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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996
한자 徐元履
이칭/별칭 덕기(德基),화곡(華谷)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의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몰년 시기/일시 1663년연표보기 - 서원리 사망
출생 시기/일시 1596년 12월 8일연표보기 - 서원리 출생
출생지 서원리 출생지 - 경기도 포천시
부임|활동지 천안 군수 - 충청남도 천안시
부임|활동지 강화 유수 - 인천광역시 강화군
부임|활동지 함경도 관찰사 - 함경남도 함흥시
묘소|단소 서원리 묘소 -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거사리
성격 문신
성별
본관 대구(大丘)
대표 관직 호조 참판

[정의]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덕기(德基), 호는 화곡(華谷). 할아버지는 판중추부사 서성(徐渻)이고, 아버지는 서경우(徐景雨)이며, 어머니는 지중추부사 성염(成恬)의 딸인 창녕 성씨(昌寧成氏)이다.

[활동 사항]

서원리(徐元履)[1596~1663]는 1627년(인조 5) 생원이 되었고, 복시에서 장원하여 명성을 떨쳤다. 세자익위사 세마를 거쳐 왕자사부로 심양에서 봉림 대군(鳳林大君)[효종]을 곁에서 보필하였다. 그 후 호조좌랑을 거쳐 호조와 공조의 정랑을 역임하고 청도 군수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다. 1651년(효종 2) 천안 군수가 되어 대동법(大同法)을 잘 시행하고 치적을 올려 읍민들이 송덕비를 세워 주었다. 봉림 대군이 세자였을 때 강관(講官)에 뽑혀 강의를 잘 하여 1652년(효종 3) 진선(進善)이 되었고, 1653년(효종 4) 장령과 집의를 거쳐 호조참의와 승지 등을 지냈다. 1658년(효종 9) 강화 유수가 되어 북벌 운동을 도와 군비 확충에 노력하였다.

현종이 즉위하자 동지중추부사 겸 총관(摠管)이 되었다. 이후 한성부 우윤을 거쳐 호조참판으로 비변사 당상을 겸직하였다. 1662년(현종 3) 함경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음 해 임지에서 순직하였다.

[묘소]

묘는 처음에는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 선영에 있다가 후에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거사리로 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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