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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탑평리 충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중기 무신 이수일의 실기. 이수일(李守一)[1554~1632]의 연보(年譜)·시(詩)·서(書)·시장(諡狀)·비명(碑銘) 등 이수일에 대한 사적을 모은 책이다. 1898년(고종 35) 이수일의 10대손 이문흠(李文欽)이 연보를 작성하고 공사문적을 수집하여 편찬하였다. 크기는 가로 20.4㎝, 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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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현경(顯卿), 호는 동원(東園). 할아버지는 목사를 지낸 김사원(金士元)이고, 아버지는 김응무(金應武)이다. 1540년(중종 35) 진사시에 급제하고 1547년(명종 2) 알성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49년 예문관대교, 홍문관정자를 거쳐 1550년 저작(著作), 박사, 1551년 홍문관부수찬, 사간원정언, 1553년 홍문관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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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에 정착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 시언(時言), 자는 자중(子中), 호는 하담(荷潭), 시호는 충익(忠翼). 할아버지는 영상공 김석(金錫), 아버지는 비안현감을 지낸 김인갑(金仁甲), 어머니는 남양홍씨이다. 1605년(선조 38)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로 벼슬길에 나아갔다. 1607년 승정원주서, 1609년(광해군 1) 예조좌랑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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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어사로 활동했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학광(學光), 시호는 충민(忠愍). 증조할아버지는 김영유(金永濡), 할아버지는 김훈(金薰), 아버지는 이조판서에 추증된 김세필(金世弼)이다. 1539년(중종 34)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1542년에 심한 흉년이 들자 경상도와 충청도에 어사로 파견되어 진휼했다. 인종 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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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과회(寡悔), 호는 소재(蘇齋)·이재(伊齋)·암실(暗室)·여봉로인(茹峰老人). 우의정을 지낸 노숭(盧嵩)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활인서별제를 지낸 노홍(盧鴻), 부인은 이연경(李延慶)의 딸이다. 1543년(중종 38) 식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성균관전적, 홍문관수찬을 거쳐 1544년 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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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분포하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흙이나 돌로 축조한 방어 시설. 성곽(城郭)은 성과 곽의 합성어다. 성은 본래 주민들의 생업을 번성하게 하기 위해 흙으로 쌓은 방어 시설을 말하며, 곽은 도시의 발전과 확대 과정에서 생겨난 성(내성)을 둘러싸는 외성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성곽에 관한 기록은 『사기(史記)』「조선전」과 『후한서(後漢書)』「동이열전」에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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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에서 전사한 무신. 본적은 평산(平山). 자는 입지(立之).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지낸 신말평(申末平)이며, 할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신상(申鏛)이다. 아버지 생원 신화국(申華國)과 어머니 파평윤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녀로는 영의정을 지낸 첫째 아들 신경진(申景禛), 훈련도정을 지낸 둘째 아들 신경유(申景裕), 지돈녕부사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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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중 충주는 가장 희생이 많았던 싸움터였다. 임진왜란 초기에 신립 장군은 탄금대 앞에서 달천과 남한강을 뒤로 하여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는 8,000여 명의 조선군 중 두서너 명만이 살아남았다고 할 만큼 희생이 큰 전투였다. 또한 충주읍성에 있던 많은 사람들, 즉 사민(士民)과 관속(官屬)들이 당대의 명장인 신립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음을 믿고 피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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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자점(子漸). 아버지는 안숙손(安叔孫)이다. 안홍은 사칠논쟁(四七論爭)의 발단이 된 『천명도설(天命圖說)』을 지은 추만(秋蠻) 정지운(鄭之雲) 문하에서 공부했다. 1535년(중종30)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낸 뒤 사성(司成)이 되었다. 1566년(명종21) 청주목사로 나아가 봄에 흉년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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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고창(高敞). 증조할아버지는 의령현감을 지낸 오석복(吳碩福)이고, 할아버지는 전의현감을 지낸 오언의(吳彦毅)이다. 아버지는 오수정(吳守貞), 어머니는 순흥안씨(順興安氏)로, 안관의 딸이다. 1558년 19세 때 경상남도 김해의 산해정(山海亭)으로 남명 조식(曺植)을 찾아가 학문을 배우고, 1561년(명종 16) 생원시에 합격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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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현길(見吉), 호는 구암(懼庵) 또는 동계(東溪). 증조부는 현령 우효친(禹孝親)이고, 조부는 증좌승지 우순좌(禹舜佐)이며, 아버지는 이조참판 우숭선(禹崇善)이고, 어머니는 경주군수 이수지(李洙之)의 딸이다. 1573년(선조 6)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이 되었으며 당시 성균관 예식에 참석하는 당상관에게 유생들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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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상(汝常), 호는 구봉(九峯). 증조할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유세린(柳世麟), 할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유의(柳儀), 아버지는 예조참판를 지낸 유영길(柳永吉)이다. 1601년(선조 34) 진사시에 급제하고 1606년 판관 재임 중 증광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예조좌랑, 사간원정언을 지낸 뒤 1612년(광해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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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충주에서 활동한 의병장. 육승복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의 의병장 조웅(趙熊)과 함께 충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앙성(仰城)[현 충청북도 충주시 앙서면]에서 왜군과 싸워 북상하는 적의 주력 부대에 큰 타격을 주었다. 또 정응성(鄭應聖), 이홍사(李弘嗣) 등과 함께 서득남(徐得男), 서춘세(徐春世) 등을 지휘하여 왜군을 유인하여 30여 급을 참수한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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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진지(鎭之), 이극감(李克堪)의 5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교리를 지낸 이연경(李延慶),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이호약(李好約)이다. 민건(閔健)의 딸 정부인 여흥민씨 사이에서 아들 이근후와 세 딸을 두었다. 1557년(명종 12) 충주에서 태어난 이광악은 1584년(선조 17)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5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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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으로 낙향한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차야(次野), 호는 음애(陰崖)·몽옹(夢翁)·계옹(溪翁). 목은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대사간을 지낸 이예견(李禮堅)이다. 1480년(성종 11) 한성에서 태어난 이자(李耔)는 1501년(연산군 7)에 진사시에 급제하고, 1504년 식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사헌부감찰이 되었다. 천추사(千秋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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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홍주(洪州). 자는 문경(文卿). 아버지는 첨사 이한(李漢)이다. 이종장은 1569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에 제수되었고 1589년에 윤탁연(尹卓然)의 천거를 받았다. 1591년에는 신천군수를 지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목사겸조방장(忠州牧使兼助防將)에 제수되어 도순변사 신립(申砬)을 따라 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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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조선을 침입한 왜군과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의 전쟁 1592년 4월 13일에 일본군이 부산포에 상륙함으로써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부산포에 이어 동래를 점령한 일본군은 세 길로 나누어 진격하여, 상주 전투에서 이일(李鎰)을 격파하고 충주에서 신립(申砬)을 깨뜨린 뒤 이렇다 할 전투도 치르지 않고 서울을 점령하였다. 이에 선조는 의주로 피난가고, 조선은 7년 동안 일본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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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과 경상도를 잇는 주요 교통로였던 고개.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 사이에 있는 고개로서,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서울과 동래(부산) 사이를 연결하는 교통로였고, 군사적으로도 요충지였다. 조령은 제1관문, 제2관문, 제3관문이 있으며, 이들 관문과 성벽은 1708년(숙종 34)에 축조되었다. 이 중 제3관문을 지나면 경상북도이다. 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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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자성(子省), 호는 남악(南岳)·추담(秋潭). 고려 때의 제학(提學) 최원유(崔原儒)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감찰(監察) 최사공(崔士恭)이며, 아버지는 호조참판 최분(崔汾)이다. 최개국은 이약빙(李若氷)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38년(중종 3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자(正字)를 거쳐 154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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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경량(景亮), 호는 한천(寒泉). 아버지는 생원(生員) 허초(許礎)이고 어머니는 임하임씨(臨河林氏)이다. 숙종조 영의정을 지낸 허적의 할아버지이다. 선조 때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어 등용된 뒤 1587년(선조 20) 선공감 봉사(奉事)가 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에 왕을 따라 호종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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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대이(大而), 호는 창애(蒼厓). 할아버지는 홍만종(洪萬鍾)이며 아버지는 형조참판 홍중하(洪重夏)이다. 홍경보는 1723년(경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727년(영조 3) 정언이 되어 형률(刑律) 시행의 잘못에 대하여 상소하였다. 1728년 부수찬과 참찬관을 거쳐 대사간이 되어 숙종에게 수덕(修德)과 정요(政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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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문서(文瑞). 아버지는 사직 홍수(洪修)이며, 어머니는 백승수(白承秀)의 딸이다. 대사헌 홍이상(洪履詳)의 아우이다. 홍봉상은 어릴 때부터 뜻이 높고 컸으며 경사의 서적을 읽다가 옛 사람이 살신성인한 부분이 있으면 몇 번씩 다시 읽으며 강개하였다 한다. 1579년(선조 12)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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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초명은 인상(麟詳), 자는 원례(元禮)·군서(君瑞), 호는 모당(慕堂). 아버지는 사직 홍수(洪修)이며, 어머니는 백승수(白承秀)의 딸이다. 홍이상은 민순(閔純)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1573년(선조 6) 사마시에 합격하고, 1579년(선조 12)에는 식년 문과에 갑과로 장원 급제하였다. 예조·호조의 좌랑을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