가 그가 지내는 여막의 처마에 둥지를 틀자, 사람들이 이명의 효성이 하늘에 닿았다고 칭송하였다. 순조 대 나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