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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540
한자 馬忽郡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집필자 김진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할 지역 마홀군 - 경기도 포천시

[정의]

삼국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고구려의 지방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광개토대왕릉비문과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에 “영락 6년조 백제의 58개성을 점령한 뒤 그 지역에 ‘마홀(馬忽)군’을 설치하고 관아를 고모루성(古牟婁城)에 두었다”라고 한다. 고구려 때는 마홀군(馬忽郡), 일명 명지군(命旨郡)으로 불렀다. 신라 진흥왕 때 견성군(堅城郡)이라 부르다가 경덕왕 때는 청성(靑城)이란 지명으로 고쳐 불렀다. 고려 초에 와서 포주(抱州)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포천이란 지명은 1413년(태조 13)에 생겨난 이름이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5, 잡지 제4, 지리2에 “견성군은 원래 고구려의 마홀군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이다. 지금의 포주이다. 이 군에 속한 현은 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별집 제16권 지리전고(地理典故) 주(州)와 군(郡)에는 “포천, 고구려 때의 마홀군이니 신라 때 견성으로 고쳤고, 고려 초기에 포천으로 고쳤으며 태종 계사년에 포천현으로 고쳤다”라고 쓰여 있다.

[내용]

포천군은 본래 고구려의 마홀군으로, 명지군이라고도 하였다. 고구려 때 부른 옛 지명인 ‘마홀’은 이두 문자(吏讀文字) 방식에 따른 표기로 ‘마(馬)’는 ‘물’로 해석하고 ‘홀(忽)’은 ‘고을’을 나타내므로 ‘물골’로 풀이하고 있어, 이 지역이 하천과 관계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포천도 고을이 내를 안고 있다는 뜻의 지명이다. 즉 영평천(永平川)포천천을 안고 있는 ‘물이 많은 고장’이라는 뜻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기록은 반월산성에서 발견된 유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반월산성에서는 삼국 시대로부터 조선 시대를 아우르는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마홀수해공구단(馬忽受解空口單) 명의 명문 기와가 발견되어 『삼국사기』에 기록된 고구려의 마홀군이 바로 포천이었음을 고고학적으로 입증하게 되었다.

[변천]

지금의 포천시는 삼한 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고 삼국 시대 초기에는 백제, 후기에는 고구려에 속하였는데 광개토대왕장수왕 때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고구려 때의 지명은 마홀군 혹은 명지군이었다. 신라 진흥왕이 한강 유역과 그 일대를 점령한 뒤에는 견성군으로 고쳤으며, 757년에 청성군(靑城郡)으로 다시 바꾸었다.

고려 초에는 포주라고 부르다가 995년에 10도제(道制)를 채택하여 포천군이 되었으며, 1018년 양광도(楊廣道) 양주군(楊州郡)에 속하였다. 1413년 전국에 8도제를 시행하면서 포천현이라 부르고 현감을 두었다. 1618년(광해군 10) 포천과 영평(永平)을 합하여 도호부(都護府)를 두고 감영을 설치하였다. 1895년(고종 32) 영평군이 포천군에 통합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나누어졌다. 1914년 부군면(府郡面) 폐합으로 영평군을 포천군에 통합하였다. 포천군은 2003년 포천시로 승격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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