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사회 운동가. 강선필(姜善弼)[1898~1976]은 1919년 3·1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가 옥고를 치렀다. 1920년대 당진의 청년 운동과 신간회 당진 지회 운동을 전개하였다. 강선필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한국 전쟁 때 당진군 인민 위원장을 지낸 강선국(姜善國)이 동생이다. 강선필은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교육 운동가. 김상현(金象鉉)[1924~2008]은 당진에서 출생하고 거주하면서 당진 지역 육영 사업에 진력한 교육자였다. 특히 해방 후 수청 고등 공민학교와 설성 농업 학교를 설립하여 공교육에서 소외된 청소년을 직접 가르쳤다. 또한 당진군 의회 의장으로 지역 사회에서 정치 역량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김상현의 본관은 영산(永山)...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법조인. 김찬영(金瓚泳)[1889~1973]은 한말에 법관 양성소를 졸업하고 판사로 재직하였다. 국권이 일본에 강탈되자 판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로 활동하며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재판 과정에서 변호 활동을 전개하였다. 해방 후에는 대법원 대법관을 역임하였다. 김찬영의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심농(心農)이다. 아버지는 김종윤(金鍾...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합덕면장. 김철호(金喆鎬)[1879~1960]는 일제 강점기에 합덕면장을 지냈다. 합덕 평야의 근간이 되는 합덕 연호(蓮湖)[합덕 방죽]을 중수하고 관리하였으며, 농업용수 확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김철호의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김철호는 1912년 8월, 다섯 명의 동지와 함께 경비를 모아 합덕읍 합덕리에 있...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육영 사업가. 류시현(柳時鉉)[1909~1990]은 자수성가하여 정미소와 양조장을 경영하였고, 1963년 학교 법인 문화 학원을 설립하여 신평 중학교를 개교하였다. 1982년에는 순성면사무소 대지를 매입하여 기증하였다. 류시현은 어렵게 모은 재산을 학교 설립과 국가 기관에 기증한 육영 및 자선 사업가였다. 류시현의 본관은 문화(...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육영 사업가. 박병렬(朴炳烈)[1894~1940]은 일제 강점기 합덕읍 신리의 부호로, 현재의 신촌 초등학교 설립자이다. 박병렬의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하초(荷樵)이다. 아버지는 박용래(朴容來), 어머니는 나주 임씨(羅州林氏)다. 박병렬은 당진시 합덕읍 신리에서 태어나 부모를 일찍 여의고 조부모 슬하에서 성장하...
-
충청남도 당진시에 은둔한 고려 말 충신. 박지(朴智)[1354~?]는 고려 말의 문신으로 조선 왕조에 출사하기를 거부하고 당진시 우두동에 낙향해 독서와 낚시로 세월을 보낸 충신이다. 박지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세이암(洗耳岩)이 있다. 자손이 번성하여 당진의 대표적인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박지의 본관은 무안(務安), 호는 어옹(漁翁)이다. 사람들은 박지...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쾌인(朴快仁)[1898~1950]은 1919년 서울 경성 고등 보통학교 재학 중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박쾌인은 일제 경찰에 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징역 9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한 이후 귀향하여 당진 향교 명륜당에서 후진 양성에 매진하였다. 박쾌인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박쾌인은 충청남도 당진시...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천도교 간부이자 독립운동가. 신태순(申泰舜)[1884~1929]은 충청남도 당진시 당진동 대덕리 토골 853번지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고향에서 한학을 배운 후 일찍이 천도교에 입교하였다. 1904년 김현구, 박용태 등과 함께 천도교 당진 교구를 창설하는 데 공헌하였고,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고향을 떠나 상경하였다. 이후 당진...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한학자이자 민족 운동가. 안만수(安晩洙)[1879~1949]는 한말에 태어나 성균관 박사(成均館博士)를 역임하고 법관 양성소를 졸업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고향으로 낙향하여 지역 사회의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다. 안만수의 본관은 광주(廣州), 호는 미산(眉山)이다. 아버지는 안종선(安鍾善), 숙부는 함재(涵齋) 안종화(安鍾和)이다....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체육인이자 서화가. 안병석(安秉奭)[1923~1984]은 일제 강점기인 1923년 당진 지역 명문가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안병석은 1948년 제14회 런던 올림픽에 농구 국가 대표 선수로 출전한 것을 비롯하여, 각종 국제 대회에 출전하여 국위를 선양하였다. 또한 서화에도 진력하여 각종 대회에 출품하여 입상하였다. 안병석의 본관은...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관료이자 정치가. 원용석(元容奭)[1906~1989]은 당진시 순성면 성북리 출신의 관료, 정치인이다. 1921년 면천 공립 보통학교[4년제, 9회] 졸업 이후 보성 고등 보통학교[5년], 1929년에 경성 고등 공업 학교[현 서울 대학교 공과 대학]를 졸업하고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 식량 기획단 부이사장으로 활동하였다. 해방 후에는 정부...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사업가이면서 호서 중·고등학교 설립자. 이명휘(李明徽)[1929~1983]는 휘문 출판사를 설립해 양서를 공급하였고, 교육의 불모지였던 당진 읍내에 호서 중·고등학교를 설립한 육영 사업가이다. 이명휘의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고남(古南)이다. 아버지는 이보용(李輔龍), 어머니는 해주 최씨(海州崔氏) 최병(崔炳)이다....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농촌 운동가. 이병순(李秉舜)[1920~2007]은 서산 농업 전수 학교를 졸업한 후 지속적으로 농촌 지도자 육성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평생을 농촌 계몽과 4-H 운동에 헌신한 농촌 운동가이다. 이병순의 본관은 신평(新平), 호는 범일(凡一)이다. 아버지는 이운영(李雲永), 어머니는 최씨이다. 이병순은 충청남도 당진시...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자선 사업가. 이성근(李性根)[1896~1973]은 신평면을 중심으로 당진 지역 교육과 사회 부문에서 활발한 기부 활동을 전개한 자선 사업가이다. 이성근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아버지는 이군석(李君石)[또는 이은범(李殷範)], 어머니는 정희모(鄭熙模)이다. 이성근은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한정리에서 태어나 어릴...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행정가이자 서예가. 이재서(李載瑞)[1911~1984]는 충청남도 당진시 출신으로 성균관에서 한학을 배우고 해방 후에 부여 군수, 문교부 총무과장을 역임하였으며, 민주 공화당 충남 사무국장과 성균관 관장을 지냈다. 서예가로도 명성이 높다. 이재서의 본관은 덕수(德水), 호는 취암(醉巖)이다. 조선 전기 좌의정을 지낸 이행(李荇)...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기업가. 이종근(李鍾根)[1919~1993]은 종근당 제약을 창업하여 국내 대표적 의약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한국 제약업계 최초의 미국 FDA 공인 획득, 동양 최대의 발효 공장 건설 등 제약 산업 발전에 일생을 바쳤다. 또한 고촌 장학회와 학교 법인 고촌 학원을 설립하여 인재 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육영 사업가였다. 이종근...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언론인·정치가·종교인·친일 반민족 행위자. 이종린(李鍾麟)[1883~1950)은 천도교 출신의 종교인이자 정치가였다. 1888년 혜사(蕙史) 최현구(崔賢九)의 문하에서 한학을 수학하다가 상경하여 1907년 성균관 박사가 되었다. 한림학사를 지내던 중 시세가 위태로워지자 관직을 버리고 족형 이종일이 운영하던 『제국신문』의 기자로 언론인 생활...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관료·정치인·친일 반민족 행위자. 인태식(印泰植)[1902~1975]은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출신으로 경성 제일 고등 보통학교 졸업 후 1927년 야마구치(山口) 고등학교, 1930년 도후쿠(東北) 제국 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의 세무 관료로 활동하였고, 해방 후 재무 관료로 시작하여 당진을 대표하는 국회 의원으로...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종만(林錝萬)[1892~1933]은 1892년 8월 21일 당진시 신평면 초대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대 당진의 대표적인 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로,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이후 정학원 등과 함께 합덕, 범천, 신평 청년들의 조직인 신합 청년회를 조직하여 청년 운동을 이끌었다. 1924년 당진 소작 조합을 결성하였으며...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학원(鄭鶴元)[1892~1933]은 당진 출신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다. 면천 보통학교 1회 졸업생으로 1915년 공주 농업 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에서 미곡상과 사립 보통학교 교사 등을 지냈다.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였고, 당진 소작 조합을 창립하여 소작 쟁의를 조직하였으며, 민족 협동 전선 신간회 당진 지회를 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