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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동 반석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858
한자 玉洞盤石
이칭/별칭 너러바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우금2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동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758년 - 옥동 반석 『견성지』에 소개됨
현 소재지 옥동 반석 -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우금2리
성격 유적
관련 인물 이항복(李恒福)|홍지성(洪至誠)|이서(李漵)|양만고(楊萬古)
길이 50m

[정의]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우금 2리에 있는 조선 시대 반석.

[개설]

『견성지(堅城誌)』에는 옥동 반석(玉洞盤石)에 대하여 “반석(盤石)에는 50명이 앉을 만하고 맑은 물이 흐르며 둘레에는 단풍과 전나무가 우거져 있다”라는 내용과 함께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불정산인(彿頂山人) 홍지성(洪至誠)이 봄가을이 되면 옥동 반석을 찾아 노닐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서예가 이서(李漵)포천시 군내면 유교리의 청량동에 살면서 가까이 위치한 옥동 반석을 찾아 거문고를 즐기고 산수를 벗하며 자신의 호를 옥동 또는 옥금산인(玉琴散人)이라 짓고 예학과 필법을 연구하여 동국 진체(東國眞體)인 옥동체(玉洞體)를 완성하는 산실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한편, 양사언의 아들 양만고(楊萬古)옥동 반석을 소재로 하여 지은 칠언절구가 전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리가 단풍 숲에 내리니 붉은 비단으로 수놓은 것 같고 만봉의 가을빛은 시내 가운데 있구나/ 소연이 이끼 낀 바위 위에 앉아 있노라니 스님이 어디서 온 늙은이냐고 묻더라.”

[위치]

옥동 반석포천 금현리 지석묘에서 동쪽으로 약 2.5㎞ 떨어진 수원산 기슭의 옥금수 골짜기 중간에 위치한다.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옥동 반석의 동쪽에는 이항복을 모신 화산 서원(花山書院) 건립 전 이곳에 백사 서원(白沙書院) 등이 있었다.

[형태]

옥동 반석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규모는 폭 7~10m, 동서 길이 약 50m로 길게 펼쳐져 있고 암반 위로는 계곡물이 흘러내리며 작은 웅덩이와 짧은 폭포를 형성하여 깨끗하고 아름다운 옥동(玉洞)[신선이 사는 곳]을 연상케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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