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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제주(濟州).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 탐라국왕 고자견(高自堅)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개성윤(開城尹) 고호(高灝)이다. 아버지는 개국원종공신으로 병마절제사를 지낸 고영수(高永壽)이며, 어머니는 개국원종공신으로 찬성사를 지낸 권현(權鉉)의 딸이다. 고려(高呂)는 1380년(우왕 6) 8월 왜구가 배 500여 척의 규모로 충청도·전라도·경상도에 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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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충주시 역사. 충주란 고을 이름은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940년(태조 23) 전국의 군·현을 개편하고 주·부·군·현의 명칭을 고칠 때 중원부(中原府)를 고쳐 부르면서 나타났다. 충주란 명칭은 이 지역 인사들이 태봉시대부터 태조 왕건의 우익이 되어 고려를 건국하고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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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문신. 1231년 몽골군이 충주성을 공격했을 때 우종주가 이끄는 양반별초와 유홍익이 이끄는 노군잡류별초(奴軍雜類別抄)가 방어에 나서게 되었다. 몽골군과의 교전 중에 양반별초는 도망가고 노군잡류별초가 끝까지 항전하여 충주성을 지켜냈다. 몽골군이 물러가자 양반별초가 돌아와 관가와 민가의 은그릇이 없어진 것이 노군잡류별초의 소행이라 하여 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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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무기(無己), 호는 죽헌(竹軒). 아버지는 도첨의참리(都僉議參理) 김변(金賆)이며, 장인은 허공(許珙)이다. 1290년(충렬왕 16)에 원의 반적(叛賊) 합단(哈丹)이 수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침범하자 김륜의 가족들도 강화로 피난하였는데, 이때 김륜의 장인 허공(許珙)이 재상의 직무로 인해 함께 가지 못하게 되자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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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주산성 방호별감을 역임한 무신이자 승려. 김윤후(金允侯)는 1232년(고종 19) 현 경기도 용인 근처에 있었던 백현원(白峴院)의 승려로 있을 때 몽골병이 침입해 오자 처인성(處仁城)[현 용인]으로 피란하였다. 때마침 몽골군이 처인성을 포위 공격해 오자 처인성의 피란민들을 지휘하여 몽골군과 싸웠으며, 몽골 원수 살리타[撒禮塔]를 활로 쏘아 죽여 몽골군을 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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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7년(고종 4) 박달현에서 고려군이 거란족을 크게 물리친 전투. 박달현 전투는 몽고군에게 쫓겨 압록강을 건너 고려에 침입한 거란족이 충청도 이남으로 남하하는 것을 막고자 박달현에서 벌인 전투이다. 박달현은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원박리와 백운면 평동리의 경계에 있는 지역이다. 12세기 말 몽고 초원에서 일어난 몽고제국은 13세기에 들어 강성해지면서 금나라를 압박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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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했던 승려. 속명은 이현휘(李玄暉). 본관은 남원(南原), 시호는 법경(法鏡). 당나라 출신 귀화인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덕순(李德順), 어머니는 부씨이다. 법경대사는 879년(헌강왕 5) 현 전라북도 남원에서 육두품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영동군 영각산사의 심광대사에게서 불법을 배운 뒤 무염화상의 문하에서 선법을 공부했다.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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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태조 왕건 후비. 본관은 충주(忠州). 아버지는 충주 지역 호족으로 내사령을 지낸 유긍달(劉兢達)이다. 고려를 개국한 이후 태조 왕건은 호족 세력과 혼인 관계를 통하여 세력 기반을 공고히 하고자 했다.이런 이유로 충주 지역 호족의 딸이었던 신명순성태후는 918년(태조 1) 태조 왕건의 제3비가 되었다. 신명순성태후는 태조 왕건과의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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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이 속한 지방 행정구역. 지방의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지방의 주와 군, 현을 잘 다스리기 위해 제정하였다. 『고려사(高麗史)』권 56, 지(志) 제10 양광도조에, “양광도는 원래 고구려와 백제 땅이다. 성종 14년에 전국을 10도로 나누고, 양주(楊州)·광주(廣州) 소속 주·현은 관내도에, 충주·청주 소속 주·현은 충청도에, 공주·운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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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이 속한 지방 행정구역. 지방의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지방의 주와 군과 현을 잘 다스리기 위해 설치하였다. 『고려사(高麗史)』 권 56, 지(志) 제10 양광도조에 “양광도는 원래 고구려와 백제 땅이다. 성종 14년에 전국을 10도로 나누고 양주(楊州)·광주(廣州) 소속 주·현은 관내도에, 충주·청주 소속 주·현은 충청도에, 공주·운주 소속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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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용장(用章). 아버지는 검교첨사(檢校詹事) 양공소(梁公紹)이며, 아들은 어사중승(御史中丞) 양문형(梁文熒(炯))이다. 양원준은 아버지의 외고조 삼한공신증대위 최영휴(崔英休)의 문음(門蔭)으로 1108년(예종3) 양온서사동정(良醞署史同正)이 되었다. 같은 해 6월 좌우위사(左右衛史)를 제수받은 뒤 상금국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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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파주(坡州). 염상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도와 개국2등공신에 봉해졌으며, 940년(태조23)에는 재상직에 있으면서 왕규(王規), 박수문(朴守文)과 함께 태자 왕무(王武)[훗날의 혜종(惠宗)]를 도와 정무를 보살폈고 왕건의 임종을 곁에서 지켰으며 왕건이 죽자 유명(遺命)을 내외에 선포하는 중책을 맡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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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유권열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제3왕후 신명순성왕태후의 친가인 충주유씨 집안 출신으로 태조 즉위 초 광평시랑(廣評侍郞)이 되었다. 당시 궁예(弓裔)의 시중직을 역임했던 구진(具鎭)이 나주도대행대시중(羅州道大行臺侍中)에 임명하여 나주로 떠나게 되었다. 구진이 사양하려 하자 유권열은 “상으로써 선을 권장하고 벌로써 악을 징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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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의 음기(陰記)에 ‘신성아찬(新城阿湌)’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아찬’은 신라의 직함이다. 고려 광종의 외가인 충주유씨 가문 출신의 인물로서, 광종의 신임을 얻어 조정의 중책을 맡아 활약하고 최고위 관위에 올랐던 명신(名臣)이다. 시호는 광위(匡衛)이고, 994년(성종 13) 서필과 함께 광종의 묘정에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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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광종의 외가인 충주유씨(忠州劉氏) 가문에서 태어나 광종 때 내승지(內承旨)가 되었다. 목종 때 이부상서참지정사로 승직하였다. 현종이 즉위한 뒤 상서좌복야에 올랐고, 1011년(현종 2) 문하시랑을 거쳐, 1014년(현종 5) 내사시랑평장사가 되어 재상의 관위에 올랐다. 그 후 검교태사수문하시중에 제수되어 최고위직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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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유징필은 고려 광종(光宗)의 외가인 충주유씨(忠州劉氏) 가문 출신으로 1020년(현종 11) 국자좨주[國子祭酒]가 되어 복시(覆試)를 주관하였다. 1022년(현종 13) 정월 한림학사겸비서감(翰林學士兼秘書監)이 되었으며 다음 해인 1023년(현종 14) 3월 거란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전란으로 어려워진 양국 간의 현안 문제를 푸는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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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5년(성종 14)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는 전국을 통일된 국가체제로 다잡기 위하여 지방 행정구역에 대한 일대 개편을 단행하지만 중앙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목민관을 파견하지는 못하였다. 이 후 983년(성종 2) 12목이 설치되어 목사가 파견된 데 이어, 995년 7월에 중앙정부에 의한 실질적인 지방통치를 시행하기 위한 목적에서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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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용대리 출신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문하시랑 최옥의 아들이다. 최우청은 고려 후기 무신 집권기에 활약한 충주 출신 인사로 몇 안 되는 문신 출신 재상의 하나이다. 충주의 주리(州吏)로 있다가 인종 대 문과에 급제하여 진례현위가 되었다. 명종의 잠저(潛邸) 당시 익양부(翼陽府) 전첨(典籤)이 되어 명종을 신임을 얻게 되었으며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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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통천(通川). 자는 호보(浩甫). 호군(護軍) 최녹원(崔祿元)의 아들이다. 세종조에 파저강(婆猪江)의 야인을 정벌한 공으로 세조 묘정에 배향된 최윤덕(崔潤德)이 아들이며, 그 외에도 세 아들을 두었다. 아버지의 전공으로 공민왕 때 충용위산원(忠勇衛散員)에 기용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전공총랑(典工摠郞)이 되었다. 1385년(우왕 11)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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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대몽항쟁은 1231년(고종 18)부터 1273년(원종 14) 삼별초군의 패망에 이르는 40여 년이란 장구한 기간 동안 전개되었다. 1225년(고종 12) 몽고 사신 저고여(著古與)의 피살 사건을 계기로 국교가 단절된 뒤, 몽고는 1231년(고종 18) 조공 거절 및 저고여 피살에 대한 보복으로 고려에 대한 제1차 침입을 필두로 1254년까지 8차에 걸쳐 한반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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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3년(고종 40) 10월부터 12월까지 충주산성에서 충주민이 몽고군의 침입을 물리친 전투. 몽고는 그 동안 고려를 네 차례나 침략했지만 고려 왕실의 환도를 실현시켜 실질적인 항복을 받아내는 데 실패하자, 1253년 7월 야굴(也窟)을 대장으로 제5차 침입을 감행하였다. 1253년 7월 고려를 침입한 몽고군 수십만은 고려 동부와 서부 지역을 유린한 뒤 남하하여 양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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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년 12월 충주성에서 노군과 잡류별초를 중심으로 한 충주민이 몽고군을 물리친 전투. 몽고의 지나친 조공 요구로 고려와 몽고의 화의가 깨어지자 몽고는 저고여(箸古與) 살해 사건을 핑계로 1231년 8월 고려를 침입하였다. 1231년 8월 살리타[撒禮塔]가 이끄는 몽고군은 압록강을 건너 함신진(咸新鎭)[지금의 의주]을 함락하고,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를 거쳐 12월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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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6년(고종 43) 4월 충주주성에서 고려군과 몽고군 사이에 있었던 전투. 고려와 몽고가 처음 접촉한 것은 1219년(고종 6) 고려가 강동성(江東城)에 있는 거란족을 평정할 때 몽고의 후원을 얻어 공동 작전을 취했을 때이다. 이 일을 빌미로 이후 몽고는 고려에 대한 은인을 자처하며 사신을 보내 막대한 공물을 요구하였다. 1225년(고종 12) 1월 몽고의 사자 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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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중원서기를 역임한 문신. 황보항은 문한(文翰)을 세업으로 하던 귀족 가문 출신으로 박학다식하고 악장(樂章)뿐 아니라 문사(文辭)도 능하였다. 1176년(의종 24) 승보시(升補試)에 수석으로 급제하였지만 곧 무신의 난이 일어나고 무신들이 정권을 전단함으로써 그가 벼슬한 것은 중원서기(中原書記)에 임명된 것이 고작이었다. 명종 때 죽림고회(竹林高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