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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평동에 있었던 마을. ‘쇠내’는 외평동에 있던 마을로 ‘상촌(上村)’, ‘중촌(中村)’, ‘평촌(坪村)’ 지역을 아우르는 큰 마을 이었다. ‘금천(金川)’이라고도 한다. 본래 ‘쇠내’는 멀리 상당산성(上黨山城)에서 발원하여 팔결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쇠내’의 ‘쇠’는 ‘금(金)’, ‘내’는 ‘천(川)’의 뜻이다. 그러니 ‘쇠내’는 ‘금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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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압의 변화로 일어나는 대기의 흐름. 여름철에는 주로 남풍과 남서풍 계열의 바람이 많이 불고, 가을과 겨울철에는 북서풍 계열의 바람이 많이 분다. 하지만 탁월풍이 뚜렷한 것은 아니다. 전년의 평균풍속도 1.9㎧로서 전반적으로 바람이 약한 편이다. 이는 내륙 분지라는 청주의 지형적인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계절별로는 습도가 낮은 봄철에 바람이 강하고, 우기인 여름철에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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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있는 고개. ‘바람매기’는 ‘바람’과 ‘매기’로 분석된다. 지명에서 ‘바람’은 매우 흔한 선행 요소로, ‘바람[風]’을 뜻한다. 그러나 모두가 ‘바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중세국어에서 ‘’, ‘람’은 ‘벽(壁)’인데, 이것이 그대로 이어지는 지명도 있기 때문이다. ‘매기’는 ‘막이’가 ‘ㅣ’모음 역행동화에 의해 실현된 어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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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있는 고개. ‘바람매기’는 ‘바람’과 ‘매기’로 분석된다. 지명에서 ‘바람’은 매우 흔한 선행 요소로, ‘바람[風]’을 뜻한다. 그러나 모두가 ‘바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중세국어에서 ‘’, ‘람’은 ‘벽(壁)’인데, 이것이 그대로 이어지는 지명도 있기 때문이다. ‘매기’는 ‘막이’가 ‘ㅣ’모음 역행동화에 의해 실현된 어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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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골짜기. ‘밤골’은 ‘벼랑새’로도 불리는 바, 이는 ‘벼랑 사이’를 뜻한다. 골짜기가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어 붙은 이름이다. 또 ‘바람새’로도 불린다. 이는 ‘벽(壁)’을 뜻하는 중세국어 ‘’이나 ‘람’과 관련된 것으로, ‘벽 사이’를 뜻한다. 골짜기가 벽과 같은 벼랑 사이에 있어 붙은 이름이다. ‘밤새’로도 불린다. 이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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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있었던 들. ‘바르미’는 ‘바르’와 ‘미’로 분석된다. '바르'는 매우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선행 요소로, ‘바르고개’·‘바르매’·‘바르메’·‘바르뫼’·‘바르미’·‘바르바구’·‘바르봉’·‘바르산’ 등에서 발견된다. 이들 대부분은 ‘바리’와 함께 사용되면서, 바리때와 관련된 유래담도 지니고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바르메’와 ‘발산(鉢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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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곡동에 위치한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의 성당. 바르톨로메오성당으로 불리기도 한다. 수곡동성당은 1983년 5월 1일 서운동 예수성심본당에서 분가하여 1986년 9월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곡동 37-2[청남로2040번길 78]의 대지에 성당 준공 및 축성식을 거행함으로서 세워졌다. 수곡동성당은 수곡동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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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동에 있는 마을. ‘바위배기’는 ‘바위’와 ‘배기’로 분석된다. 여기서 ‘배기’는 동사 어간 ‘박-’에 접미사 ‘-이’가 붙은 어형으로, ‘박아 놓은 것, 박혀 있는 곳’의 뜻이다. 지명에서 이 ‘배기’는 이형태 없이 ‘배기’ 형으로 여러 의미 영역에 나타나고 있다. 선행 요소로는 주로 나무, 돌, 장승, 솟대 등 어느 정도 길이를 가진, 박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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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과 개신동 사이에 있는 고개 및 옛 마을. ‘배티’의 ‘배’는 이 고갯마루에 배나무들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티’는 고개의 뜻이므로, ‘배고개’라고도 불리웠다. 이현(梨峴)은 ‘배티’를 한자화한 지명이다. 또한 ‘배티’는 배티 밑에 있는 마을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모충동 쪽 배티마을에는 곡산연씨(谷山延氏)가 많이 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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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응휴(應休), 호는 암수(巖叟)이다. 주부 박인량(朴仁亮)의 손자이며,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의 증손자이다. 1594년(선조 27)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1614년(광해군 6) 장령·동래부사에 제수되었고, 1622년 청주목사가 되었다. 벼슬이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성품이 강개하고 고집이 세어, 공론에 맞지 않으면 권귀(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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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조선 중기의 사림(士林)으로 예(禮)의 실천과 기개로 이름났으며, 을사사화(乙巳士禍)로 화를 입어, 사후 서원에 배향되었다. 본관은 상주(尙州)로 자는 국이(國耳)이며, 호는 필재(蓽齋), 잠소당(潛昭堂)이다. 청주 출신으로 생원 박린(朴璘)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장유성(張有誠)의 딸이다. 그의 어머니 장씨(張氏)가 서실 3칸을 세우고 네 아들을 교육함에 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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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의 청주지역 학자.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성위(聖威), 호는 창암(滄庵)이다. 사주면 복대리(지금의 흥덕구 복대동)의 독산에서 박익동(朴翼東)의 아들로 태어나 그 뒤 신성동로 이사하였다. 네 살 때에 이미 천자문을 읽고, 일곱 살에 『효경(孝經)』, 『논어(論語)』를 외우는 재질이 있었다. 어머니 상을 당하기에 앞서 17살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드려서 효행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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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청주지역의 의병장·충신. 본관은 순천(順天)이고, 자는 시응(時應)이며, 호는 매은당(梅隱堂)이다. 교리공(校理公) 박인년(朴引年)의 후손으로 흥덕구 강서동 출신이다.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청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조헌(趙憲)[1544~1592], 영규대사(靈圭大師)[?~1592]와 함께 청주성 탈환에 공을 세운 민양공(愍襄公) 박춘무(朴春茂)[1544~1611]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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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에 있는 박동명(朴東命)[1576~1636]의 정려각. 박동명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박춘무(朴春茂)[1544~1611]의 아들로 아버지를 따라 청주성 탈환에 공을 세웠고, 병자호란 때는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하던 중 경기도 광주(廣州)에서 적을 만나 싸우다 순절하였다. 이러한 박동명의 충절을 기려 1709년(숙종 35)에 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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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등을 통해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1920년 2월 16일 서울에서 김광제(金光濟) 등 동지와 함께 조선노동대회(朝鮮勞動大會)를 조직하고 간사로 활동하였다. 동회는 노동자의 상호부조와 인격 및 지적향상을 목적으로 한 계몽적 노동단체로서 주로 지식계몽에 주력하였다. 그는 또한 1920년 5월 31일 서울에서 다수의 동지들과 물산장려·상부상조·인권평등에 의한 세계평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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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창의사.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사호(士毫), 호는 서호산인(西湖山人)이다. 박민웅(朴敏雄)은 부사 박원진(朴元震)의 손자이다. 도량과 재간이 뛰어나고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하여 소년 때부터 이름이 났다. 뒤에 장붕익(張鵬翼)과 이봉상(李鳳祥)[1676~1728]이 각각 국사(國士)로서 조정에 천거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 등이 반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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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창의 인물.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언백(彦伯)이다. 창의사(倡義使) 박민웅(朴敏雄)의 아우이고, 할아버지는 부사(府使) 박원진(朴元震)이다. 임진의병장 박춘번(朴春蕃)의 현손이다. 청주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여 무예가 뛰어났으나, 무과에 등과하지는 못했다. 1727년(영조 3)에 어사 김시형(金始炯)이 역사(力士)로 천거하였으나 탁용(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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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석곡동에 있는 박민준(朴敏俊)[1676~1744]의 묘비.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공적을 세운 박민준의 묘비로 1859년(철종 10)에 세웠다. 청주에서 청원군 부강으로 가는 서부도로의 충북공업고등학교 부근의 오른쪽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 186㎝, 폭 63㎝, 두께 37.5㎝이 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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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이고, 자는 혜백(惠伯)이며, 호는 호은(湖隱)이다. 거주지는 흥덕구 강서동이었으며, 아버지는 박세경(朴世卿), 할아버지는 박이진(朴以震), 증조할아버지는 박정명(朴定命)이다. 형으로 박민창(朴敏昌), 동생으로 박민호(朴敏昈)가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남학한(南鶴翰)이다. 1721년(경종 1)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으며, 1725년에 증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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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무신. 자는 자중(子仲)이다. 무과(武科)에 급제하였다. 도량이 넓고 후덕하였다고 전하며, 내금위(內禁衛)의 선략장군(宣略將軍)과 충무위(忠武衛)의 부사직(副司直)을 지냈고, 정국공신(靖國功臣)이 되었다. 충청북도 청원군 강내면 내곡리 대산(大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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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나주(羅州)이며, 자는 세숙(世叔)이고, 거주지는 청주였다. 아버지는 박제(朴悌)이고, 동생으로 박익한(朴翊韓)과 박일한(朴一韓)이 있었다. 1660년(현종 1)에 생원시(生員試)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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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순천(順天)이다. 박석명은 의병장 박춘무(朴春茂)[1544~1611]의 조카이다. 1555년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修身面)에서 태어났다. 1574년(선조 7) 무과에 합격하였다. 개천군수(介川郡守)를 거쳐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무공을 세워 경상도·전라도·충청도 삼도의 조방장(助防將)이 되었다. 자질이 날래고 용맹하였으며 기개가 대단하여 왜적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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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제1공립중학교 학생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1940년 3월 청주제1공립중학교에 재학 중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반대하여 신사참배와 궁성요배 등을 기피하기 위하여 동지들을 규합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1942년 5월 5일 그가 개교기념일에 전교생이 와우산(臥牛山)으로 등산·행군하던 중에 일본의 패전을 뜻하는 노래를 부른 것이 청주 경찰서에 탐지되어 조사를 받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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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상초(尙初)이다. 영의정 박난(朴蘭)의 아들이며, 박인원(朴仁元)의 형이다. 1564년(명종 19) 진사시에 합격하고, 그해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승문원(承文院)의 권지정자(權知正字)에 등용되고, 병조좌랑(兵曹佐郞)을 거쳐 수찬(修撰), 교리(校理),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역임하였다. 강원도관찰사로 나아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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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박숭원(朴崇元)의 신도비. 조선 선조 대의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인 박숭원의 신도비이다. 비문은 황경원이 짓고, 윤용구가 글씨와 비액을 썼다. 그리고 박숭원의 외손인 송의섭이 이미 선조 대에 비문을 지었으며, 순조 대에 와서 비를 건립하게 된 내력에 대한 추기를 새겼다. 흥덕구 수의동 도장골마을 입구 왼쪽 언덕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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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임진왜란 때 청주성 전투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영의정 박란(朴蘭)의 손자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인근 사림의 추앙을 받고 있던 중봉(重峰) 조헌(趙憲)[1544~1592]의 의병진에 합류하였는데, 이 때 나이 21세였다. 1592년 왜군이 청주성까지 진격하자 청주성에서 전투가 크게 벌어졌는데, 7월 28일 전사하였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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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수의동에 있는 임진왜란 때 의병 박우현의 묘.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전투에서 전사한 박우현의 묘소로 청주시 수의동 도장골 마을 왼쪽 청룡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박우현은 1572년(선조 5) 지금의 강서면 수의리 도장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조헌의 의병진에 합류하여 청주성 북문 밖에서 교전 중에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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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문과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후이(厚而)이다. 승지(承旨) 박순원(朴舜元)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박창동(朴昌東), 할아버지는 박체소(朴體素)이다. 박계환(朴啓煥)의 아들로 청주 출신이다. 외할아버지는 유언침(兪彦琛)이다. 1771년(영조 47) 신묘(辛卯)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44인(人)으로 급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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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청주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 본관은 순천(順天)이고, 자는 경홍(景洪)이며, 호는 우당(愚堂)이다. 사인(士人) 박형규(朴亨圭)의 장남이다.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 동양촌에서 출생하였다. 창암(滄庵) 박노중(朴魯重) 선생의 문하에서 다년간 수학하여 사서(四書)와 삼경((三經)을 통달하였다. 1980년 향년 80세로 죽으니 문하생 일동이 묘비를 세웠다. 향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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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성향(聖鄕), 호는 농아재(聾啞齋)이다. 충청북도 보은 회인(懷仁) 출신 타고난 기개와 큰 도량(度量)을 갖춘 인물인 동시에 담력이 있었다. 오로지 학문에 열중하였고, 의분(義憤)이 대단하였으며, 부모를 섬기는 효성 또한 대단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난(일명 무신란) 청주를 주 무대로 난을 일으키자 당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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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청주지역의 유지.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건너가 부를 축적하고 귀국하여 청주지역 발전에 기여한 지방 유지이다.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치상(致祥)으로 교리공파(校理公派) 하복대 문중의 인물로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박흥규(朴興圭),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이며, 부인은 청주이씨 이명해(李明海)이다. 자녀는 3남 2녀를 두었는데 세 아들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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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동에 있는 박종대의 시혜비. 박종대의 육영사업과 자선사업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1980년에 세운 선행비이다. 흥덕구 강서동의 반송말 강서파출소 옆의 도로변 공원 8기의 비석 중 왼쪽부터 일곱 번째에 있다. 높이 86㎝, 폭 42㎝, 두께 18㎝의 오석(烏石)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지붕돌[가첨석(加檐石)]을 얹었다. 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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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관. 청주 우후(虞侯)로 있던 박종원(朴宗元)은 무신란으로 청주성이 함락되자 적에게 투항하여 반란군의 영장(營將)이 되었다. 박종원은 이인좌(李麟佐) 군과 함께 천안 목천, 증평 청안, 진천으로 진격하여 함락하고, 4, 5초(哨)의 병력을 거느리고 안성 청룡산 가지곡(加之谷) 대촌(大村)에서 죽산의 반란군이 오기를 기다리다 관군에게 발각되어 전투 끝에 현지에서 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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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제1공립중학교 학생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1940년 3월 청주제1공립중학교에 재학 중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반대하여 신사참배와 궁성요배 등을 기피하기 위하여 동지들을 규합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1942년 5월 5일 그가 개교기념일에 전교생이 와우산(臥牛山)으로 등산·행군하던 중에 일본의 패전을 뜻하는 노래를 부른 것이 청주 경찰서에 탐지되어 조사를 받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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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내 장터의 만세시위에 참가했던 독립운동가. 충청북도 청원군 출신으로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의 아우내 장터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이날 오후 1시경 조인원(趙仁元)이 태극기와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워놓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3천여 명이 운집한 아우내 장터는 대한독립만세 소리로 진동하였다. 시위군중이 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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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내 장터의 만세시위에 참가했던 독립운동가. 충청북도 청원군 출신으로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의 아우내 장터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이날 오후 1시경 조인원(趙仁元)이 태극기와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워놓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3천여 명이 운집한 아우내 장터는 대한독립만세 소리로 진동하였다. 시위군중이 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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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청주 출신이며, 그의 부친은 판서(判書)로서 나이가 100세에 이르렀는데 아들에게 부축을 받아 조석으로 문안을 드렸으며, 상고(喪故)에 노후(老後)임에도 여막(廬幕)에서 3년을 보냈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효행으로 정려(旌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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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부(孝婦).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아버지는 김대일(金大鎰)이고 남편은 박준덕(朴峻德)이며, 시아버지는 박돈화(朴墩和)이다. 박준덕의 아내로 시부모께 극진히 효도를 하였다. 시부모 상을 당하자 여막(廬幕)에서 3년을 지냈으며, 남편이 병으로 앓을 때 손가락을 자른 피로 남편을 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로 인해 효열(孝烈)로 정려되었다. 남편 박준덕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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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학자·문신.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는 희인(希仁)이며, 호는 눌재(訥齋)이다. 규정공(糾正公) 박현(朴鉉)의 8세손으로, 눌재공파의 파조(派祖)에 해당되는 인물이다. 아버지는 박미(朴楣), 할아버지는 박중손(朴仲孫), 증조할아버지는 박절문(朴切門), 외할아버지는 강석덕(姜碩德), 처부는 박영달(朴英達)이다. 아들 박훈(朴薰)[1484~1540]은 기묘명현(己卯名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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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임진 의병장 박춘무(朴春茂)[1544~1611]의 5대손이며, 병자호란 때 순절한 박동명(朴東命)[1576~1636]의 현손으로 삼대 창의(倡義)의 충절을 자랑한다. 어릴 때 『삼국지(三國志)』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를 외우고 감상하길 즐겼다. 1727년(영조 3)에 부친상을 당하여 여막(廬幕)에서 생활하던 중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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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이며, 자는 여우(汝雨)이다. 청주 출신으로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초계변씨(草溪卞氏)이다. 청주에 처음 정착한 장연현감(長淵縣監) 박계달(朴季達)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안검(朴安儉), 할아버지는 제릉참봉(齊陵參奉)을 지낸 박천귀(朴天龜)이다. 아버지는 생원(生員) 박태장(朴泰章)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1713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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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청주 출신으로 소과와 대과에 합격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숙길(夙吉), 호는 월탄(月灘)이다. 밀성군(密城君) 박광영(朴光榮)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도사(都事)를 지낸 박정직(朴廷稷)이며,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죽산박씨(竹山朴氏)로 정랑(正郞) 박지문(朴之文)의 딸이다. 부인은 숙부인 함평이씨(咸平李氏)로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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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과 합격자,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백희(伯喜)이다. 대사헌 와촌(瓦村) 박문고(朴文古)의 5대손이며, 교관(敎官)에 증직된 박재근(朴在謹)의 아들로 청주 출신이다. 1816년(순조 16)에 무과에 등과하여 여러 번 선전관의 명망에 들어갔다. 어머니의 병으로 손가락을 잘라 효를 행했고 이러한 사실이 알려졌다.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행정(杏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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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출신의 교육자, 사회사업가. 1883년 6월 11일 청주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신학문에 눈을 떠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보은삼산공립보통학교 훈도로 교육계에 투신하여 인재 양성에 힘썼다. 1932년 음성군수까지 역임하고, 해방 후 다시 교육계로 되돌아와 1945년 10월부터 1947년 11월까지 청주여중 교장을 지내고, 학무국장을 역임하였다. 6·25 동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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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충신. 본관과 가계가 미상이다. 형 박춘훤(朴春萱)과 동생 박춘련(朴春蓮)이 있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동림산(東林山)으로 피신한 것으로 보아 청원군 옥산면 일대에서 거주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형 박춘훤, 동생 박춘련과 더불어 3형제가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가족과 형제가 모두 동림산 북쪽 광대동(光大洞)으로 피난을 갔는데, 갑자기 왜적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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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의병장(義兵將).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호는 화천당(花遷堂)이다. 임란의병 박춘번(朴春蕃)의 형이다. 음보(蔭補)로 출사하여 찰방(察訪)을 거쳐,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창의사(倡義使)가 되어 의병을 일으키고 조헌(趙憲)[1544~1592]과 함께 호서지방을 지키는 데 큰 활약을 하였다. 그 해 7월 4일 청주 복태리에서 의병을 일으켜 종사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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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에 있는 박춘무(朴春茂)[1544~1611]와 그 아들 손자 삼대에 걸친 창의를 기념하는 사적비. 임진왜란 때 청주성탈환에 공을 세운 박춘무, 이괄(李适)의 난·조청전쟁 때 의병을 일으킨 그 아들 박동명(朴東命)[1576~1636] 및 손자 박홍원(朴弘遠)[1606~?] 3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92년에 세운 비석이다. 유도회 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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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성 탈환전에서 향토의병을 이끌었던 박춘무(朴春茂)[1544~1611]의 공적을 기리는 전적비. 195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월 4일 지금의 복대동에서 거병하였으며, 8월 1일에 조헌(趙憲)[1544~1592]의 의병과 더불어 청주성 전투에 참여하여 청주성을 수복하였다. 그 뒤 진천지역으로 진격하여 진천지역의 왜적을 격퇴하였다. 임진왜란 때 육지 전투에서 최초의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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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청주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의병장. 임진왜란 당시 청주성 탈환과 진천 전투에서 활약한 의병장 박춘무(朴春茂)[1544~1611]의 동생으로 형과 함께 왜군 토벌에 공을 세웠다.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경원(慶元)이다. 평양부원군(平陽府院君) 박난봉(朴蘭鳳)의 후손이며 이조판서(吏曹判書) 박중림(朴仲林)의 9세손이다. 아버지는 진사(進士) 박기정(朴箕精)으로 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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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청주 출신의 선비.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자는 서백(恕伯)이며, 호는 선재(扇齋)이다. 아버지는 박몽신(朴夢信)이고, 동생 박효열(朴孝悅), 박신열(朴信悅)이 있다. 청주에서 거주했는데, 1568년(선조 1)에 증광 진사에 합격하였다. 학행(學行)이 널리 드러났고, 신항서원(莘巷書院)의 원장을 지냈다. 흥덕구 강서동의 송곡평(松谷坪) 선영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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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사빈(士彬)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박정린(朴廷麟)[1607~1655], 할아버지는 박세대(朴世大), 아버지는 박수의(朴守義)이다. 어머니는 유시관(柳時觀)의 딸 문화유씨(文化柳氏)이고, 아내는 김옥(金沃)의 딸 안동김씨이다. 1723년(경종 3)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에 17명 중으로 하나로 합격하였다. 영조(英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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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本貫)은 밀양(密陽), 자(字)는 사이(士邇)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박정호(朴廷虎), 할아버지는 박세익(朴世翼), 아버지는 좌참찬(左參贊)에 증직된 박수기(朴守基),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생원(生員) 이양진(李陽進)의 딸이다. 몰년(沒年)에 대해 다른 기록에는 1764년(영조 40)이라 한 곳도 있다. 1708년(숙종 34) 식년시(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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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청주의 세거대족(世居大族) 출신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초명(初名)은 치원(致遠), 자는 사이(士邇), 호는 읍건재(泣愆齋)·손재(巽齋)이다. 기묘사림으로 활약하던 박훈(朴薰)[1484~1540]의 7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박정표(朴廷彪)[1618~1662], 할아버지는 박세익(朴世翼)이다. 아버지는 감역관(監役官) 박수기(朴守基)이며,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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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이고, 자는 중관(仲觀)이며, 휘숙(輝叔)이다. 아버지는 박천구(朴天龜)로 제릉(齊陵) 참봉(參奉)을 지냈으며, 형 박태헌(朴泰獻)과 동생은 박태영(朴泰榮), 박태업(朴泰業)이 있다. 1666년(현종 7) 식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청주읍지(淸州邑誌)』에 의하면 박태장(朴泰章)의 묘는 서강외이면 신원(薪院)에 있다고 한다. 현재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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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노론의 대표적 인물. 본관(本貫)은 밀양(密陽), 자(字)는 계심(季心), 호(號)는 일휴(逸休)로 강수(江叟) 박훈(朴薰)[1484~1540]의 후손이다. 청주 출신으로 참봉 박세증(朴世拯)의 아들로 외할아버지는 이여절(李汝晢)이다. 1711년(숙종 37) 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 6인으로 합격하였다. 1711년 가주서(假注書)를 시작으로, 부사정(副司正), 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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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소과·문과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청주목사를 역임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고령(高靈)이고, 자(字)는 백원(百源)이며, 호(號)는 진천(眞川)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심(朴諶), 할아버지는 박세필(朴世弼)이다. 아버지는 교위(校尉) 박정(朴淨)이며, 어머니는 인천채씨(仁川蔡氏)로 생원 채응상(蔡應祥)의 딸이다. 1590년(선조 23) 소과(小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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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기묘명현(己卯名賢).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는 형지(馨之)이며, 호는 강수(江叟)이다. 규정공(糾正公) 박현(朴鉉)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눌재공 박증영(朴增榮)이고, 할아버지는 박미(朴楣), 증조할아버지는 박중손(朴仲孫), 외할아버지는 박영달(朴英達), 처의 아버지는 변기지(卞紀之)이다. 1504년(연산군 10) 생원시에 급제하여, 천거로 의영고주부(義盈庫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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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에 있는 고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후의 여러 지리지에서는 ‘율현(栗峴)’으로 나오고 있다. 그리하여 일명 ‘율량고개(栗陽峙)’라고도 한다. 그런데 ‘밤고개’에 얽힌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조선 영조(英祖) 때 조원의(趙元宜)라는 유생이 충청도 회인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왕은 호송하는 금부도사에게 유배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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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3가, 예전의 ‘오정목(五町目)’에 위치한 들. 방아다리는 북문로3가, 예전의 ‘오정목(五町目)’에 위치한 들이다. ‘반다리’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방아다리’이든 ‘반다리’이든 ‘들’을 가리키는 이름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3년 일본식 지명을 우리 고유의 지명으로 고치자는 취지로 청주문화사랑모임에서는 '방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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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중동과 흥덕구 강서동에 있는 마을. ‘반송(盤松)’은 ‘키가 작고 옆으로 퍼진 소나무’를 뜻하며, 마을 입구에 밑에서부터 가지가 넓게 퍼져 나간 반송 한 그루가 있어서 이 마을을 ‘반송’이라 부른 것이다. 이 마을을 ‘반송말’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반송’에 ‘마을’을 뜻하는 ‘말’을 덧붙인 어형이다. 이곳은 주중동의 동단에 위치하여 주성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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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중동과 흥덕구 강서동에 있는 마을. ‘반송(盤松)’은 ‘키가 작고 옆으로 퍼진 소나무’를 뜻하며, 마을 입구에 밑에서부터 가지가 넓게 퍼져 나간 반송 한 그루가 있어서 이 마을을 ‘반송’이라 부른 것이다. 이 마을을 ‘반송말’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반송’에 ‘마을’을 뜻하는 ‘말’을 덧붙인 어형이다. 이곳은 주중동의 동단에 위치하여 주성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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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사천동에 있는 마을. 옛날에 발산사라는 절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실제 절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발산이라는 한자 지명에는 ‘바라미’, ‘바리미’, ‘바래미’ 등과 같은 속지명(俗地名)이 대응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다. 바리미, 바라미, 바래미의 후행요소인 ‘미’는 산(山)의 뜻이고 선행요소인 ‘바리’, ‘바라’, ‘바래’의 어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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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있는 근린공원. 예전에 이곳이 도시화가 되기 전 발산리에 속한 곳이어서 공원의 이름이 되었다. 1992년 12월 24일 조성계획을 수립하여 1996년 11월에 조성되었다. 동쪽에 가경천이 있는데, 대원아파트와 가경세원아파트가 가경천을 따라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풍산로를 따라 청주서부소방서와 충청북도중소지원센터,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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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사천동과 주중동을 연결하는 다리. 1997년 대전지방 국토관리청에서 개통하였다. 총연장 25m, 교폭 32.3m이며, 축조방식은 R.C. 슬라브 방식이다. 상당구 사천동의 율량중학교 근처 지점에 건설 되었으며, 청원군 내수읍 쪽에서 내려오는 작은 하천이 17번국도와 교차하고, 발산교를 지나는 도로는 17번국도로, 북쪽으로는 오창과 청주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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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있었던 마을. ‘발산리’는 ‘발산’에 ‘리’가 결합된 어형이다. ‘발산’을 ‘발산(鉢山)’으로 쓰고 산모양이 스님들이 사용하는 자루가 달린 그릇인 ‘바리때’와 같다고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발산’의 지명은 아주 흔한 이름이다. 이에는 ‘바리미’, ‘바라미’, ‘바래미’ 등과 같은 지명에 대응되어 쓰이기도 한다. ‘바리미’의 ‘바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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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靈柩)가 집을 떠나 묘지로 가는 절차.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치루기 위해 마을 전체가 동원된다. 그러다보니 장례 뒤에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는 예도 많았다. 여기에 3년 상까지 하게 되면 더더욱 생활형편이 어려워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1973년에는 가정의례준칙까지 발표하게 되었다. 그리고 도시화와 핵가족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면서 마을에는 장례를 치를 노동력이 부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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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에 있는 고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후의 여러 지리지에서는 ‘율현(栗峴)’으로 나오고 있다. 그리하여 일명 ‘율량고개(栗陽峙)’라고도 한다. 그런데 ‘밤고개’에 얽힌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조선 영조(英祖) 때 조원의(趙元宜)라는 유생이 충청도 회인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왕은 호송하는 금부도사에게 유배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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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내덕동과 율량동에 있는 밤고개에 얽힌 전설. 조선 영조 때 조원의(趙元宜)라는 유생이 간(諫)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충청도 회인(懷仁)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조원의를 유배지까지 호송하는 책임을 맡은 금오랑(金吾郞)은 유배지에 도착하거든 하룻밤을 묵은 뒤 그의 목을 베라는 명을 받았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조원의는 유배 길에 올랐다. 일행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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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골짜기. ‘밤골’은 ‘벼랑새’로도 불리는 바, 이는 ‘벼랑 사이’를 뜻한다. 골짜기가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어 붙은 이름이다. 또 ‘바람새’로도 불린다. 이는 ‘벽(壁)’을 뜻하는 중세국어 ‘’이나 ‘람’과 관련된 것으로, ‘벽 사이’를 뜻한다. 골짜기가 벽과 같은 벼랑 사이에 있어 붙은 이름이다. ‘밤새’로도 불린다. 이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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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골짜기. ‘밤골’은 ‘벼랑새’로도 불리는 바, 이는 ‘벼랑 사이’를 뜻한다. 골짜기가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어 붙은 이름이다. 또 ‘바람새’로도 불린다. 이는 ‘벽(壁)’을 뜻하는 중세국어 ‘’이나 ‘람’과 관련된 것으로, ‘벽 사이’를 뜻한다. 골짜기가 벽과 같은 벼랑 사이에 있어 붙은 이름이다. ‘밤새’로도 불린다. 이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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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골짜기. ‘밤골’은 ‘벼랑새’로도 불리는 바, 이는 ‘벼랑 사이’를 뜻한다. 골짜기가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어 붙은 이름이다. 또 ‘바람새’로도 불린다. 이는 ‘벽(壁)’을 뜻하는 중세국어 ‘’이나 ‘람’과 관련된 것으로, ‘벽 사이’를 뜻한다. 골짜기가 벽과 같은 벼랑 사이에 있어 붙은 이름이다. ‘밤새’로도 불린다. 이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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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집안 곳곳에 등촉을 밝혀놓고 밤을 새우는 풍속. 수세(守歲)는 도교에서 12월 경신일(庚申日)에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지켜야 복을 받는다는 소위 경신수세(庚申守歲)의 유속(遺俗)이다. 그래서 섣달그믐에 윷놀이, 옛날이야기, 얘기책 읽기 등 흥미 있는 놀이로 밤을 새웠다. 잡귀의 출입으로 인해 새로운 한 해에 닥칠 수 있는 액운의 방비는 물론 새로운 한 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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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에 있는 고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후의 여러 지리지에서는 ‘율현(栗峴)’으로 나오고 있다. 그리하여 일명 ‘율량고개(栗陽峙)’라고도 한다. 그런데 ‘밤고개’에 얽힌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조선 영조(英祖) 때 조원의(趙元宜)라는 유생이 충청도 회인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왕은 호송하는 금부도사에게 유배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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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분평동과 상당구 방서동을 연결하는 다리. 1992년 청주시에서 개통하였다. 총연장 136.5m, 교폭 35m이며, RC 중공슬라브 방식이다. 청주시 흥덕구와 상당구의 경계를 형성하면서 남북으로 흐르는 무심천(無心川)이 시내로 흘러드는 지점에 건설되었다. 즉 청주외곽순환도로를 건설하면서 무심천(無心川) 위에 놓은 다리가 바로 방서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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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2동에 속하는 법정동. 대머리(현 방서교회 부근)에 있는 큰 우물인 방정(方井)의 서쪽 지역이므로 방서라 하였다. 본래 청주군 남일하면(南一下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대촌리(擡村里), 평촌리(坪村里) 일부, 신목리(新木里) 일부를 병합하여 방서리라 하여 남일면(南一面)에 편입되었다. 1983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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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명은 청주시 상당구 용암2동 37통이고, 법정명은 방서동 대머리이다. 방서동 대머리마을은 본래 청주군(淸州郡) 남일하면(南一下面)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폐합에 따라 방서리로 청원군 남일면에 편입되었다. 방서리란 지명은 방정(方井)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지어진 것이다. 1983년 2월 대통령령에 의하여 청주시에 편입되었다. 마을을 개촌한 사람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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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서동 대머리마을은 인근 초등학생들이 유적 탐방 등의 목적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가장 많다. 대머리마을이 청주를 대표하는 한씨 집성촌이기 때문에 예전부터 내려오는 유적들을 살펴보면서 청주의 역사를 더불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는 한씨 후손들이 찾아오는 경우이다. 2000년 카자흐스탄에서 한씨 후예가 6대조의 유언을 실행하고자 찾아온 경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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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일본이 우리 나라의 서당을 폐지시켜 국민의 교육장을 없애버린데 반하여 청주 한씨 대머리마을에서는 문중에서 방서한길에 강당을 지어 마을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쳤다. 이때 강당을 운영하기 위해 “서당계”를 조직하였다. 여름에 강당 생일잔치를 하면 방죽(연못)을 품어서 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이고 각자 집에서 보리밥과 찬을 가져와서 같이 먹었다고 한다. 강당으로 쓰였던 그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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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농정(務農亭)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 210-4(대머리공원 내)에 소재한 무농정은 청주 한씨 종중에서 세운 누정이다. 1688년(숙종 14) 후손 한익저(韓益著)가 세운 유적비에 의하면 본래의 누정은 청주 한씨의 시조인 한란(韓蘭)[?~?]이 청주 남쪽의 넓은 들판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현재의 낮은 구릉 위에 정자를 짓고 농사에 힘쓰도록 권장하기 위해 세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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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서동 대머리마을 동제였던 산신제는 10월 보름, 현재는 없어진 아름드리 소나무 아래에서 올렸다. 용암동이 개발되면서 사라졌다. 현재 무농정 및 공원자리이다. 산제당은 원형의 돌탑과 소나무 신목이 서있었다. 제수 마련은 시루떡을 놓고 그 위에 쌀 담은 사발을 올려놓았다. 사발에는 초를 꽂아 제를 올릴 때 촛불을 켰다. 술 대신 정한수를 올려 밤 열 시경 제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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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청주시에 편입될 무렵 마을 앞으로 청주 미원간 국도가 개설되어 교통은 편하다. 마을이 시의 남쪽에 위치해 번화하지 않았는데 1990년대 용암동 일대가 개발되면서 상권이 형성되고 이에 따라 산업의 형태도 2·3차 산업으로 바뀌었고 교통편도 더욱 편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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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마을은 앞에 들이 넓어서 원평동 아이들과 쥐불놀이 싸움을 많이 했다고 한다. 겨울 특히 정월이면 의례히 들에 나와 짚을 모아서 그 속에 돌맹이, 사금파리, 닭똥 등을 집어넣고 둘둘 말아서 묶어 횃대를 만들어 쥐불놀이를 했다. 이 횃대에 불을 붙여 상대편 아이들을 위협하면서 패싸움을 벌이곤 했다. 처음에는 들 앞에서 하다가 저녁 무렵이면 들 중간에 모여서 싸웠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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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대부분이 평지이며 북부지역에 낮은 구릉지가 있다. 마을 서쪽은 무심천(無心川)이 흐르고 남쪽은 월운천이 흘러 마을 남서단에서 무심천(無心川)에 합류한다. 자연부락으로 너먼대머리(擡村), 대머리(竹村), 방정, 아래대머리, 웃대머리 등이 있고, 마을 주변으로 펼쳐진 들은 방정, 자갈더미들, 운수들, 무농정, 용개들 등이 있다. 대머리마을 앞으로 용개들이 펼쳐져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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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할아버지는 서기 850년에서 900년에서 활동하셨어요, 영동 황간 남곡리에서 출생을 하셔서 여기서 정착하셨어요. …지금서부터 3500년 전까지 올라가야 돼요, 은나라 10대 임금인 무정의 동생이 다스릴 理자가 있어요. 0이의 아들이 기자(箕子)라고 있어요, 대한민국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인정을 안해요,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단군 천 년 후에 바로 기자조선이 평양에 도읍을 정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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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기호(문자, 숫자, 도형, 도표, 이미지, 음성, 음향, 영상)로 이루어진 방송프로그램을 유무선통신을 이용하여 다수의 사람들에게 송신하는 일. 방송이라 함은 방송프로그램을 기획·편성 또는 제작하여 이를 공중에게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송신하는 것이다(2004년 개정된 방송법 2조 1항). 기존 방송법에서의 ‘전파에 의한 송신’을 ‘전기통신설비에 의한 송신’으로 개정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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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에 있는 네모난 우물. 청주한씨(淸州韓氏)의 시조인 한란이 살던 마을에 있던 우물의 이름으로 너비 47.5~62.5㎝, 길이 153.5㎝의 네모진 샘이다. 무농정에서 약 200m 떨어진 청주한씨 종중회관이 있는 골목 안쪽에 있다. 1990년 12월 14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84호로 지정되었으며, 1998년 우물보호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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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에 있는 우물 방정에 관련된 설화. 방정은 너비 47.5㎝~62.5㎝, 길이 153.5㎝, 두께 21㎝의 네모꼴 우물로써 청주한씨(淸州韓氏)의 시조인 한란이 살던 마을에 있는 우물이다. 이 설화는 방정의 유래에 관한 전설이다. 어느 해 가뭄이 들어서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자, 한란(韓蘭)[?~?]이 제수를 마련하여 사흘 동안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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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석곡동에 있는 들. ‘방축골’은 ‘방축’과 ‘골’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방축’은 ‘방축(防築)으로 방죽의 원말이다, ‘골’은 ‘골짜기’의 뜻이다. 그리하여 ‘방축골’은 ‘방죽이 있는 골짜기’로 해석된다. 실제로 골짜기 밑에는 ‘새뱅이방죽’이 있다. 전국에는 ‘방축골’이라는 골짜기가 많다. 대부분 방죽이 있어서 붙어진 이름으로 설명한다.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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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과 개신동 사이에 있는 고개 및 옛 마을. ‘배티’의 ‘배’는 이 고갯마루에 배나무들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티’는 고개의 뜻이므로, ‘배고개’라고도 불리웠다. 이현(梨峴)은 ‘배티’를 한자화한 지명이다. 또한 ‘배티’는 배티 밑에 있는 마을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모충동 쪽 배티마을에는 곡산연씨(谷山延氏)가 많이 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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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성진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에 재학 중이던 그는 1917년 3월 장일환(張日煥) 등 숭실학교 학생 및 기독교인들과 비밀결사 조선국민회(朝鮮國民會)를 조직하여 서기 겸 통신원의 직책을 맡아 활동하였다. 동년 6월에는 노덕순(盧德淳) 등과 함께 식지(食指)를 잘라 ‘대한독립’이라 혈서(血書)하고 국민회의 단결과 장래의 활동방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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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1동에 속하는 법정동. ‘신전동(薪田洞)’은 ‘섶밭’을 한자로 바꾼 이름이다. ‘섶밭’은 ‘섶’과 ‘밭’으로 분석된다. ‘섶’은 ‘섶나무’의 준말로, ‘잎나무, 물거리, 풋나무 등의 총칭’이다. 따라서 ‘섶밭’은 '섶나무가 무성한 밭'으로 해석된다. 과거 이 곳은 섶밭이었다. 이 섶밭에 마을이 생기자 밭 이름으로 마을 이름을 삼은 것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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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1동에 속하는 법정동. ‘신전동(薪田洞)’은 ‘섶밭’을 한자로 바꾼 이름이다. ‘섶밭’은 ‘섶’과 ‘밭’으로 분석된다. ‘섶’은 ‘섶나무’의 준말로, ‘잎나무, 물거리, 풋나무 등의 총칭’이다. 따라서 ‘섶밭’은 '섶나무가 무성한 밭'으로 해석된다. 과거 이 곳은 섶밭이었다. 이 섶밭에 마을이 생기자 밭 이름으로 마을 이름을 삼은 것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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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書畵)에 종이·비단 등을 붙여 족자·액자·병풍 등을 만드는 기술을 보유한 장인(匠人). 배첩(褙貼)이란 오늘날의 표구(表具)와 마찬가지로 서화에 종이·비단 등을 붙여 족자·액자·병풍 등을 만듦으로써 미적 가치는 물론 실용성 및 보존성을 높여주는 전통적인 서화처리 방법이다. 표구는 일제강점시기에 일본인에 의해 들어온 용어인 반면에 배첩장(褙貼匠)은 조선왕조 초기부터 제도화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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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 청주 출신의 인물. 왕건(王建)이 쿠데타를 일으켜 궁예(弓裔)를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할 무렵 재경청주인은 궁예파와 왕건파로 나뉘었다. 배총규(裵悤規)는 반왕건적인 성향을 보이는 인물이었다. 왕건의 쿠데타 직후 청주 출신의 순군리(徇軍吏) 임춘길(林春吉) 등이 강길(康吉), 아차귀(阿次貴), 경종(景琮)과 함께 반역의 음모를 꾸미고 청주로 돌아가려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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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과 개신동 사이에 있는 고개 및 옛 마을. ‘배티’의 ‘배’는 이 고갯마루에 배나무들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티’는 고개의 뜻이므로, ‘배고개’라고도 불리웠다. 이현(梨峴)은 ‘배티’를 한자화한 지명이다. 또한 ‘배티’는 배티 밑에 있는 마을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모충동 쪽 배티마을에는 곡산연씨(谷山延氏)가 많이 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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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과 개신동 사이에 있는 고개 및 옛 마을. ‘배티’의 ‘배’는 이 고갯마루에 배나무들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티’는 고개의 뜻이므로, ‘배고개’라고도 불리웠다. 이현(梨峴)은 ‘배티’를 한자화한 지명이다. 또한 ‘배티’는 배티 밑에 있는 마을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모충동 쪽 배티마을에는 곡산연씨(谷山延氏)가 많이 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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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과 개신동 사이에 있는 고개 및 옛 마을. ‘배티’의 ‘배’는 이 고갯마루에 배나무들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티’는 고개의 뜻이므로, ‘배고개’라고도 불리웠다. 이현(梨峴)은 ‘배티’를 한자화한 지명이다. 또한 ‘배티’는 배티 밑에 있는 마을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모충동 쪽 배티마을에는 곡산연씨(谷山延氏)가 많이 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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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전동에 있는 산. ‘희여봉’은 ‘희여’와 ‘봉’으로 분석된다. ‘희여’는 ‘희다[白]’의 부사형 ‘희어’가 변한 어형이다. ‘봉(峰)’은 ‘산봉우리’이다. 따라서 ‘희여봉’은 ‘흰 봉우리’로 해석된다. 보통 산봉우리가 모래나 바위로 되어 있어 흰 빛을 띨 때 붙는 이름이다. 이 산은 달리 ‘희여티’로도 불리는데, 이는 ‘봉’ 대신 ‘티’를 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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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동막동에 있는 마을. 일명, ‘백두재’, ‘백토재’라고도 하며, 백현은 ‘흰고개’라는 뜻이다. 이는 고개의 흙이 흰빛을 띠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이를 ‘백현(栢峴)’으로 보아 ‘잣고개’로 파악하려는 사람도 있다. 물론 전국에는 잣고개를 뜻하는 ‘백현’으로 쓰이는 곳도 많이 있으나 ‘흰 고개(白峴)’와는 대응되는 것이다. 백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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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의 안테(안태) 마을 서쪽의 앞에 백로가 서식하고 있는 산. 10년여 전부터 ‘백로 도래지’ 산의 소나무 숲에 백로 수백 마리가 도래하여 둥지를 틀면서 생겨난 산 이름으로 지금도 백로가 서식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역이 구릉지로 형성되어 있지만 무심천(無心川) 하류의 천변에는 충청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최근에 무심천(無心川)의 수량이 풍부해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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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에 조성된 근린공원. 이 공원의 명칭은 공원의 중심을 이루는 백봉산(白峰山)[95m]에서 따온 것이다. 백봉산은 과상미 또는 과상뫼라고도 불리우며, 과상미는 백봉산 인근의 옛 마을 이름이기도 하다. 흥덕구 봉명동 1286번지에 있는데, 북쪽은 농수산물로와, 남쪽은 흥덕로와 인접해 있다. 청주 제1순환로를 따라오면 만나게 되는 농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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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에 있는 산 이름과 마을. ‘과상미’는 봉명동에 있는 해발고도 95m의 얕은 구릉인 백봉산(白峰山)[95m]을 일컫는 이름으로서 ‘과상뫼’라고도 불리었다. 이 이름은 전설에 의하면 중국에 있는 ‘과상산(果商山)’의 명칭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한편 ‘과상’을 ‘과산(果山)’의 변형으로 보고 ‘과일이 많이 생산되는 산’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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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전동에 있는 산. ‘희여봉’은 ‘희여’와 ‘봉’으로 분석된다. ‘희여’는 ‘희다[白]’의 부사형 ‘희어’가 변한 어형이다. ‘봉(峰)’은 ‘산봉우리’이다. 따라서 ‘희여봉’은 ‘흰 봉우리’로 해석된다. 보통 산봉우리가 모래나 바위로 되어 있어 흰 빛을 띨 때 붙는 이름이다. 이 산은 달리 ‘희여티’로도 불리는데, 이는 ‘봉’ 대신 ‘티’를 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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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 백운사의 입구에 봉안된 불상. 이 불상은 원래부터 이곳에 봉안된 것은 아니었다. 백운사의 신도가 자신의 친정(화단 : 속리산 가는 길)에서 옮겨온 불상이라고 한다. 이 불상의 크기는 전체 높이(全高) 91㎝, 불상 높이(佛像高) 80.5㎝, 귀 길이(耳長) 12.5㎝, 광배 두께(光背厚) 11.5㎝이다. 배 모양인 커다란 광배[舟形擧身光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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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의 승려. 전라도 고부 출생으로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전국의 사찰을 돌아다니면서 수행하다가 1351년(공민왕 원년) 중국 원나라로 건너갔다. 1여년 동안 중국에 머물면서 고승인 지공(指空)에게 법을 묻고, 석옥(石屋)선사를 찾아가 임제종(臨濟宗)의 선법을 전해 받았다. 1352년 귀국하여 1354년 황해도 해주 안국사(安國寺)에서 머물다가 1357년 입궐하라는 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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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줄여서『직지』는 흥덕사에서 1377년에 금속활자로 간행한 책의 이름이다. 원 제목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이 책의 이름을 줄여서『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직지심체(直指心體)』, 『직지』 등으로 부르고 있다.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주최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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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고대국가 중의 하나. 서기 전후 무렵에 성립되어 660년 당에게 멸망할 때까지 한반도 서남부에 존재했던 나라로 마한(馬韓) 50여개 소국의 하나인 백제국(伯濟國)이 성장 발전하여 이룩한 나라이다. 백제는 한강유역에 자리를 잡은 마한 소국의 하나로서 나라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건국설화에 의하면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의 아들 비류(沸流)와 온조(溫祚)가 남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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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 지역에서 발견된 백제의 산성, 고분, 주거 유적. 청주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처음 보이는데, 63년(백제 다루왕 36, 신라 탈해이사금 7)에 백제가 청주로 비정되는 낭자곡성(娘子谷城)에 진출하여 신라와의 화의를 요청하는 기사가 그것이다. 이후 청주 인근 지역을 두고 백제와 신라는 오랜 공방전을 벌이게 되면서, 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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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고대국가 중의 하나. 서기 전후 무렵에 성립되어 660년 당에게 멸망할 때까지 한반도 서남부에 존재했던 나라로 마한(馬韓) 50여개 소국의 하나인 백제국(伯濟國)이 성장 발전하여 이룩한 나라이다. 백제는 한강유역에 자리를 잡은 마한 소국의 하나로서 나라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건국설화에 의하면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의 아들 비류(沸流)와 온조(溫祚)가 남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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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군들이 김매기를 모두 마친 후에 택일하여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하고 나누어 먹으며 노는 민속놀이. 백중은 음력 7월 보름날을 뜻하며, 음력 1월 보름을 상원(上元), 10월 보름을 하원(下元)이라 불렀던데서 중원(中元)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湖西俗 以十五日 老少出市 飮食爲樂 又爲角力之戱(호서속 이십오일 로소출시 음식위락 우위각력지희:충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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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전동에 있는 산. ‘희여봉’은 ‘희여’와 ‘봉’으로 분석된다. ‘희여’는 ‘희다[白]’의 부사형 ‘희어’가 변한 어형이다. ‘봉(峰)’은 ‘산봉우리’이다. 따라서 ‘희여봉’은 ‘흰 봉우리’로 해석된다. 보통 산봉우리가 모래나 바위로 되어 있어 흰 빛을 띨 때 붙는 이름이다. 이 산은 달리 ‘희여티’로도 불리는데, 이는 ‘봉’ 대신 ‘티’를 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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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동막동에 있는 마을. 일명, ‘백두재’, ‘백토재’라고도 하며, 백현은 ‘흰고개’라는 뜻이다. 이는 고개의 흙이 흰빛을 띠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이를 ‘백현(栢峴)’으로 보아 ‘잣고개’로 파악하려는 사람도 있다. 물론 전국에는 잣고개를 뜻하는 ‘백현’으로 쓰이는 곳도 많이 있으나 ‘흰 고개(白峴)’와는 대응되는 것이다. 백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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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동막동에 있는 마을. 일명, ‘백두재’, ‘백토재’라고도 하며, 백현은 ‘흰고개’라는 뜻이다. 이는 고개의 흙이 흰빛을 띠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이를 ‘백현(栢峴)’으로 보아 ‘잣고개’로 파악하려는 사람도 있다. 물론 전국에는 잣고개를 뜻하는 ‘백현’으로 쓰이는 곳도 많이 있으나 ‘흰 고개(白峴)’와는 대응되는 것이다. 백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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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의 수름재 동쪽의 강당말 뒤에 있는 산. ‘백화산(伯華山)’은 큰 빛이 나는 산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해석은 이 산이 돌과 모래로 이루어진 산이라는 데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백화산(白花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산림이 우거져 푸른빛을 띠고 있지만 예전에는 흰 바위와 모래가 그대로 드러나 하얀 색을 띠고 있었다고 한다. 산이 하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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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과 개신동 사이에 있는 고개 및 옛 마을. ‘배티’의 ‘배’는 이 고갯마루에 배나무들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티’는 고개의 뜻이므로, ‘배고개’라고도 불리웠다. 이현(梨峴)은 ‘배티’를 한자화한 지명이다. 또한 ‘배티’는 배티 밑에 있는 마을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모충동 쪽 배티마을에는 곡산연씨(谷山延氏)가 많이 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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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남동에 있는 골짜기와 흥덕구 상신동에 있는 마을. ‘뱅깔’은 ‘뱅’과 ‘깔’로 분석된다. ‘뱅’은 ‘뱀[사(蛇)]’의 변화형으로 추정된다. ‘뱀’의 양순음 ‘ㅁ’이 ‘골’의 연구개음 ‘ㄱ’ 영향으로 연구개음 ‘ㅇ’으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뱀골’과 ‘뱅골’이, ‘뱅굴’과 ‘뱀굴’이 함께 사용되는데 이런 예가 연구개음화를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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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남동에 있는 골짜기와 흥덕구 상신동에 있는 마을. ‘뱅깔’은 ‘뱅’과 ‘깔’로 분석된다. ‘뱅’은 ‘뱀[사(蛇)]’의 변화형으로 추정된다. ‘뱀’의 양순음 ‘ㅁ’이 ‘골’의 연구개음 ‘ㄱ’ 영향으로 연구개음 ‘ㅇ’으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뱀골’과 ‘뱅골’이, ‘뱅굴’과 ‘뱀굴’이 함께 사용되는데 이런 예가 연구개음화를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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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있는 마을. 지금의 영운동사무소 앞에 있었던 ‘벌뜸들’은 과거에 과수원과 자갈밭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벌뜰’의 ‘벌’은 ‘벌판’의 뜻이고 ‘뜰’은 ‘작은 들’이라는 의미이다. ‘벌뜰’에 있는 마을이 ‘벌뜸’이다. ‘뜸’은 ‘작은 마을’의 의미이므로 ‘벌뜸’은 벌판에 있는 작은 마을로서 벌판에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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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동동에 있었던 마을. 벌말의 ‘벌’은 벌판을 뜻하고, ‘말’은 마을의 뜻이니, 벌말은 ‘벌판 가운데에 있는 마을’로 해석된다. 이 벌말을 한자로 옮기면 평촌(坪村)이 된다. 상당구 오동동의 북서쪽 벌판에 있었던 마을로, 지금은 없어지고 농경지로 변하였다. 상당구 내덕동의 내덕칠거리에서 시작되는 공항로(17번국도)을 따라 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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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평촌동에 있었던 마을. ‘벌말’의 ‘벌’은 ‘벌판’을 뜻하고 ‘말’은 ‘마을’의 뜻이다. ‘벌말’은 ‘벌판가운데 있는 마을’로 보면 된다. ‘들 가운데 있는 마을’인 ‘들말’과 유사한 지명이다. 이 벌말은 한자로 보면 평촌(坪村)이 된다. 무심천(無心川)과 합류하는 월운천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월운천 위의 평촌교를 지나 제2순환로와 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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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마을. 범바골은 우암어린이회관 위쪽에 있는 마을로 범바위골이라고도 한다. 범바골은 범바위골에서 위가 탈락한 어형이다. 학바위골이 줄어서 학바골(용정동)이 되듯이 범바위골이 줄어들어 범바골이 될 수 있다. 범바위골의 범바위는 범의 모양을 한 바위로 해석된다. 전국에 범바위라는 바위 이름이 상당히 많다. 범의 형상을 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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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마을. 범바골은 우암어린이회관 위쪽에 있는 마을로 범바위골이라고도 한다. 범바골은 범바위골에서 위가 탈락한 어형이다. 학바위골이 줄어서 학바골(용정동)이 되듯이 범바위골이 줄어들어 범바골이 될 수 있다. 범바위골의 범바위는 범의 모양을 한 바위로 해석된다. 전국에 범바위라는 바위 이름이 상당히 많다. 범의 형상을 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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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휴암동에 있는 들. ‘변양짜리’는 ‘볕양자리’의 변화형이다. 즉 ‘볕양자리’가 미파화에 의해 ‘볃양자리’로, ‘볃양자리’가 ‘ㄴ’음 첨가에 의해 ‘볃냥자리’로, ‘볃냥자리’가 비음화에 의해 ‘변냥자리’로, ‘변냥자리’가 사잇소리 현상에 의해 ‘변냥짜리’로 실현된 것이다. 최초의 어형 ‘볕양자리’는 ‘볕양’과 ‘자리’로 분석된다. ‘볕양(-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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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장암동에 있는 사회복지시설. 사회복지신고시설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베데스다의집은 장애인과 결손가정 청소년 등 13명이 생활하고 있다. 1999년 6월 22일 흥덕구 수곡동에 베데스다의집을 설립하였고 2001년 새로 이전할 흥덕구 장암동의 부지매입, 2002년 2월 현재의 장암동으로 이전하였다. 주로 정신지체가 있는 노인 및 결손가정 아이를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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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골짜기. ‘밤골’은 ‘벼랑새’로도 불리는 바, 이는 ‘벼랑 사이’를 뜻한다. 골짜기가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어 붙은 이름이다. 또 ‘바람새’로도 불린다. 이는 ‘벽(壁)’을 뜻하는 중세국어 ‘’이나 ‘람’과 관련된 것으로, ‘벽 사이’를 뜻한다. 골짜기가 벽과 같은 벼랑 사이에 있어 붙은 이름이다. ‘밤새’로도 불린다. 이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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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초(碧初) 홍명희(洪命喜)와 그의 소설 『임꺽정(林巨正)』을 다시 조명하기 위하여 열리는 문학제. 남과 북의 분단 이후 정치적 이념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홍명희와 소설 『임꺽정(林巨正)』과 관련된 자료를 발굴하고 정리하는 한편, 학술적 연구를 통해 문학사에서의 위치를 재정립하고, 연극, 미술, 서예, 음악, 무예, 무용, 영화 등 다른 예술 장르를 통해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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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주지역의 효자·학자. 본관은 초계(草溪)이고, 자는 중신(仲申)이며, 호는 백음(栢陰)이다. 청원군 내수읍 비상리 출신이다. 세종 때 예문관제학을 지낸 변효문(卞孝文)의 4세손으로, 아버지는 변충남(卞忠男), 할아버지는 변승종(卞承宗), 증조할아버지는 변심(卞鐔)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성장하였으나 어머니를 봉양함이 지극하여 생전의 봉양과 사후의 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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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병장. 본관(本貫)은 초계(草溪)이며, 자(字)는 예보(禮甫)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변시망(卞時望)의 동생인 변시익(卞時益)이다. 벼슬이 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관춘추관수찬관(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에 이르렀다. 할아버지는 변단(卞摶)으로 조봉대부경릉참봉(朝奉大夫敬陵參奉)을 지냈다. 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도총관(吏曹參判兼同知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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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청주지역의 효자. 본관은 초계(草溪)이고, 자는 양백(養伯)이며, 호는 사익재(四益齋)이다. 정국공신(靖國功臣) 변준(卞寯)의 현손으로 알려져 있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였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집안이 매우 가난하였으나 홀어머니를 섬김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였다. 어머니의 병환에 여러 차례에 걸쳐 목욕재계하고 정성껏 하늘에 빌었더니 어머니의 병이 쾌차하여 고을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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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효행이 뛰어나 조정에 천거되었고, 병자호란에는 의병장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본관(本貫)은 초계(草溪)이며, 자(字)는 표경(表卿), 호(號)는 공암(公巖)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변충남(卞忠男), 할아버지는 변경복(卞景福), 아버지는 변유인(卞惟寅)[1566~1641년]이다. 부인은 이득윤(李得胤)의 딸 숙인(淑人) 경주이씨(慶州李氏)와 숙인 신평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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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관료. 무과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이괄(李适)의 난 때 어가를 호종하여 벼슬이 가자되었다. 본관은 초계(草溪), 자(字는) 사눌(士訥)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음직(蔭職)으로 장사랑(將仕郞), 군공(軍功)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장례원(掌隷院判決事)에 증직된 변충남(卞忠男)이고, 할아버지는 청주에 낙향한 변경수(卞景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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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이며, 자는 휘경(輝卿), 호는 일공(一笻)이다. 변유명(卞惟明)의 아들이며, 변경복(卞景福)의 손자이다. 1635년(인조 13) 증광시(增廣試)에 병과(丙科)로 합격하였다. 벼슬은 흥덕현감(興德縣監)에 그쳤으나 청백리(淸白吏)로 이름이 높았다. 벼슬에서 물러나던 날 짐이 아무 것도 없자, 어머니가 ‘맑은 것은 네 지조(志操)라도 집에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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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휴암동에 있는 들. ‘변양짜리’는 ‘볕양자리’의 변화형이다. 즉 ‘볕양자리’가 미파화에 의해 ‘볃양자리’로, ‘볃양자리’가 ‘ㄴ’음 첨가에 의해 ‘볃냥자리’로, ‘볃냥자리’가 비음화에 의해 ‘변냥자리’로, ‘변냥자리’가 사잇소리 현상에 의해 ‘변냥짜리’로 실현된 것이다. 최초의 어형 ‘볕양자리’는 ‘볕양’과 ‘자리’로 분석된다. ‘볕양(-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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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문과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당상관에 오른 인물이다. 본관(本貫)은 초계(草溪), 자(字)는 문거(文擧)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변경복(卞景福), 할아버지는 변유인(卞惟寅)[1566~1641년], 아버지는 변시망(卞時望), 삼촌은 변시익(卞時益)이다. 외할아버지는 이득윤(李得胤)이다.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은진송씨(恩津宋氏)로 송국시(宋國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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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1동에 속하는 법정동. ‘신전동(薪田洞)’은 ‘섶밭’을 한자로 바꾼 이름이다. ‘섶밭’은 ‘섶’과 ‘밭’으로 분석된다. ‘섶’은 ‘섶나무’의 준말로, ‘잎나무, 물거리, 풋나무 등의 총칭’이다. 따라서 ‘섶밭’은 '섶나무가 무성한 밭'으로 해석된다. 과거 이 곳은 섶밭이었다. 이 섶밭에 마을이 생기자 밭 이름으로 마을 이름을 삼은 것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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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의 상당산성에 주재하였던 종3품의 무관. 병마절도사를 보좌하고 상당산성에 주재하면서 산성의 운영을 관리, 책임졌던 무관직이다. 병마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의 제도가 정립되면서 그 막료로서 도진무(都鎭撫)가 임명되었는데, 이것이 1466년(세조 12)에 병마우후(兵馬虞候)로 개칭되었다. 1651년(효종 2) 충청남도 서산의 해미(海美)에 있던 병영(兵營)을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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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신태희(申泰羲)의 선정비. 조선 철종 대에 충청도 병마절도사영(兵馬節度使營)의 병마우후를 지낸 신태희의 선정을 기려 1859년(철종 10)에 세운 비석이다. 상당구 산성동 마을에서 서문으로 올라가는 길 왼쪽의 크고 넓은 자연석의 바위 위에 홈을 파고 세웠다. 방형 받침돌 위에 높이 139㎝, 폭 44㎝, 두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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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병마우후 이의장(李義長)을 기리는 마애선정비. 병마우후를 지낸 이의장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만든 공덕비이다. 상당구 산성동의 명암저수지에서 오른쪽 산길, 산성으로 통하는 옛길 왼쪽 암벽에 새겼다. 평지에서 100㎝ 정도 위에 있는 높이 100㎝, 폭 120㎝ 정도의 거친 화강암 자연석에 높이 47㎝, 폭 120㎝로 다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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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위치한, 충청병사 민지열(閔趾烈)의 선정을 기리는 마애비. 상당구 산성동 것대봉수에서 시내쪽으로 내려오는 등산로 중턱 평지부의 오른쪽 자연석 바위에 3기의 선정비 중 왼쪽부터 두 번째이다. 평지에서 200㎝ 정도 위에 있는 거친 화강암 자연석에 너비 97㎝, 높이 52㎝로 비면을 다듬고, 다시 그 위로 지붕돌[가첨석(加簷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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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충청병사 이삼(李參)의 선정을 기리는 비. 충청병사 이삼의 선정을 기려 조성한 마애선정비이다. 상당구 산성동 것대산(484.0m) 봉수에서 시내쪽으로 내려오다 평지부 오른쪽 암벽에 새긴 비 3개중 왼쪽부터 세 번째이다. 평지에서 200㎝ 정도 위에 있는 거친 화강암 자연석에 너비 95㎝ 높이 55㎝의 비면을 다듬고 그 위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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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진찰하고 치료하기 위해 설치한 장소. 우리나라에 서양식 현대병원의 도입은 19세기 말의 일로 그 역사는 얼마 되지 않으나 고려 때에 이미 국립기관으로서 의약·치료를 맡는 태의감(太醫監)이 설치되었고, 조선 전기에는 의료시설로 제생원(濟生院)·혜민국(惠民局)·동서활인원(東西活人院) 등이 설치되어 왕실은 물론 서민의 의료도 담당하였으나 이들은 한방의료를 시행하는 시설이었다.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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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술로써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일.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국민건강보호 및 증진을 위하여 필요한 법적·제도적 장치의 마련과 이에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보건의료정책과 보건의료에 관한 사회보장정책간에 연계성이 확보되도록 하기 위해서 2000년 보건의료기본법을 신규 제정하였다. 청주에서는 1909년에 자혜(慈惠)의원을 개설하여 청주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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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있는 신라시대의 사찰. 567년(신라 진흥왕 28)에 의신조사가 창건하였다. 상당구 용암동 청주동부우회도로에서 용박골 쪽으로 2.5㎞ 정도 들어간 곳에 있다. 778년(신라 혜공왕 14)에 진표율사의 제자인 융종대사가 중창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고려 918년(태조 원년)에 태조(太祖)의 다섯째 아들인 증통국사가 고쳐지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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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보살사에 있는 괘불. 하단에 쓰인 묵서명 ‘숭정 23년’으로 보아 1649년(인조 27)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석가불을 중심으로 주위에 보살과 제자, 사천왕 등이 시위하고 있는 영산회상도의 탱화이다. 본존상은 우견편단의 상으로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취하고 있으며, 키 모양의 광배가 있다. 영산회괘불탱은 1980년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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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낙가산 아래 보살사에 봉안된 불상. 석조병립상(石造竝立像)으로 특이한 조성수법을 보여 준다. 이 불상의 크기는 광배 폭 67㎝, 불상 높이 64㎝, 머리 높이 16.5㎝, 육계 높이 1.5㎝, 머리 폭 7.5㎝, 어깨 높이 46㎝, 어깨 폭 19㎝, 대좌 높이 9.5㎝, 두께 12.5㎝이다. 석조이존병립여래상은 한 광배(光背) 안에 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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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보살사에 있는 불상. 보살사의 중심 법당인 보살사 극락보전 내에 수미단을 마련하고 그 위에 봉안된 이 소조아미타삼존불은 1683년(숙종 9)에 법당 건물이 중건될 때 함께 봉안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상호가 선이 굵고 원만한 표정이며, 몸의 양감과 대의의 탄력 있는 주름선 등이 잘 어우러져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 양쪽의 협시보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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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보살사에 있는 괘불. 하단에 쓰인 묵서명 ‘숭정 23년’으로 보아 1649년(인조 27)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석가불을 중심으로 주위에 보살과 제자, 사천왕 등이 시위하고 있는 영산회상도의 탱화이다. 본존상은 우견편단의 상으로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취하고 있으며, 키 모양의 광배가 있다. 영산회괘불탱은 1980년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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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의 보살사에 있는 석탑. 2층 탑의 몸체[옥신]에 새겨진 ‘강희계미(康熙癸未)’라는 음각 명문에 의하여 1703년(숙종 29)에 건립된 것을 알 수 있다. 보살사 극락보전의 앞에 있는 조선시대 탑으로 기단부터 상륜부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지대석 위에 하대석을 대신하는 3단의 받침이 있고 그 위에 중판복엽(重辦複葉)의 복련화문(伏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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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 미만의 영·유아반을 운영하는 보육시설. 보육시설에는 국·공립보육시설, 민간보육시설, 직장보육시설, 가정보육시설 등이 있으며 시설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에게 사전 신고하여야 한다. 보육시설의 시설 기준 및 종사자 기준, 보육시설의 운영 등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고 있다. 2004년 12월말 기준 설립주체 별로 살펴보면 청주시에서 설치·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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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동학교도들을 집결시키고 왕조정부에 정치개혁과 외세배격을 요구한 집회. 동학교단은 4월 26일(음력 3월 11일)부터 5월 17일(음력 4월 2일)까지 충청북도 보은군 장내리에서는 수 만명의 동학교도들을 집결시켜서 보국안민(輔國安民)과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의 깃발 아래 대대적인 집회를 열었다. 『취어(聚語)』에 의하면 전국에서 동학교도들이 장내리에 몰려왔는데 청주의 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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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지동동과 고락동 일대에서 전승되고 있는 세시의식요(歲時儀式謠). 의식요(儀式謠)는 세시풍속(歲時風俗)이나 통과의례(通過儀禮)에 해당되는 의식을 거행하면서 부르는 민요이다. 세시풍속이나 통과의례에 민요가 등장하는 것은 두 가지 각도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의식에서 이루고자 하는 바를 실제로 실현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믿는 것과, 둘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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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부상, 화재 등 뜻하지 않은 사고에 대비하여 일정한 금액을 내개 하고,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는 일정한 금액을 주어 손해를 보상하는 제도. 생명보험회사와 체신보험은 금융기관의 보험기관에 해당한다. 생명보험회사가 금융기관으로 분류되는 것은 손해보험과는 상이하게 손해의 발생 여부에 관계없이 기간이 경과된 후 약정된 보험금을 지급하는 저축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보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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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우암동 우암산(牛岩山)[338m]에 위치한 사찰.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로 청주대학교 경상대학 뒤편에서 우암산(牛岩山)[338m]으로 오르는 등산로 초입에 있는 사찰이다. 1935년 바느질품을 팔면서 불도를 닦던 여자 신도 김천운이 초암(草庵)을 짓고 기도처로 삼으면서 사찰이 유래됐다. 그러나 1976년 서원학회의 조사결과 경내에서 인근 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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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인(초복, 중복, 말복)에 개를 잡아 파와 함께 푹 끓여 먹는 세시풍속. 초복은 하지로부터 세 번째 경일(庚日)을, 중복은 네 번째 경일을 말하며, 말복은 입추가 지나 첫 번째 맞는 경일을 뜻한다. 복날은 절기 중에 가장 더운 때여서 땀을 많이 흘리므로 몸이 허해진다. 그래서 몸을 보신하기 위해 개장국(狗醬)에 고춧가루를 넣고 밥을 말아 즐겨 먹었다. 일종의 천렵(川獵)으로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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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 1116번지[복대로146번길 42] 일대에 있는 재래시장. 복대동의 자연지명은 ‘짐대마루’로 복대동 일대가 행주형(行舟形)을 이루고 있어 주민들의 정착을 위해 행주형의 마을에 무쇠로 짐대(돛)을 설치하고 이곳을 ‘짐대마루’라고 불렀다. 한편 가경동(佳景洞)은 본래 청주군 서주내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경치가 아름답다고 하여 가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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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있는 공원. 청주고등학교 서쪽과 성봉로 사이에 길쭉하게 남북으로 구릉지에 조성된 공원이다. 이 공원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공원이 아니고 도시계획을 할 당시에 근린공원지역으로 분리하여 놓은 자연지형을 이용한 공원이다. 이곳은 자연 식생과 원래 상태의 구릉지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공원으로서 그 당시(1960년대) 전국적으로 삼림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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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 가경천 위에 있는 다리. 1998년 개통한 다리로 총연장 93.2m, 폭 25m이며, 상행선과 하행선 각각 2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다리의 이름은 교량이 있는 복대동(福臺洞)에서 따온 것인데, 그 동(洞) 이름은 조선시대부터 유래된 복대(卜大)라는 지명을 1963년 복대동(福臺洞)으로 바꾼 것이다. 복대교는 남쪽에서 시작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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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1동에 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에 속하는 교회. 송정교회(현 서청주교회)에 다니던 복대동 일대의 교인들이 교회가 멀고 길이 험하여 1952년 5월 18일 주일에 장년 10여명이 복대동 권봉님 성도집에서 예배를 함으로써 복대교회가 시작되었다. 그 뒤 한홍석 전도사가 부임하고 1953년 8월에 충북노회로부터 교회설립을 정식으로 받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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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1동과 복대2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짐대마루라고 하던 곳이었는데, 한자화되면서 복대가 되었다. 원래는 복대(卜大)였는데, 1961년부터 복대(福臺)로 쓰기 시작하였다. ‘짐’이 ‘점’으로 발음되고, 이 ‘점’이 한자화되면서 ‘점 복(卜)’자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본래 청주군 서주내면(西州內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죽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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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서 수습된 고려시대 불교 관련 석조물. 1972년부터 1980년까지 흥덕구 사창·복대지구 구획정리사업(청주고등학교와 옛 청주과학대학 사이)을 하는 중에 수습된 고려시대 불교관련 석조물이다. 대좌 형태인 석조물은 흥덕구 개신동 충북대학교 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다. 석재의 윗면은 편평하지 않은 자연면으로 아무런 장식이 없고 요철이 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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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위치한 선돌(立石). 고인돌과 함께 큰돌 문화(巨石文化, Megalithic culture)의 한축을 이루고 있는 선돌은 선사시대부터 축조된 것이 발굴결과 밝혀지고 있으나 모든 선돌이 선사시대부터 새워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조사에 따르면 금강권에 있는 선돌은 다른 어느 곳 보다 많이 있다. 금강권의 선돌은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이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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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2동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청 소속의 성당. 청주교구 초대 교구장인 파디 야고보 주교는 교세가 급격히 증가하고 공소가 흩어져 있는 점을 고려하여 새로운 본당설립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이에 당시 북문호성당 주임이었던 나 귀엘모 신부에게 새 성당터를 물색토록 했다. 나 신부는 주교 비서로 일하던 박태봉 씨와 함께 내덕동 갑부인 이 모씨의 토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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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 781-1번지 일대에 있는 재래시장. 복대동의 자연지명은 ‘짐대마루’다. 짐대마루는 ‘진때마루’로 발음하기도 하며 복대동 일대가 행주형(行舟形)을 이루고 있어 정착민 보다는 뜨내기들이 많게 되었다. 이에 토정(土亭) 이지함(李之函)과 박춘무(朴春茂)[1544~1611]는 행주형의 마을 즉 배에 짐대(돛)가 없다는 것을 알고 무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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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1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중학교. 바른 국가관과 정체성 교육을 나라를 사랑하고 전통문화를 아끼는 애국인, 학생 중심 교육과정의 운영으로 소질과 적성을 계발하는 개성 있는 실력인, 창의적인 사고와 탐구력을 길러 미래를 개척하는 창조인, 체험을 통해 공동체 의식의 함양으로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봉사인, 체육활동을 통한 심신단련으로 건강한 신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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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튼튼한 몸과 강인한 의지를 지닌 어린이, 예절과 질서를 익혀 도덕적이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어린이, 학습방법을 익혀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하는 어린이,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힘을 길러 실생활에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활용하는 어린이, 자연을 사랑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어린이를 길러 튼튼하고 슬기로우며 근면 성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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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초에 방문 위에 조리를 걸어두는 풍속. 섣달 그믐날 자정이 지난 후나 정월 초하룻날 새벽에 조리 장수들이 마을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복조리를 사라고 외친다. 설날 이른 아침에 조리를 사면 1년 내내 복이 있다고 하여 서로 앞 다투어 산다. 사들인 조리는 두 개를 엇갈리게 묶어서 안방 위에 걸어둔다. 상당구 산성동 성안마을에서는 헝겊으로 세모지게 복조리를 만들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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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 우암산(牛岩山)[338m]에 위치한 사찰. 허공심은 불교에 귀의한 뒤 당집을 ‘일심사(一心寺)’라 불렀으나 정식 수계를 받지 못해 승려가 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운수행각을 하던 혜근스님이 1970년 허공심 보살의 부탁으로 머물게 되면서 절 이름을 복천암으로 바꾸고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키게 된다. 우암산(牛岩山)[338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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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전동에 있는 마을. ‘도고통골목’은 이칭(異稱)이 많다. 그 중 하나가 ‘도고머리’인데, 이는 ‘도투마리’의 변화형으로 보인다. ‘도투마리’는 베를 짤 때 날실을 감는 틀로, 그 모양이 H형이다. ‘도고머리’는 마을 모양이 도투마리를 닮아 붙은 이름이다. 그렇다면 ‘도고통골목’도 같은 범주에서 설명할 수 있다. ‘도구통(搗臼-)’은 ‘절구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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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청주읍성(淸州邑城)의 북문(北門) 자리에서 남문(南門) 자리에 이르는 큰길로 충청북도(忠淸北道) 청주시(淸州市)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성안길은 일본식 명칭 본정(本町)[본정통]을 대신하여 최근에 새로 만든 지명이다. 예전으로 치면 청주읍성의 안에 있는 거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청주읍성은 예로부터 청주의 사회, 경제, 군사,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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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청주읍성(淸州邑城)의 북문(北門) 자리에서 남문(南門) 자리에 이르는 큰길로 충청북도(忠淸北道) 청주시(淸州市)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성안길은 일본식 명칭 본정(本町)[본정통]을 대신하여 최근에 새로 만든 지명이다. 예전으로 치면 청주읍성의 안에 있는 거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청주읍성은 예로부터 청주의 사회, 경제, 군사,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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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1가 사직로에서 석교동 청남로 사이에 있는 도로. 청주읍성(淸州邑城)의 안에 있는 큰 길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하였다. 과거에는 청주읍성 안의 남문과 북문을 가로지르는 중심축이었으며 개화기 이후 이 길을 따라 주요 관청과 은행, 상점들이 밀집하여 충북 광역행정과 금융의 중핵기능과 함께 도심상업지구로 발전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붙여진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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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물건 또는 의사·정보가 떨어져 있는 어떤 지점 사이를 이동하는 일. 교통은 사람이나 물건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는 모든 활동과 그 과정, 절차를 말하며, 고대나 현대를 막론하고 인류문명의 모든 분야에 걸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 해 왔다. 유사 이래로 인간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경제활동이나 사회활동은 전적으로 교통이라는 수단에서 이루어졌으며, 한 국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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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에 있었던 서원. 청주진사 나성운(羅星運) 등 사림의 공론에 의해 1702년(숙종 28) 청주목 산내이면 월오동리(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 서원말)에 건립되었다.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1540~1603]을 주향으로 하고, 하은(霞隱) 신용(申涌), 종산 신집(申潗), 권상(權常)[1508~1589] 등 4위를 제향하였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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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2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규칙과 질서를 지키며 예절 바르게 행동하는 습관, 조상을 알고 민주시민의 생활을 실천하여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정신, 건강과 안전의 기본 생활 습관으로 익힌 튼튼한 몸과 마음, 건전한 취미와 아름다움을 느끼고 가꿀 수 있는 심성, 스스로 갈고 닦아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능력, 창의적인 사고력과 탐구적인 태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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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일대에 있던 숲. 청주의 북쪽에 조성된 숲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수(北藪)’, ‘봉림(鳳林)’, ‘봉림수(鳳林藪)’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청주의 남쪽과 북쪽에 인공 숲을 조성하였는데, 북쪽에 조성한 숲이 ‘북숲’이고, 남쪽에 조성한 숲이 ‘남숲’이다. 남숲과 북숲을 인위적으로 조성한 이유는 탁 트인 남북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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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일대에 있던 숲. 청주의 북쪽에 조성된 숲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수(北藪)’, ‘봉림(鳳林)’, ‘봉림수(鳳林藪)’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청주의 남쪽과 북쪽에 인공 숲을 조성하였는데, 북쪽에 조성한 숲이 ‘북숲’이고, 남쪽에 조성한 숲이 ‘남숲’이다. 남숲과 북숲을 인위적으로 조성한 이유는 탁 트인 남북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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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2동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기초 능력을 토대로 창의적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 우리 문화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 민주 시민 의식을 가지고 공동체 발전에 공헌하는 사람, 전인적 성장 기반 위에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 폭넓은 교양을 바탕으로 진로를 개척하는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정의·성실·사랑’이다.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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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과 송정동에 걸쳐 있는 공원. 2003년 12월부터 월명공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면적 260,173㎡이다. 흥덕구 봉정사거리에서 북서쪽으로 공단1로와 성봉로 사이에 있는 공원으로 하이닉스반도체 남쪽이고 ㈜정식품의 북쪽이다. 이 지역에는 솔밭공원과 월명공원이 있는데, 자연상태로 보존되어 있으나 나머지는 과수원 등으로 되어 있다.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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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에 조성된 근린공원. 월명공원은 낮은 구릉인 월명산(月明山)[119m] 일대에 조성된 공원이다. 월명산(月明山)[119m]은 산 정산에서 남쪽으로 긴 능선을 형성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능선의 중간 허리에 동서방향으로 도로가 지나면서 공원을 둘로 나누고 있다. 산의 서쪽 기슭에는 월명마을이 있었으나, 지금은 청주산업단지가 둘러싸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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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1동과 봉명2·송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봉황이 운다.’는 의미로 예전부터 봉명이라 칭하였다. 본래 청주군 서주내면(西州內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덕암리(德岩里), 주현리(珠峴里), 상리(上里) 및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의 왕암리(旺岩里) 일부를 병합하여 봉명리(鳳鳴里)라 하여 신설된 청주군 사주면(四州面)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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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에 있는 소나무. 이 소나무는 350년 전 과거에 급제한 기념으로 심은 나무이다. 나무의 수령은 350년 정도로, 높이는 7m 정도이며, 가슴둘레는 2m 정도된다. 현세대의 규범이 될뿐더러 주택지내에 있는 어린이공원에 자라는 입목으로 시민의 정서 함양에 이바지하는 바가 큰 정자목이다. 그 수관이 삼각형 모양을 이루고 나무의 그늘이 넓어 시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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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1동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청 소속의 성당. 청주시의 변두리 지역이었던 서부지역이 신흥 개발지로 발전하게 되자 청주산업단지를 비롯한 많은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인구밀집 지역으로 변모했다. 이의 영향으로 주택지가 형성되고 청주의 부도심의 하나로 부상하면서 청주교구에서는 성당 신설 필요성이 제기됐다. 1980년 7월 사직동본당에서 사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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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송절동에 있는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의 집자리. 흥덕구 봉명동과 송절동 일원에 위치한 청주 봉명동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집자리와 청동기시대의 집자리가 조사되어 청주지역의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의 문화상을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신석기시대 집자리는 청주지역에서 처음으로 조사된 것으로 행정구역상 송절동에 해당하는 봉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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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신봉지구 토지구획 정리사업 지구내의 유적. 청주시 중심부에서 북서쪽으로 약간 치우친 해발 60~115m쯤의 비교적 완만한 구릉지역 일대의 1,001,840㎡을 청주 봉명·신봉지구 토지구획 정리사업지구로 지정하여, 토지구획 정리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조사되었다. 조사는 청주시가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의뢰함에 따라 1993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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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 기상대사거리에서 봉명동 서단 한국국토정보공사 충북본부까지 연결되는 도로. 봉명동 일대를 관통하는 도로이므로 봉명로라 하였다. 동쪽은 예체로에서 시작하여 서쪽은 공단로 및 구룡로에서 끝난다. 폭은 13~15m이며, 편도 1차선의 아스팔트 포장도로이고, 길이는 2,450m이다. 남쪽에는 멀리 사직로가, 북쪽에는 멀리 흥덕로가 동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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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1동에서 개최되는 지역 축제. 봉명제는 축제를 통해 주민들이 화합하고 상부상조하는 미덕을 고취하며 자발적인 참여로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자 2003년 10월 제1회 행사를 개최하였다. 주민자치기관인 봉명동 자치위원회 주관으로 매년 개최하고 있다. 봉명제는 매년 10월에 이틀간의 일정으로 봉명초등학교에서 치러진다. 1일째는 요가와 합기도, 태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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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2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중학교. 성실, 근면, 창의의 교훈 아래 ‘충효인, 실력인, 정보인, 자율인, 정서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삼아 ‘굳센 의지로 알차게 배우며, 바르게 행하는 사람’을 그리는 인간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1986년 10월 24일 봉명중학교 설립인가 되어 1987년 3월 1일 초대 이중세 교장이 부임하여 3월 5일 개교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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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1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자신의 소질과 특기를 계발하여 남과 다르게 가꿀 줄 아는 어린이, 기초능력을 토대로 참신한 사고와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어린이, 다양한 체험학습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미래를 창의적으로 개척하는 어린이, 올바른 생활습관과 알맞은 운동으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를 길러 튼튼하고 슬기로우며 예절바른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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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에는 의병장으로 국권회복운동을 하였으며 3·1운동 때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1907년 의병투쟁에 나선 이후 1910년 5월 일제에 피체될 때까지 충청북도 일원은 물론 경상·강원지역 등 광범한 지역을 무대로 20여회에 걸쳐 격렬한 투쟁을 벌인 중부지방의 후기 의병장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한봉수(韓鳳洙)[1883~1972]는 평민으로 구성된 소규모의 부대를 이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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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에는 의병장으로 국권회복운동을 하였으며 3·1운동 때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1907년 의병투쟁에 나선 이후 1910년 5월 일제에 피체될 때까지 충청북도 일원은 물론 경상·강원지역 등 광범한 지역을 무대로 20여회에 걸쳐 격렬한 투쟁을 벌인 중부지방의 후기 의병장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한봉수(韓鳳洙)[1883~1972]는 평민으로 구성된 소규모의 부대를 이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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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에는 의병장으로 국권회복운동을 하였으며 3·1운동 때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1907년 의병투쟁에 나선 이후 1910년 5월 일제에 피체될 때까지 충청북도 일원은 물론 경상·강원지역 등 광범한 지역을 무대로 20여회에 걸쳐 격렬한 투쟁을 벌인 중부지방의 후기 의병장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한봉수(韓鳳洙)[1883~1972]는 평민으로 구성된 소규모의 부대를 이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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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에는 의병장으로 국권회복운동을 하였으며 3·1운동 때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1907년 의병투쟁에 나선 이후 1910년 5월 일제에 피체될 때까지 충청북도 일원은 물론 경상·강원지역 등 광범한 지역을 무대로 20여회에 걸쳐 격렬한 투쟁을 벌인 중부지방의 후기 의병장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한봉수(韓鳳洙)[1883~1972]는 평민으로 구성된 소규모의 부대를 이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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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사천동에 있는 골짜기. 사천동의 질구지 뒤편에 있는 골짜기이다. 모를 심는 봄이면 이 골짜기에서 황소울음 소리가 자주 나는데 능구렁이가 우는 소리라고 한다. 그리고 이 골짜기에는 뱀이 많다고 한다. 봉작골은 봉작과 골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봉작의 어원은 알 수 없다. 봉자끝, 봉자샘이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봉작은 봉자에 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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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정상동에 있는 마을. ‘봉정’은 한자로 ‘봉정(鳳亭)’으로 쓰고 있는데, 한자풀이로 하면 봉황모양의 정자라는 뜻이다. 마을모양이 봉황이 머물러 가는 형국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국에는 봉정이라는 이름이 많은데, 대부분 봉황과 정자를 내세워 그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마을 뒷산에 큰 바위가 있는데, 봉황의 모양이며, 또는 그 아래에 정자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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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2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스스로 갈고 닦아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능력을, 창의적 사고력과 탐구적인 태도를 신장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고등정신능력을, 조상을 알고 민주시민 생활을 실천하여 나라와 겨레, 고장을 사랑하는 정신을, 건전한 취미와 아름다움을 느끼고 가꿀 수 있는 심성을, 건강과 안전의 기본생활 습관을 익혀 튼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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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일대에 있던 숲. 청주의 북쪽에 조성된 숲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수(北藪)’, ‘봉림(鳳林)’, ‘봉림수(鳳林藪)’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청주의 남쪽과 북쪽에 인공 숲을 조성하였는데, 북쪽에 조성한 숲이 ‘북숲’이고, 남쪽에 조성한 숲이 ‘남숲’이다. 남숲과 북숲을 인위적으로 조성한 이유는 탁 트인 남북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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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있는 산. 봉화산은 것대산(484.0m) 봉수(烽燧)가 있던 산이며 높이는 약 433m이다. 현재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 산107-2번지에 해당한다. 봉화를 올리던 산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쪽의 진천현 소을산(所乙山) 봉수, 그리고 남쪽의 문의현 소이산(所伊山) 봉수와 연결된다. 봉화산 것대봉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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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 ‘샘위’ 북동쪽에 있는 마을. 부동(釜洞)이라고도 하며 골짜기의 지형이 가마솥처럼 생겨서 붙어진 이름이라고 볼수 있으나 그대로 믿을 수 없다. 지명의 선행요소로서 ‘가마’는 대체로 ‘큰’ 의미를 띠고 있고, ‘골’은 골짜기를 의미하므로 ‘가마골’은 ‘큰 골짜기’로 해석할 수 있다. ‘부동’은 ‘가마골’의 한자지명으로써 ‘가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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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15일 아침에 딱딱한 과실을 깨무는 행위 부럼이란 말은 부스럼에서 온 말이다.『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이를 ‘부스럼을 씹다’는 뜻의 ‘작절(嚼癤)’이라 하였고, 또 부럼을 깨물면서 이가 단단해진다고 하여 ‘이를 단단하게 하는 방법’, 즉 ‘고치지방(固齒之方)’이라고 기록하였다. 정월 15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호두, 밤, 잣, 땅콩과 같은 딱딱한 과실을 깨물어 먹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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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과 지동동에 걸쳐 있는 산. 전설에 의하면, 원래 이산은 아양산이라 불렀으나 몽고의 침입 때 이 지방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난을 하였던 바, 이 산은 항상 안개가 끼어 있어 산 밑에서 평지를 노략질하던 적군의 눈에 뜨이지 않아 공격을 받지 않았고 그 결과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성안의 물이 떨어져 사람과 말이 목말라 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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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김우항의 신도비. 조선 숙종 대의 문신인 김우항의 신도비이다. 1964년 10월에 건립한 것으로 비문은 이종만(李種萬)이 짓고, 글씨는 변영인(卞榮寅)이 썼다. 상당구 산성동 청주에서 청원군 미원면으로 가는 국도변 왼쪽 언덕에 있다. 사각의 밭침대 위에 높이 143㎝, 폭 55㎝, 두께 25㎝의 오석(烏石) 비신을 세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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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외북동에 있는 마을. ‘북리’라고도 한다. ‘북리’는 산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붙어진 이름이다. ‘웃골’은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지역의 사람들은 마을이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서 붙어진 이름으로 이해하고 있다. ‘북리’의 동쪽에는 동리의 규모가 크다는 뜻에서 이름이 붙어진 '큰말‘이 있고 서쪽에는 규모가 작다는 ‘작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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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중앙동에 속하는 법정동. 1947년 일본식 동명을 우리식 동명으로 바꿀 때, 이곳에 청주읍성(淸州邑城)의 북문(玄武門)이 있으므로 북문로3가(北門路三街)로 개명하였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북주내면(北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북리(北里)·원리(院里) 일부를 병합하여 본정오정목(本町五丁目)이라 하여 청주면(淸州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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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중앙동에 속하는 법정동. 1947년 일본식 동명을 우리식 동명으로 고칠 때, 이곳에 청주읍성(淸州邑城)의 북문[玄武門]이 있으므로 북문로2가(北門路二街)로 개칭되었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북주내면(北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서리(西里) 및 동리(東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본정사정목(本町四丁目)이라 하여 청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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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성안동에 속하는 법정동. 1947년 일본식 동명을 우리식 동명으로 바꿀 때, 이곳에 청주읍성(淸州邑城)의 북문(玄武門)이 있으므로 북문로1가(北門路一街)로 개칭되었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북주내면(北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서리(西里) 및 동리(東里)의 각 일부를 떼 내어 본정3정목(本町三丁目)이라 하여 청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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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 일대에 있는 재래시장. 청주시는 남북으로 길게 발달된 도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도시의 형국이 배 모양이어서 주성(舟城)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북부시장은 주성의 북쪽에 위치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시장은 다분히 주민의 필요에 따라 1971년 형성된 재래시장이다.1980년대까지는 전성기를 누렸으나 이 역시 대형 할인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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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율량동에 있는 사회복지시설. 청주시 청원구 지역의 종합적인 사회복지 사업을 위해 종합복지센터로 북부종합사회복지관을 건립하고 사회복지법인 선재원이 이를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자비희사의 이념을 바탕으로 종합적인 사회복지 사업을 통해 저소득층의 자립 능력을 배양하여 중산층으로 유도하고, 생산적 복지구현을 통해 지역주민의 연대감을 조성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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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일대에 있던 숲. 청주의 북쪽에 조성된 숲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수(北藪)’, ‘봉림(鳳林)’, ‘봉림수(鳳林藪)’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청주의 남쪽과 북쪽에 인공 숲을 조성하였는데, 북쪽에 조성한 숲이 ‘북숲’이고, 남쪽에 조성한 숲이 ‘남숲’이다. 남숲과 북숲을 인위적으로 조성한 이유는 탁 트인 남북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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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일대에 있던 숲. 청주의 북쪽에 조성된 숲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수(北藪)’, ‘봉림(鳳林)’, ‘봉림수(鳳林藪)’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청주의 남쪽과 북쪽에 인공 숲을 조성하였는데, 북쪽에 조성한 숲이 ‘북숲’이고, 남쪽에 조성한 숲이 ‘남숲’이다. 남숲과 북숲을 인위적으로 조성한 이유는 탁 트인 남북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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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주중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자신의 소질과 특기를 남과 다르게 가꿀 줄 아는 어린이, 조화로운 학력을 갖추어 생각이 깊고 합리적 생활을 하는 어린이, 다양한 학습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미래를 대비하는 어린이, 우리고장의 특수성을 알고 지역발전에 공헌하는 어린이, 민주시민 의식을 익혀 더불어 사는 어린이를 길러 슬기롭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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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에 손병희(孫秉熙)[1861~1922]의 지휘 아래 충청남도 논산에서 전봉준(全琫準)의 남접농민군과 합세하여 우금치전투에 참여했던 동학농민군. 1894년에 독자적으로 활동한 남접(南接)농민군과는 달리 동학 교단의 지시를 받고 무장봉기해서 충청도, 경상도,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 일대에서 활동하고, 통령 손병희의 지휘 아래 논산에서 전봉준의 남접농민군과 합세하여 우금치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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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지북동에 있는 마을. ‘못뒤’는 지북방죽 뒤에 있는 마을이이라는 뜻으로 ‘지북(池北)', ‘북촌(北村)'이라고도 한다. ‘못뒤’는 ‘연못의 뒤’라는 뜻으로, 마을이 연못 뒤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못앞’, ‘못안’, ‘못밖’, ‘못밑’ 등과 같은 지명도 있는데, 이들은 연못을 중심으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느냐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지북(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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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외북동에 있는 마을. ‘북리’라고도 한다. ‘북리’는 산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붙어진 이름이다. ‘웃골’은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지역의 사람들은 마을이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서 붙어진 이름으로 이해하고 있다. ‘북리’의 동쪽에는 동리의 규모가 크다는 뜻에서 이름이 붙어진 '큰말‘이 있고 서쪽에는 규모가 작다는 ‘작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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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서 율량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분고개의 유래나 어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분고개는 ‘분’과 ‘고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국에 분고개라는 고개 이름이 몇 군데 확인된다. 이곳에서는 분고개의 의미가 ‘분토가 는 고개’, ‘분 같은 가루흙이 나는 고개’ 등으로 쓰이고 있다. 이는 분고개의 ‘분’을 ‘분토’ 또는 ‘분(粉)으로 보고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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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분평동에 있는 마을. 분동(粉洞)은 과거의 일곱집매, 집매, 막은골, 안뜸, 웃뜸, 아랫뜸, 샛뜸을 아우르는 큰 마을의 이름이다. 분동은 ’분골‘과 마찬가지로 ’분토(粉土)가 많이 나는 마을‘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그 정확한 어원은 밝혀져 있지 않다. 분동 마을은 잠두봉(蠶頭峰)[101m]의 남쪽 기슭에 위치하며,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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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唐)나라 두보(杜甫)[712~770]의 시(詩)를 언해(諺解)하여 1481년(성종 12)에 을해자(乙亥字)와 을해자병용한글활자로 간행한 책. 중국 당(唐)나라의 시인 두보의 『두공부시(杜工部詩)』를 조선 성종(成宗) 때 홍문관전한(弘文館典翰) 유윤겸(柳允謙)[1420~?] 등이 왕명을 받들어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한 책이다. 두보가 공부원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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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체나 유골을 처리하는 장소 즉, 무덤. 분묘란 흔히 묘 또는 무덤이라도 하고 사체나 유골을 처리하는 장소임과 동시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장소나 시설로 역사적으로 오래된 무덤을 고분이라 한다. 분묘는 각 사회의 장제(葬制)나 또는 내세관과 깊이 관련되어있다. 또 자연환경이나 생업형태, 피매장자의 연령과 성별, 사회적 지위나 신분에 이르기까지 분묘의 형태와 습속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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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에 원평리(院坪里)·대촌리(擡村里)·분동(粉洞) 일부를 병합하여 분동과 원평에서 한 글자씩 따서 분평리가 되었다. 본래 청주군 남주내면(南州內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원평리, 대촌리, 분동 일부를 병합하여 사주면(四州面) 관할이 되었다. 1963년 1월 1일 청원군 사주면이 완전히 청주시에 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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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흥덕구 분평동에 있었던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 걸쳐 조영된 주거지 및 무덤 유적. 한국토지공사 충북지사의 청주 산남3지구 일대에 대한 택지조성공사 계획에 따른 지표조사(1994년) 결과를 바탕으로 발굴조사(2004년)가 이루어졌다. 조사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1기, 삼국시대 돌덧널무덤 1기, 조선시대 널무덤 2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해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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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흥덕구 분평동에 있었던 원삼국시대부터 삼국(백제)시대의 주거시설과 저장구덩이 및 야철지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 한국토지공사 충북지사에서 추진한 청주 산남3지구 일원에 대한 택지 조성 공사와 관련하여 이루어진 1994년도의 지표조사 결과를 토대로 발굴조사(2004년)가 실시되었다. 조사결과 주거지로 추정되는 구덩유구 8기, 저장구덩이로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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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분평동에 위치한 선돌(立石). 고인돌과 함께 큰돌 문화(巨石文化, Megalithic culture)의 한축을 이루고 있는 선돌은 선사시대부터 축조된 것이 발굴결과 밝혀지고 있으나 모든 선돌이 선사시대부터 새워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조사에 따르면 금강권에 있는 선돌은 다른 어느 곳 보다 많이 있다. 금강권의 선돌은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이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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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분평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보건안전에 대한 기초지식과 기능을 익혀 굳센 체력과 의지를 지닌 건강인, 민주시민으로서의 예절과 질서를 익혀 도덕적이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도덕인, 주인의식과 자주성을 길러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 실천하는 의지력을 지닌 자주인,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힘을 길러 실생활에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적용하는 창조인,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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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 불교는 고타마 싯다르타(Gotama Siddhārtha)의 깨달음에 연원한다. 전통적으로 그 깨달음의 내용은 연기(緣起)로 알려져 있다. 일체는 원인과 조건의 의해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는 영원 불변한 독립적 실체로서의 궁극적 실재를 추구하는 기존의 종교·철학에 대한 혁명적 전환의 의미를 갖는다. 그의 사후에도 불교는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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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열나흘과 설날 밤에 주로 하던 놀이. 구멍을 뚫은 깡통에 관솔을 미리 넣어 놓았다가 정월대보름날 달이 떠오를 때 짚으로 불을 붙여 여러 사람이 들로 나가 쥐불놀이를 한다. 논둑을 따라 또는 밭둑을 따라 쥐불이 퍼지다가 내의 둑이나 다리 앞에 이르면 이웃마을에서 놓은 쥐불과 맞닿게 되는데, 이때 대개 쥐불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쥐불싸움은 쥐불을 공중에서 회전시키면서 공격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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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줄여서『직지』는 흥덕사에서 1377년에 금속활자로 간행한 책의 이름이다. 원 제목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이 책의 이름을 줄여서『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직지심체(直指心體)』, 『직지』 등으로 부르고 있다.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주최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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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동에 있는 학생의거 기념탑. 1929년 항일학생운동을 주도한 청주고등보통학교(현재 청주중학교) 학생 7명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71년 11월 3일에 세웠다. 상당구 영동 청주중학교 교정에 있다. 본래의 기념탑은 1971년 11월 3일에 세운 것이나, 현재는 1997년 11월 3일 다시 세운 것이 남아 있다. 지금의 기념탑은 3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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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事蹟)을 기념하기위해 세우는 돌. 비(碑)는 보통 비석 혹은 석비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 까지 석비가 그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전국 곳곳에 많이 남아있다. 석비는 묘비와 탑비·능묘비 외에도 비문의 내용이 알려주는 역사적 사료로서의 금석문의 가치나 서체가 보여주는 서예사적 가치, 그리고 석비의 양식의 변천을 통해 미술사적 가치를 함께 보여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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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事蹟)을 기념하기위해 세우는 돌. 비(碑)는 보통 비석 혹은 석비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 까지 석비가 그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전국 곳곳에 많이 남아있다. 석비는 묘비와 탑비·능묘비 외에도 비문의 내용이 알려주는 역사적 사료로서의 금석문의 가치나 서체가 보여주는 서예사적 가치, 그리고 석비의 양식의 변천을 통해 미술사적 가치를 함께 보여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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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사천동에 있는 내. ‘비끼내’는 ‘비끼’와 ‘내’로 분석된다. ‘비끼-’는 동사 ‘비끼다’의 어간이다. ‘비끼다’는 ‘비스듬히 비치다’를 뜻한다. ‘내’는 신라어 ‘那’(나)·‘川理’(나리ㅎ)에서 기원한 것으로, 일찍부터 지명에 나타난다. 따라서 ‘비끼내’는 ‘비스듬히 흐르는 내’로 해석된다. ‘비끼내’는 지역에 따라서는 ‘빗내’·‘비스내’로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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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에 있었던 마을. 비석거리의 비석은 비석(碑石)이다. 따라서 비석거리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비석을 세워 놓은 큰 길거리를 가리킨다. 이곳의 비석거리는 어느 절도사(節道使)의 비석이 서있던 거리여서 비석거리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의 비석거리는 거리 이름이 아니라 마을 이름으로 쓰인 것이다. 비석거리에 마을이 조성되자 거리 이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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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을사늑약(乙巳勒約) 이후 1905년~1910년 사이에 개화자강파(開化自强派)가 전개한 국권회복을 위한 실력양성운동. 한말의 애국계몽운동은 의병운동과 더불어 국권수호운동의 주요한 두 흐름 중 하나이다. 애국계몽운동은 갑신정변과 독립협회 운동으로 대표되는 개화자강 계열의 민족운동을 이은 것이었다. 을사늑약 체결을 계기로 개화자강 계열의 새 지식인들은 국권회복을 위한 애국계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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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1동에 속하는 법정동. 이 지역은 상당히 넓게 분포되어 있지만, 본래는 부모산 밑에 자리한 피아골이 중심이 된다. 비하동도 피아골이라는 지명을 토대로 하여 만들어진 명칭이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일하면(西江內一下面)에 속해있던 지역이다. 피아골·피하골 등으로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도동(道洞), 동양리(東陽里), 주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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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명은 흥덕구 강서 1동 24통이고, 법정명은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飛下洞) 동양촌(東陽村)이다. 비하동은 시의 서부에 있으며, 동쪽은 복대동, 서쪽은 지동동, 남쪽은 강서동, 북쪽은 향정동과 접해 있다. 본래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일하면(西江內一下面) 지역으로 피아골, 피하골 또는 비하동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도동(道洞) 동양리(東陽里)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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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춘무삼대창의사적비(朴春茂三代倡義事蹟碑)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 탈환에 공을 세운 박춘무(朴春茂)[1544~1611], 이괄의 난·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박동명(朴東命)[1576~1636] 및 손자 박홍규(朴弘遠) 3대의 공적을 기려 1992년 세운 비석이다. 동양촌마을 앞 원모단(遠慕壇)에서 북동쪽으로 100m 지점에 위치한다. 비제(碑題)는 ‘민양공화천당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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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촌의 서낭제는 동제가 아니라 개인 신앙이다. 서낭은 한갓골고개와 용골고개에 있었는데, 그 중 한갓골 서낭을 더 많이 위했다. 한갓골 서낭은 소나무 앞에 돌로 원형 탑을 쌓아 올린 형태로 개인이 고사를 지냈었다고 하며 현재 소멸되었다. 용골고개 서낭은 최근에 소멸되었는데, 10여 년 전만 해도 서낭에 왼새끼에 종이를 꼬아 꽂은 금줄이 쳐 있었다고 한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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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윷놀이는 정월대보름 전에 주로 행하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 실내 실외 어디서든 누구나 가능한 놀이이다. 윷은 주로 밤나무로 만들었고, 가시나무나 소나무로도 만들었다. 밤나무윷은 크기가 다른 윷에 비해 작아 한 손에 들어가 예전에 많이 사용했다고 하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예전에는 동네에 초상이 났을 때 호상(好喪)인 경우 상가(喪家) 마당에서도 윷놀이를 했다. 어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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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촌의 교통은 일제시대에 개설되어 확장된 청주-조치원간 도로, 청주역으로 통하는 도로, 청주시 외곽도로 등과 접해 있어 편한 편이다. 동양촌은 전통적으로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 위주의 1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나 도로의 개통과 택지개발로 인한 도시화로 유입 인구가 증가하여 2, 3차 산업에 종사하는 주민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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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촌은 벼농사를 위주로 생계를 유지하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일제시대에는 부업으로 동네 주민 전체가 인조진주를 생산하기도 하였다. 유리를 달구어 만든 인조진주를 마을의 중간 상인을 통해 조치원 장에 내다 팔아 소득을 올렸다고 한다. 전형적인 농촌 생활상을 보이던 동양촌은 청주의 도시화와 함께 급격히 변하였다. 그 주요인은 도로의 개설과 대단위 아파트단지의 유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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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촌은 부모산(父母山)[232m]의 동쪽 산자락에 위치한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청주-조치원간 도로가 나 있으며, 마을을 서쪽으로 중부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이전에는 일대가 모두 농경지였으나, 최근에 하복대지구가 개발되어 급속히 도시화되어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상가가 들어서고 있다. 동양촌 북쪽 도로가에 아래사양재마을이 있고, 아래사양재 북서쪽 골짜기에는 윗사양재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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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에 기재된 전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본래 부모산은 아양산, 악양산(岳陽山) 등으로 불렸다. 임진왜란 때 박춘무(朴春茂)[1544~1611]가 복대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탈환하고 아양산 마저 탈환하여 그 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박춘무에게 패전했던 왜병이 아양산에는 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산 주위를 포위하고 보급로를 차단하자 그 안에 갇힌 의병들은 보름이 지나자 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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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모두 조산원이나 산부인과에서 출산이 이뤄지지만 예전에는 산파를 불러 집에서 낳았다. 산모의 진통이 시작되면 산파는 방의 자리를 걷고, 미리 추려놓은 짚을 깔고 그 위에 재문지를 깔았다. 아이를 낳으면 탯줄은 산모와 아이 쪽으로 모두 한 뼘씩 남기고 잘랐다. 자른 탯줄과 분비물은 왕겨 속에 넣고 마당에서 삼불을 놓아 태웠는데 이 삼불은 사흘 정도 탔다. 삼불이 다 타 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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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에 있는 초기철기시대 무덤 및 백제시대 생활유적. 1972년 민가조성을 위한 평탄작업 중 한국식동검을 비롯하여 검은간토기, 덧띠토기, 토제가락바퀴 등이 발견매장문화재로 신고 됨으로써 처음 학계에 알려졌다. 그러나 발견당시 곧바로 수습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충북지역에서는 출토례가 없는 귀한 연구·전시자료라는 측면에서 잔존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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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봉사활동을 목적으로 설립된 천주교 청주교구청 소속의 평신도 공동체. 빈첸시오 성인의 정신을 본받아 어떤 처지에서도 주위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근본적인 활동의 동기를 가지며 평신도의 형제적 공동체로써 가난과 나눔의 정신을 기초로 한다. 1961년 6월 교현동 성요셉협의회가 정식 발족되면서 태동됐다. 그해 뉴질랜드 빈첸시오바울로회와 한국 빈첸시오바울로회가 자매결연을 맺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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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에 있는 마을. ‘뿌르뜸’은 ‘뿌르’와 ‘뜸’으로 분석된다. ‘뿌르뜸’ 대신 ‘뿌리뜸’이나 ‘뿔뜸’으로도 부르는 바, ‘뿌르’는 ‘산부리’와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뜸’은 ‘듬’의 변화형으로, ‘冬非’, ‘冬音’, ‘頭無’, ‘渡迷’ 등의 형태로『삼국사기(三國史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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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에 있는 마을. ‘뿌르뜸’은 ‘뿌르’와 ‘뜸’으로 분석된다. ‘뿌르뜸’ 대신 ‘뿌리뜸’이나 ‘뿔뜸’으로도 부르는 바, ‘뿌르’는 ‘산부리’와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뜸’은 ‘듬’의 변화형으로, ‘冬非’, ‘冬音’, ‘頭無’, ‘渡迷’ 등의 형태로『삼국사기(三國史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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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에 있는 마을. ‘뿌르뜸’은 ‘뿌르’와 ‘뜸’으로 분석된다. ‘뿌르뜸’ 대신 ‘뿌리뜸’이나 ‘뿔뜸’으로도 부르는 바, ‘뿌르’는 ‘산부리’와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뜸’은 ‘듬’의 변화형으로, ‘冬非’, ‘冬音’, ‘頭無’, ‘渡迷’ 등의 형태로『삼국사기(三國史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등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