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699
한자 靑城集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840년연표보기 - 『청성집』 간행
소장처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성격 문헌|전적
저자 성대중(成大中)
편자 성해응
간행자 성헌증(成憲曾)|조만영(趙萬永)
권책 10권 5책
규격 22.0×15.1㎝

[정의]

1840년 간행된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인 성대중의 시문집.

[저자]

성대중(成大中)[1732~1812]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본관은 창녕, 자는 사집(士執), 호는 청성(靑城), 아버지는 찰방 성효기(成孝基)이고, 아들은 연경재 성해응(成海應)이다. 1753년(영조 29)에 생원이 되고 1756년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서얼이라 벼슬길에 오르지 못할 처지였으나, 서얼 통청 운동(庶蘖通淸運動)에 힘입어 1765년(영조 41) 청직(淸職)에 임명되었다. 1763년 통신사 조엄(趙曮)을 수행하여 일본에 다녀왔고, 1784년(정조 8)에 흥해 군수(興海郡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벼슬은 부사(府使)에 이르렀다.

학맥은 낙론계(洛論系)에 속해 성리학을 탈피하지는 못했으나, 북학 사상에 심취하여 홍대용(洪大容)·박지원(朴趾源)·이덕무(李德懋)·유득공(柳得恭)·박제가(朴齊家) 등과 교유하였고, 스승 김준(金焌)에게 전수받은 상수학적(象數學的)인 학풍을 발전시켜 북학 사상의 형성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아들 연경재 성해응의 「가집의례(家集義例)」에 의하면, 시문 외에도 『송사전(宋史筌)』 1권, 『췌언(揣言)』 1권, 『질언(質言)』 1권, 『성언(醒言)』 3권, 『시화』 1권, 『독역차의(讀易箚義)』 1권, 『역서통의(易書通義)』 1권, 『괘변도(卦變圖)』 1권, 『호복서언(濠濮緖言)』 1권, 『존주휘편(尊周彙編)』 초본 2권 등이 있었으나 너무 여러 가지가 뒤섞여 문집으로 편차하기 어려워 시문만 편정하여 산삭(刪削)[필요 없는 글자나 글귀를 지워 버림]을 하였다고 한다.

시의 경우 초기 작품인 치년작(穉年作)부터 선사록(仙槎錄)까지가 하나의 시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성대중이 생전에 편차해 놓은 체제인 듯하다. 성해응은 이를 바탕으로 시 1,357수를 연도순으로 정리하고, 다음으로 편지 55편, 서(序) 64편, 기(記) 93편, 문(文)·설(說)·발(跋)·명(銘) 24편, 서후(書後)·지(識)·제(題) 36편, 행장(行狀)·묘지(墓誌) 20편, 제문·애사(哀詞) 32편, 논(論) 11편, 전(傳)·유사(遺事) 18편을 수록하고, 만필(漫筆)의 성격인 잡저 3편을 권말에 편정하였다. 하지만 후에 다시 이를 산정(刪定)하여 10권으로 편차하고 간행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여 손자인 성헌증(成憲曾)이 1840년(헌종 6) 우의정 조인영(趙寅永)에게 부탁하여 서문을 받고, 조만영(趙萬永)의 도움으로 10권 5책의 문집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10권 5책의 활자본으로, 크기는 22.0×15.1㎝이다. 활자는 운각 인서체자(芸閣印書體字)[조선 숙종 때 교서관에서 만든 인서체 금속 활자]이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권1~4는 시, 권5~10은 문이다. 시는 총 478제 630여 수가 저작 연도순으로 실려 있다. 권1에는 1763년 조엄을 따라 일본에 다녀오던 때를 전후한 시기의 시가 많다. 권2와 3은 중년의 작품으로 규장각 재직 시에 박지원·이덕무·홍원섭(洪元燮) 등과 교유하며 지은 시도 포함되어 있고, 권4는 말년 작품으로 뒷부분에는 1803년(순조 3) 송시열의 유적을 둘러보고 지은 시가 실려 있다.

권5~8에서 편지는 백대성(白大成)·나열(羅烈)·송규상(宋奎祥)·홍원섭·원중거(元重擧)·김상숙(金相肅)·서유린(徐有隣)에게 보낸 것이고, 서(序)에는 연경에 가는 서호수(徐浩修)와 서장관 신사운(申思運)을 전송하는 글이다. 기(記) 중에서 「유내연산기(遊內延山記)」와 「청량산기(淸凉山記)」는 1783~1784년 흥해 군수로 있을 때 지은 것이고, 「사설(思說)」에서는 생각이 학문과 문장의 바탕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권9~10 중에는 묘향산의 주지인 선흠 선사(善欽禪師)의 비명, 흥해 군수로 있을 때 흥해[경상북도 포항 지역의 옛 지명] 지역에 제언을 쌓은 김영수(金永綬)의 공을 기린 비문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소중화(小中華)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청나라의 문물이라도 우수한 것은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북학 사상과의 교섭과 고문(古文)을 중시하는 문장론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