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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수언』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689
한자 五子粹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737년연표보기 - 『오자수언』 저술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00년연표보기 - 『오자수언』 필사
소장처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성격 문헌|전적
저자 김창협(金昌協)
편자 김창협(金昌協)
간행자 어유봉(魚有鳳)
권책 5권 2책
규격 32.1×21.3㎝

[정의]

1737년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인 김창협이 5명의 중국학자들에 관하여 정리 편집한 책.

[저자]

김창협(金昌協)[1651~1708]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삼주(三洲),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아들, 나성두(羅星斗)의 외손,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동생이다.

1669년(현종 10) 진사에 합격하고, 1682년(숙종 8) 증광 문과에 전시 장원한 후 병조좌랑·사헌부 지평·이조좌랑·함경북도 병마평사·이조정랑·예조참의·대사간 등을 지냈으나, 기사환국으로 아버지가 진도에서 사사되자 사직하고 영평(永平)에 은거하였다. 1694년 갑술옥사 후 아버지가 신원됨에 따라 이조 참판·대제학·예조판서·지돈령부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평소에 부드럽고 화기가 가득하였지만, 의리를 변핵함에 있어서는 성조(聲調)를 높여 기절(氣節)이 강개하여 담봉(談鋒)을 범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학문은 이황(李滉)이이(李珥)의 설을 절충하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편찬/간행 경위]

1737년(영조 13) 김창협의 제자인 어유봉(魚有鳳)[1672~1744]이 스승의 명으로 정사(精寫)했는데, 이 자료는 당시의 것이 아니라 1900년에 필사된 것이다.

[형태/서지]

5권 2책의 필사본으로, 크기는 32.1×21.3㎝이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서문은 없고 본문·부록·후서(後序)로 구성되어 있다. 『오자수언(五子粹言)』에 수록된 5인은 모두 당대의 거유(巨儒)로, 전국 시대의 순경(荀卿)‚ 한나라의 동중서(董仲舒)와 양웅(楊雄)‚ 수나라의 왕통(王通)‚ 당의 한유(韓愈)이다. 각 권마다 해당 인물의 전기를 요약한 「본전(本傳)」과 그들이 사우(師友)들과 나눈 문답, 평소 언행 중의 정수를 그들의 저술에서 발췌하여 싣고 있다. 사상적인 통일에 치중하여 이들의 공통점을 부각시키고 학(學)·습(習)·치기양심지술(治氣養心之術)·인(仁)·예(禮)·군자(君子)에 대한 이야기 등 교화에 관한 언행을 중점적으로 정리하였다. 특히 왕통에 대해서는 선조의 행적이나 그의 행적을 소상히 밝혔고, 사마천(司馬遷)·반고(班固)의 역사서에 관한 언급이 많다.

부록으로 「주자어류 오자총론(朱子語類五子總論)」·「주자왕씨속경설(朱子王氏續經說)」 등이 수록되어 있다. 「주자어류 오자총론」은 주자가 오자(五子)의 사상과 학설에 대해 평론한 것을 『주자어류(朱子語類)』에서 발췌·수록한 것이고, 「주자왕씨속경설」은 문중자(文中子)로 불리는 왕통이 『논어(論語)』를 모방하여 지었다는 『현경(玄經)』·『중설(中說)』 등을 주자가 통박한 글이다.

[의의와 평가]

『오자수언』을 편찬한 목적으로 어유봉은 “오자는 도(道)에 순수하지 못함이 있는 까닭에 무잡(無雜)할 수가 없고‚ 오자의 도는 그 학문에 천심(淺深)의 다름이 있고 대소의 차가 있으니 학자가 강구평정(講究評定)해서 격물(格物)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고자 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조선 후기 노론계 중심 인물인 김창협의 경세관과 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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