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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784
한자 全溪大院君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기도 포천시 삼육사로2105번길 22[선단동 77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엄익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785년 - 전계 대원군 이광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841년 - 전계 대원군 이광 사망
이장 시기/일시 1856년연표보기 - 경기도 양주 신혈면 진관[현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외동]에서 포천시 선단동 산11번지로 전계 대원군 묘 이장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56년연표보기 - 전계 대원군 묘갈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86년 04월 09일연표보기 - 전계 대원군 묘 포천시 향토 유적 제1호로 지정
현 소재지 전계 대원군 묘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삼육사로2105번길 22[선단동 773]지도보기
성격
양식 원형 단분 합장묘
관련 인물 전계 대원군(全溪大院君) 이광(李㼅)[1785~1841]|완양 부대부인(完陽府大夫人) 전주 최씨(全州崔氏)
봉분 크기/묘역 면적 봉분 직경 6m, 묘역 면적 약 475㎡[143.69평]
문화재 지정 번호 포천시 향토 유적 제1호

[정의]

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계 대원군 이광 부부의 합장묘.

[개설]

전계 대원군(全溪大院君) 이광(李㼅)[1785~1841]은 조선 후기 왕족으로 그의 가계는 영조(英祖)[증조할아버지]→사도 세자[할아버지]→은언군(恩彦君)[아버지]→전계 대원군철종[아들]으로 이어진다. 이광은 부모와 형 상계군(常溪君) 부부의 죄에 연좌되어 강화도 교동으로 쫓겨나 빈농으로 살았다. 사후에 이광의 셋째 아들 이원범(李元範)이 헌종을 이어 1849년 철종으로 등극하자 전계 대원군으로 추봉되었다. 이광의 첫 부인 완양부 대부인(完陽府大夫人) 전주 최씨(全州崔氏)는 최수창(崔秀昌)의 딸이고, 둘째 부인 용성부 대부인(龍城府大夫人) 염씨(廉氏)는 영의정으로 추증된 염성화(廉成化)의 딸로 철종을 낳았다.

[위치]

포천에서 의정부로 가는 국도 43호선 도로 대진 대학교 입구를 지나 장승거리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지방도 364호선을 탄다. 이어 선단 초등학교 삼거리를 지나 바로 다음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364로 2105번길’로 나아가면 왕방산 기슭의 전계 대원군 묘(全溪大院君墓)가 나타난다. 주소지는 포천시 삼육사로2105번길 22[선단동 773]이다.

[변천]

1841년 이광이 57세로 세상을 뜨자 경기도 양주 신혈면 진관[현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외동]의 은언군 묘 옆에 안장하였다가 1856년 포천의 현 위치로 이장하면서 완안 부대부인과 합장하였다. 용성 부대부인 염씨 묘는 이광 무덤의 동쪽 옆 구릉에 단독으로 조성하였다.

[형태]

묘역은 크게 2단으로 구분되는데 곡장(曲墻)을 두른 상단에는 봉분·묘갈·혼유석 등을, 하단에는 상석·향로석·망주석 1쌍·장명등·무인석 1쌍 등을 배치하였다. 호석을 두른 원형 봉분은 완양 부대부인과 합장한 단분(單墳)이다. 묘역의 석물은 근대 돌조각의 표본으로 이광의 무덤을 포천으로 이장한 1856년경에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섬세한 조각 장식의 장명등과 사실적으로 세밀하게 제작된 무인석, 상석 받침의 단아한 조각에서 19세기 조선 왕족 묘역의 품격을 읽을 수 있다.

[금석문]

옥개 방부형 묘갈은 봉분 좌측에 위치하며, 묘역 아래 비각에 자리한 신도비와 유사한 모양이다. 오석으로 만든 묘갈의 앞면에 ‘유명 조선국 전계 대원군 지묘 완양부 대부인 전주 최씨 부우(有明朝鮮國全溪大院君之墓 完陽府大夫人全州崔氏祔右)’라 새겼고, 나머지 세 면에는 김좌근(金左根)이 짓고, 이광의 사돈[철종의 장인]인 김문근(金汶根)이 글씨 쓴 비문을 새겼다. 건립 연대는 1856년이다.

[현황]

전계 대원군 묘는 1986년 4월 9일 포천시 향토 유적 제1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1.28 주소지 변경 당초 경기도 포천시 선단동 산11 번지에서 선단동 773번지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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