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전기 통신 시설. 『경국대전』에 의하면 봉수제(烽燧制)의 ‘봉’은 불을 피워서 통보하는 것을 뜻하고, ‘수’는 설나무에 불을 질러서 그 연기를 바라보게 하는 것으로서,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을 들어 통보하는 제도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봉수제는 우역제(郵驛制)와 함께 신식 우편 제도와 전기 통신이 창시되기 이전의 근대 국...
-
제주특별자치도에 제주시에 있는 산 정상부에서 횃불과 연기로 급한 군사 소식을 전하던 조선 전기의 통신 수단. 『경국대전』에 의하면 봉(烽)은 불을 피워서 통보하는 것을 뜻하고, 수(燧)는 설나무에 불을 질러서 그 연기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라 하며,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을 들어 통보하는 제도라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봉수는 높은 산이나 해안 구릉에 올라가서...
-
제주특별자치도에 있는 조선 전기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한 9개의 진(鎭)의 외곽을 둘러서 축조한 성곽. 진은 삼국 시대 말부터 조선 시대까지 설치되었는데, 둔전병(屯田兵)이 주둔하던 무장 성곽 도시, 또는 군사적 지방 행정 구역이다. 시기별로 진의 설치 목적은 다르지만, 북방의 변경과 해안 지대에 구축되었다. 즉 진은 신라 말기 상업적인 필요에 의하여 설치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에 있는 적선의 침범을 막기 위하여 바닷가를 돌아가며 돌담으로 쌓았던 성. 고려 원종(元宗) 때에 삼별초가 반란을 일으켜 진도에 웅거(雄據)하였다. 이에 원종이 사랑 고여림 등을 탐라에 보내 군사 1,000명을 거느리고 방비하게 함에 따라 환해장성을 쌓게 되었다. 『고지도첩(古地圖帖)』 중 「탐라전도」에는 애월개의 동쪽에 옛...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 애월진 소속의 봉수. 고내봉수는 북동쪽으로 수산봉수(직선 거리 4.5㎞)와 남서쪽의 도내봉수(직선 거리 5.6㎞)와 교신하였으며, 동쪽으로 남두연대, 서쪽으로 애월연대와도 교신하였다. 소속 별장 6명, 봉수 24명이 배치되었다.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해안가에서 남쪽으로 약 1㎞ 떨어진 해발 1...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 곤을마을 해안에 있는 고려 후기 석성. 1270년(원종 11) 고려 군사들이 남하하는 삼별초 군사들을 막기 위해 축조한 성이다. 같은 해 삼별초 선발대가 들어와 제주도에 있던 고려군 수비대를 물리치고 여몽 연합군을 막기 위해 다시 정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1854년(헌종 11)까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증축, 수리된 것으로 보인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에 있는 조선 시대 명월진 소속의 연대. 귀덕연대는 동쪽으로는 애월연대[직선 거리는 3.2㎞], 서쪽으로는 도내봉수[직선 거리 2.7㎞] 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주변 해안과 비교하여 완만하게 안으로 들어온 속칭 ‘복덕개’라 부르는 포구 가까이 귀덕 초등학교가 있으며, 이 초등학교 교내 북...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에 있는 조선 시대 애월진 소속의 연대. 남두연대는 동쪽으로 수산봉수(직선 거리 2.5㎞), 서쪽으로 고내봉수(직선 거리 2.7㎞)와 교신하였으며,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해안 도로가 시작되는 구엄리에서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2㎞ 정도를 가면 ‘남뜨르’라 불리는 동산 위에 남두연대가 있다. 이 연대는 1977년...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 있는 조선 시대 차귀진 소속의 봉수가 있었던 터. 당산봉수는 동쪽으로 대정현 저별봉수 또는 모슬봉수, 서쪽으로 제주 만조봉수(직선거리 10.7㎞)와 연락을 취하였으며, 동쪽으로 대정현 서림연대, 서쪽으로 대정현 우두연대와도 교신하였다.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지리적 위치는 동경 126° 10′, 북위...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금릉리에 있는 조선 시대 명월진 소속의 연대가 있었던 터. 대포연대는 동쪽으로 배령연대(직선거리 4.4㎞), 서쪽으로 두모연대(직선거리 873m)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병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판포리의 민가가 밀집된 마을에서 두모리(頭毛里) 쪽으로 일주 도로를 따라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르면 주변 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금성리에 있는 조선 시대 명월진 소속의 봉수. 도내봉수는 북동쪽으로 고내봉수(직선 거리 5.3㎞), 남서쪽으로 만조봉수(직선 거리 7.5㎞)와 교신했으며, 동쪽으로 귀덕연대, 서쪽으로 우지연대와도 교신하였다. 소속 별장 6명, 4봉수 24명을 배치하였다.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 해안에서 남동쪽으로 약 3.8㎞ 떨어진 해발...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두모리에 있는 조선 시대 명월진 소속의 연대. 두모연대는 동쪽으로는 대포연대(직선 거리873m), 서쪽으로는 우두연대(직선 거리 3.9㎞)와 교신했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두모리 일주 도로에서 북서쪽으로 500m를 가면 주위 해안보다 돌출된 지역 포구와 인접한 곳에 있다. 두모연대는...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한림리에 있는 조선 시대 명월진 소속의 연대가 있었던 터. 마두연대는 동쪽으로 죽도연대(직선거리 1.1㎞), 서쪽으로 배령연대(4.3㎞)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마두연대는 마두포 대안(對岸)에 있었다고 하는데, 마두포의 위치는 옛 지도에 의하면 독포 동쪽이고, 그 동쪽이 잠수포이므로...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상명리에 있는 조선 시대 명월진 소속의 봉수. 만조봉수는 동북쪽의 도내봉수(직선 거리 7.5㎞)와 남서쪽의 당산봉수(직선 거리 10.7㎞)와 교신하였으며, 서쪽으로 배령연대와도 연락을 취하였다. 소속 별장 5명, 봉군 24명이 배치되었다. 제주시 한림읍 금능리 해안가에서 남동쪽으로 4.8㎞ 떨어진 해발 225m의 느지오름...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에 있는 1510년(중종 5)에 목사 장림(張琳)이 명월포(明月浦)에 쌓았던 성터. 비양도 인근에 출몰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목성으로 축조한 진성으로, 1976년 9월 9일 제주도 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되었다. 1510년(중종 5)에 장림 제주목사는 비양도를 왜구가 침공하기 쉬운 곳이라 판단하여 이곳에 목성을 쌓았다. 이후...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성곽. 명월진성은 왜구의 침공에 대비하여 목성(木城)으로 만들었다가 훗날 석성(石城)으로 쌓은 조선 시대 성곽이다. 명월진성이 있는 명월포는 고려 후기인 1374년(공민왕 23) 제주에 살던 목호(牧胡: 원나라가 운영하던 국영 목장 관리자)가 반란을 일으키자 최영 장군이 상륙하여 난을 진압하고 돌아간 곳이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 있는 조선 시대 별방진에 소속의 연대가 있었던 터. 무주연대는 동쪽으로 좌가마연대(직선 거리 4.7㎞), 서쪽으로 입산봉수(직선 거리 2.5㎞)와 교신하였다.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월정리 일주 도로와 인접하여 취락 구조 개선 마을이 있으며, 북서쪽으로 1㎞ 정도를 가면 월정리 마을과 김녕...
-
조선시대 외부의 침략에 대비해 제주 지역에 축조한 유적. 제주 해안 방어의 중요한 목적은 왜구의 빈번한 침입을 막는 데 있었다. 제주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중국으로 가는 길에 위치해 왜구들이 땔감과 물·식량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왜구는 고려 말부터 제주에 자주 침입하여 방화·약탈 및 인명 살상을 일삼았다. 더구나 추자도 근해에 숨어...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금능리에 있는 조선 시대 명월진 소속의 연대. 배령연대는 동쪽으로 만조봉수(4.3㎞)., 서쪽으로 대포연대(직선 거리 4.4㎞)와 교신했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배령연대는 옹포리에서 협재리까지 해안선이 일직선으로 오다가 금릉리에서 밖으로 돌출되는 곳에 위치했다. 1996년 조사 당시 배령연대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통신 시설. 화북진에 소속된 별도연대는 동쪽으로 원당봉수, 서쪽으로 사라봉수와 상응하면서 군사 소식을 전했다. 17세기 이후 별도봉수는 폐쇄되고 별도연대가 설치되었다. 별도연대는 제주목에서 동쪽으로 12리(6.71㎞)에 위치하였으며, 봉군으로는 별장(別將) 6명, 직군(直軍) 18명이 있었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고려 후기 석성. 1270년(원종 11)년 고려 군사들이 남하하는 삼별초 군사들을 막기 위해 축조한 성이다. 같은 해 삼별초 선발대가 들어와 제주에 있던 고려군 수비대를 물리치고 여몽 연합군을 막기 위해 다시 정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조선시대에는 왜적의 침입에 대비한 성으로 활용되어 1845년(헌종 11)까지 증축, 수리되었다...
-
조선 중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 설치한 외부 침략에 대비한 방어유적. 별방진은 1510년(중종 5) 장림(張琳) 목사가 우도에 왜구가 접근하기 쉬우므로 이를 방어하기 위해 김녕방호소를 이 곳, 하도리로 옮겨놓은 진(鎭)이다. 1973년 4월 13일 제주도 기념물 제24호로 지정된 9진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 중종 때 제주목사 장림(張琳)이 김녕...
-
조선시대 제주 지역의 관에서 변경의 정세를 중앙에 전하던 군사통신 조직. 봉수는 말 그대로 밤에는 봉(烽:횃불), 낮에는 수(燧:연기)로 급보를 전하던 통신 방법이다. 군사적 목적으로 설치된 봉수제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기록상에 나타난 시기는 고려 중기(12~13세기)이다. 그러나 서로 바라볼 수 있는 높은 산꼭대기에서 횃불과 연기로 의사를 전달하던 지혜는 일찍부터 발달하였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전기의 횃불과 연기로써 급한 군사 소식을 전하던 통신 수단인 봉수의 하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별도봉수(別刀烽燧)는 “서쪽의 사라악에서 받아 동쪽의 원당악에 응답한다(西應沙羅岳 東應元堂岳)”고 하였으며, 『탐라방영총람』에서는 별도연대(別刀煙臺)는 “본주로부터의 거리는 동쪽으로 십일 리인데 화북진에 소속되었다. 별장 한사람이...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에 있는 고려 후기 석성. 1270년(원종 11) 고려 군사들이 남하하는 삼별초 군사들을 막기 위해 축조한 성이다. 같은 해 삼별초 선발대가 들어와 제주에 있던 고려군 수비대를 물리치고 여몽 연합군을 막기 위해 다시 정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조선 시대에는 왜적의 침입에 대비했던 성으로 활용되어 1845년(헌종 11)까지 증축, 수리되었...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 있는 조선 시대 조천진 소속의 봉수가 있었던 터. 서산봉수는 동쪽으로 입산봉수(직선 거리 7.5㎞), 서쪽으로 원당봉수(직선 거리 7.6㎞)와 교신을 했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24명이 배치되었다. 서산봉수는 조천진에 소속된 봉수로서, 동쪽으로 입산봉수와 서쪽으로 원당봉수와 연락을 취하였으며, 서쪽으로 함덕연대와도 교...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횃불과 연기로써 급한 군사 소식을 전하던 전통 시대의 통신 수단. 수근연대는 동쪽으로는 사라봉수(직선거리 4.6㎞), 서쪽으로는 도원봉수(직선거리 2.8㎞)와 서로 군사 소식을 주고받았다. 봉군은 별장 6명, 직군 12명이 있었다. 수근연대는 1978년에 제주도 내 일반적인 연대의 형태로 복원되었다. 연대의 상부는 7.1...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제주성(濟州城) 소속의 봉수. 수산봉수는 북동쪽의 도원봉수(직선 거리 8.7㎞)와 남서쪽의 고내봉수(직선 거리 4.3㎞)와 교신을 하였으며, 조부연대와 남두연대에 서로 교신하였다. 소속 별장 6명, 봉군 24명을 배치하였다. 수산봉수는 제주시 애월읍 구엄리 해안가에서 남동쪽으로 약 1.2㎞ 떨어...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에 있는 조선 시대 애월진 소속의 연대. 애월연대는 동쪽으로 고내봉수(직선 거리 2.7㎞), 서쪽으로 귀덕연대(직선 거리 3.2㎞)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애월연대는 애월진이 있었던 애월초등학교에서 서쪽으로 6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속칭 ‘연디왓’이라 불린다. 밖으로...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있는 조선 중기의 진성. 애월진성에는 조방장 1명, 치총 2명, 성정군 84명, 유직군 86명, 서기 7명 등 총 180명이 병력이 있었다. 관할은 1봉수(고내 봉수), 2연대(남두 연대, 애월 연대)였다. 애월진성은 처음에는 고려 원종 때 삼별초가 들어와서 관군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목성(木城)이었다. 이를 방어 시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에 있는 조선시대 별방진 소속의 봉수가 있었던 터. 별방진 소속의 왕가봉수 는 동쪽으로는 지미봉수, 서쪽으로는 입산봉수와 연락을 취하였다. 그리고 동쪽으로 입두연대와 서쪽으로 좌가마연대와도 교신하였다.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해안에서 남서쪽으로 1㎞ 떨어진 한동리와 월정리를 잇는 구 일주 도로변의 동쪽, 매우 낮은 언...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흥리에 있는 조선시대 조천진 소속의 연대. 조천진에 소속된 왜포연대(일명 고포연대)는 동쪽으로 함덕연대(직선 거리 1.4㎞), 서쪽으로 조천연대(직선거리 1.4㎞)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별장 6인,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왜포연대는 함덕정보산업고등학교에서 바다 쪽으로 800m 정도를 가면 포구의 서쪽 해안 가까이 주...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에 있는 조선시대 차귀진 소속의 연대. 우두연대는 북쪽으로 두모연대(직선 거리 3.9㎞), 남쪽으로 대정현의 당산봉수(직선거리 1.9㎞)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우두연대는 용수리(龍水里) 일주 도로에서 해안 쪽으로 1.4㎞ 정도 떨어진 ‘쇠머리 동산’이라 불리는 곳에 위치한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에 있는 조선시대 명월진에 소속된 연대. 우지연대는 동쪽으로 도내봉수(직선거리 3.2㎞), 서쪽으로 죽도연대(직선거리 2.3㎞)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별장은 6명, 봉군은 12명을 배치하였다. 귀덕초등학교 입구에서 일주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1.6㎞를 가다 보면 북쪽으로 7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주민들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 있는 조선시대 별방진 소속의 연대가 있었던 터. 입두연대는 동쪽으로 정의현지미봉수(직선 거리 5.4㎞), 서쪽으로 왕가봉수(직선 거리 3.3㎞)와 서로 교신이 가능하였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 동동에서 제주 삼성연합의원으로부터 서남쪽 150m 지점에 위치하고 있...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동김녕리에 있는 조선시대 별방진 소속의 봉수가 있었던 터. 입산봉수는 동쪽으로 왕가봉수(직선 거리 6.0㎞), 서쪽으로는 서산봉수(직선 거리 7.5㎞)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별장 6명, 봉수 24명을 배치하였다. 별방진 소속의 입산봉수는 동쪽으로 무주연대와도 교신하였다. 입산봉수는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해수욕장에서 남쪽...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삼국시대 탐라국 수부(首府)의 성곽으로 축성된 성터. 제주성은 삼국 시대 탐라국 수부의 성곽으로 축성되었으나 원래의 규모와 축성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읍석성(邑石城)의 둘레는 910보”라고 하였고,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읍성은 석축으로 둘레가 4,394척이고 높이는...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2동에 있는 횃불과 연기로써 급한 군사 소식을 전하던 전통 시대의 통신 수단인 연대의 하나. 조부연대는 제주목에서 서쪽으로 23리(12.86㎞)에 위치한 제주목 소속의 연대이다. 조부연대는 동쪽으로 도원봉수(직선거리 4.3㎞), 서쪽으로 수산봉수(4.4㎞)와 서로 군사 소식을 주고받았다. 봉군은 별장 6명, 직군 12명이 군무했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조선시대 조천진 소속의 연대. 조천연대는 서쪽으로 원당봉수(직선 거리 3.3㎞), 동쪽으로 왜포연대(직선 거리 1.4㎞)와 교신했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조천리 일주 도로에서 북쪽으로 가면 포구와 접하여 타원형으로 된 조천성과 함께 연북정이 있으며, 북동쪽으로 300m 정도를 더...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조선 중기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설치된 군사 시설. 조천진은 9개 진(鎭)의 외곽을 빙 둘러서 축조한 성곽 중 하나이다. 조천(朝天)은 조선 초기부터 조천방호소와 조천포수전소가 있던 방어의 요충지였는데, 처음 축조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선조 때 개축하였다. 고서의 기록을 통해 조천은 천자의 나라에 조회하러 나간다는 의미로...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있는 조선 시대 수산진 소속의 연대. 종달연대는 동쪽으로 오조연대, 서쪽으로는 지미봉수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해안도로에 위치하며 종달리 해피휴펜션으로부터 남서쪽 80m지점에 있다. 지미봉 북동쪽에 해안가에 자리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미봉수(직선거리 9...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 별방진 소속의 연대. 좌가연대는 동쪽으로 왕가봉수(직선 거리1.2㎞), 서쪽의 무주연대(직선 거리 4.7㎞)와 서로 교신을 하였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좌가연대는 한동리 일주 도로에서 서하동(西下洞) 북서쪽으로 가면 해안과 조금 떨어져 주위보다 조금 높은 동산 위에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한수리에 있는 조선 시대 명월진 소속의 연대가 있었던 터. 죽도연대는 동쪽은 우지연대(직선거리 2.3㎞), 서쪽은 마두연대(직선거리 1.1㎞)와 교신하였다.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제주시 한림읍 한수리에 위치한 죽도연대는 잠수포(潛水浦) 대섬코지[竹島]에 있었다. 대섬코지는 예전에는 밀물 때 섬이 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있는 조선 시대 수산진 소속의 봉수가 있었던 터. 수산진 소속의 지미봉수는 남동쪽의 성산봉수(직선 거리 5.4㎞), 북서쪽의 왕가봉수(직선 거리 8.3㎞)와 교신하였으며, 동쪽으로 종달연대와 서쪽으로 입두연대와도 교신하였다. 소속 별장은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해안에 접한 해발...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조선 중기 왜구를 방비하기 위해 설치된 군사 시설. 차귀진은 고려 충렬왕 때부터 공민왕 23년까지 원나라 목마(牧馬) 관리자인 목호가 말을 기르기 위해 서아막(목축 관리소)을 설치했던 곳이다. 1652년(효종 3) 이원진 목사가 차귀도를 의지삼아 침략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진을 설치했다. 제주의 9진성 가운데 하나이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3276번지에 위치한 조선 시대 조천진 소속의 연대. 함덕리 해안 서쪽에 위치한 제주도 기념물 제23-14호(1996.7.18지정)로 지정된 함덕연대는 동쪽으로 서산봉수(직선 거리 1.8㎞), 서쪽으로 왜포연대(직선 거리 1.4㎞)와 교신하였다. 고문헌을 살펴보면, 함덕연대는 제주읍성에서 동쪽으로 35리에 있으며, 소속 별장...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전기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한 9개 진(鎭)의 외곽을 빙 둘러서 축조한 성곽 중 조천진에 축조한 성곽. 화북포는 조선 시대 제주 지역의 대표적인 수전소로 방어의 요새였다. 이원진의 『탐라지』에 의하면 화북포에는 판옥전선이 중부, 좌부, 우부에 각각 1척씩 있다. 또한 비상 양곡이 6석, 격군이 180명, 사포가 8...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진영 터. 화북진지는 조선 시대 제주도의 군사적 방어 시설인 화북진이 설치되어 있던 자리이다. 진(鎭)은 지방의 군사를 관리하던 지방 관제의 하나로 진영의 줄임말이다. 화북진의 서북쪽에는 제주목사 김정이 방파제를 쌓았다는 화북포구와 김정의 공적비가 있으며, 방파제와 연접한 공지에는 해신에게 바다에서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고려 후기 석성. 1270년(원종 11) 고려 군사들이 남하하는 삼별초 군사들을 막기 위해 제주도 바닷가에 축조한 성이다. 같은 해 삼별초 선발대가 들어와 제주에 있던 고려군 수비대를 물리치고 여몽 연합군을 막기 위해 다시 정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조선 시대에는 왜적을 막기 위한 성으로 활용되어 1854(헌종 11)까지 증축,...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에 축조된 고려 후기 석성. 고려 시대에 원종은 진도에서 제주도까지 거점을 확보하려는 삼별초 군사들의 작전을 막기 위해 고려 군사들을 제주에 파견하여 방어하도록 하였다. 환해장성은 그런 당시 상황 속에서 고려 군사들에 의해 축조되었다. 불과 2~3개월 후 삼별초 군사들이 제주도를 점령하고 여몽 연합군을 방어하기 위한 성으로 활용하였을 것으로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