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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있었던 마을. ‘가경골’은 ‘가경’과 ‘골’로 분석된다. ‘가경’은 한자어 ‘가경(佳景)’으로, ‘아름다운 경치나 훌륭한 풍경’을 뜻한다. 전국적으로 ‘가경골’이나 ‘골’을 한자로 바꾼 ‘가경동(佳景洞)’이란 이름이 발견되는데, 이들 대부분은 ‘아름다운 경치’와 관련된다. ‘골’은 고구려어 ‘忽’(홀·골)과 신라어 ‘(촌락)’에서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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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과 죽림동 일대에 조성된 근린공원. 이 공원이 가경동(佳景洞)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공원은 청원군 남이면 일대의 낮은 산지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뻗은 산줄기의 기슭에 위치한다. 공원 동쪽의 얕은 개울은 월천이며, 북쪽으로 흘러 가경천과 합류한다. 공원의 서쪽으로는 황새울방죽과 북쪽으로 홍골방죽이 있다. 이들 방죽에서 흘러나오는 계곡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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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이곳의 경치가 아름답다고 하여 가경골 또는 가경리라 하였다. 본래 청주군 서주내면(西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발산리(鉢山里), 시동리(柿洞里), 홍동(洪洞), 신기리(新基里) 일부를 병합하여 가경리(佳景里)라 명명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되었다. 1963년 1월 1일 청원군 사주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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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주거지 및 유물들이 발굴된 유적. 흥덕구 가경동에 위치한 이 유적은 청주문화방송 신사옥 신축부지 시굴조사를 통해 알려진 유적이다. 조사지역의 동쪽 도로 건너편으로는 경덕중학교와 남쪽으로는 홍골방죽이 위치하고 있다. 조사지역 주변으로는 본래 해발 100m 이내의 구릉성 산지와 구릉성산지 사이의 곡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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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된 유적지. 흥덕구 가경동 홍골마을 뒤쪽으로 해발 75m내외의 낮은 능선이 북-남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여러 줄기의 짧은 가지능선이 뻗어 있다. 능선의 사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서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그리고 능선 끝부분은 평탄하여 논·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유물은 능선 사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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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에서 고려시대에 걸친 유물이 넓게 산포되어 있는 유적. 이 유적은 1990년 충북대학교 박물관이 실시한 지표조사에서 청동기시대~고려시대에 걸쳐 유물이 넓게 산포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에 따라 1995년 10월 22일부터 11월 20일까지 가경동 363-9번지 일대에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흥덕구 가경3지구 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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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2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중학교. 예절과 질서를 존중하고 나라와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 스스로 개척하고 책임을 다하는 사람, 창의력을 지닌 지적이고 탐구적인 사람, 정보사회를 주도하는 지식과 품성을 지닌 사람, 몸과 마음이 튼튼한 사람을 길러 도덕성을 갖춘 실력 있는 가경인을 육성한다. 1991년 5월 3일 가경중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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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석실리와 석판리에서 발원하여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과 복대동 사이를 흐르는 하천. 이 하천은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석실리와 석판리에서 발원하여 석남천과 구릉지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북류하여 흐르면서 음달, 양달, 돌로돌, 서당골, 검디 등지를 거쳐 흥덕구 죽림동의 석굴러굴, 대산과 월천에 이르고 이곳에서 망월산의 북사면을 흘러 성화동을 흘러내린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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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예의바르고 정직한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재능 있고 능력 있는 어린이, 스스로 노력하는 자주적인 어린이, 창의적이고 지혜로운 어린이를 길러 바르고, 참되며, 슬기로운 어린이를 육성한다. 1991년 3월 21일 가경국민학교로 설립인가 되었고, 1992년 3월 1일 개교하였다. 초대 교장은 박종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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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로149번길 24-2[가경동 1265] 일대에 있는 재래시장. 가경동(佳景洞)은 청주군 서주내면(西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인데 청주시가 서쪽으로 확장되면서 청주시로 편입되었다. 동네 이름으로는 ‘가경골’이라 부르는데 이는 경치가 아름답다는 ‘가경(佳景)’에서 유래되어 그대로 가경동(佳景洞)이 된 듯 하다. 가경골은 ‘안 가경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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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의 육거리시장 안의 가구점 골목의 옛 이름. ‘약전’은 약을 파는 가게라는 뜻으로 이 골목에는 한약방이 많았고 특히 ‘청주장’이 서는 2일과 7일에는 한약재 매매가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약전’이라는 명칭은 이로써 생겨난 것이고 약전이 특별히 골목 안에 형성되자 ‘약전골목’이라고 한 것이다. 1890년 지방의 발전책으로 청주약령시로 개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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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전동 동쪽에 있는 마을. 일명 ‘추동(楸洞)’이라고도 한다. 가래나무가 많아서 붙어진 이름이며, 또한 개 크기 만한 금덩이가 있어서 붙어진 이름 등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신빙성은 없다. 전국에 ‘가래울’이라는 마을이 많은 데 대부분이 ‘가래나무가 많은 골짜기’로 설명할 수 있다. ‘가래울’은 ‘가라골’이 ‘가래골’로 변화하고 이어서 ‘가래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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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석소동에 있는 들. ‘가랫들’은 ‘가래’와 '들'이 사이시옷을 매개로 결합된 어형이다. ‘가래’를 ‘가래나무’나 ‘농기구 가래’와 관련짓는 견해가 있으나 재고되어야 한다. ‘가래'는 ‘갈라짐[分岐]’을 뜻하는 중세국어 ‘가’·‘가’과 관련된다. ‘가’는 일찍부터 지명에 나타나니,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4 의 고대 지명 ‘가락(加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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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 ‘샘위’ 북동쪽에 있는 마을. 부동(釜洞)이라고도 하며 골짜기의 지형이 가마솥처럼 생겨서 붙어진 이름이라고 볼수 있으나 그대로 믿을 수 없다. 지명의 선행요소로서 ‘가마’는 대체로 ‘큰’ 의미를 띠고 있고, ‘골’은 골짜기를 의미하므로 ‘가마골’은 ‘큰 골짜기’로 해석할 수 있다. ‘부동’은 ‘가마골’의 한자지명으로써 ‘가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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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에 있는 골짜기. ‘가세골’은 ‘가세’와 ‘골’로 분석된다. ‘가세’는 ‘갓’의 충북 방언이다. ‘갓’은 ‘’에서 기원한 것으로, ‘가장자리’를 뜻한다. 지명에서 ‘갓’은 ‘갓’ 외에 ‘가’·‘가세’·‘가자’·‘가재’ 등으로도 나타난다. 특히 ‘가재골’에서와 같이 ‘가재’로 나타날 경우 절지동물 ‘가재’와 관련시키거나, ‘각골’에서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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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에 있는 골짜기. ‘가세골’은 ‘가세’와 ‘골’로 분석된다. ‘가세’는 ‘갓’의 충북 방언이다. ‘갓’은 ‘’에서 기원한 것으로, ‘가장자리’를 뜻한다. 지명에서 ‘갓’은 ‘갓’ 외에 ‘가’·‘가세’·‘가자’·‘가재’ 등으로도 나타난다. 특히 ‘가재골’에서와 같이 ‘가재’로 나타날 경우 절지동물 ‘가재’와 관련시키거나, ‘각골’에서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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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에 있는 골짜기. ‘가세골’은 ‘가세’와 ‘골’로 분석된다. ‘가세’는 ‘갓’의 충북 방언이다. ‘갓’은 ‘’에서 기원한 것으로, ‘가장자리’를 뜻한다. 지명에서 ‘갓’은 ‘갓’ 외에 ‘가’·‘가세’·‘가자’·‘가재’ 등으로도 나타난다. 특히 ‘가재골’에서와 같이 ‘가재’로 나타날 경우 절지동물 ‘가재’와 관련시키거나, ‘각골’에서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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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골짜기. ‘가운데골’은 ‘가운데’와 ‘골’로 분석된다. ‘가운데’는 ‘일정한 공간이나 사물의 안쪽 부분’을 뜻한다. ‘골’은 고구려어 ‘忽’(홀·골)과 신라어 ‘’에서 기원한 것으로, ‘골짜기’나 ‘마을’을 뜻한다. 물론 본 예는 ‘골짜기’를 뜻한다. 그렇다면 ‘가운데골’은 ‘가운데에 있는 골짜기’로 해석된다. 전국적으로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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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8월 15일로, 우리나라 고유 명절의 하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 유리왕(儒理王) 9년 나라 안 6부(六部)의 부녀자들을 두 편으로 가르고 두 왕녀를 각각 우두머리로 삼아 음력 7월 기망(旣望 ; 16일)부터 한 달 동안 베를 짜게 하고, 마지막 8월 15일에 승부의 판정이 나면, 진 편에서 이긴 편에 음식을 대접하고 「회소곡(會蘇曲)」을 부르며 밤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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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서 1946년 10월에 있었던 3.1운동 이래 최대 규모의 농민·시민봉기. 미군정에서는 미곡소매의 최고가격을 정해서 미곡유통을 통제했고, 도시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농촌지역의 쌀을 강제로 수집하는 방침을 각 시·군에 시달했다. 이른바 '미곡수집령(미곡공출)'을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미군정 당국에서 의도했던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즉, 도시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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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에 있는 마을.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신문왕 9년 청주에 서원경을 두고 성을 축조하여 재발 가능성 있는 북방의 내습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 후 혜공왕 6년에 왕이 서원경을 순행하게 되었다. 왕이 순행한다는 전갈을 받은 성주는 왕을 맞을 준비를 해 놓고 요로에 연락군을 파견하여 왕의 행차과정을 파악하고 있었다. 혜공왕이 조항산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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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를 중심으로 그 근친인 혈연자가 주거와 경제적 협력을 같이하는 생활공동체.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은 같은 사회 안에서도 세대별로 다르고, 같은 가족 안에서도 성과 연령에 따라 다양하며, 사회·계층적 지위에 따라 가족들이 누리는 삶의 경험이나 기회도 달라질 뿐 아니라 가족이 믿는 종교나 거주지역에 따라서도 가족 경험의 폭이 달라지기 때문에 가족과 가족관계의 실상을 찾아내기는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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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에 있는 마을.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신문왕 9년 청주에 서원경을 두고 성을 축조하여 재발 가능성 있는 북방의 내습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 후 혜공왕 6년에 왕이 서원경을 순행하게 되었다. 왕이 순행한다는 전갈을 받은 성주는 왕을 맞을 준비를 해 놓고 요로에 연락군을 파견하여 왕의 행차과정을 파악하고 있었다. 혜공왕이 조항산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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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동막동에 있는 들. ‘갓골’의 변형이다. ‘갓골’은 ‘가장자리에 있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각골’은 ‘골짜기가 아니라 들 이름’으로 쓰인 것이다. 골짜기에 형성된 들을 골짜기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가장자리에 있는 골짜기’를 ‘가골’, ‘각골’, ‘갓골’ 이외에도 ‘가장골’, ‘가세골’ 등으로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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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성화동에 있는 골짜기. ‘각골’은 ‘갓골’의 변형이다. ‘갓골’의 ‘갓’은 가장자리의 뜻이다. ‘갓골’은 ‘가장자리에 있는 골짜기’로 보면 된다. 골짜기가 긴밭재마을에서 보아 남쪽으로 맨 가장자리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성화동 도로변의 긴밭재 앞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서부도로를 따라 오송 방향으로 가다가 성화동에서 남쪽으로 장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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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갈아 만든 일상생활용 도구나 무기. 마제석기라고도 한다. 신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유물로 일부 또는 전체를 갈아 만든 석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BC 5000년경의 신석기시대 전기의 유적으로 알려진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鰲山里) 유적에서부터 낚싯바늘, 돌칼 등의 간석기가 출토되고 있다. BC 4000~3000년경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평안남도 온천군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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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에 있는 교육관련 공익법인. 인재 양성을 위하여 학자금과 장학금 지급, 학문발전을 위하여 연구비의 지급과 불우한 이를 돕는 일을 전개하여 국가 발전에 기여할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97년 7월 17일 권태성을 중심으로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에서 재단법인 간송문화재단의 법인과 정관, 정관시행세칙 및 수혜자 지급 규정안을 통과시켜 간송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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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있는 마을. 일명 ‘시동(枾洞)’이라고도 하며 마을에 감나무가 많아서 붙어진 이름이다. 이곳은 토양과 기후조건이 감나무가 자라기에 알맞다고 한다. ‘시동’은 ‘감나무골’을 한자화한 지명이다. 지역에 따라서 ‘감나무골’을 ‘시목동(枾木洞)’으로 한자화하기도 하고, ‘감나무골’은 지역에 따라서 ‘감나뭇골’ 또는 줄여서 ‘감남골’. ‘강낭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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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는 감동관(監董官) 이기상(李基相)의 불망비. 이기상이 근본에 힘써서 백성을 다스린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1901년에 세운 비석이다. 우암산 순환도로 삼일공원에서 청주대학교 가는 길 오른쪽 언덕 비선거리 7기의 비석 중 왼쪽부터 네 번째이다. 높이 142㎝, 폭 46㎝ 두께 27㎝ 비신(碑身) 위에 지붕돌[가첨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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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교회의 요한 웨슬레(John Wesley)가 창시한 개신교 교파. 감리교는 영국의 요한 웨슬레가 1730년대 회심경험(回心經驗)을 한 후 야외 설교를 중심으로 한 전도 운동에 힘을 쏟아 미국 서부 개척지에서 큰 반응을 얻었다. 감리교는 요한 웨슬레 사후에 독립된 교파로 출발하였는데 여기에는 그의 제자들이 미국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전도 활동을 한 결과가 바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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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청일전쟁 후 1894년 7월에서 1896년 2월까지 3차에 걸쳐 추진된 일련의 개혁운동. 갑오경장(1894~1895) 이후 대한제국의 국권상실까지 약 15년간은 서울과 지방의 전 지역이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청주지역도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었다. 청주도 1895년에서 1896년 사이에 공주부에 편제되었다가 충청북도로 개편되었다. 갑오경장 추진 배경의 하나는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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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청일전쟁 후 1894년 7월에서 1896년 2월까지 3차에 걸쳐 추진된 일련의 개혁운동. 갑오경장(1894~1895) 이후 대한제국의 국권상실까지 약 15년간은 서울과 지방의 전 지역이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청주지역도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었다. 청주도 1895년에서 1896년 사이에 공주부에 편제되었다가 충청북도로 개편되었다. 갑오경장 추진 배경의 하나는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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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에 있었던 마을. 일명, ‘관곡’이라고도 한다. ‘갓골’의 ‘갓’은 가장자리의 뜻이다. 골짜기가 산의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골짜기에 마을이 형성되자 골짜기 이름을 따서 마을도 ‘갓골’이라고 한것이다. 위산양재 남쪽에 있는 마을로 중부고속도로의 오른편이며, 제2순환도로의 왼편에 해당된다. 청주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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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청주지역의 육영 사업가. 학교법인 서원학원(西原學園)을 설립하여 운영한 육영 사업가이다. 본관은 신천(信川)이며, 호는 운호(雲湖)이다. 아버지는 강병열(康秉烈), 어머니는 청주한씨(淸州韓氏)이다. 부인은 임관익(任寬益) 여사이며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1917년 평안남도 용강군 서화면 용상리에서 강병열의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소학교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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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에 있는 운호재단 설립자 강기용(康基用)[1917~1978]의 공적을 기리는 사적비. 학교법인 운호재단의 설립자인 강기용의 육영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76년 9월 회갑을 맞아 후손들이 세운 사적비이다. 흥덕구 모충동의 서원대학교 내에 있다. 높이 181㎝, 폭 65㎝, 두께 32.5㎝ 의 오석(烏石)의 비신 위에 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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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에 있는 마을. 강당말은 ‘강당’과 ‘말’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강당’은 강의를 하는 큰집이다. 다시 말해 주성강당(酒城講堂)을 말한다. 주성강당(酒城講堂)은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영정을 모신 목은영당 내에 있다. 이것은 평소 학동들의 교육장소로 이용되었다. 강당 자체가 마을이름으로 쓰이며, 전국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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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화계동에 있는 강득룡(姜得龍)과 부인 경주김씨(慶州金氏)의 충렬각. 「충렬문기(忠烈門記)」에 의하면 강득룡은 병자호란 때 공을 세운 인물로 1654년(효종 5)에 부인 경주김씨와 함께 충렬문이 명정되었고, 1719년(숙종 45)에 증질되었다. 지금의 충렬각은 1980년 3월에 진주강씨 문중에서 중건한 것이다. 흥덕구 화계동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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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열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그의 남편 강득룡(姜得龍)이 출전(出戰)하매 그의 옷에다 실로 십(十)자 표시를 해두었다. 남편이 전사하자, 그녀가 표시한 것을 증거로 남편의 시체를 찾아 장례를 예법대로 치렀다. 그 후 청상으로 기거하면서 시부모를 섬김에 효를 다하고, 정절을 지키며 수절하니 이웃 사람들의 칭찬이 끊이질 않았다. 효종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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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숙구(叔久), 호는 설봉(雪峯)·한계(閑溪)·청월헌(聽月軒)이다. 강인(姜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운상(姜雲祥)이고, 아버지는 강주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김응서(金應瑞)의 딸이다. 부인은 김광수(金光燧)의 딸 안동김씨(安東金氏)이며, 아들 강선(姜銑)과 강현(姜鋧)도 문과 출신이다. 1627년(인조 5) 정시문과에 을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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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명으로는 흥덕구 강서 1동 14통이고, 법정명으로는 수의동 강촌이다. 수의동은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일하면(西江內一下面)의 지역으로 절의를 지킨 사람이 많은 마을이라 하여 수의동(守儀洞)[수절, 숫절]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강상리(綱常里), 부동(釜洞), 정상리(井上里)를 병합하여 수의리(守儀里)로 강서면(江西面)에 편입된 후, 198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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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의 최서단에 위치한 마을로 마을 전 지역이 낮은 구릉지이며 마을 뒤로 낮은 야산이 자리 잡고 있다. 강상마을 뒤로 먹뱅이산이 자리 잡고 있고, 마을 앞 국도 건너에 강상들이 펼쳐 있다. 마을 주민들은 강상들과 마을 서편의 경부고속도로 쪽, 옥산 쪽으로 펼쳐져 있는 학천들에서 벼를 경작하며 생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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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마을은 농촌 마을이기 때문에 봄에서 가을까지 농사를 짓고, 겨울에는 경로당에 모여서 쉬며 지낸다. 농사는 벼농사를 주로 한다. 기계로 경작하기 때문에 일손이 많이 가지 않아 연로한 주민도 농사를 짓고 있으며, 밭농사는 자급할 정도만 짓는다. 강상마을은 여산송씨(礪山宋氏) 집성촌이다. 따라서 종중 일에 동네 주민 모두가 합심하여 참석한다. 1년에 6번 충렬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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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래부사 송상현 충렬사(東萊 府使 宋象賢 忠烈祠)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 산 1-5에 위치한다. 충렬사는 임진왜란 때 순국한 동래부사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을 제향하는 사당이다. 선조 28년(1595) 동래에 있던 묘소를 지금 위치로 이장하고, 광해군 2년(1610)에 창건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1980년에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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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마을 주민들은 강서초등학교가 생기면서 근대식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가까이에 현암초등학교와 강서초등학교가 있으며, 이 마을 아이들은 대부분 강서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중학교는 1970년대까지 청원군 강내면 미호중학교에 다녔으나, 1983년 청주시에 편입된 후로 청주 전 지역의 학교를 대상으로 배정받는다. 대부분 마을에서 가까운 충북대학교 부설중학교와 서원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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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마을은 70여 년 전까지 마을에서 1㎞ 떨어진 묵방산 봉우리에서 산신을 위했다. 묵방산 봉우리 밑 평평한 터에 음력 3월 초중 택일하여 유교식 절차에 맞춰 제를 올렸다. 택일은 대개 3월 초정일(初丁日)로 하였다. 제를 올리던 묵방산 봉우리를 강상마을 사람들은 지질봉(제일봉)이라고도 부른다. 택일과 함께 산제를 주관하는 제관과 축관을 생기복덕에 맞춰 선출하였다.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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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에 자리를 걷고 짚을 정갈하게 깔고 출산한다. 탯줄은 산파가 잘라 흰 무명실로 마무리한다. 잘린 탯줄 등은 마당에 구덩이를 파고 왕겨 속에 집어넣고 태운다. 탄 재는 인근 개울가에 가서 띄워 보낸다. ◦ 금줄 딸을 낳으면 솔가지와 숯을 꽂아 대문 앞에 치고, 아들을 낳으면 숯과, 고추를 꽂아 금줄을 친다. 기간은 개인적으로 차이가 나지만 대개 일주일 정도 쳤다. ◦ 삼밥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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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 일찍 일어나 나무 아홉 짐 하고, 아홉 집에서 밥을 얻어먹어야 좋다고 해서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 놓고 밥을 얻어먹는 것을 아홉 번 했다고 한다. 해지기 전에 아홉 짐을 하려면 부지런히 해야 했다. 또한 이 날은 끼니 없이 밥을 먹는 날이고 동네 집집에서 밥을 다 얻어먹을 수 있는 날이다. 그리고 열 나흗날에는 ‘일 년 열두 달 액운이 밥에 다 떠나간다’고 해서 잡곡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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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놀이는 한 해 중 특히 정월에 많이 한다. 남녀를 불문하고 편을 가르거나 개인별로 윷을 논다. 집 안에서 하기보다는 마당에서 멍석을 펴 놓고 한다. 지금도 정월이 되면 마을 회관 마당에 멍석을 펴 놓고 상품을 사다 걸고 내기를 한다. 주로 강상들 논에 물을 대어 썰매장을 만들어 놀았다. 물을 많이 대 수심이 깊을 경우는 숨구멍이 있어 그곳을 지나가면 얼음이 깨져 물에 빠져 옷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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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천곡(泉谷)할아버지의 출생지는 서울 황하방인데, 지금 그 위치는 정확하게 어딘지는 모르겠어. 내가 알고 있는 이유는 할아버지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천곡 선생의 부친이 서울에 살고 있다는 기록이 있어요. 할아버지가 사신 곳은 현재로는 전라도 정읍시 망재동 마을인데 거기가 천곡이야. 그래서 호가 천곡이구, 거기를 샘골이라 부르기도 해. 임진왜란 때 일본이 명나라를 치러갈 때 목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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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거라 자거라 귀여운 아기야 꽃속에 잠드는 꽃나비 같이 고요히 잠 들고 꿈나라 가거라 우리아기 잘자라 잠잘 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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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으로 청주와 조치원 간의 국도-일명 청주가로수길-가 개통되어 있어 자가용을 가진 사람은 교통이 편한 편이다. 청주-조치원 간 대중교통 편인 버스가 20분 간격으로 다니고 있다. 마을의 주 산업은 논농사이다. 논농사 중 메벼 농사를 주로 짓고, 밭작물은 콩과 깨, 고추 등으로 자급용이다. 벼의 출하는 2004년까지 주로 농협과 정부수매를 했다. 이외 다른 방법은 방앗간에 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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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마을은 관광객보다는 유적 탐방, 답사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강상마을을 찾아오는 이들 중 학생들은 주로 비석을 탁본하거나, 2004년에 개관한 천곡유물전시관을 찾아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그 외 유적을 돌면서 역사탐방을 목적으로 한다. 이외 일반인들은 문화답사를 목적으로 하여 이 마을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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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마을. 강촌(綱村), 강상촌(綱常村), 강상리(綱常里) 등으로 불리고 있다. 삼강오상(三綱五常)의 정문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강상촌(綱常村)’이라 줄여 부르다가 ‘강촌(綱村)’이라 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전국에는 ‘강촌’이라는 지명이 널리 분포하고 있는데, 대부분 냇가나 강가에 접한 마을을 가르킨다. 그렇다면 이곳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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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마을. 강촌(綱村), 강상촌(綱常村), 강상리(綱常里) 등으로 불리고 있다. 삼강오상(三綱五常)의 정문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강상촌(綱常村)’이라 줄여 부르다가 ‘강촌(綱村)’이라 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전국에는 ‘강촌’이라는 지명이 널리 분포하고 있는데, 대부분 냇가나 강가에 접한 마을을 가르킨다. 그렇다면 이곳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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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에 속하는 교회. 1928년 3월 15일에 창립되었는데, 일제의 탄압가운데서도 당시 보은군수를 역임하고 청주제일교회의 장로였던 손현수(孫顯秀)가 자신의 소유인 청원군 강서면 용정리(지금의 강서동)에 잠실을 마련하였다. 이곳에서 청주선교부의 선교사를 초빙하여 예배를 보게 되었다. 1930년 11월에 용정리 123번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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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1동에 속하는 법정동. 동명의 유래는 마을 앞에 용이 승천하였다는 큰 우물이 있어 샘미마, 용정이라고 하였다. 강서동은 본래 청주군 서강내일하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에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중암리, 석담리, 봉산리, 호암리, 반송리 일부와 주봉리 일부를 병합하여 용정리라 명명하고 강서면에 편입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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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동에 있는 팽나무. 수령은 약 200년 가량 되었으며, 높이는 15m, 흉고둘레는 1m 정도이다. 팽나무의 특성상 그 자람이 더디어 수세가 크게 확장되지는 못하였으나, 주변에 있는 은행나무나 향나무와 비교하면 그 수세가 수려하고 나무의 수관이 원추형을 하고 있다. 팽나무는 낙엽활엽교목으로 저지대의 숲 속에 드물게 자라는 나무로 주로 마을 주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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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동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의 성당. 1993년 5월 복대동 성당에서 신자 600명이 분가하여 나오며 만들어졌다. 초대 주임 서정혁 신부가 흥덕구 강서동 대림아파트 2동에서 첫 미사를 올렸다. 1994년 8월 현 위치에 146평 규모 조립식 건물을 짓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1995년 성전건립위원회를 결성하여 2000년 5월 현재의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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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원평동에 있는 홍재봉(洪在鳳)의 비석. 강서면장(江西面長)을 지낸 홍재봉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홍재봉은 까치내보[鵲川洑] 공사 및 식량증산에 많은 공적을 쌓았다. ‘1956년 7월 몽리자일동(蒙利者一同)’의 이름으로 세웠다고 되어 있으나 비석의 상태로 보아 최근에 다시 세운 것으로 보인다. 청주시 흥덕구 원평동에서 청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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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자주적인 생활과 민주시민의 자질을 익혀 나라사랑의 정신을, 예절과 질서·근검절약을 생활화하여 공동체의식을, 체육의 기초능력을 습득하여 조화로운 심신을,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익혀 자주적이고 창의적인 학습력을, 자연현상에 대한 과학적인 사고와 합리적인 문제 해결력을,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소질과 취미를 계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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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 눈 등이 지상에 내린 것의 전체량. 청주는 연평균강수량이 1,225.1㎜로 다우지에 속하며, 강수량의 경년변동은 심한 편이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작은 편이다. 강수량의 계절 분포 역시 편중이 심하여 여름철에 연강수량의 56.4%가 집중되고 있다. 다우기인 여름철에도 특정일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집중호우가 잦다. 1995년 8월 25일에는 하루에 293.0㎜가 내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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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여수(汝垂), 호는 옥계(玉溪)이다. 강극성(姜克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종경(姜宗慶)이고, 아버지는 현령 강진명(姜晉眳)이며, 어머니는 안봉(安鳳)의 딸 충주안씨이다. 부인은 박유헌(朴由憲)의 딸 함양(咸陽)박씨이다. 1649년(인조 27)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에 소속되었다. 승정원 주서와 성균관 전적 및 병조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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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마을. 강촌(綱村), 강상촌(綱常村), 강상리(綱常里) 등으로 불리고 있다. 삼강오상(三綱五常)의 정문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강상촌(綱常村)’이라 줄여 부르다가 ‘강촌(綱村)’이라 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전국에는 ‘강촌’이라는 지명이 널리 분포하고 있는데, 대부분 냇가나 강가에 접한 마을을 가르킨다. 그렇다면 이곳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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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석소동에서 수의동으로 가는 길에 있는 다리. 일명 수석교(守石橋)라고도 하는데 이는 수석천(守石川)에 놓인 다리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석천(守石川)은 수의동과 석소동의 사이를 흐르는 하천으로 수의동의 ‘수’와 석소동의 ‘석’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석소동은 돌이 많은 지역이어서 ‘돌쇠’, ‘돌세’ 또는 석소(石所)라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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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장암동에 있는 골짜기. ‘개미실’은 ‘개미’와 ‘실’로 분석된다. ‘개미’는 ‘신(神)’의 뜻인 ‘’에서 기원한 것으로, ‘크다’나 ‘높다’를 뜻한다. ‘’은 지명에서 ‘감’, ‘검’, ‘금’, ‘가마’, ‘가매’, ‘고마’, ‘가미’, ‘가무’, ‘개마’, ‘개매’, ‘개미’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특히 ‘개미’의 경우 ‘감’에 조음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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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종교 개혁의 결과 로마가톨릭에서 분리하여 성립된 그리스도교의 분파. 로마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와 함께 그리스도교의 3대 분파를 이룬다. 로마가톨릭에 저항해서 독립하였기에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 칭한다. 로마가톨릭은 15세기를 전후로 하여 많은 폐단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특히 16세기에 들어 성베드로 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판매한 면죄부 파동이 계기가 되어 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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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과 가경동(佳景洞)을 연결하는 다리. 2001년 준공된 다리로서 세 개가 있다. 개신1교는 총연장 33m, 폭 19m이며, 상행선과 하행선 각각 2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개신2교는 총연장 32m, 폭 19m이며, 현재 보행자용으로만 이용한다. 개신3교는 총연장 30.5m, 폭 19m이며, 상행선과 하행선 각각 1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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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성화·개신·죽림동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청주군 서주내면(西州內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동리(東里), 백현리(栢峴里), 신기리(新基里), 화제리(華弟里), 죽천리(竹川里) 각 일부를 병합하여 개신리라 하여 신설된 청주군 사주면(四州面)에 편입되었다. 1963년 1월 1일에 청원군 사주면이 완전히 청주시에 편입될 때, 개신리도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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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기와가마터[瓦窯址]. 청주 개신지구 택지개발 과정에서 확인되어 1998년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발굴되었다. 와요지[瓦窯址]는 택지개발지역 남쪽으로 치우친 해발 53m의 낮은 구릉사면부에 위치하며, 경작과정에서 유구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연소실·소성실 및 벽면 일부만이 남아 있었다. 낮은 구릉사면의 풍화암반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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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에서 구석기시대 만들어진 마줏날 긁개가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물산포지. 충북대학교 농과대학과 여학생 기숙사 사이의 얕은 구릉지에서 마줏날 긁개가 채집되어 구석기유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흥덕구 개신동 충북대학교 농과대학과 여학생 기숙사 사이의 얕은 구릉지에 위치한다.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마줏날 긁개의 돌감은 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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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된 유적지. 충북대학교 약학대학과 북말마을 사이에는 과수원과 밭이 있는데, 유물이 채집된 것은 약학대학 앞(남쪽)의 밭일대이다. 여기에서 석영을 돌감으로 하여 잘 손질한 사냥돌 등의 석기유물이 채집되었다. 흥덕구 개신동 죽말 충북대학교 약학대학과 북말마을 사이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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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움집터와 조선시대의 건물지·움집터·기와가마터·움무덤 등 생산·생활·매장유구가 있는 복합유적. 대한주택공사가 시행하는 청주 개신지구 택지개발(면적 451,381㎡) 과정에서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충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조사(1996)·시굴조사(1997)·발굴조사(1998)를 실시하였다. 53~60m의 낮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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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개신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기본예절과 질서를 익혀 바르게 행동하는 태도를, 정보 활용능력을 신장시켜 탐구적인 과학생활태도를, 보건과 안전에 대한 기초지식을 배우고 익혀 건강한 몸과 마음을, 기초기본 학습능력과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 신장을 통해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처리하는 능력을, 근검·절약생활의 실천으로 삶의 지혜를 길러 바르고 건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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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읍성의 동쪽 문이 있던 자리. 청주읍성(淸州邑城)의 동문터는 개인문(開寅門 혹은 闢寅門)이라하였으며, 1910년대에 이른바 시구(市區) 개정사업 때 헐리었다. 동문의 안쪽에는 감옥과 용두사지(龍頭寺址) 철당간이 가까이 있었고, 홍살문을 지나는 큰 길이 청주목 관아와 연결되었으며, 문밖에는 잉어배미라 불리던 논과 그 동쪽으로 문외리 마을이 있었다. 성문 밖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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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에 있었던 들. 곡개들은 ‘고개’와 ‘들’로 나누어진다. ‘곡개’는 고개(嶺)의 ‘ㄱ’첨가 어형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곡개들은 ‘고개들’의 변형으로 이해된다. 실제로 곡개들이 밤고개라는 고개 뒤쪽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보면 ‘고개들’이라는 지명이 잘 어울린다. 한편, 설득력은 약하지만 곡개들의 ‘곡’은 한자로 ‘굽다’는 뜻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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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정봉동에 있는 고개. ‘갱치고개’는 1차적으로 ‘갱치’와 ‘고개’로 분석된다. ‘갱치’는 다시 ‘갱’과 ‘치(峙)’로 나뉘는데, ‘갱’의 어원을 분명히 밝히기는 어려우나 추정은 가능하다. 지역에 따라서는 ‘강티’나 ‘강치’가 존재하므로, ‘갱치’의 ‘갱’을 ‘강(江)’의 변화형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갱골’이 ‘개양골’로 나타나는 지역이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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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중앙공원(中央公園)내에 있는 비석 대좌. 청주시내 중심가인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중앙공원(中央公園)내 동쪽편 아래 화단에 ‘목사 이경여(李敬輿)[1585~1657] 선정비(牧使 李敬輿 善政碑)’가 있다. 그리고 이 선정비 오른쪽으로 15m 되는 지점에 머리를 서쪽으로 한 거북대좌가 1기(基) 남아 있다. 거북대좌 윗부분에 비석(碑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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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과 청원군 낭성면에 걸쳐 있는 산. ‘것대산(484.0m)’은 옛 문헌에 ‘거차대산(居次大山)’ 또는 ‘거질대산(居叱大山)’ 등으로 차자되어 나온다. 즉, ‘居次大’나 ‘居叱大’는 모두 ‘것대’로 재구성되어 불린 것이다. ‘거질대산’은 ‘거질대(居叱大)’의 ‘질(叱)’이 차자표기에서 ‘ㅅ’의 표기인 줄을 모르고 음으로 읽은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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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15광복 후 여운형(呂運亨)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최초의 건국준비단체. 온건좌파 여운형 측이 해방 전에 조직하였던 ‘건국동맹’을 모체로 발족시켜 정치범을 석방하고 치안대를 조직하여 활동을 개시하였다. 약칭 ‘건준(建準)’이라 한다. 일제가 패망한 1945년 8월 15일 조선에서는 민족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어 8월 말까지 전국에 145개에 이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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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입상리에 있는 항공기 안전 운항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 기관. 서울지방항공청은 항공안전 확보와 편리한 항공 수송을 위하여 수도권, 강원도, 충청도 및 전라북도에 위치한 공항(인천공항, 김포공항, 양양공항, 원주공항, 군산공항, 청주공항)의 민간항공기 관제, 비행정보, 항공기 검사 및 안전 운항과 항행 안전 시설의 신설,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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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현암동에 있는 마을. ‘검배’, ‘현암’이라고도 한다. ‘검은 바위’는 옛 현암초등학교 옆에 있는 바위로서 바위가 검은 색을 띠고 있어서 붙어진 이름이다. 전국에는 ‘검은 바위’ 또는 ‘검은 바우’라는 바위이름이 널리 분포한다. ‘검배’는 ‘검바위’가 줄어든 어형으로 ‘큰 바위’ 또는 ‘검은 바위’ 등으로 해석된다. ‘현암’은 현암(玄巖)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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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현암동에 있는 마을. ‘검배’, ‘현암’이라고도 한다. ‘검은 바위’는 옛 현암초등학교 옆에 있는 바위로서 바위가 검은 색을 띠고 있어서 붙어진 이름이다. 전국에는 ‘검은 바위’ 또는 ‘검은 바우’라는 바위이름이 널리 분포한다. ‘검배’는 ‘검바위’가 줄어든 어형으로 ‘큰 바위’ 또는 ‘검은 바위’ 등으로 해석된다. ‘현암’은 현암(玄巖)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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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과 명암동 사이에 있는 고개. 상봉고개와 상봉재는 ‘상봉’과 ‘고개’ 및 ‘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상봉은 그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의 산이라는 뜻으로 전국의 곳곳에 상봉의 산이나 고개가 흔하게 쓰인다. 명암동에는 ‘상봉’ 아래에 있는 산을 가리키는 ‘중봉’이 있다. ‘고개’와 ‘재’는 같은 의미이니 ‘상봉고개’ 및 ‘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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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과 청원군 낭성면에 걸쳐 있는 산. ‘것대산(484.0m)’은 옛 문헌에 ‘거차대산(居次大山)’ 또는 ‘거질대산(居叱大山)’ 등으로 차자되어 나온다. 즉, ‘居次大’나 ‘居叱大’는 모두 ‘것대’로 재구성되어 불린 것이다. ‘거질대산’은 ‘거질대(居叱大)’의 ‘질(叱)’이 차자표기에서 ‘ㅅ’의 표기인 줄을 모르고 음으로 읽은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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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고려초에 활동한 청주의 호족. 청주 출신의 호족으로 청주의 영군장군(領軍將軍)이 되었다. 918년(태조 1) 7월 부장(副將) 연익(連翌)·흥현(興鉉)과 함께 개경에 가서 태조(太祖)를 예방하자 태조는 이들에게 각각 말과 비단을 차등있게 주었다. 이때 견금(堅金)은 개경에 있는 청주 출신 김근겸(金勤謙), 관준(寬駿), 김언규(金言規) 등을 제거할 것을 청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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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5년(명종 10)에 『경국대전(經國大典)』의 규정 중 해석하기 어려운 조문이나 용어를 주석한 것으로 청주에서 간행된 책. 『경국대전(經國大典)』은 그 조문이나 용어가 간결하지만 뜻이 매우 함축되어 있어서, 문장이나 실제의 사정에 능통하지 않고는 법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는 폐단이 있었다. 1550년에 명종(明宗)[1546~1566] 왕이 예조(禮曹)에 명령하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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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지방의 토호. 962년에 세워진 「용두사지철당간기(龍頭寺址鐵幢竿記)」에 전사창(前司倉), 대사(大舍)의 직을 띠고 있다. 대사는 신라의 17관등 가운데 12번째에 해당한다. 당간기에 보이는 김(金), 손(孫), 경(慶), 한(韓) 4성씨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청주의 유력 토착세력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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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장군.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경진(慶珍)의 아들이다. 경대승(慶大升)의 동생은 이소응의 사위이다. 힘이 남보다 뛰어났으며 일찍부터 큰 뜻을 품고 가사를 돌보지 않았다. 15세에 음보로 교위(校尉)가 되었으며 뒤에 장군에 이르렀다. 아버지 경진은 욕심이 많아 남의 토지를 빼앗아 재산을 많이 모았는데, 그가 죽자 경대승이 토지를 모두 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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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중학교 ‘창의적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진취적인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세부적으로 투철한 국가관을 정립하여 국가, 사회발전에 이바지하는 애국인의 양성, 근검절약하며 예절과 질서를 준수하고 인간애를 지닌 도덕인의 양성,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탐구하며 무한한 창의력을 계발하는 창조인 양성, 면학을 생활화하고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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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강건한 기초체력 육성으로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체험중심 인성교육으로 예절바르고 착한행동을 하는 어린이, 학습자 중심의 자기 주도적 학습으로 탐구하는 창의적인 어린이, 개성과 적성에 맞는 다양한 교육활동으로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하는 어린이, 풍부한 정서와 아름다움을 가꾸는 어린이를 길러 바르고 튼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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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재상.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우대언(右代言) 경사만(慶斯萬)의 아들이다. 아들에 경보(慶補), 경진(慶臻), 경의(慶儀)가 있다. 1354년 군부판서(軍簿判書)로 등용되었으며, 판추밀원사, 참지문하정사를 역임하였다. 지정사상의(知政事商議)로 승진하였는데, 이때 경성수축을 논의하자 그가 정세운, 유숙과 더불어 “병란과 기근으로 인하여 만일 축성하면 백성이 견디지 못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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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있는 근린공원. 예전에 이곳이 발산리였는데, 지금의 법정동인 가경동(佳景洞)의 경자와 발산리의 산자를 각 한자씩을 따서 경산공원이 되었다. 1992년 12월 24일에 조성계획을 수립하여 1996년 11월에 조성된 공원이다. 가경천변을 따라 대원아파트와 가경세원아파트, 그리고 삼일원앙아파트, 덕일한마음아파트가 있다. 공원의 서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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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민주주의 이념을 익히고 질서와 예의를 생활화하여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어린이, 근검 및 절약, 저축하는 생활습관을 기르고 자기 일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자주적인 어린이, 힘써 배우고 익혀 스스로의 생활을 개척하는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어린이, 보건위생과 안전생활에 대한 바른 습관을 길러 심신을 튼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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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집안 곳곳에 등촉을 밝혀놓고 밤을 새우는 풍속. 수세(守歲)는 도교에서 12월 경신일(庚申日)에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지켜야 복을 받는다는 소위 경신수세(庚申守歲)의 유속(遺俗)이다. 그래서 섣달그믐에 윷놀이, 옛날이야기, 얘기책 읽기 등 흥미 있는 놀이로 밤을 새웠다. 잡귀의 출입으로 인해 새로운 한 해에 닥칠 수 있는 액운의 방비는 물론 새로운 한 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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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효자.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대유(大有), 호는 남계(南溪)이다. 정렬공(貞烈公) 경복흥(慶復興)의 7세손이며 좌랑(佐郞) 경신직(慶臣直)의 아들이다. 학식이 고명하고 만고의 효자로 널리 알려졌다. 청원군 남일면 모산(茅山)에서 살았다. 조선 세조 임금 때에 조정(朝廷)에서 불렀으나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겨울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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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공동생활을 하는 데에 필요한 재화(財貨)를 획득하고 이용하는 경제와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 경제란 생산수단과 노동으로써 자연에 작용하여 이러한 경제재를 획득(생산)하고, 그 생산물을 분배, 소비하는 과정을 말하며, 산업은 인간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상적으로 종사하는 생산적 활동을 말한다. 생산은 일반적으로 물적 재화의 생산과 더불어 서비스의 생산을 말하므로 산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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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 매곡(昧谷)의 호족.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정권을 잡자 청주 출신의 순군리(徇軍吏) 임춘길(林春吉)이 반역의 음모를 하고 청주로 돌아가려 할 때, 경종은 그의 반역에 동참하였다. 그러나 복지겸(卜智謙)의 보고에 의해 이들은 체포당하여 모두 다 죄를 인정하였다. 이에 모두 금고(禁錮)처분을 받았다. 이때 청주 출신의 현율(玄律)이라는 인물이 태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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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에 있는 오세환의 처 경주김씨의 열녀각. 정려기문에 의하면 오세환의 처 경주김씨는 남편이 병으로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애통해 하다가 발인하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고 25세의 짧은 삶을 마감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1752년(영조 28) 4월에 정려를 내리고, 그 다음 해에 열녀각을 세웠다. 흥덕구 송절동의 중심 마을인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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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지방의 토호. 962년에 세워진 「용두사지철당간기(龍頭寺址鐵幢竿記)」에 전병부경(前兵部卿), 대나마(大奈麻)의 직을 띠고 있다. 대나마는 신라의 17관등 가운데 10번째에 해당한다. 같은 기록에 보이는 대사(大舍) 경기준(慶奇俊)보다는 지위가 높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당간기에는 김(金), 손(孫), 경(慶)·한(韓) 4성씨가 보이는데, 그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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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질서를 유지하고 위해와 범죄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다양한 사회구성원에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 국민의 행복증진과 공공의 복지실현을 도모하고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며, 공공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법을 집행하고, 사회에 봉사하는 활동이다. 조선시대에는 중앙과 지방에 포도청을 두어 경찰권을 행사하기 시작하였고 1894(고종 31)년 포도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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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의 승려. 전라도 고부 출생으로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전국의 사찰을 돌아다니면서 수행하다가 1351년(공민왕 원년) 중국 원나라로 건너갔다. 1여년 동안 중국에 머물면서 고승인 지공(指空)에게 법을 묻고, 석옥(石屋)선사를 찾아가 임제종(臨濟宗)의 선법을 전해 받았다. 1352년 귀국하여 1354년 황해도 해주 안국사(安國寺)에서 머물다가 1357년 입궐하라는 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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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촌락문서」에 기재된 각 촌락 별 호구의 규모를 나타낸 기준 수치. 「신라촌락문서」의 기재양식은 첫머리에 촌락의 둘레에 이어 공연(孔烟)과 계연(計烟)의 수, 9등호제에 의한 각 등급의 연(烟)의 수의 순서로 되어있다. 공연과 계연, 그리고 각 등급의 연의 수에는 일정한 관계가 있는데, 계연은 각 등급연에 기본수를 설정하여 등급연의 수와 곱한 다음 이를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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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국립청주박물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조 불상. 1960년 9월 충청남도 연기군 전동면 다방리 비암사에서 발견 된 삼존석상으로 장방형 4면석의 각 면에 불상과 글씨를 조각한 비상(碑像) 형태이다. 현재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87번지[명암로 143]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높이 43㎝, 너비 26.7㎝, 옆면 너비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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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등성이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낮은 안부. 고개에 대한 한자 이름은 여러 가지가 있다. 즉, 영(嶺)은 대관령과 진부령처럼 높고 험한 고개에 붙여 사용되었으며 아현과 대현과 같은 현(峴)과 팔량치나 우금치처럼 치(峙)도 사용되고 있다.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처럼 태백산맥이 남북으로 뻗어 있어 동서간의 소통이 불편하고 왕래가 소원하여 양 지역 사이의 이질화가 심화되기도 하였으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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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후반 고구려(高句麗)의 남하(南下)로 인한 청주 주변의 상황. 청주를 둘러싼 삼국간의 항쟁은 427년 고구려(高句麗)의 평양(平壤) 천도(遷都)로부터 시작된다. 청주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백제는 4세기대의 전성기를 지나면서 남하하는 고구려의 위협에 시달리게 된다. 고구려는 북쪽 이민족과의 항쟁에 주력하면서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한 고국원왕(故國原王)의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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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에 있는 마을. ‘고당’은 한자어 ‘고당(高堂)’으로 추정된다. ‘고당(高堂)’은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높은 곳에 있는 당’으로 풀이된다. 물론 ‘당’은 ‘당집’의 준말로, ‘신을 모셔 놓고 위하는 집’을 말한다. 이 마을이 무심천변 언덕 위, 높은 곳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설명이 설득력을 얻는다. 또한, 전국적으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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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육과 고등교육의 중간 단계에 위치하는 학제상의 과정 또는 학교 형태. 중등교육에 속하는 학교에는 학령의 차이에 따라 일반적으로 구분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다. 이 가운데 고등학교는 전문 직업으로 진출하느냐, 고등교육으로 진출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일반계 고등학교와 실업계 고등학교로 나눌 수 있고, 또 적령기에 미취학한 자와 성인들의 교육 기회를 확대하거나 학생들의 특별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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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육과 고등교육의 중간 단계에 위치하는 학제상의 과정 또는 학교 형태. 중등교육에 속하는 학교에는 학령의 차이에 따라 일반적으로 구분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다. 이 가운데 고등학교는 전문 직업으로 진출하느냐, 고등교육으로 진출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일반계 고등학교와 실업계 고등학교로 나눌 수 있고, 또 적령기에 미취학한 자와 성인들의 교육 기회를 확대하거나 학생들의 특별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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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를 졸업한 사람에게 중등보통 교육과 실업 교육을 하는 학교. 광복과 함께 불붙은 민족교육의 열의는 기존 학교의 학급 규모 대형화와 학교 신설이라는 양면 정책으로 나타났으며 충청북도 청주의 경우도 청주사범학교가 도립으로 이관되고, 청주농업학교(청주공립농업학교), 청주중학교(청주제1공립중학교), 청주상업학교, 청주여자중학교(청주제2공립고등여학교), 청주여자상업학교가 모두 6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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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현암동에 있는 마을. ‘고래기’, ‘고락리(古樂里)’라고도 한다. ‘고락리’는 절이 있어 붙어진 이름이라고 하나 그대로 믿을 수 없다. ‘고라기’의 ‘고라’는 ‘골’과 관련이 있는 어형으로 바닥이 깊게 팬 지역을 가르키고 ‘기(基)’는 지명의 후행요소로서 ‘마을’이나 ‘들’ 등을 지시한다. 따라서 ‘고라기’는 들이나 마을이 깊게 팬 곳에 자리를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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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지동동에 있는 마을. ‘고락동(古樂洞)’, ‘동원리’라고도 한다. ‘고락골’은 ‘고라골’로부터 변형된 것이다. ‘고라골’의 제2 음절에 ‘l'가 첨가된 어형으로 ‘고락골’이 된 셈이다. 지역에 따라서 ‘고라골’ 또는 ‘고락골’로 나타나기도 한다. ‘고라’는 ‘골’에 ‘-이’가 개재된 어형으로 추정된다. ‘고락골’은 깊은 구렁이가 있는 골짜기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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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지동동에 있는 마을. ‘고락동(古樂洞)’, ‘동원리’라고도 한다. ‘고락골’은 ‘고라골’로부터 변형된 것이다. ‘고라골’의 제2 음절에 ‘l'가 첨가된 어형으로 ‘고락골’이 된 셈이다. 지역에 따라서 ‘고라골’ 또는 ‘고락골’로 나타나기도 한다. ‘고라’는 ‘골’에 ‘-이’가 개재된 어형으로 추정된다. ‘고락골’은 깊은 구렁이가 있는 골짜기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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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현암동에 있는 마을. ‘고래기’, ‘고락리(古樂里)’라고도 한다. ‘고락리’는 절이 있어 붙어진 이름이라고 하나 그대로 믿을 수 없다. ‘고라기’의 ‘고라’는 ‘골’과 관련이 있는 어형으로 바닥이 깊게 팬 지역을 가르키고 ‘기(基)’는 지명의 후행요소로서 ‘마을’이나 ‘들’ 등을 지시한다. 따라서 ‘고라기’는 들이나 마을이 깊게 팬 곳에 자리를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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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현암동에 있는 마을. ‘고래기’, ‘고락리(古樂里)’라고도 한다. ‘고락리’는 절이 있어 붙어진 이름이라고 하나 그대로 믿을 수 없다. ‘고라기’의 ‘고라’는 ‘골’과 관련이 있는 어형으로 바닥이 깊게 팬 지역을 가르키고 ‘기(基)’는 지명의 후행요소로서 ‘마을’이나 ‘들’ 등을 지시한다. 따라서 ‘고라기’는 들이나 마을이 깊게 팬 곳에 자리를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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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상당산성(上黨山城)에 있었던 석축 산성. 고상당성은 조선 후기에 새로이 고쳐 쌓은 현재의 상당산성보다 앞선 시기에 존재했던 석축 산성이다. 상당(上黨)은 백제 때 청주의 지명인 상당현(上黨縣)에서 유래한 것으로, 삼국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청주의 별칭으로 사용되었다. 고상당성은 조선 후기에 지금의 모습을 갖춘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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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서 활동한 산악인. 주성초등학교와 청주중학교, 청주상업고등학교(현 청주대성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전매청 청주연초제조창에 근무하면서 청주대학교 경영학과(야간) 2년을 수료하였다. 1970년 3월 대한산악연맹 회원이 되어 활동하다가 한국일보사와 대한산악연맹이 공동으로 후원한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대장 김영도, 대원 19명)의 제주도 대표로 참가하였으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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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청주 출신이며, 양민으로서 효행이 극진하였다. 어머니가 개가를 하였는데, 모친과 이부(異父)를 지극 정성으로 섬기었다. 나이 17세에 형을 대신하여 요동(遼東)의 역(役)에 나갔다. 이때에 봉림대군(鳳林大君)[뒤에 효종 임금]도 청나라의 볼모로 잡혀 요양에 있었다. 조선과 청나라의 협상으로 요동에 있던 조선 군사를 돌려보내게 되었다. 고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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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돌을 가지고 만든 선사시대의 구조물. 고인돌은 작은 돌이 큰 돌을 받치고 있다는 뜻으로 ‘괸돌’, ‘지석묘’, ‘탱석’이라고도 하며, 마을 이름에도 ‘괸마을’, ‘괸돌마을’, ‘지석리’ 등이 있다. 커다란 덮개돌이 밖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왔다.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지만 공동무덤을 나타내는 묘표석이나 의식을 거행하던 제단으로서도 기능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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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에 있었던 들. 곡개들은 ‘고개’와 ‘들’로 나누어진다. ‘곡개’는 고개(嶺)의 ‘ㄱ’첨가 어형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곡개들은 ‘고개들’의 변형으로 이해된다. 실제로 곡개들이 밤고개라는 고개 뒤쪽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보면 ‘고개들’이라는 지명이 잘 어울린다. 한편, 설득력은 약하지만 곡개들의 ‘곡’은 한자로 ‘굽다’는 뜻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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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지역에 있었던 서원. 1479년(성종 10)에 청원군 옥산면 금계리에 처음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며, 최초 창건당시에는 서원이 아닌 사당의 성격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곡수리에 건립되어 이름을 곡수서원이라 하였다고 한다. 유서와 연혁이 매우 애매한 서원으로, 서원관련 여러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고 오직 헌종대 편찬된 『청주읍지(淸州邑誌)』에 ‘곡수성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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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지역에 있었던 서원. 1479년(성종 10)에 청원군 옥산면 금계리에 처음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며, 최초 창건당시에는 서원이 아닌 사당의 성격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곡수리에 건립되어 이름을 곡수서원이라 하였다고 한다. 유서와 연혁이 매우 애매한 서원으로, 서원관련 여러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고 오직 헌종대 편찬된 『청주읍지(淸州邑誌)』에 ‘곡수성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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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사천동에 있는 마을. ‘골뜸’은 ‘골’과 ‘뜸’으로 분석된다. ‘골’은 고구려어 ‘忽’(홀·골)과 신라어 ‘’에서 기원한 것으로, ‘골짜기’나 ‘마을’을 뜻한다. ‘뜸’은 ‘듬’의 변화형으로, ‘冬非’, ‘冬音’, ‘頭無’, ‘渡迷’ 등의 형태로『삼국사기(三國史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등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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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오동동과 율량동에 있는 마을. ‘골말’은 ‘골짜기’를 뜻하는 ‘골’과 ‘마을’을 뜻하는 ‘말’이 결합된 어형으로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해석된다. 마을이 골짜기 안쪽으로 들어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시의 북부에 위치한 오동동의 새터말에서 남쪽 언덕 너머에 있는 마을이다. 오근장역을 지나 남서쪽으로 1㎞ 정도 떨어져 있다. 율량동의 율봉(栗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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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기타 공공단체 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관. 공공기관은 기관 및 단체 중 공공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공조직을 말하며 사행정 또는 사조직과 구분된다. 또한 시민사회단체, 민간단체, 사설기관과도 구분되며 공공서비스와 공공재화를 생산하는 국가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와 각급 학교, 정부투자기관, 특수법인이 공공기관에 속한다. 공공기관은 헌법상 입법·사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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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 산업단지육거리에서 송정동 솔밭공원사거리 사이에 있는 도로. 인근에 있는 청주산업단지를 원래 청주공업단지라고 하였고 이를 줄여서 공단이라고 하였는데, 공단오거리에서 공단으로 진입하는 신설 도로이므로 도로명을 공단로라고 하였다. 공단로의 남동단은 산업단지육거리에서 시작하여 북서단은 솔밭공원사거리에서 끝난다. 길이는 1,533m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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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석곡동에 있는 마을. ‘공려골’은 ‘공려’와 ‘골’로 분석된다. 이 마을은 달리 ‘공여골’·‘공례골’·‘공례’로도 불리는데, 이 중 ‘공례’는 ‘공례(公禮)’로 적고 있다. 그렇다면 ‘공려’나 ‘공여’ 또한 ‘공례’의 변화형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공례’는 사전에 실려 있지 않아, 그 뜻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공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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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석곡동에 있는 마을. ‘공려골’은 ‘공려’와 ‘골’로 분석된다. 이 마을은 달리 ‘공여골’·‘공례골’·‘공례’로도 불리는데, 이 중 ‘공례’는 ‘공례(公禮)’로 적고 있다. 그렇다면 ‘공려’나 ‘공여’ 또한 ‘공례’의 변화형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공례’는 사전에 실려 있지 않아, 그 뜻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공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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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석곡동에 있는 마을. ‘공려골’은 ‘공려’와 ‘골’로 분석된다. 이 마을은 달리 ‘공여골’·‘공례골’·‘공례’로도 불리는데, 이 중 ‘공례’는 ‘공례(公禮)’로 적고 있다. 그렇다면 ‘공려’나 ‘공여’ 또한 ‘공례’의 변화형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공례’는 사전에 실려 있지 않아, 그 뜻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공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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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석곡동에 있는 마을. ‘공려골’은 ‘공려’와 ‘골’로 분석된다. 이 마을은 달리 ‘공여골’·‘공례골’·‘공례’로도 불리는데, 이 중 ‘공례’는 ‘공례(公禮)’로 적고 있다. 그렇다면 ‘공려’나 ‘공여’ 또한 ‘공례’의 변화형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공례’는 사전에 실려 있지 않아, 그 뜻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공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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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촌락문서」에서 호(戶)를 나타내는 단위. 「신라촌락문서」에서는 호(戶)라는 용어를 대신하여 연(烟)을 사용하고 있는데, 문서에 기재된 연에는 공연(孔烟), 계연(計烟), 등급연(等級烟), 삼년간중수좌내연(三年間中收坐內烟), 회거연(廻去烟) 등이 있다. 각 촌의 첫머리에 합공연(合孔烟) 얼마로 표기되어 있는 수는 각 촌에 거주하는 등급연과 3년 안에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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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인 물건에 본래의 기능을 살리면서 조형미를 조화시키는 솜씨, 또는 그 제품. 공예는 인간생활 주변에서 쓰여지고 있는 가구, 그릇, 옷, 주택장식 등 생활용품이며, 이는 공예가 인간생활과 매우 밀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공예는 일반 비품으로부터 장식품, 신앙물, 시설물에 이르기까지 아주 광범위하다. 신앙물은 장승, 신주, 불상, 석등, 석탑, 부도 등이 있으며 시설물은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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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의 휴식이나 유락 등을 위한 시설이 되어 있는 공원이나 지역. 우리나라의 공원은 자연공원법과 도시공원법에 의거하여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자연풍경지(自然風景地)를 보호하고 국민이나 주민의 보건 휴양 및 정서 생활의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경영 관리하는 자연지(自然地) 또는 인공적으로 조성한 후생적 조경지(造景地)로 정의하는데, 전자를 자연공원, 후자를 도시공원이라고 한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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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때 연산 매곡(현재 충청북도 보은군 회인면) 출신의 호족. 아내는 경종(景琮)의 누이이다. 어려서부터 용략이 있었으며, 신라말의 혼란기에 본읍의 장군(將軍)을 칭하였다. 처남인 경종이 친궁예의 성향을 보이다가 태조(太祖) 왕건(王建)에게 처형당하였다. 이후 공직(龔直)은 후백제 견훤(甄萱)의 세력에 속하였던 것 같으며, 맏아들 공직달(龔直達), 둘째아들 공금서(龔金舒)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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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 내덕칠거리에서 외하동 청주시계 사이에 있는 도로. 청주시내에서 청주공항으로 가는 주도로였기 때문에 공항로라는 도로명이 붙여졌다. 남쪽은 내덕칠거리에서 시작하여 북쪽은 외하동 청주시계에서 끝난다. 폭은 10~35m이며, 길이는 6,386m이다. 내덕칠거리에서는 상당로, 의암로, 내덕로, 예대로, 중앙로, 안평로와 연결되며, 사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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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에 있는 산 이름과 마을. ‘과상미’는 봉명동에 있는 해발고도 95m의 얕은 구릉인 백봉산(白峰山)[95m]을 일컫는 이름으로서 ‘과상뫼’라고도 불리었다. 이 이름은 전설에 의하면 중국에 있는 ‘과상산(果商山)’의 명칭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한편 ‘과상’을 ‘과산(果山)’의 변형으로 보고 ‘과일이 많이 생산되는 산’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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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뒷산인 과상미에 관한 전설. 조선 중기에 청주를 향해 가던 보부상(褓負商)들이 백봉산(白峰山)[지금의 果商山]에 이르니, 날이 저물었다. 그래서 산 밑에 모여서 잠을 자게 되었다. 밤이 깊어 삼경이 되자 어디서 활시위 소리가 들렸다. 소리 나는 쪽을 살펴보니 백봉산 중턱에서 무사 다섯 명이 달빛을 받으며 활을 쏘고 있다. 무사들은 활쏘기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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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에 있는 산 이름과 마을. ‘과상미’는 봉명동에 있는 해발고도 95m의 얕은 구릉인 백봉산(白峰山)[95m]을 일컫는 이름으로서 ‘과상뫼’라고도 불리었다. 이 이름은 전설에 의하면 중국에 있는 ‘과상산(果商山)’의 명칭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한편 ‘과상’을 ‘과산(果山)’의 변형으로 보고 ‘과일이 많이 생산되는 산’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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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뒷산인 과상미에 관한 전설. 조선 중기에 청주를 향해 가던 보부상(褓負商)들이 백봉산(白峰山)[지금의 果商山]에 이르니, 날이 저물었다. 그래서 산 밑에 모여서 잠을 자게 되었다. 밤이 깊어 삼경이 되자 어디서 활시위 소리가 들렸다. 소리 나는 쪽을 살펴보니 백봉산 중턱에서 무사 다섯 명이 달빛을 받으며 활을 쏘고 있다. 무사들은 활쏘기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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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봉명사거리 북서쪽 부근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수리시설. 과상이란 주변에 과일 상점이 많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봉명사거리 북서쪽 부근에 있었던 수리시설로 영조 때 만들어져 최근까지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고 지명만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청주읍지(淸州邑誌)』에는 주치(州治)에서 서(西)로 10리 떨어진 곳에 있고, 주위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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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중동에 있는 마을. ‘과수원(果樹園)’이란 지명은 이곳에 과수원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국적으로 볼 때, ‘과수원’은 마을 이름으로 아주 흔하다. 주중동 중앙부의 위바테와 방죽말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로서 현재는 과수원을 하는 농가 한 채만 남아있는 곳이다. 과수원의 북쪽에는 방죽말이 있고 남쪽에는 바테(밭터) 마을이 위치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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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1285년(충렬왕 11) 지공거 설공검(薛公儉) 밑에서 문과에 급제해 문한서(文翰署)에 속하였다. 충직하고 문장이 뛰어나다고 인정받았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곽예(郭預)[1232~1286]의 손자이며, 한림원사(翰林院事)를 지낸 곽운룡(郭雲龍)의 아들이다. 아들에 곽지태(郭之泰)가 있고, 손자에 곽충수(郭忠秀)가 있다. 원나라 세조(世祖)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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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곽열(郭說)의 아들이다. 아들에 곽원(郭垣)과 곽여(郭輿)[1058~1130]가 있다. 처음에는 청주의 향리였으나 선종(宣宗)을 잠저 시절에 섬기었는데, 선종이 즉위하면서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감찰어사(監察御使)를 거쳐 추밀원(樞密院) 좌승선(左承宣)에 이르렀다. 1086년(선종 3) 전중소감(殿中少監)으로 요나라에 토산물을 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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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의 효자. 본관은 현풍(玄風)이며, 자는 영지(永之)이다. 곽상조의 아명은 백수(百壽) 이다. 현풍곽씨(玄風郭氏)를 포산곽씨(苞山郭氏)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곽형호(郭亨浩), 어머니는 교동인씨(喬桐印氏)이다. 큰아버지는 효자로 정려된 곽원호(郭元浩)이며, 할아버지는 곽진은(郭鎭殷), 증조할아버지는 곽여찬(郭汝贊)이다. 아들은 곽유엽(郭有燁), 곽진엽(郭晋燁), 곽최엽(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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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있는 곽진은(郭鎭殷) 부부의 정려문. 조선 후기 청주 출신의 곽진은과 그의 부인 인천이씨(仁川李氏)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28년(순조 28)에 세운 정려문이다. 상당구 탑동 동산교회에서 현대아파트 방향으로 약 100m 지점에 있다. 이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된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으로 시멘트 기단 위에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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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몽득(夢得)으로 곽상(郭尙)의 아들이다. 어려서 꿈에 어떤 사람이 여(輿)라고 명명하였으므로 이름을 삼고 몽득으로 자를 삼았다. 어려서부터 맵고 냄새나는 채소를 먹지 않았으며, 여러 아이들과 함께 놀기를 싫어하고 항상 홀로 한방에 거쳐하여 학문에 힘썼다. 문과에 급제하여 내시부(內侍府)에 속했다가 합문지후(閤門祗侯)를 거쳐 홍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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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현풍(玄風)이며, 청주 출신이다. 순조(純祖) 때의 사람으로 네 살에 부친을 여의고 편모(偏母)를 지성으로 봉양하며 늙도록 효도를 다하였다. 어머니 상 때에는 비바람을 가리지 않고 성묘하였다. 어려서 아버지 상을 입지 못하였던 일을 한탄하더니 그의 회갑에 이르자 한이 맺혀 상복을 갖추어 상례(喪禮)를 삼년간 다하니 정성이 대단하여 향리에 널리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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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있는 곽여찬(郭汝贊)의 효자각. 1817년(순조 17)에 명정되어 그 당시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수차례 중수와 보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는데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상당구 탑동 주택가의 개인집 정원에 있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이며 사면을 홍살로 막았다. 건물 안에는 편액이 걸려 있고 바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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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선갑(先甲)이며, 호는 연담(蓮潭)이다. 초명은 왕부(王府)이다. 그의 아들에 곽운룡(郭雲龍)과 곽진(郭鎭)이 있는데, 곽운룡은 벼슬이 도진장(都津長)에 이르렀고, 곽진은 등제하여 교서랑(校書郞)이 되었다가 뒤에 관직을 버리고 승려가 되었다. 1255년(고종 4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전주사록(全州司錄)이 되었다. 1263년(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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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곽예(郭預)[1232~1286]의 묘. 곽예는 고려 고종(高宗) 때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좌승지 등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충렬왕(忠烈王) 때 성절사로 원나라에 가는 도중에 죽었다. 시문에 능했으며 당대의 명필로도 이름이 높았다. 본래 충청북도 청원군 북이면 대율리에 있었는데, 1975년 국토개발지구로 지정됨에 따라 지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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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 곽예의 신도비. 고려 후기의 문신 연담공(蓮潭公) 곽예(郭預)[1232~1286]의 생애를 기록한 비석으로 1884년(고종 21년)에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위치한 연담공 묘소 입구에 세워졌다. 비의 총 높이는 2.3m이며, 방형 받침돌[대좌] 위에 높이 176㎝, 폭 61㎝, 두께 32㎝의 오석이다. 금석문 전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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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996년(성종 15)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이후 여러 번 승진하여 기거사인(起居舍人)이 되었다. 1011년(현종 2) 중추직학사(中樞直學士)를 역임하였고, 1015년 송나라 사신으로 가서 토산물을 바치고, 겸하여 거란이 해마다 내침함을 고하고 위태할 때 구원해 줄 것을 청하였다. 1016년 형부시랑(刑部侍郞)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로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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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현풍(玄風)이고, 아버지는 곽진은(郭鎭殷)이며, 어머니는 인천이씨(仁川李氏)이다. 효자 곽진은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곽원호와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 삼대에 걸쳐 효행으로 정려(旌閭)된 효자 집안이다. 여덟 살 때에 묘소 아래 수리(數里)에 걸쳐 소나무와 참나무를 심으니 후에 숲을 이루고 울창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효심에서 한 일이었다.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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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이고, 자는 안부(岸夫)이며, 호는 용촌(龍村)이다. 청주 출신이며, 아버지는 곽기(郭琦), 어머니는 진자기(晋自奇)의 딸 진주지씨(晋州池氏)이다. 할아버지는 곽수원(郭綏元), 증조할아버지는 곽윤성(郭允誠)이다. 부인은 대사성(大司成)을 지낸 신자승(申自繩)의 딸 평산신씨이다. 1472년(성종 3) 춘장문과(春場文科)에 갑과로 급제하여 검교(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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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정치인. 1912년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에서 태어났다. 청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했다. 1945년, 33세로 괴산군수로 부임하여 뛰어난 행정력을 발휘해 군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이듬해 청원군수로 부임하여 많은 사업을 추진하였다. 특히, 농민들의 편에서 업무를 추진하여 뛰어난 군수로서 이름을 얻었다. 제2대 국회의원에 1950년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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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1728년에 무신란이 일어나자 이인좌(李麟佐)를 중심으로 한 반란군은 3월 15일 청주성을 점령한다. 청주성 점령 후 이인좌는 자신을 대원수(大元帥)라고 자칭하고 여러 부하에게 직위를 주어 반군을 편성했는데, 이때 곽장을 목천현감으로 삼았다. 곽장은 이인좌 군과 함께 천안 목천, 증평 청안, 진천을 함락하고, 안성과 죽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반란진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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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단원으로 의열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찍이 상경하여 경신학교(儆新學校)를 졸업하고 귀향하여 청주 청남학교(靑南學校) 교사로 재직한 바 있다. 일제 강점기 내내 독립운동에 헌신하였고, 해외로 망명하였다가 광복 후 귀국, 사업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1909년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의 당원이 되어 국내외에서 독립을 위한 지하공작을 전개하였고, 1919년 3·1운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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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현풍(玄風)이며, 아버지는 곽여찬(郭汝贊)이다. 청주 출신으로 부인은 인천이씨(仁川李氏)이다. 효자 곽여찬(郭汝贊)의 아들로 아버지의 효행을 이어받아 어머니 병환에 손가락을 자른 피로 어머니를 구한 일이 있다. 아버지 병환을 고치려고 정성을 다하였으나 약값을 마련하지못해 도리가 없어 관가에 나가 공천(公賤)에 몸을 팔려고 하였더니, 관가에서 그 효는 가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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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부. 효자 곽진은(郭鎭殷)의 부인이다.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남편은 곽진은이고, 청주 출신이다. 친정에서 부모에 효를 다하였고, 출가하자 늙고 가난한 시모를 지성으로 봉양하였다. 인천이씨(仁川李氏)는 시부모의 병을 고치고자 머리를 깎아 팔았다고 한다. 인천이씨의 효행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1850년(철종 1)에 정려(旌閭)되었다. 인천이씨 효자각은 남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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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있는 곽진은(郭鎭殷) 부부의 정려문. 조선 후기 청주 출신의 곽진은과 그의 부인 인천이씨(仁川李氏)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28년(순조 28)에 세운 정려문이다. 상당구 탑동 동산교회에서 현대아파트 방향으로 약 100m 지점에 있다. 이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된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으로 시멘트 기단 위에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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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호는 추암(秋巖)이다. 문하평장사 곽침(郭琛)의 아들이다. 1360년(공민왕 9) 23세에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정몽주(鄭夢周), 문익점과 동방(同榜)이었다. 1374년 예문관 직제학이 되었다. 1377년(우왕 3) 5월 곽추가 과거시험을 주관하여 정희(鄭熙) 등 99명을 뽑았다. 1378년 밀직사사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정당문학(政堂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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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청주 출신으로, 가세가 가난하였으나 벼슬을 구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묘소 옆에 여막(廬幕)을 짓고 살았는데 감천(甘泉)이 계절로 솟아 나왔고 산나물이 돋아났으며, 호랑이가 나와 낯익어 벗이 되고 의승(義僧)이 와서 지켜 주었다. 집상(執喪)이 끝나고 돌아가려 하니 중도 범도 간 곳이 없고 샘물도 또한 말라 버렸다. 이 이상한 일을 지평(持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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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에 있었던 마을. 일명, ‘관곡’이라고도 한다. ‘갓골’의 ‘갓’은 가장자리의 뜻이다. 골짜기가 산의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골짜기에 마을이 형성되자 골짜기 이름을 따서 마을도 ‘갓골’이라고 한것이다. 위산양재 남쪽에 있는 마을로 중부고속도로의 오른편이며, 제2순환도로의 왼편에 해당된다. 청주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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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방이나 나라의 풍광(風光)·풍속(風俗)·사적(史蹟) 등을 유람(遊覽)하는 일. 관광은 인간이 일시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생활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속으로 이동하는 행위를 통해 심신의 변화를 추구하고 다시 그 일상생활로 복귀할 것을 전제로 다른 지역의 제도, 풍습, 자연 등을 감상하며 배우고 견문하는 행위를 총칭한다. 동양에서는 기원전 8세기 중국 고대 주나라때 편찬된 『역경(易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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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촌락문서」에 보이는 토지의 종류. 「신라촌락문서」에서 토지는 답(畓)과 전(田)으로 나누어 먼저 합계를 기록한 다음 지목별의 토지 면적을 기재하고 있는데, 관모전답(官謨田畓)이 가장 먼저 기록되어 있다. 각 촌락의 관모전답의 면적과 그 비율을 살펴보면 사해점촌은 답 102.024결 중 관모답이 4결, 살하지촌은 답 63.649결 중 관모답이 3.667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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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 청주 출신의 인물. 궁예(弓裔) 정권 하에서 같은 고을 사람 아지태(阿志泰)로부터 참소를 당하였다. 아지태는 아첨을 좋아하고 간사하였는데, 궁예에게 같은 고을 사람 관서(寬舒)와 입전(笠全) 등을 참소할 것을 청하였다. 해당관리가 이 사건을 심리하였으나 수년 동안 판결을 내리지 못하였다. 왕건(王建)이 당장 그 흑백을 분간해 판결을 내리니 여러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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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정동에 있는 세관업무를 담당하는 행정기관. 청주지역의 수출입통관업무를 위해 관세청의 서울본부세관 산하에 청주세관을 두고 있다. 국가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수출입통관질서를 관리함으로써, 국가재정수입을 확보하고 밀수단속을 통한 국내산업보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출범한 관세청은 경제발전, 개방화, 세계무역의 자유화 등 관세행정 환경변화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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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우암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대한불교 조계종 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로 1948년 인봉스님이 현재의 절터에 띳집을 짓고 관음사라는 이름으로 새로 창건한 것이다. 1976년 서원학회(西原學會) 조사단이 현 관음사 사역에서 발굴한 철확(무쇠솥)과 여러 형태의 연화문, 수막새 등에서 계향지사(桂香之寺)나 월고사(月姑寺)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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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의 관음사에 있는 철솥. 관음사는 상당구 우암동 우암산(牛岩山)[338m]의 서쪽 중턱에 있는 조계종(曹溪宗)에 속한 사찰로 1943년에 창건되었다. 고문헌(古文獻)의 기록이 없어 옛 절터(古寺址)에 대한 연혁은 알 수 없다. 다만 경내에서 출토되는 철확과, 옛날 기와조각, 토기조각, 청자조각 등을 통하여 대략 통일신라 말기에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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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 출신의 인물. 청주인으로 고려 초에 서울에 와 있던 인물이다. 태조(太祖)의 즉위 초에 청주 출신의 견금(堅金)과 관준 등이 서울에 있으면서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고 하면서 없애버릴 것을 말하였다. 그러나 태조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동향의 인물로부터 참소를 당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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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었던 관청 자리. 산성동은 본래 청주군 산내이하면(山內二下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며, 상당산성의 안이 되므로 산성이라 한다. 지금의 산성동에 있었던 관터는 창말 북편 옛날 관아(官衙)가 있던 자리이다. 공남문에서 현재의 저수지를 통하여 북쪽 방향의 산 중턱에 남향의 다섯 칸 짜리 동헌(東軒)이 자리잡고 있었다. 동헌 앞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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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계변무(宗系辨誣)를 축하하는 경하시(慶賀詩)를 모아 인쇄하기 위해 만든 판목(板木). 중국 명나라의 『태조실록(太祖實錄)』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조선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선계(先系)가 고려의 권신인 이인임(李仁任)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어 건국초기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수정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계속 거절당하다가 1584년(선조 17) 5월에 종계변무주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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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에 있는 학생독립기념탑. 청주농업학교 학생들에 의하여 주도된 3·1운동과 항일학생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청주농업고등학교 동문회에서 건립하였다. 본래의 기념탑은 1982년 ‘나라 사랑 탑’이라는 이름으로 건립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1998년 8월 그 규모도 늘리고 명칭도 ‘청농학생독립운동기념탑(淸農學生獨立運動紀念塔)’으로 바꾸어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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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동에 있는 학생의거 기념탑. 1929년 항일학생운동을 주도한 청주고등보통학교(현재 청주중학교) 학생 7명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1971년 11월 3일에 세웠다. 상당구 영동 청주중학교 교정에 있다. 본래의 기념탑은 1971년 11월 3일에 세운 것이나, 현재는 1997년 11월 3일 다시 세운 것이 남아 있다. 지금의 기념탑은 3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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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명으로 청주시 상당구 탑·대성동 18통이고, 법정명은 대성동 향교말이다. 본래 청주군 동주내면(東州內面)의 지역으로서 청주향교가 이곳에 있어 향교골 또는 교동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용담리, 명암리 일부와 북주내면(北州內面)의 교서리 일부를 병합하여 교동이라 해서 서주면(西州面)에 편입되었다가 1920년 청주읍에 편입되어 대성정이라 하였는데, 1947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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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동은 시의 중앙에 위치한다. 대성동은 우암산(牛岩山)[338m]의 지맥인 당산(唐山)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어 대부분이 산지이다. 향교 앞에서 용담동으로 넘어 가는 고개에 서낭당이 있었기 때문에 ‘당고개’라 하고 이 고개 밑에 있는 마을도 당고개라 한다. 도지사관사 뒤 언덕 위에는 청주의 문묘로서 대성전 명륜당 등의 향교가 있고, 향교 맞은 편 고개를 ‘잿말고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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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향교 향교는 오늘날의 국립 고등 교육기관에 해당하는 곳으로 향학(鄕學), 학관(學官), 재관(齋官) 또는 교관(敎官)으로도 불리었다. 향(鄕)은 수도를 제외한 행정구역을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며, 교(校)는 학교를 의미하는 것으로 향교는 지방의 학교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성균관과 더불어 우리나라 전통 시대의 교육 중추를 맡아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배출한 곳이 바로 향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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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말(상저골, 향교골, 생지골)은 산간 마을이기 때문에 산신을 위하는 의식이 남달랐다고 한다. 현재도 당산(唐山)이라 불리는 산이 남아 있는데 그곳에서 여러 주민들이 호랑이를 본 경험담을 구연해 주었다. 향교말 산신은 영험하기로 소문이 나서 인근 주민들이 찾아와 개인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향교말 산신제는 현재 당산(唐山)이라 불리던 산의 중턱에서 지냈다.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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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루박샘이라고, 줄이 열두 발 짜리유, 요 밑에 덮어놨어. 바우가 요렇게 패인 데가 있어. 그래 두레박을 담궈 맞게, 옛날에는 양짝에다 나무쪼가리 대고, 우리 영감이 그렇게 잘 만들었어. 여기 처음 왔을 때 집이 3채 있었는데, 내가 영감을 기다리면 늑대가, 개같이 생겼어. 세파트처럼 생겼는데. 그러고 물이 안 나오니까 밤새도록 짜는데 몰랐는데 아침에 보니께 아침에 눈이 쌓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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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위치하고 있는 공립 초등학교. 기본예절과 질서를 지키며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이해하고 가정과 학교,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어린이, 기초학습 능력을 익혀 스스로 공부하고 자기의 취미와 소질을 계발하는 어린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책임감과 독립심을 익혀 자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춘 어린이, 모든 일에 의문을 갖고 과학적 방법으로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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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학자·문신.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는 희인(希仁)이며, 호는 눌재(訥齋)이다. 규정공(糾正公) 박현(朴鉉)의 8세손으로, 눌재공파의 파조(派祖)에 해당되는 인물이다. 아버지는 박미(朴楣), 할아버지는 박중손(朴仲孫), 증조할아버지는 박절문(朴切門), 외할아버지는 강석덕(姜碩德), 처부는 박영달(朴英達)이다. 아들 박훈(朴薰)[1484~1540]은 기묘명현(己卯名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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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 서단에서 영동 남단까지 연결되는 도로. 교서천을 따라 개설된 도로이므로 하천명을 따서 지은 것이다. 북쪽은 제2운천교 동단 제1순환로에서 시작하여 남쪽은 청주대교사거리 동쪽 사직로에서 끝난다. 길이는 2,530m이고, 폭은 구간에 따라 다르다. 사직로에서 역삼서로 구간은 도로 폭이 16m이고, 길이는 450m이다. 역삼서로에서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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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현 교동초등학교의 전신학교. ‘새롭게 생각하고, 고운 마음으로 실천하며, 건강하게 꿈을 키우는 어린이’를 이상으로 삼아 행복한 학생, 보람을 갖는 교사, 만족하는 학부모, 즐거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1933년 6월 1일 청주보통학교에서 여자부를 분립하여 제2보통학교로 명칭하고 381명 7학급이 개교하여 초대 노무라[野村高哉]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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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교육은 인간형성의 과정이며 사회개조의 수단이다. 바람직한 인간을 형성하여 개인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에서 보다 행복하고 가치 있는 나날을 보내게 하며 나아가 사회발전을 꾀하는 작용인 것이다. 청주는 충청북도의 교육, 문화, 경제의 중심이자 도청소재지로서 충·효·예를 숭상하는 충절의 고장이며, 국토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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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기관. 유치원은 93개(공립 45개-단설유치원 4개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41개, 사립 48개)로 학급 수 276개, 원아 수 7,161명, 교직원 수 377명이다. 최초의 유치원은 1948년 7월 20일 설립한 주성초등학교병설유치원이다. 공립유치원은 1970년대까지 2개의 병설유치원이 있었고, 1980년대에 19개, 1990년대에 12개, 2000년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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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현 교동초등학교의 전신학교. ‘새롭게 생각하고, 고운 마음으로 실천하며, 건강하게 꿈을 키우는 어린이’를 이상으로 삼아 행복한 학생, 보람을 갖는 교사, 만족하는 학부모, 즐거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1933년 6월 1일 청주보통학교에서 여자부를 분립하여 제2보통학교로 명칭하고 381명 7학급이 개교하여 초대 노무라[野村高哉]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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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물건 또는 의사·정보가 떨어져 있는 어떤 지점 사이를 이동하는 일. 교통은 사람이나 물건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는 모든 활동과 그 과정, 절차를 말하며, 고대나 현대를 막론하고 인류문명의 모든 분야에 걸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 해 왔다. 유사 이래로 인간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경제활동이나 사회활동은 전적으로 교통이라는 수단에서 이루어졌으며, 한 국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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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2가에 위치한, 옛날 청주역이 있었던 자리. 1921년 11월 1일 조치원과 청주간의 충북선 개통으로 서문철교가 건설되었고 지금의 도청 방향의 사직로를 지나 중앙로와 교차하는 부근에서 북쪽으로 철로가 놓이면서 청주역이 건설되었다. 지금의 시청사거리 부근에 해당한다. ‘역전(驛前)’은 ‘구 역전 근처’로서 현재의 북문로2가와 북문로3가 사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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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공공시설로 건축된 건물. 1936년에 건설된 충청북도청 건물로 충청북도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 건축물이다. 두 면이 도로에 면한 부지의 특성을 반영하여 모서리 벽면을 원형 평면으로 처리하여 주출입구를 형성하였다. 근대 초기 모더니즘 건축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건축된 충청북도청의 상징적인 건물로서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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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분평동에 있는 서원. 1613년(광해군 5)에 청안현(현 괴산군 청안면 석곡리)에 구암서원(龜巖書院)으로 창건하였고, 1955년에 현재의 분평동 251-5[안뜸로47번길 28] 뒷산에 이건하여 재창건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 『열읍원우사적(列邑院宇事蹟)』에는 구암서원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 위치로 이건하면서 구계서원(龜溪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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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석교동에 있는 청과물 재래시장. 석교동은 우리나라 최고(最古) 최대의 돌다리인 남석교(南石橋)에서 유래한다. 석교동 청과물시장의 이름은 여기서 비롯된다. ‘석교동 청과물시장’ 또는 동(洞)을 생략하고 ‘석교청과물시장’을 혼용한다. 현지 상인들은 통칭 ‘석교청과물시장’이라 부른다. 육거리재래시장의 확장된 형태로 1999년에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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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산남동·산북동에 걸쳐 있는 산. ‘구렁봉’이란 이름은 주로 이 산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다. ‘구렁’을 ‘구렁이’로 보고 구렁이가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말한다. 그런데 ‘구렁봉’의 ‘구렁’은 ‘구렁이’가 아니라 ‘구룡’이 변한 것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또한, ‘구렁산’은 산에 구절초가 많아서 붙어진 이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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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산남동·산북동에 걸쳐 있는 산. ‘구렁봉’이란 이름은 주로 이 산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다. ‘구렁’을 ‘구렁이’로 보고 구렁이가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말한다. 그런데 ‘구렁봉’의 ‘구렁’은 ‘구렁이’가 아니라 ‘구룡’이 변한 것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또한, ‘구렁산’은 산에 구절초가 많아서 붙어진 이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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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성화동과 산남동 일대에 조성된 근린공원. 1977년 5월 28일에 최초 결정하여 1996년 6월 14일에 완공되었다. 구룡공원은 낮은 구릉형태인 구룡산(九龍山)[163.6m] 일대에 조성되어 있다. 구룡산(九龍山)[163.6m]은 남북 방향으로 짧은 능선을 형성하고 있으며, 동쪽의 낮은 계곡 에는 원흥이방죽과 산남방죽이 있다. 방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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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산남동·산북동에 걸쳐 있는 산. ‘구렁봉’이란 이름은 주로 이 산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다. ‘구렁’을 ‘구렁이’로 보고 구렁이가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말한다. 그런데 ‘구렁봉’의 ‘구렁’은 ‘구렁이’가 아니라 ‘구룡’이 변한 것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또한, ‘구렁산’은 산에 구절초가 많아서 붙어진 이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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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구룡사가 있었던 터.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한 조선 후기의 각종 지리지에 남악사(南岳寺), 청심사(淸心寺)와 함께 상당산성 안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744년(영조 20)에 상당산성의 승장 영휴(靈休)가 지은 필사본인『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에 의하면 1720년(숙종 46)에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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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구룡사지의 사적비. 1764년(영조 40) 구룡사(九龍寺) 창건과 중창 내력 및 상당산성의 개축 사실을 기술한 비로, 은재거사(隱齋居士)가 비문을 짓고 글씨를 새겨서 건립했다. 상당구 산성동의 청주 상당산성 남문 옆에 있다. 높이 131㎝, 폭 54㎝, 두께 22㎝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지붕돌[가첨석(加檐簷)]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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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산남동·산북동에 걸쳐 있는 산. ‘구렁봉’이란 이름은 주로 이 산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다. ‘구렁’을 ‘구렁이’로 보고 구렁이가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말한다. 그런데 ‘구렁봉’의 ‘구렁’은 ‘구렁이’가 아니라 ‘구룡’이 변한 것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또한, ‘구렁산’은 산에 구절초가 많아서 붙어진 이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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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청주 상당산성의 주봉. 상당산(上黨山)[419m]이란 이름은 삼국시대에 청주가 백제의 상당현이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상당산(上黨山)[419m] 서쪽과 남쪽은 급사면을 이루는데, 이 골짜기에 흐르는 물은 무심천(無心川)을 거쳐 금강으로 흘러들어간다. 반면 동쪽은 완만한 지형을 이루는데, 이 골짜기의 물은 미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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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남3지구와 성화지구를 연결하는 터널. 구룡터널은 2007년 준공된 산남3지구와 성화지구 사이에 놓인 구룡산에 뚫은 터널로, 구룡산의 이름을 따서 구룡터널이라고 명명하였다. 길이 225m, 폭 25m의 쌍터널과 접속도로 213m의 상·하행 4차로로 개통되었다. 구룡산 인근의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고 산남3지구와 성화지구의 택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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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에서 개최되는 지역 축제. 구룡축제는 모충동 주민들을 위한 지역 축제로 화청축제라고도 한다. 마을공동체에 대한 애향심을 고취하고, 잊혀진 전통문화 행사를 재현하며, 지역문화역량을 총결집하여 문화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주민자치기관인 모충동협의회 주관으로 구룡축제추진위원회에서 개최하고 있다. 모충동 구룡축제는 행정자치부의 주민자치센터 국제박람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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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산남3지구와 성화지구를 연결하는 터널. 구룡터널은 2007년 준공된 산남3지구와 성화지구 사이에 놓인 구룡산에 뚫은 터널로, 구룡산의 이름을 따서 구룡터널이라고 명명하였다. 길이 225m, 폭 25m의 쌍터널과 접속도로 213m의 상·하행 4차로로 개통되었다. 구룡산 인근의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고 산남3지구와 성화지구의 택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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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에 있던 큰 샘 및 마을. ‘구루물’은 ‘구름물’이라고도 하며 한자로는 운천(雲泉)이라 한다. ‘구루물’이 ‘운천(雲泉)’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구루’를 ‘구름’으로 보는 것이다. 또한 우리말에는 ‘구름’이라는 말을 ‘많다’는 의미의 수식어(예: 구름처럼 몰려드는 사람들)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구루물’은 ‘물이 풍부한 샘’으로 해석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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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과 신봉동에서 개최되는 지역 축제. 구루물문화축제는 청주고인쇄박물관, 백제유물전시관 등이 자리한 지역의 역사를 바로 알리고 지역발전에 동참하는 계기를 마련하여 지역의 애향심과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2004년 10월 제1회 행사를 개최하였다. 운천·신봉동 주민자치위원회 주관으로 백제유물전시관에서 매년 축제를 열고 있다. 구루물문화축제는 매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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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있는 고개. ‘구름다리고개’는 ‘구름다리’와 ‘고개’로 분석된다. ‘구름다리’는 ‘길 위로 공중 높이 놓은 다리’를 뜻하는 바, 전국적으로 매우 흔한 이름이다. 대부분 다리 이름으로 쓰이나, 마을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구름다리고개’는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로 해석된다. 구름다리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이 고개는 달리 ‘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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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에 있던 큰 샘 및 마을. ‘구루물’은 ‘구름물’이라고도 하며 한자로는 운천(雲泉)이라 한다. ‘구루물’이 ‘운천(雲泉)’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구루’를 ‘구름’으로 보는 것이다. 또한 우리말에는 ‘구름’이라는 말을 ‘많다’는 의미의 수식어(예: 구름처럼 몰려드는 사람들)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구루물’은 ‘물이 풍부한 샘’으로 해석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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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에 있는 고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후의 여러 지리지에서는 ‘율현(栗峴)’으로 나오고 있다. 그리하여 일명 ‘율량고개(栗陽峙)’라고도 한다. 그런데 ‘밤고개’에 얽힌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조선 영조(英祖) 때 조원의(趙元宜)라는 유생이 충청도 회인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왕은 호송하는 금부도사에게 유배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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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00만년 전부터 1만년 전까지의 시기로 인류의 발달과정을 도구제작 기술의 발달로 구분할 때 가장 이른 시기. 구석기시대는 지질학적인 연구와 이 시기에 살았던 동·식물상의 연구를 배경으로, 각 시기마다 사용된 도구 즉, 석기를 중심으로 하여 전기·중기·후기 구석기시대로 나뉘어진다. 전기 구석기시대는 인류가 처음 연모를 사용한 때부터 약 12만 년 전의 마지막 간빙기가 시작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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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분평동에 있는 서원. 1613년(광해군 5)에 청안현(현 괴산군 청안면 석곡리)에 구암서원(龜巖書院)으로 창건하였고, 1955년에 현재의 분평동 251-5[안뜸로47번길 28] 뒷산에 이건하여 재창건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 『열읍원우사적(列邑院宇事蹟)』에는 구암서원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 위치로 이건하면서 구계서원(龜溪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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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의 무관. 1881년 11월 28일부터 1882년 8월 1일까지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근대 개항기 고종(高宗) 때의 무관이다.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인여(藺汝), 호는 미산(渼山)으로 능성구씨 도원수파(都元帥派)의 인물이다. 아버지는 구병일(具秉一), 어머니는 청주한씨(淸州韓氏), 생모는 함종어씨(咸從魚氏)이며, 부인은 고령신씨(高靈申氏)이다. 일찍이 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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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계의(季依)이다. 아버지는 판서를 역임한 능성부원군(綾城府院君) 구굉(具宏)이며, 어머니는 사의(司議) 조정(趙玎)의 딸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감찰을 지낸 구순(具淳), 할아버지는 인조의 어머니 인헌왕후(仁獻王后)의 부친이 되는 좌찬성 구사맹(具思孟)이다.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함께 공부하였으며, 인조의 어머니 인헌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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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의 재떨이마을에서 이정골로 넘어가는 고개. 전설에 따르면 옛 중들이 넘어 다니던 고개를 뜻한다고 하나 그러면 한자로 구승치(舊僧峙)라고 표기해야 하지만 지명을 전설에 기초하여 해석할 수는 없다고 본다. 따라서 구중고개의 ‘구중’은 한자로 ‘九重’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구중은 어떤 대상이 겹겹이 이어진 모습을 나타낼 때 쓰이는 것처럼 고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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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용암동 경계에 있는 고개에 얽힌 전설. 조선 중기 광해군 때 한양에서 호조참판을 지낸 이참판이 청주 고을로 내려와 살았다. 이참판의 외동딸 운선(雲仙)은 자기 집 하인인 상백(相百)이 비범함을 알고, 연정을 품었다. 그러나 그녀는 신분의 차이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고 마음을 태우다가 상사병이 나서 자리에 눕게 되었다. 사정을 모르는 이참판은 의원을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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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남부지역 청주, 청원, 진천, 보은, 옥천, 영동에 보훈행정을 담당하는 국가보훈처 대전지방보훈청 소속의 보훈지청. 청주보훈지청은 충청북도 남부지역 1시(청주) 5군(청원, 진천, 보은, 옥천, 영동)을 관할하며 국가유공자와 그 유(가)족 및 참전유공자의 예우와 지원 등 보훈가족에 대한 보훈행정서비스를 수행하고 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 공헌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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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있는 고개. ‘국굴고개’는 1차적으로 ‘국굴’과 ‘고개’로 분석된다. ‘국굴’은 다시 ‘국’과 ‘굴’로 나뉘는데, ‘국’은 지역에 따라서는 ‘국자’·‘국화’·‘누룩’·‘굽다[곡(曲)]’·‘굴(窟)’ 등과 관련하여 해석한다. 그러나 ‘국’은 ‘구석’과 관련시킬 수 있다. ‘구석’의 중세국어 ‘구’에서 ‘’이 탈락하여 ‘구억’이 되고,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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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에 있는 농산물 품질 관리기관. 농산물의 고품질 및 안전 관리를 위해 설립되었다. 1949년 1월 농산물검사소가 발족(충청북도는 대전지소 관할)하고 1950년 3월에는 대전지소에서 분리되어 청주지소가 개설됐다. 1962년 12월 국립농산물검사소 청주지소로 개칭되고 1978년 4월 국립농산물검사소 충청북도지소로 개칭되었다. 1998년 7월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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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에 있었던 수출입 동물의 검역기관. 동물 및 축산물에 대한 검역 검사, 위생 감시, 방역, 수의과학 기술개발, 동물용 의약품에 대한 검정 관리 등을 전문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07년 7월 수출되는 소의 검역을 시작으로 수출입되는 동물과 축산물의 검역 검사업무를 담당하던 국립동물검역소와 1911년 우역혈청제조소를 시작으로 수의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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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2동에 있는 수출입 식물의 검역기관. 자연환경과 농업자원을 해외 병해충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수출입 식물들에 대한 전문 검역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국내의 농업 및 산림에 있는 모든 식물자원들을 해외에 분포하는 식물병해충으로부터 보호하는 한편, 외국으로 수출되고 있는 국내 식물자원들에 대해 수출국에게 병해충이 없음을 검사하여 보증해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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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87번지[명암로143]에 있는 국립박물관. 충북지역 출토 문화재의 수집·보존에 앞장서고, 문화재 조사·연구·전시와 다양한 교육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중원문화의 특색을 조명하는 한편 지역문화의 중추적 역할을 다하고자 설립되었다. 1978년 8월에 충청북도민 故 곽응종 옹이 박물관터를 기증하였고, 1979년 1월에 故 박정희 대통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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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과 사직2동에 있는 건강보험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 청주지역의 국민건강보험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특수 공공법인체로서 흥덕구에 국민건강보험공단 대전지역본부 청주서부지사가, 상당구와 청원군에 국민건강보험공단 대전지역본부 청주동부지사가 있다. 국민의 질병·부상에 대한 예방·진단·치료·재활과 출산·사망 및 건강증진에 대하여 보험급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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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지역의 국민연금업무를 담당하는 국민연금공단의 청주지사. 국민들이 나이가 들어 생업에 종사할 수 없게 되거나 불의의 사고로 사망, 장해를 입었을 경우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연금을 지급하고 아울러 각종 복지사업을 실시함으로써 국민의 복지증진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국민연금공단은 1987년 10월 19일 본부 6부15과 14개지부에 총인원 65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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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농협 모충동 지점에서 시작하여 사직동 변전소까지 연결되는 남북 방향의 소로. 도로명은 예전에 이곳 도로변에 있었던 국보제약에서 유래되었다. 남쪽은 모충로에서 시작하여 북쪽은 예술2로에서 끝난다. 도로 폭은 12m이며, 편도 1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이고, 길이는 1,750m이다. 양쪽 모두 인도가 설치되어 있다. 모충동과 사직동 경계에서 서쪽으로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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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있는 세무업무를 담당하는 지방관청. 납세자가 세법의 규정에 따라 자신의 납세의무를 제대로 이행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도와주는 서비스 기능으로, 이를 위하여 국세청은 법령해석, 세금신고안내, 세금해설책자 제작·배부, 세무상담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모든 납세자가 세법이 정하는 바에 따른 납세의무를 제대로 이행토록 하기 위하여 세금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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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내곡동에 있었던 들. ‘굴량마루’는 ‘굴량’과 ‘마루’로 분석된다. ‘굴량’은 ‘군량(軍糧)’이 자음동화에 의해 변한 어형으로, ‘군대 양식’을 뜻한다. ‘마루’는 ‘높다’를 뜻하는 백제어 ‘毛良’(모랑)이나 중세국어 ‘’와 관련된다. 지명에서 ‘마루’는 ‘말’·‘말양’·‘말랑’·‘말랑이’·‘날망’·‘마리’·‘머리’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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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내곡동에 있었던 들. ‘굴량마루’는 ‘굴량’과 ‘마루’로 분석된다. ‘굴량’은 ‘군량(軍糧)’이 자음동화에 의해 변한 어형으로, ‘군대 양식’을 뜻한다. ‘마루’는 ‘높다’를 뜻하는 백제어 ‘毛良’(모랑)이나 중세국어 ‘’와 관련된다. 지명에서 ‘마루’는 ‘말’·‘말양’·‘말랑’·‘말랑이’·‘날망’·‘마리’·‘머리’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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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에 있는 개항기 청주군수 이한응(李漢膺)의 불망비. 1901년에 청주군수를 지낸 이한응이 새로운 규범을 완성하는 등 선정을 베푼 것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상당구 우암동 우암산순환로의 삼일공원쪽에서 청주대학교로 가는 길 오른쪽 언덕에 있는 비석 중 왼쪽부터 다섯 번째이다. 높이 139㎝, 폭 48㎝, 두께 27㎝의 비신(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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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내곡동에 있었던 들. ‘굴량마루’는 ‘굴량’과 ‘마루’로 분석된다. ‘굴량’은 ‘군량(軍糧)’이 자음동화에 의해 변한 어형으로, ‘군대 양식’을 뜻한다. ‘마루’는 ‘높다’를 뜻하는 백제어 ‘毛良’(모랑)이나 중세국어 ‘’와 관련된다. 지명에서 ‘마루’는 ‘말’·‘말양’·‘말랑’·‘말랑이’·‘날망’·‘마리’·‘머리’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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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에 있던 큰 샘 및 마을. ‘구루물’은 ‘구름물’이라고도 하며 한자로는 운천(雲泉)이라 한다. ‘구루물’이 ‘운천(雲泉)’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구루’를 ‘구름’으로 보는 것이다. 또한 우리말에는 ‘구름’이라는 말을 ‘많다’는 의미의 수식어(예: 구름처럼 몰려드는 사람들)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구루물’은 ‘물이 풍부한 샘’으로 해석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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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적의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의 충청북도 지부. 굶주림 없는 세상,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구촌 이웃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이를 전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청에 부응코자 1991년 3월에 한국인에 의해 설립되었다. 굿네이버스는 1991년 3월에 한국이웃사랑회로 창립총회를 하고 6월에 사단법인을 허가받아 사회복지시설 아동지원사업 및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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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장성동에 있는 마을. 궁평리(宮坪里)의 궁평(宮坪)은 궁궐이 들어설 만한 큰 규모의 들이라 해서 붙여진 ‘궁뜰’이라는 이름이 한자화한 것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궁뜰’의 어원에 대해서는 큰 들이라는 의미의 ‘금들’이 ‘굼들’을 거쳐 ‘궁들’로 변하고, 나중에 된소리화하여 ‘궁뜰’이 되었다는 언어학적 해석이 있다. 마을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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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장성동에 있는 마을. 궁평리(宮坪里)의 궁평(宮坪)은 궁궐이 들어설 만한 큰 규모의 들이라 해서 붙여진 ‘궁뜰’이라는 이름이 한자화한 것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궁뜰’의 어원에 대해서는 큰 들이라는 의미의 ‘금들’이 ‘굼들’을 거쳐 ‘궁들’로 변하고, 나중에 된소리화하여 ‘궁뜰’이 되었다는 언어학적 해석이 있다. 마을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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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창동에 있는 산. ‘궁무리산’은 1차적으로 ‘궁무리’와 ‘산’으로 분석된다. ‘궁무리’는 다시 ‘궁’과 ‘무리’로 나뉘는데, ‘궁’은 ‘금’의 변화형으로 추정된다. 즉 ‘금’이 ‘굼’으로, 다시 ‘궁’으로 변한 어형으로 보고자 한다. ‘금’은 ‘신(神)’의 뜻인 ‘’에서 기원한 것으로, ‘크다’나 ‘높다’를 뜻한다. ‘무리’는 ‘머리’의 변화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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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창동에 있는 산. ‘궁무리산’은 1차적으로 ‘궁무리’와 ‘산’으로 분석된다. ‘궁무리’는 다시 ‘궁’과 ‘무리’로 나뉘는데, ‘궁’은 ‘금’의 변화형으로 추정된다. 즉 ‘금’이 ‘굼’으로, 다시 ‘궁’으로 변한 어형으로 보고자 한다. ‘금’은 ‘신(神)’의 뜻인 ‘’에서 기원한 것으로, ‘크다’나 ‘높다’를 뜻한다. ‘무리’는 ‘머리’의 변화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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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고구려(태봉)의 건국자이자 왕. 신라 47대 헌안왕(憲安王)의 아들이며, 일설에는 경문왕(景文王)의 아들이라고 한다. 5월 5일 외가에서 출생하였는데, 일관이 말하기를 단오날 태어났고, 태어나면서부터 이가 나고 이상한 빛까지 나타나므로 장차 국가에 해로울 것이라고 하였다. 이를 믿은 왕이 죽일 것을 명해 사자가 그 집에 가 강보에 싸인 아이를 빼앗아 다락 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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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장성동에 있는 마을. 궁평리(宮坪里)의 궁평(宮坪)은 궁궐이 들어설 만한 큰 규모의 들이라 해서 붙여진 ‘궁뜰’이라는 이름이 한자화한 것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궁뜰’의 어원에 대해서는 큰 들이라는 의미의 ‘금들’이 ‘굼들’을 거쳐 ‘궁들’로 변하고, 나중에 된소리화하여 ‘궁뜰’이 되었다는 언어학적 해석이 있다. 마을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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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장성동에 있는 마을. 궁평리(宮坪里)의 궁평(宮坪)은 궁궐이 들어설 만한 큰 규모의 들이라 해서 붙여진 ‘궁뜰’이라는 이름이 한자화한 것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궁뜰’의 어원에 대해서는 큰 들이라는 의미의 ‘금들’이 ‘굼들’을 거쳐 ‘궁들’로 변하고, 나중에 된소리화하여 ‘궁뜰’이 되었다는 언어학적 해석이 있다. 마을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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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여원(汝元), 호는 소한(素閑)이다. 권결(權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동부승지 권확(權鑊)이고, 아버지는 한성부좌윤을 역임한 권우(權堣)이며, 어머니는 최유해(崔有海)의 딸이다. 진사 권후(權垕)에게 입양되었고, 부인은 이합(李柙)의 딸이다. 권두추(權斗樞)의 동생이고, 함경감사를 역임한 권익관(權益寬)의 아버지이다. 16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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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청주 출신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노모(老母)를 업고 산간(山間)으로 피난하다가 왜적(倭賊)을 만나 싸웠다. 양손으로 칼을 막아 손가락이 모두 끊어졌음에도 끝내 그 모친을 놓지 않으므로 왜적이 뒤로 돌아 그 모친을 살해하고자 하니 그는 어머니를 안고 칼을 맞아 죽었다. 1633년(인조 11)에 정려(旌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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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18세에 동학교도가 되고, 1894년(고종 31)의 동학혁명 때 손병희(孫秉熙)[1861~1922]와 함께 6만 여명의 교도를 이끌고 호응했으나 관군에 의하여 진압당한 후 전국 각처를 방랑하였다. 1908년 천도교에 입교하여 전제관장(典制觀長) 등을 역임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 손병희 등과 함께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만세운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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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의 가담인물로 양성 출신이다. 양성에서 300여 명의 군사를 모은 뒤, 청주의 이인좌(李麟佐) 군과 합치기로 하고 청주 경내로 들어와 거짓으로 장례를 지낸다고 하면서 상여에다 병기(兵器)를 실어 청주성 앞 숲속에다 숨겨 놓았다. 그리고 1728년 3월 15일에 이인좌 군과 더불어 충청병사 이봉상(李鳳祥)[1676~1728], 영장 남연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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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청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권부언(權孚彦)이다. 1816년(순조 16)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출사하였으며, 1834년 경모궁(景慕宮)에서 작헌례를 행할 때 통례(通禮)로서 힘을 쏟아 통정(通政)을 가자(加資) 받았다. 관직은 사헌부지평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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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검교정승 권희(權僖)의 아들이다. 1386년(우왕 12) 전법판서(典法判書), 동북면 안무사(東北面按撫使)를 거쳐, 1388년 밀직부사, 청주목사 겸 원사를 지냈다. 조선건국 후인 1396년(태조 5)에 삼사 우복야(三司右僕射)가 되었다. 고려 말 우왕 때 권화가 청주목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 고성(固城)의 이금(伊金)이라는 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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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에 있는 마을. 현재의 영운동 2통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는 영운동에서 금천동으로 넘어가는 소로에 있었다고 한다. 정말이라고도 한다. 궝말의 ‘궝’은 중세국어 ‘구 (구석)’으로까지 소급한다. ‘구 ’이 ‘구억’으로 변한 뒤 축약되어 ‘궉’이 되고 이어서 ‘말’의 ‘ㅁ’에 동화되어 ‘궝이 된 것이다. 구 〉구억〉궉〉궝의 변천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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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주산업은 논농사이다. 주변 농지는 20만 평이 되는데 주로 인근 까치내에서 농사를 짓는다. 마을 거주 83호 중 20호 정도가 현재 농사를 짓고, 나머지 주민은 시내 등지에서 직장생활을 하거나, 노령화 되어 자식들에게 의탁하고 있는 실정이다. 벼농사 중 메벼 농사를 주로 하고 수확한 벼는 농협과 정부에 수매하고 나머지는 개인별로 수입을 내고 있다. 밭농사는 자급할 양만 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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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소 장가들이기 이날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를 꺾어서 개나 소의 목에 묶어 주는 것을 장가들인다고 한다.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로 가축의 목에 묶어주면 귀신을 없애고 가축이 새끼를 잘 낳는다고 믿었다. ◦ 과일나무 결혼시키기 우물가의 돌이나 샘 옆의 돌맹이를 감나무 가지에 올려놓으면 감나무에 감이 많이 열린다고 하여 돌을 올려놓았다. 이것을 “감나무 시집보내기”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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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그름바위라고 했어요. 옛날에 보믄 그전에는 물이 좋고, 별주부 자라 그걸 잡으려고 말야 그름바위, 오면은 바위가 있잖소, 갈래졌지 그전에는 한 여러믄이 앉아서는 농사짓는 밥을 식사를 하고는 했거든. 그런데 제방으로 돌을 가져다 쌓는 바람에 죄다 없어졌어. 그전에 전설이라는 게 옛날에 거기서 바위가 있어서 그름바위여. (선비가 많아서는 무슨 이야기에요) 그건 내가 이야기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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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장성하게 키워놨는데, 딸 줄 사람이 있어야지. 사우 삼을 사람이 없어서. 그래 옛날에는 광고에 붙이는 걸 방이라 했어요. 그래 도(道)로 군(郡)으로 면(面)으로 얘기 잘하는 사람 사우 삼는다고 그러니까, 젊은 혈기 있는 사람들은 가서 혼인 할라고 다 한번 가는 거야. 그래 거기 찾아갔는데, 충청도 사람도 가고, 전라도 사람도 가고, 경상도 사람도 가고, 인제 가믄 그 근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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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산 유람-할제 삼-신산이 어디메뇨 일본에 이방잔가- 사-명주 이 아니냐 죽장을 짚고 단표자로- 봉래산을 구경갈 제 경포 동정호는 명-월-을- 구경하고 단발령은 얼른 넘어 봉래산 고은 경치 지-척-에 던져두고 못본지가 몇해인-가 다행히 오날이야 이곳을 당도-하니- 이일이 새로워라 어화 세상 벗님네야 상-전벽해를 웃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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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명은 청주시 흥덕구 강서2동 10통이고, 법정명은 문암동 그림바위이다. 문암동은 본래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 지역으로 그림바위가 있으므로 화암(畵岩) 또는 문암(文岩)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주내면(西州內面)의 문암리(文岩里)를 병합하여 문암리(文岩里)라 해서 강서면에 편입된 후, 1983년 2월에 대통령령에 의하여 청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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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암동은 시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은 송절동, 서쪽은 원평동, 남쪽은 화계동, 북쪽은 정상동과 인접해 있다. 마을의 대부분이 평지이나 서쪽 일부지역이 구릉지를 형성하여 이곳에 그림바위마을이 있고, 마을 앞에는 안산마을이 있다. 마을 뒤에는 충북선이 주행하고 동쪽은 무심천(無心川) 제방도로가 있다. 마을 뒤편으로 약 이십만 평 정도 들이 펼쳐져 있다. 들판 중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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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바위마을의 생활상은 농촌 마을과 유사하다. 주민들이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사시사철에 따라 생활모습이 바뀐다. 조선시대부터 농촌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마을 주민들은 협동과 단결이 잘 된다. 농사의 방법이 수작에서 기계로 바뀐 이후에도 혼자서 경작할 수 없기 때문에 주민 간에 협력이 필요해 단결이 잘 되고 있다. 예전처럼 동네 전체가 품앗이로 경작하진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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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위치가 북서쪽에 치우쳐 있어 교육 환경이 좋은 편이 아니다. 마을 주민들은 초등학교는 내곡동에 있는 내곡초등학교와 인근 시내에서 그 중 가까운 주성초등학교를 다녔고, 그 전에는 강서초등학교를 다녔다. 이 때는 교통편이 불편하여 모두 걸어서 등교했는데, 거리가 멀어 마을 아이들이 모여서 줄을 맞춰 등교하곤 했다. 중학교는 가장 가까운 주성중학교를 다닌다. 그러나 현재도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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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바위마을은 아직도 동네에서 초상을 치르고 있다. 2004년 현재 그 수가 줄어드는 추세이고 일손이 모자라 상포사에 맡기기도 하지만 시내에서 보기 드물게 합심하여 초상을 치르고 있다. 2000년 이전까지는 거의 모든 초상이 이 동네에서 이루어졌지만 현재는 병원영안실이나 장례식장을 사용하는 경우가 70%가 넘는다. 동네에 초상이 나면 동계와 연반계 회원들이 합심하여 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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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바위마을은 아직도 동네에서 초상을 치르고 있다. 2004년 현재 그 수가 줄어드는 추세이고 일손이 모자라 상포사에 맡기기도 하지만 시내에서 보기 드물게 합심하여 초상을 치르고 있다. 2000년 이전까지는 거의 모든 초상이 이 동네에서 이루어졌지만 현재는 병원영안실이나 장례식장을 사용하는 경우가 70%가 넘는다. 동네에 초상이 나면 동계와 연반계 회원들이 합심하여 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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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소 장가들이기 이날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를 꺾어서 개나 소의 목에 묶어 주는 것을 장가들인다고 한다.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로 가축의 목에 묶어주면 귀신을 없애고 가축이 새끼를 잘 낳는다고 믿었다. ◦ 과일나무 결혼시키기 우물가의 돌이나 샘 옆의 돌맹이를 감나무 가지에 올려놓으면 감나무에 감이 많이 열린다고 하여 돌을 올려놓았다. 이것을 “감나무 시집보내기”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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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바위마을의 생활상은 농촌 마을과 유사하다. 주민들이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사시사철에 따라 생활모습이 바뀐다. 조선시대부터 농촌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마을 주민들은 협동과 단결이 잘 된다. 농사의 방법이 수작에서 기계로 바뀐 이후에도 혼자서 경작할 수 없기 때문에 주민 간에 협력이 필요해 단결이 잘 되고 있다. 예전처럼 동네 전체가 품앗이로 경작하진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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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위치가 북서쪽에 치우쳐 있어 교육 환경이 좋은 편이 아니다. 마을 주민들은 초등학교는 내곡동에 있는 내곡초등학교와 인근 시내에서 그 중 가까운 주성초등학교를 다녔고, 그 전에는 강서초등학교를 다녔다. 이 때는 교통편이 불편하여 모두 걸어서 등교했는데, 거리가 멀어 마을 아이들이 모여서 줄을 맞춰 등교하곤 했다. 중학교는 가장 가까운 주성중학교를 다닌다. 그러나 현재도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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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명은 청주시 흥덕구 강서2동 10통이고, 법정명은 문암동 그림바위이다. 문암동은 본래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 지역으로 그림바위가 있으므로 화암(畵岩) 또는 문암(文岩)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주내면(西州內面)의 문암리(文岩里)를 병합하여 문암리(文岩里)라 해서 강서면에 편입된 후, 1983년 2월에 대통령령에 의하여 청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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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암동은 시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은 송절동, 서쪽은 원평동, 남쪽은 화계동, 북쪽은 정상동과 인접해 있다. 마을의 대부분이 평지이나 서쪽 일부지역이 구릉지를 형성하여 이곳에 그림바위마을이 있고, 마을 앞에는 안산마을이 있다. 마을 뒤에는 충북선이 주행하고 동쪽은 무심천(無心川) 제방도로가 있다. 마을 뒤편으로 약 이십만 평 정도 들이 펼쳐져 있다. 들판 중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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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산 유람-할제 삼-신산이 어디메뇨 일본에 이방잔가- 사-명주 이 아니냐 죽장을 짚고 단표자로- 봉래산을 구경갈 제 경포 동정호는 명-월-을- 구경하고 단발령은 얼른 넘어 봉래산 고은 경치 지-척-에 던져두고 못본지가 몇해인-가 다행히 오날이야 이곳을 당도-하니- 이일이 새로워라 어화 세상 벗님네야 상-전벽해를 웃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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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주산업은 논농사이다. 주변 농지는 20만 평이 되는데 주로 인근 까치내에서 농사를 짓는다. 마을 거주 83호 중 20호 정도가 현재 농사를 짓고, 나머지 주민은 시내 등지에서 직장생활을 하거나, 노령화 되어 자식들에게 의탁하고 있는 실정이다. 벼농사 중 메벼 농사를 주로 하고 수확한 벼는 농협과 정부에 수매하고 나머지는 개인별로 수입을 내고 있다. 밭농사는 자급할 양만 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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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그름바위라고 했어요. 옛날에 보믄 그전에는 물이 좋고, 별주부 자라 그걸 잡으려고 말야 그름바위, 오면은 바위가 있잖소, 갈래졌지 그전에는 한 여러믄이 앉아서는 농사짓는 밥을 식사를 하고는 했거든. 그런데 제방으로 돌을 가져다 쌓는 바람에 죄다 없어졌어. 그전에 전설이라는 게 옛날에 거기서 바위가 있어서 그름바위여. (선비가 많아서는 무슨 이야기에요) 그건 내가 이야기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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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장성하게 키워놨는데, 딸 줄 사람이 있어야지. 사우 삼을 사람이 없어서. 그래 옛날에는 광고에 붙이는 걸 방이라 했어요. 그래 도(道)로 군(郡)으로 면(面)으로 얘기 잘하는 사람 사우 삼는다고 그러니까, 젊은 혈기 있는 사람들은 가서 혼인 할라고 다 한번 가는 거야. 그래 거기 찾아갔는데, 충청도 사람도 가고, 전라도 사람도 가고, 경상도 사람도 가고, 인제 가믄 그 근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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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에 속하는 법정동. 그림바위라는 바위가 있어서 그림바위, 화암이라고 불러왔고, 화암 오행민(吳行敏), 행간(行簡), 행건(行健) 삼 형제가 이 바위에서 글을 읽었다고 해서 서암, 문암으로 불러왔다. 문암동은 본래 청주군 서강내일상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서주내면의 문암리를 병합하여 문암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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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극단체. 극단 새벽은 ‘지역연극의 활성화와 연극을 통하여 정서함양을 목적’으로 충북대학교를 비롯하여 충북지역 대학 연극반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최호기를 대표로 1991년 2월 3일 창단되었다. 1991년 2월 3일 청주시 흥덕구 사창동 새벽인쇄사 지하에 30평 규모의 연습장과 사무실을 갖추고 출발하였다. 초기단원은 박종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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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극단체. 1970년 10월 3일에 창립되었다. 그 해 11월 창단공연으로 「햄릿」(섹스피어 작, 임해순 연출)을 무대에 올리며 활동을 시작하였다. 2002년에 흥덕구 사창동 304번지에서 운영하던 전용소극장 ‘시민극장’이 운영비 부족으로 잠정 폐쇄 되었으나 2004년 12월에 상당구 북문로1가 31번지에 전용극장 ‘씨어터제이’를 개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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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의 천도를 기원하는 무가(巫歌). 무속은 여느 고등종교와 달리 현실에서의 복락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만큼 우리의 전통적 삶이 녹록하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현실의 벽에 의한 좌절, 그리고 그것을 기정사실로 용납하려 하지 않는 미련, 이 사이에서 누구나 크고 작은 한이 맺히게 마련이다. 그런데 해원풀이를 통해 이승의 삶에서 맺힌 망자의 한을 풀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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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이후 독립운동, 교육계, 국방분야에서 활동하며 사회에 기여한 청주의 인물. 충청지역의 근대 인물들은 외세에 의한 개항 후에 침략해 오는 일본 제국주의 세력과 대항하여 주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나라 안과 밖에서 목숨을 걸고 투쟁한 애국지사, 독립운동가, 의병장들이 많이 나왔다. 그리고 일제의 지배 아래에서도 겨레의 주권을 회복하고, 광복 후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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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향군로 136번길 21에 있는 근로복지공단 소속 지사. 충북 청주시, 청원군, 진천군, 괴산군, 증평군, 보은군, 옥천군, 영동군 지역의 근로자 복지 증진을 위해 개설되었다. 근로복지공단 청주지사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에 따라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대한 신속하고 공정한 보상과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복귀 촉진을 위한 보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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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향군로 136번길 21에 있는 근로복지공단 소속 지사. 충북 청주시, 청원군, 진천군, 괴산군, 증평군, 보은군, 옥천군, 영동군 지역의 근로자 복지 증진을 위해 개설되었다. 근로복지공단 청주지사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에 따라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대한 신속하고 공정한 보상과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복귀 촉진을 위한 보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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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1가에 있는 청주관아(淸州官衙)의 중심 건물. 1868년 목사 이덕수(李德洙)가 중수하면서 청녕각(淸寧閣)이라 편액을 고쳤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근민헌 목사정당 십간’이라 하여 이 건물의 명칭이 근민헌(近民軒)이고 규모는 10칸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호서읍지(湖西邑誌)』에는 서원현감 이병정(李秉鼎)이 동헌을 창건하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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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5년(충렬왕 31)에 청주 원흥사(元興寺)에서 간행된 목판인쇄 도서.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소의경전(所衣經典)으로서, 이 경에 대한 중국 승려 다섯 사람의 주해(註解: 五家解)가 특히 유명하다. 청주 원흥사(元興寺)에서 간행된 이 책은 오가해 중 육조(六祖) 혜능(慧能)[638~713]의 『금강경구결(金剛經口訣)』을 중심으로 간행한 것이다. 2000년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발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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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암(土庵) 이승여(李承如)[1874~1934]에 의해 창도된 신종교. 금강대도는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포항리에서 태어난 이승여가 33세에 대도를 얻은 후 1910년 계룡산 신도안 백암동으로 옮겨 포덕(布德)을 한 데서 비롯된다. 1934년의 총독부 조사에 의하면 당시의 신도수가 13,000여명이라 하여 상당한 교세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2대 교주는 그의 장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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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5년(충렬왕 31)에 청주 원흥사(元興寺)에서 간행된 목판인쇄 도서.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소의경전(所衣經典)으로서, 이 경에 대한 중국 승려 다섯 사람의 주해(註解: 五家解)가 특히 유명하다. 청주 원흥사(元興寺)에서 간행된 이 책은 오가해 중 육조(六祖) 혜능(慧能)[638~713]의 『금강경구결(金剛經口訣)』을 중심으로 간행한 것이다. 2000년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발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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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은 둥글고 입술은 곧거나 바라진 모습의 단지형 토기. 바닥이 둥글면서 구형이거나 편구형의 모습이며 몸통의 최대 지름이 토기의 높이나 입지름보다 크다. 무늬는 입술에서 몸통의 최대 지름이 있는 곳까지 전반적으로 베풀어져 있다. 무늬 새기개는 끝의 폭이 넓고 미세한 凹凸이 있는 것을 사용하였으며, 베푼 방법은 비스듬히 연속적으로 압인하여 마름모 무늬를 새겼다. 이 토기는 처음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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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서 금강유역의 자연·대기·수질환경 현황과 환경보전을 담당하던 공공기관. 금강권의 환경을 위한 행정기관으로 금강유역환경청 산하에 있었던 출장소이다. 2002년 7월 금강특별법의 본격적인 시행을 계기로 금강권의 자연·대기·수질환경현황과 환경보전을 위해 금강환경관리청을 설립하였다. 청주에는 청주환경출장소가 있었고 주로 지정폐기물 배출업소 및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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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서 금강유역의 자연·대기·수질환경 현황과 환경보전을 담당하던 공공기관. 금강권의 환경을 위한 행정기관으로 금강유역환경청 산하에 있었던 출장소이다. 2002년 7월 금강특별법의 본격적인 시행을 계기로 금강권의 자연·대기·수질환경현황과 환경보전을 위해 금강환경관리청을 설립하였다. 청주에는 청주환경출장소가 있었고 주로 지정폐기물 배출업소 및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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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원평동에 있는 들. ‘금배’는 ‘금’과 ‘배’로 분석된다. ‘금’은 ‘신(神)’의 뜻인 ‘’에서 기원한 것으로, ‘크다’나 ‘높다’를 뜻한다. 지명에서 ‘감’·‘검’·‘금’·‘가마’·‘가매’·‘고마’·‘가미’·‘가무’·‘개마’·‘개매’ 등으로 나타난다. ‘배’는 ‘바위’의 변화형으로, 지명에서 ‘바우’·‘방우’·‘방구’·‘박’ 등으로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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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원평동에 있는 들. ‘금배’는 ‘금’과 ‘배’로 분석된다. ‘금’은 ‘신(神)’의 뜻인 ‘’에서 기원한 것으로, ‘크다’나 ‘높다’를 뜻한다. 지명에서 ‘감’·‘검’·‘금’·‘가마’·‘가매’·‘고마’·‘가미’·‘가무’·‘개마’·‘개매’ 등으로 나타난다. ‘배’는 ‘바위’의 변화형으로, 지명에서 ‘바우’·‘방우’·‘방구’·‘박’ 등으로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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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석교동과 금천동을 연결하는 다리. 1991년 10월 개통된 다리로 총연장 36m, 폭 35m이며, 상행선과 하행선 각각 3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축조공법은 상부는 RC T-Beam방식, 하부는 라멘방식으로 건설되었다. 금석교(金石橋)의 명칭은 다리를 통해 연결되는 금천동(金川洞)과 석교동(石橋洞)의 앞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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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가 인쇄된 흥덕사 절터와 고인쇄문화의 종합박물관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양병산 기슭에 위치하는 흥덕사는 고려 우왕 3년(1377)에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며 세계기록유산인『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하 『직지』]를 비롯하여『자비도량참법집해(慈悲道場懺法集解)』 등을 금속활자로 간행한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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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판(活版) 인쇄를 하기 위해 쇠붙이를 녹여 각종 크기의 활자를 주형에 부어 금속활자를 주조(鑄造)하는 기술을 보유한 장인(匠人). 금속활자 인쇄기술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우리나라 고려시대에 창안된 것으로 보인다. 그 시기는 현재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232년(고종 19)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도에 천도한 고려 조정이 당시 수도였던 개경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한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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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를 목적으로 한 화폐의 수요와 공급 관계. 금융이란 이자를 받고 자금을 융통하여 주는 것을 말한다. 즉 일정 기간을 정하고, 앞으로 있을 원금을 상환과 이자 변제를 통해 상대방에게 자금을 이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금융은 약속된 상환기간의 장기, 단기에 따라 단기금융과 장기금융으로 분류된다. 주로 전자는 운전자금의 대차를, 후자는 설비자금의 대차를 가리키는데, 이 구별은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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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중소상공업자 및 서민을 조합원으로 하여 조합원에게 금융을 제공하는 신용금융기관. 1905년 '광무 9년의 금융공항’이 발생하자 농촌의 금융이란 거의 중단이나 다름없는 상태에 빠졌다. 이에 대처하여 1906년부터 각지에 농공은행과 창고(倉庫)을 설립하기는 하였지만 농촌의 금융은 별로 개선되지 못했다. 따라서 농촌의 금융을 소통시키기 위하여 1907년 5월에 지방금융조합규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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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평동에 있었던 마을. ‘쇠내’는 외평동에 있었던 마을로 ‘상촌(上村)’, ‘중촌(中村)’, ‘평촌(坪村)’ 지역을 아우르는 큰 마을 이었다. 일명 ‘금천(金川)’이라고도 한다. 본래 ‘쇠내’는 멀리 상당산성(上黨山城)에서 발원하여 팔결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쇠내’의 ‘쇠’는 ‘金’, ‘내’는 ‘川 ’의 뜻이다. 그러니 ‘쇠내’는 ‘금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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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의 상당산성에서 발원하여 금천동을 지나 무심천(無心川)으로 흘러드는 하천. 쇠내개울, 금천(金川), 명암천(明岩川)이라고도 한다. 쇠내개울은 ‘금이 나는 내’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지역은 지금도 금과 관련된 지명전설이 전해내려 오고 있다. 일제강점기까지도 쇠내개울의 상류에 금광이 있었으며, 내에서 사금을 채취하였고 한다. 또한, 장마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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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있는 일반계 고등학교. 성실(誠實), 면학(勉學), 정의(正義)’라는 교훈을 바탕으로, ‘꿈과 희망이 있는 학교, 사랑과 신뢰가 있는 학교, 자율과 책임이 있는 학교’를 지향하며, 스스로 배우고 익혀서 사랑하고 봉사하는 참된 사람을 그리는 인간상으로 한국의 미래를 주도할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인간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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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속하는 법정동. 사금을 캐냈다고 하여 쇠내개울, 쇠내 또는 금천이 되었다. 본래 청주군 동주내면(東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탑동리(塔洞里), 문외리(門外里), 구하리(九下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금천리라 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되었다. 1920년 청주읍에 편입되면서 탑동과 금천동으로 분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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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있었던 고려~조선시대 유물 산포지. 한국토지공사 충북지사에서 추진한 청주 용암2지구 택지개발사업에 따른 문화재 부존여부와 역사적 배경, 전통문화 등의 규명을 위한 사전조사로서 1995년 국립청주박물관에 의해 이루어졌다. 유적의 파괴를 사전에 예방하고 문화유적의 시굴 및 발굴조사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기초조사로서 지표상에서 고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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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물이 산포되어 있는 유적지. 이 유물산포지에서는 민무늬토기조각·돌 그물추·석영암제 뗀석기와 삼국 ~ 고려시대 토기조각, 소형탑 모양의 토제품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또 현재 지표상에 특별한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납작한 자연석을 이용한 그물추와 소형석봉, 석영암제 뗀석기가 채집되어 신석기나 구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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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의 유물이 출토된 유적지. 이 유물산포지에서는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돌도끼·삼국시대 토기조각·고려시대의 토기와 기와조각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특히, 찾아진 유물 중 홈자귀는 홈이 있는 도끼의 형태로 주로 나무를 손질할 때 쓰이는 도구로 날부분는 갈아서 매끈한 상태이며, 홈부분도 비교적 잘 마연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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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있었던 고려~조선시대 유물 산포지. 한국토지공사 충북지사에서 추진한 청주 용암2지구 택지개발사업에 따른 문화재 부존여부와 역사적 배경, 전통문화 등의 규명을 위한 사전조사로서 1995년 국립청주박물관에 의해 이루어졌다. 유적의 파괴를 사전에 예방하고 문화유적의 시굴 및 발굴조사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기초조사로서 지표상에서 고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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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성실하고 올바른 자세로 참된 인성을 실천하는 도덕인, 기초 학력과 정보 활용 능력 신장으로 미래 사회에 대비하는 실력인, 기초 능력을 토대로 창의적 능력을 발휘하는 창조인, 자신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인, 심신을 연마하고 취미와 소질을 계발하여 조화롭게 성장하는 건강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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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위치하는 있는 공립 초등학교. 진취적인 품성을 지닌 어린이, 스스로 탐구하는 어린이, 개성을 키워가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를 길러 품성이 바르고 건강하며 미래를 여는 창의적인 어린이를 육성한다. 1983년 12월 6일 금천국민학교 설립인가를 받아 청남초등학교와 석교초등학교 학구 일부를 분리·통합하여 1984년 9월 1일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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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과 연기군 전의지역으로 추측되는 삼국 항쟁기의 전투지. 금현성(金峴城)은 『삼국사기(三國史記)』권 제37 잡지 제6 유명미상지분(有名未詳之分)에 보인다. 『삼국사기(三國史記)』(권26 백제본기 성왕 28년 3월, 권19 고구려본기 양원왕 6년 3월, 권4 신라본기 진흥왕 11년 3월, 권44 이사부)에 의하면 550년 백제 장군 달기(達己)가 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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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안전하게 말을 탈 수 있게 하여 기병이 보다 효과적인 전투수행을 가능케하는 마장(馬裝) 도구. 기마구는 크게 제어구와 안정구로 나눌수 있다. 제어구는 말을 달리게 하거나 서게하고 또 방향을 돌리게 하는 등 말을 직접 부리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로 재갈과 고삐 등이 있으며, 안정구는 말 위에 타거나 말을 달릴때 몸의 안정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로 안장과 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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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서경(恕卿), 호는 송재(松齋)이다. 1486년(성종 17) 주부(主簿) 한창유(韓昌愈)의 아들로 청주에서 출생하였다. 1510년(중종 5) 생원이 되고, 1513년 별시문과(別時文科)에 장원하여 전적(典籍)을 거쳐 정언(正言)·이조정랑(吏曹正郞)·응교(應敎) 등을 역임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도량이 크며 독서를 즐겼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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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있는 기상 예·특보 및 관측, 기상기후서비스를 하는 정부기관. 충청북도의 기상 예·특보 및 관측, 기상기후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기상청의 대전기상청 산하에 청주기상지청을 두고 있다. 청주기상지청은 충청북도의 기상예보 및 기상특·정보를 생산하고, 관할지역 특성에 맞는 특화된 기상기후정보를 발굴·생산하여 지역민의 기상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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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원군 내수읍에 있는 공항의 기상을 관측하는 기관. 항공기의 안전을 위해 청주국제공항에는 기상청 항공기상대 산하의 청주공항관측소를 두었다. 항공기상대는 기상청 소속 책임운영기관으로서 항공기의 안전과 효율적 운항에 반드시 필요한 항공기상 정보를 생산·제공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전국의 주요 민간항공기가 취항하는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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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기생 해월의 정려각.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순절한 홍림(洪霖)[1685~1728]의 첩실이었던 기생 해월(海月)의 절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각이다. 해월은 이인좌의 난 때 홍림이 희생되자 반란군에게 애원하여 그의 시신을 찾아 장사를 지냈다. 원래 홍림과 함께 죽을 마음이 있었으나 뱃속에 유복자가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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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목적을 위하여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조직적인 경제단위. 청주지역 제조업의 핵심인 청주공업단지는 1969년 건설부로부터 청주공업단지 조성계획을 승인 받고 1970년 11월에 공단조성이 완료되었다. 청주지역 경제를 조직화하고 근대화하기 위해서는 집단적인 구성이 필요하였고, 집적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대규모이면서도 집중적으로 투자를 유도하고 기업에 대한 지원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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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의 온도. 연도별 연평균기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데, 이는 청주의 도시화에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연평균기온은 12.0℃이고, 최난월은 25.4℃의 8월이고, 최한월은 -2.8℃의 1월이며, 연교차는 28.2℃이다. 연평균 최고기온은 17.8℃이고, 연평균최저기온은 7.0℃이다. 일교차는 7월에 8.2℃, 4월에 13.4℃로 장마철에 가장 작고, 봄과 가을에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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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철 큰 가뭄에 비 내리기를 하늘에 빌었던 제사. 고대 이래로 조정과 지방관청, 민간을 막론하고 가뭄이 들면 기우제가 성행하였다. 청주지역에서는 흥덕구 사직동 사직단과 상당구 우암동 와우산(臥牛山), 흥덕구 비하동 부모산성, 상당구 산성동 청주 상당산성에서 제물을 차려놓고 기우제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청주목사가 읍성 서쪽 사직단에 제물을 차려놓고 기우제를 지냈다. 가뭄이 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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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낳기를 바라며 행하는 여러 가지의 습속. 부권 사회가 되면서 각 종족은 남아 선호 사상이 가지게 된다. 이에 따라 남아 선호 사상이 자연스럽게 생겼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추측되나, 가부장제에 따른 남아선호 사상이 강하게 되어 남존여비까지 가게 된 것은 중국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아들로 가계를 잇고, 족보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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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없는 집에서 아들 낳기를 비는 민간신앙.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부장제(家父長制)에서 아들이 없으면 대(代)가 끊어진다고 하여 아들을 선호하는 사상과 여자가 아들을 못 낳으면 칠거지악(七去之惡)의 하나로 쫓겨나는 관습에서 기자신앙이 크게 발달하였는데 그 형태는 크게 치성(致誠), 적덕(積德), 주술(呪術)로 나누어진다. 치성은 명산대천의 산신당이나 용왕당 또는 효험이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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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국립청주박물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조 불상. 충청남도 연기군 전동면 다방리 비암사에서 발견 된 3점의 비상(碑像) 가운데 하나이다. 현재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87번지[명암로 143]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높이 57.5㎝, 두께 8.5㎝ 크기의 이 석상은 주형(舟形) 광배(光背)와 같은 형태의 하나의 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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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지역의 평균 기상상태. 청주는 북반구 중위도에 자리 잡고 있으며, 유라시아 대륙 동안의 한반도 중남부에 있는 차령산맥과 소백산맥으로 둘러싸인 내륙 분지 지역이다. 따라서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온대 대륙성 기후대에 속한다. 겨울을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으로 북서풍이 강하고, 한랭건조하며, 여름에는 북서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남풍~남서풍이 불어 고온 다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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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성화동에 있는 마을. ‘긴밭재’는 1차적으로 ‘긴밭’과 ‘재’로 분석된다. ‘긴밭’은 다시 ‘긴’과 ‘밭’으로 나뉜다. ‘긴-’은 ‘길다[장(長)]’의 관형형이니, ‘긴밭’은 ‘길게 늘어진 밭’으로 풀이된다. 또한 ‘재’는 ‘고개’이니, ‘긴밭재’는 ‘길게 늘어진 밭에 있는 고개’로 해석된다. 고개가 기다란 밭과 연결되어 그 고개를 그냥 ‘긴밭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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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 인근 출신의 인물. 928년(태조 11) 왕건(王建)이 견훤(甄萱)에 보낸 글에 간단히 언급된 인물이다. 즉 연산군(燕山郡) 지경에서 길환(吉奐)을 목베었다고 하였다. 이를 통해 보면 길환은 친 견훤의 정치적 입장을 보인 인물로서 고려의 왕건에 의해 죽음을 당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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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동학농민군의 2차봉기 때 청주성을 공격했다가 일본군의 기습으로 패배한 전투. 청주성은 동학농민전쟁 당시 스나이더 등 신식무기로 무장한 진남영 병대가 방어하는 요지였다. 9월 재봉기시 전봉준(全琫準)의 남접군에 합세하지 않은 김개남(金開南)은 전라도 남원에서 2만5천여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독자적으로 북상하면서 12월 9일(음력 11월 13일) 청주성 공격을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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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중아(仲雅)이다. 아버지는 김계(金堦), 어머니는 유숙(柳塾)의 딸이다. 생부(生父)는 김지(金墀)이고, 할아버지는 김종손(金宗孫)이며, 증조할아버지는 김환(金丸)이다. 부인은 이달선(李達善)의 딸이고, 조카는 김계현(金繼賢)이다. 1513년(중종 8) 계유년 별시(別試)에서 병과(丙科) 4등으로 합격하여 출사하였으며, 15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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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초 청주지방의 토호. 962년에 세워진 「용두사지철당간기(龍頭寺址鐵幢竿記)」에 대등(大等)의 직을 띠고 있다. 대등은 983년(성종 2) 향리직 개편시에 부호장(副戶長)으로 칭호가 바뀌게 되는데, 부호장은 호장 다음의 위상이다. 따라서 청주의 유력 토착세력으로 볼 수 있다. 김씨(金氏)는 당시 당간의 건립을 주도한 김(金), 손(孫), 경(慶), 한(韓) 4성씨 가운데 대표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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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단원으로 의열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찍이 상경하여 경신학교(儆新學校)를 졸업하고 귀향하여 청주 청남학교(靑南學校) 교사로 재직한 바 있다. 일제 강점기 내내 독립운동에 헌신하였고, 해외로 망명하였다가 광복 후 귀국, 사업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1909년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의 당원이 되어 국내외에서 독립을 위한 지하공작을 전개하였고, 1919년 3·1운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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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회여(晦汝), 호는 수북(水北)이다. 할아버지는 김극효(金克孝)이고, 아버지는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이며, 어머니는 권송(權悚)의 딸이다. 1612년(광해군 4) 생원·진사 양과에 모두 합격했으나, 광해군(光海君)의 어지러운 정치를 비판하며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인재로 뽑혀 연원도 찰방(察訪)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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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묘호란 때의 충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이다.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의 서제(庶弟)인 김시약(金時若)이 아버지이다. 할아버지는 지평 김충갑(金忠甲)이다. 청주 출신이며, 형 김환(金桓)과 함께 정묘호란 때 순절한 아버지를 따라 죽었다. 아버지 김시약은 1596년(선조 29) 충청도 괴산(槐山)에서 선봉장으로 창의하여 왜적을 격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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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자는 국서(國瑞)이다. 청주 출신으로 김인로(金仁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달현(金達玄)이고, 아버지는 김유성(金維城)이며, 어머니는 신진문(申進文)의 딸이다. 부인은 최일주(崔一柱)의 딸이다. 1827년(순조 27)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출사 하였다. 급제 당시 왕세자가 춘도기 유생(春到記儒生)의 시험을 춘당대(春塘臺)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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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 출신의 재경 관인.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정권을 장악했을 무렵 수도에 있던 청주 출신의 인물이다. 태조가 즉위 초에 청주인의 동정을 살피려고 청주 출신의 능달(能達), 문식(文植), 명길(明吉)을 청주에 보냈는데, 능달은 믿을 만하다고 말했으나, 문식과 명길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그 사실을 김근겸(金勤謙)에게 말하였다. 그런 사실에서 김근겸은 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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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팔봉리 출신으로 초창기 한국근대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평론가 겸 소설가. 한국 낭만주의 문학의 거점이라고 할 수 있는 『백조』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최초의 근대 연극단체라 할 수 있는 ‘토월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23년 『개벽』에 처음으로 프로 문학 이론을 소개하였다. 이후 ‘카프(KAPF)’ 발기인으로 프로 문학 운동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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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부인은 여류화가 박래현이다. 1913년 2월 28일 서울에서 출생하여, 7세에 장티프스로 청각을 잃고, 부모의 도움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2001년 1월 23일 충청북도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 ‘운보의집’에서 향년 86세에 숙환으로 죽었다. 승동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당화숙(以堂畵塾)에서 김은호(金殷鎬)에게 그림을 배워 6개월만에 「판상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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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주의 열녀. 열녀 전씨(全氏)는 선비 김당(金唐)의 부인이다. 열행이 뚜렷하였기에 장계를 올려 정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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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여기(汝器)이다. 청주 출신으로 김하서(金河瑞)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김악춘(金樂春)의 딸 순천김씨(順天金氏)이다. 부인은 강명윤(康明胤) 딸 신천강씨(信川康氏)이고, 할아버지는 김계현(金繼賢)이며, 증조할아버지는 김공연(金公衍)이다. 1615년(광해군 7) 소과의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21년에 실시한 문과 알성시(謁聖試)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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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청풍(淸風)이며, 자는 성희(聖希)이다. 군수(郡守) 김추(金樞)의 아들이다. 1716년(숙종 42)에 무과에 급제하여 내외 직을 두루 거친 후 충청도 수군절도사를 역임하였다. 1726년(영조 2)에 관직을 사임하고 향리로 돌아왔다. 1728년 청주에서 이인좌(李麟佐)의 난(무신란)이 일어남에 전 주서(注書) 유언협(柳彦協) 및 삼종형(三從兄) 김광노(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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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김학성(金學性)의 넷째 아들이다.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형제들이 모두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마시고 수일동안 연명하다가 돌아가셨다. 어머니 묘소 옆에 여막을 짓고 3년동안 시묘살이를 했으며, 넷째 아들이면서도 정성을 다했다. 김병위의 효행이 널리 알려져 1875년(고종 12) 청주 영장(營將)이 표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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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군 출신의 근대조각가. 호는 정관(井觀)이며, 아버지는 김홍규, 어머니는 김현수이다. 소설가 김기진의 형이며, 아내는 허하백이다. 배재고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토월회(土月會)에서 활동하고, 토월미술연구회, 기독청년회, 경성여자상업학교 등의 강사로도 있었다. 1925년 카프(KAPF)의 발기인으로 조선공산당 중앙위원에 가담했다가 6년간의 옥고를 치르는 불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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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조각의 선구자인 김복진(金復鎭)[1901~1940]을 추모하기 위하여 열리는 미술제. 지방자치시대로 변화된 지형에서 자기정체성을 찾고 지역적인 미술을 고민하며 구체적인 충북미술을 부각시키고자 1997년 시작되었다. 충북미술의 근원적 역사성을 밝히고 정립시키기 위한 과정, 지역 미술계가 안고 있는 충북지역 미술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고 자기반성의 자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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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평장사(平章事) 김방경(金方慶)의 손자이다. 지금의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문장에 능하였으며, 공민왕 초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안렴사(按廉使)에 이르렀다.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1328~1396]과 친교가 두터웠으며 함께 직간(直諫)으로 이름이 높았다. 1365년(공민왕 14) 왕이 신돈(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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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숙종 때 벼슬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본래 충직하였으며,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일명 무신란)이 일어나 반란군에 의해 청주성이 함락되자 지팡이를 이끌고 나아가 반란군을 향하여 “네 어찌 감히 국은(國恩)을 잊고 이에 이르렀느냐” 하고 호령하다가 살해당하였다. 1763년(영조 39)에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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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청용리에 있는 김상남과 그의 며느리 김해김씨의 정려각.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반란군의 진영에 뛰어들어 반란군의 불충을 꾸짖다 희생된 김상남의 충절을 기리고, 세 차례나 손가락을 자른 피로 남편을 살린 김상남의 며느리이자 김여산(金如山)의 부인인 김해김씨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1883년에 세운 정려문이다. ㈜하이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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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효자. 두 아우와 같이 살면서 함께 부모 봉양을 지극히 하였다. 모친이 죽자 슬퍼하고 사모하는 정성을 다하였고, 삭망 전에는 반드시 술과 음식을 갖추어 올리니 사람들이 옷을 벗어 도와주는 이도 있었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旌閭)되었다 한다. 『성종실록(成宗實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한다. 예조(禮曹)에서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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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지방의 토호. 962년에 쓰여진 「용두사지철당간기(龍頭寺址鐵幢竿記)」에 대등(大等)의 직을 띠고 있다. 대등은 983년(성종 2) 향리직 개편시에 부호장(副戶長)으로 칭호가 바뀌게 되는데, 부호장은 호장 다음의 위상이다. 따라서 청주의 유력 토착세력으로 볼 수 있다. 철당기에는 김씨(金氏) 성을 가진 인물이 여럿 보이며 직위가 다른 성씨보다 높아 청주의 성씨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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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임진왜란 때 중봉(重峰) 조헌(趙憲)[1544~1592]과 더불어 창의하여 1592년(선조 25) 8월 17일 충청도 금산 전투에서 칠백의사와 함께 장렬하게 순절하였다. 금산의 칠백의총에 묻히고, 비가 세워졌다.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에는 의병장 조헌에 대한 기록과 함께 김선복에 대한 사실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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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청주 출신이다. 2세 때에 생모(生母)가 돌아가셨다. 14세에 종가(宗家)로 입양(入養)되었으나 항상 친부를 잊지 못하여 꿩과 토끼를 잡고 생선을 낚아 봉양하였다. 효행이 뛰어나 향리에서 여러 번 영문(營門)과 조정에 상신(上申)한 바 있으나 정려(旌閭)되지 못하고 1828년(순조 28) 그 효행이 인정되어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贈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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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지역에서 활동했던 연극인. 1957년 문총내 연극분과 발기인 5명(이정실, 김성렬, 김근수, 이상훈, 송주헌) 중 한명으로 대한적십자사충북지사 사무국장으로 재임하며 김근수 등 뜻있는 연극인들과 결속하여 충북연극협회 창립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1959년 한국연극협회로부터 승인을 받아 초대지부장을 역임했다. 매년 충북예술제 행사에 때맞춰 연 1회 연극공연을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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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청주 출신이다. 벼슬은 집의(執義)를 지냈다. 품성이 질박하고 성실하여 실속이 없으면서 뽐냄이 없었다. 4세에 모친을 여의고 농사를 지어 정성껏 부친을 모시는데 조금도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어려서 어머니 상을 일찍 당한 것이 한이 되어 부친상 때에 상청(喪廳)을 함께 배설하여 삼년상을 치렀다. 송시열(宋時烈)이 글을 짓고 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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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1728년(영조 4)에 청주 일대를 배경으로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무신란) 당시 어머니 상을 당하여 여막(廬幕)에서 생활할 때였다. 무신란의 소식을 접하고는 상당성(上黨城)에 나가 역적들을 토벌하고, 그 공으로 녹훈(錄勳)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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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1728년(영조 4)에 청주 일대를 배경으로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무신란) 당시 의병을 일으킨 충신이다. 의병 17인을 이끌고 역도의 무리 중에서 군교(軍校) 한진흥(韓震興)을 베고 역적 토벌에 공을 세웠다. 당초에는 녹훈에 이름이 빠졌으나, 1788년(정조 12) 무신년에 종정(從征)한 장사(將士)로서 생존한 사람과, 의를 지켜 순국(殉國)하였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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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량경(亮卿)이다. 지금의 청원군 오창면 출신으로 아버지는 성천부사를 역임한 김언(金琂)이고, 어머니는 이선립(李先立)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할아버지는 김낙서(金洛瑞)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계현(金繼賢)이며, 부인은 이후응(李後膺)의 딸 전주이씨이다. 충주 출신으로 1654년(효종 5)에 진사시에 합격한 후 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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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있는 양궁전용 경기장. ‘88 서울올림픽’에서 2관왕, ‘89 세계양궁선수권’에서 전관왕에 오르는 등 세계 최고의 여궁사로 부각한 충청북도 출신인 김수녕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조성된 양궁장이다. 1989년 체육진흥기금 15억원을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 1991년 12월 16일에 착공하여 2년 6개월 만인 1994년 6월9일 준공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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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민족혁명당 당원으로 상해와 남경 등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1930년부터 중국 상해·남경 등지를 다니면서 신익희(申翼熙)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민족혁명당의 당원으로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민족혁명당은 1932년 1월 일본이 상해 침략을 시작으로 중국 본토 침략을 본격화하자 급변하는 객관적 정세에 비추어 독립운동 세력의 총집결을 절감하고 통합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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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인물. 청주 출신으로 1595년(선조 28)에 무과에 등과하여 관직이 수사(水使)에 이르렀다. 효성이 지극함이 세상에 알려져 여러 번 포상을 받았고, 사서(賜書)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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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지방의 토호. 962년에 세워진 「용두사지철당간기(龍頭寺址鐵幢竿記)」에 대등(大等)의 직을 띠고 있다. 대등은 983년(성종 2) 향리직 개편시에 부호장(副戶長)으로 칭호가 바뀌게 되는데, 부호장은 호장 다음의 위상이다. 따라서 청주의 유력 토착세력으로 볼 수 있다. 「용두사당간기(龍頭寺幢竿記)」에 김수△라고 나오는데 그 인물이 아닌가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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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호는 용암(勇菴)으로 돈령(敦寧) 김복원(金復元)의 현손이다.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제자이다. 유고(遺稿)로 『사장(詞章)』 2권, 『성리설문답(性理設問答)』 3권, 『경설(經說)』 1권, 『비문(碑文)』 1권 등 7권이 전한다. 전간재의 제자로서 성리학에 밝고 문장에 뛰어나며 효우와 독행(篤行)이 출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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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충신. 조선 후기 정묘호란 때 절개를 지킨(節臣) 사람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字)는 기오(箕吾)이고 청주 출신이다. 비안현감(比安縣監) 김인갑(金仁甲)의 아들이며, 진주목사(晋州牧使) 김시민(金時敏)의 종제이다.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역임하고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다. 서애(西崖)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훈련원(訓練院) 첨정(僉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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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청주 출신으로 선조 때 무과에 등과하여 관직에 나갔다. 임진왜란으로 왜적이 침입할 당시 경상남도 거제 지세포(知世浦) 만호로 있을 때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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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남편은 김억손(金憶孫)이다. 청주 출신 열녀로 19세에 남편이 죽었고, 그 후에도 시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하였다. 들에 나가 나물을 캐는 데 강폭한 자가 야욕을 품고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니 칼로 팔을 베어버렸고 죽을 때까지 수절하였다. 이 일이 조정에 상신되어 정려(旌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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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충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字)는 여윤(汝潤)이다. 진사 김낙서(金洛瑞)의 아들이며 지평(持平) 김욱(金頊)의 아우로 청주 출신이다. 1609년(광해군 1) 진사(進士)가 되었다. 1615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된 뒤 폐모론(廢母論)에 가담하지 않아 승진이 늦어 7~8년 뒤 겨우 봉상시주부(奉常寺主簿)가 되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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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 출신의 인물. 918년 태조(太祖)가 정권을 장악한 직후에 관직을 전면 재임명하였을 때 김언규(金言規)는 일길찬(一吉湌)으로 백서성경(白書省卿)에 임명되었다. 태조 초 청주 출신의 견금(堅金)으로부터 다른 마음을 갖고 있다고 무고당하였다. 그러나 김언규가 그것을 알고 견금을 체류시키고 관찰하도록 아뢰자, 태조가 김언규의 말을 따랐다. 사무에 능숙하고 청렴하였으며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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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부.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남편은 김여산(金如山)으로 청주 출신이다. 김여산의 처로 시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다. 남편의 병환이 위급하자 세 차례나 손가락을 잘라 남편을 치료하였다. 아들 아홉형제를 선도하였으므로 여러 번 쌀과 고기가 하사되었다. 1883년(고종 20)에 정문(旌門)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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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청풍(淸風)이며, 청주 출신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지성으로 어버이를 공양하였다. 일찍이 도적이 집에 들어 칼날이 그 어머니에게 미칠 때 김연이 몸으로 막으니 도적도 감격하여 범하지 못하였다. 그 뒤 어머니가 등창이 나서 앓을 때에 밤낮으로 고름을 빨아 낫게 하였다. 모친의 병환에 지성을 다하고자 눈 속에서 알몸으로 하늘에 빌기가 일쑤였는데 지성이 지극함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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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초 청주지방의 토호. 용두사 철당을 세울 것을 발원한 인물이다. 962년에 쓰여진 「용두사지철당간기(龍頭寺址鐵幢竿記)」에 당대등(堂大等)의 직을 띠고 있다. 당대등은 983년(성종 2) 향리직 개편시에 호장(戶長)으로 칭호가 바뀌게 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토호층의 최상층이다. 고을의 호가(豪家), 향려(鄕閭)의 관족(冠族)으로 일컬어졌으며, 뜻밖의 병에 걸려 부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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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주지역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복경(福景)이다. 집이 비록 가난했으나 어버이를 극진히 섬긴 효자이다. 병환중인 아버지가 추운 겨울에 잉어를 먹고 싶다고 하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서 드시게 하였으며,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손가락을 자른 피로 3일간 목숨을 연장시키기도 하였다. 마침내 부친이 죽자 묘소 옆에 여막을 짓고 3년상을 치렀다. 1875년(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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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내곡동에 있는 김우근(金祐根)[1812~1853]의 효자각. 김우근은 비록 집이 가난했으나 어버이를 극진히 섬긴 효자이다. 1875년(고종 12) 고을 유생 이태로(李泰老)가 그의 효행 사실을 정부에 알려 표창하도록 건의하였으나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뒤 광산김씨 문중에서 1933년에 효자각을 세웠다. 흥덕구에 있는 ㈜하이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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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김우항의 신도비. 조선 숙종 대의 문신인 김우항의 신도비이다. 1964년 10월에 건립한 것으로 비문은 이종만(李種萬)이 짓고, 글씨는 변영인(卞榮寅)이 썼다. 상당구 산성동 청주에서 청원군 미원면으로 가는 국도변 왼쪽 언덕에 있다. 사각의 밭침대 위에 높이 143㎝, 폭 55㎝, 두께 25㎝의 오석(烏石) 비신을 세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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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계술(季述), 호는 청호거사(淸湖居士)이다. 아버지는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을 지냈고 대광보국숭록대부로 증직된 김홍경(金洪慶)이며, 숙종조의 우의정을 지낸 김우항(金宇杭)은 그의 형이다. 할아버지는 김덕승(金德承), 증조할아버지는 김진선(金盡善)이다. 부인은 고령신씨(高靈申氏)이며, 장인은 절제사(節制使)를 지낸 신득수(申得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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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지방의 토호. 962년의 「용두사지철당간기(龍頭寺址鐵幢竿記)」를 직접 짓고 글씨를 직접 썼다. 전한림학생(前翰林學生)의 직을 띠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청주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문장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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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청주지역의 육영사업가. 자수성가하여 학교법인 청석학원을 설립한 교육사업가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호는 청암(淸巖)이다. 아버지는 김한중(金漢重)이고, 어머니는 여양진씨(驪陽陳氏)이다. 동생으로는 함께 교육사업에 전념한 석정(錫定) 김영근(金永根)이 있다. 아들로는 청주대학교 총장을 지낸 김준철(金俊喆) 박사가 있는데 생부(生父)는 석정 김영근이다. 경상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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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김원근 설교기념비. 1924년에 대성보통학교를 설립하여 18년 동안 수업료를 받지 않고 일체의 운영비를 사재(私財)로써 충당한 설립자 김원근(金元根)[1886~1965] 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1933년에 아동보호자 회원을 중심으로 한 청주 일대의 유지들이 대성보통학교 교정에 설립하였다. 상당구 수동 399번지 현재의 대성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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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동에 있는 김원근(金元根)[1886~1965]의 자선사업을 기리는 시혜비. 대성학원의 설립자 김원근이 일제강점기시 참의(參議)로 있었을 때 구휼 자선사업을 기려 세운 선행비이다. 흥덕구 강서동 반송말 강서파출소 옆의 도로변 공원에는 8기의 비석 중 왼쪽에서 네 번째이다. 높이 117㎝, 폭44㎝, 두께 20㎝의 오석(烏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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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출신의 교육자이자 독지가. 김유복례(김유례)는 1910년에 태어나 16세에 결혼해 청상이 된 후 3남매 마저 모두 잃고 평생을 혼자 살았다. 청주에서는 욕쟁이 할머니로 유명하며, 평생 모은 재산을 충북대학교에 기탁했다. 김유복례는 1997년 작고하였다. 김유복례의 재산 기탁 이후 김유례 장학재단이 설립되었으며 충청북도 청주시 지역의 건전한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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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출신의 교육자이자 독지가. 김유복례(김유례)는 1910년에 태어나 16세에 결혼해 청상이 된 후 3남매 마저 모두 잃고 평생을 혼자 살았다. 청주에서는 욕쟁이 할머니로 유명하며, 평생 모은 재산을 충북대학교에 기탁했다. 김유복례는 1997년 작고하였다. 김유복례의 재산 기탁 이후 김유례 장학재단이 설립되었으며 충청북도 청주시 지역의 건전한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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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청주 출신의 양민이다. 효성이 지극하였다. 일찍이 그 부친이 병환이 들자 농사일을 잊어가며 극진히 간호하였다. 또한 전답을 팔아 시탕(侍湯)하였으며, 대소변을 직접 입에 대어 맛을 보아가면서 병의 차도를 진단하였고, 주야로 하늘에 빌었더니 병이 치유되었다 한다. 효행이 널리 알려져 숙종 조에 정려(旌閭)되었고, 아울러 복호(復戶)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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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이정(而靜)이다. 아버지는 김벽(金鼊)이고, 어머니는 정경(鄭經)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김수장(金守長)이며, 증조할아버지는 김학수(金鶴壽)이다. 부인은 전홍국(全弘國)의 딸 천안(天安)전씨이다. 충청도 충주 출신이다. 1590년(선조 23) 소과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그 후 종9품 참봉(參奉)으로 있다 1601년 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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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주목사. 김의순은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나아가 청주목사를 지냈다. 읍인(邑人)이 사우를 세우고 초상을 봉안했다고 『청주읍지(淸州邑誌)』(헌종대 편찬)에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사우는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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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문신.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나아가 청주목사에 이르렀다. 적가청(籍賈廳)을 신설하여 민폐를 덜어주었다. 이러한 선정으로 인하여 비를 세웠으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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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청주 출신으로, 1603년(선조 36) 계묘에 무과에 등과하여 두루 무반직을 역임했다. 1605년에 무겸 선전관(武兼宣傳官) 직책을 맡아 근시(近侍)의 임무를 수행하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박천군수(博川郡守)로 있으면서 성을 굳게 지키면서 적과 대치하던 중 갑자기 목에 병이 생겨 군중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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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가로서 시인으로서 교육자로서 청주지역사회에 기여했던 예술가. 테너 김일회는 청주세광고를 거쳐, 청주사범대학에 입학, 현악기인 콘트라베이스를 전공하다 대학3학년 말에 성악으로 전공을 바꾸어 졸업하였다. 이후 충청남도 홍성에서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34살의 나이로 이탈리아로 유학하여 5년간 공부와 연주활동을 하고 1995년 귀국하였다. 귀국 후 독창회, 오페라, 듀오콘서트 등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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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효자. 본관(本貫)은 안동(安東)이며, 자(字)는 위경(衛卿)·등가(登可)이다. 좌의정(左議政) 김사형(金士衡)의 증손(曾孫)이며, 김종숙(金宗淑)의 아들로 지금의 청원군 오창면 출신이다. 1447년(세종 29) 생원시(生員試)에 급제하고, 1454년(단종 2) 음보(蔭補)로 선공감(繕工監) 녹사(錄事)가 되었다. 이후 춘천부사(春川府使)·군기감정(軍器監正)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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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8일의 상주군 화북면 문장산(文藏山)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화북면 장암동(壯岩洞) 구장인 이성범(李聖範)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기로 결의하고, 4월 4일 인근 지역에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권유하는 권고문을 보내는 한편,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사전준비를 진행하였다. 거사일인 4월 8일 오후 2시경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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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단원으로 의열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찍이 상경하여 경신학교(儆新學校)를 졸업하고 귀향하여 청주 청남학교(靑南學校) 교사로 재직한 바 있다. 일제 강점기 내내 독립운동에 헌신하였고, 해외로 망명하였다가 광복 후 귀국, 사업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1909년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의 당원이 되어 국내외에서 독립을 위한 지하공작을 전개하였고, 1919년 3·1운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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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때 청주와 인근지역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여 독립사상을 고취시키고 만세시위를 일으키게 한 독립운동가. 『매일신보(每日申報)』 판매업을 하고 있던 그는 1919년 3월 1일 광무황제의 국장(國葬)에 참례키 위해 상경했을 때 서울의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는 것을 보고, 귀향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하였다. 귀가 후 강내면(江內面)에서 매일 산 위에서 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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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문신, 청주목의 부사(副使).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강원도 명주(溟州) 출신이다. 과거에 급제한 뒤 영광군수(靈光郡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우보궐(右補闕)을 거쳐 청주목의 부사(副使)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그 후 비서소감(祕書少監)이 되었다가 1111년(예종 6)에 전중감(殿中監)으로 요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이듬해 예부시랑(禮部侍郞)으로 다시 요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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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충신. 조선시대 유학자이며, 문신(文臣)이다. 본관(本貫)은 경주(慶州)이며, 자(字)는 원충(元冲), 호는 충암(冲菴)이다. 1486년(성종 17) 정랑(正郞) 김효정(金孝貞)의 아들로 청주에서 출생하였다. 10세에 사서(四書)에 능통하였고, 1504년(연산군 10)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였다. 1507년(중종 2)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장원하여 정언(正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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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서경(恕卿), 호는 송재(松齋)이다. 1486년(성종 17) 주부(主簿) 한창유(韓昌愈)의 아들로 청주에서 출생하였다. 1510년(중종 5) 생원이 되고, 1513년 별시문과(別時文科)에 장원하여 전적(典籍)을 거쳐 정언(正言)·이조정랑(吏曹正郞)·응교(應敎) 등을 역임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도량이 크며 독서를 즐겼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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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김정오(金鼎五), 김정삼(金鼎三), 김정일(金鼎一)의 형이며, 청주 출신이다. 천성이 착하여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고 예절과 몸가짐이 고매하였다. 모친의 병환에 강의 물고기가 먹고 싶다하므로 그 아우 김정오, 김정삼, 김정일과 더불어 그물을 가지고 개울에 나갔더니 갑자기 누치(訥魚) 한 마리가 그물로 들어 왔다. 또한 꿩 두 마리(雙雉)가 마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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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침략에 항거하여 단식, 순절한 애국지사. 청주 지방의 유생으로서 교육구국운동을 펼치는 한편, 평소 배일의식이 강하여 일제의 호적 기입을 거부하고, 이른바 ‘경절’에 일장기를 달지 않았으며 납세와 부역 등을 거부하는 등 항일투쟁을 하였다. 그러던 1913년 2월 일본 헌병에 피체되었으나 단식투쟁으로 동년 3월에 풀려났다. 그러나 곧 이어 5월 청원군 오창면(梧倉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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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이며, 자는 유인(猶人)이다. 청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김치기(金致基)이며, 어머니는 신담(申澹)의 딸 고령(高靈)신씨이다. 생부는 김치서(金致瑞)이고, 생모는 이사검(李思儉)의 딸 한산이씨이다. 할아버지는 김승노(金承魯)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규(金槼)이다. 부인은 이인정(李寅挺)의 딸이다. 1805년(순조 5) 성균관에서 공부 중 문과 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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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충청북도 청원군 부용면 외천리에서 김성균(金成均)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일본 주오(中央)대학 재학 중 1944년 학도병으로 입대, 소위로 임관되었으나 일본의 패망으로 귀국하였다. 국방경비대에 1946년 입대, 1947년 제1연대장이 되었고, 한국동란 때는 제6사단장으로 참전하였다. 그 후 육군사관학교 교장, 국방부 합동참모본부총장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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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의 향토기업인 한국도자기의 창업주. 호는 청운(靑雲), 본관은 김해(金海)로 청원군 오창면 가곡리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고 오창보통학교를 마쳤다. 신앙심이 깊어 1959년 중앙신학교에 입학,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하였다. 해방 전 대동목재를 설립, 일찍부터 사업의 길에 투신하고 삼광사, 충북제도 등 기업을 경영했다. 1959년, 충북제도인수 대표이사로 취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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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이다. 음서(蔭敍)로 부성위(富城尉)가 되었다. 1264년(원종 5) 과거에 합격하였으며, 그 뒤 해양부녹사(海陽府錄事)에 임명되고, 1275년(충렬왕 1) 대부경 좌사의대부(大府卿左司議大夫)에 임명되었다. 1278년 충렬왕(忠烈王)이 원나라에 갈 때 우부승지로서 수행하여 다루가치(達魯花赤)와 둔전군의 뒷받침이 번거로워 백성들의 고통이 심한 것과,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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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호는 계인당(繼忍堂)이다. 김형집(金亨集)의 아들이다. 청주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학문에 심취하여 문장이 세상에 뛰어났고, 타고난 천성이 순효(純孝)하였다. 부모가 병이 깊어지자 간호를 극진히 하였고, 엄동설한에도 죽순을 구하여 시봉(侍奉)하였으므로 백성들이 그 효성을 칭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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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청주목의 부사(副使).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명주(溟州) 출신이다. 과거에 급제한 뒤 영광군수(靈光郡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우보궐(右補闕)을 거쳐 청주목의 부사(副使)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그 후 비서소감(祕書少監)이 되었다가 1111년(예종 6)에 전중감(殿中監)으로 요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이듬해 예부시랑(禮部侍郞)으로 다시 요나라에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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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민족혁명당 당원으로 상해와 남경 등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1930년부터 중국 상해·남경 등지를 다니면서 신익희(申翼熙)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민족혁명당의 당원으로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민족혁명당은 1932년 1월 일본이 상해 침략을 시작으로 중국 본토 침략을 본격화하자 급변하는 객관적 정세에 비추어 독립운동 세력의 총집결을 절감하고 통합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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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자방(子房), 호는 반곡(盤谷)이다. 상락군(上洛君)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이다. 청주 출신이며, 음사(蔭仕)로 출사하여 1552년(명종 7)에 도사(都事)를 지내다가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학문에만 매달렸다. 거처하는 동네 아래에 반곡(盤谷)을 쌓아 호를 반곡이라 하고 지냈다. 그가 남긴 제영(題詠)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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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겸숙(兼叔)이다. 공조참판 김자항(金字恒)의 아들이다. 상신(相臣) 김우항(金宇杭)의 서질(庶姪)이다. 할아버지는 김홍경(金洪慶)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덕승(金德承)이다. 서울에서 살다가 청주 상당산성 아래로 이사하였다. 어머니에게 효도를 다하였고, 체력이 남달리 뛰어나 남대문루를 뛰어넘었다 한다. 1728년(영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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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청주 출신으로 자는 문보(文甫)이다. 아버지는 문과에 합격하여 성균관박사를 역임한 김응구(金應龜)이고, 어머니는 노경기(盧景麒)의 딸 교하노씨(交河盧氏)이다. 할아버지는 문과에 급제하여 공조정랑을 지낸 김광우(金光佑)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치련(金致璉)이며, 부인은 박의신(朴義信)의 딸 창원박씨이다. 이조참판을 지낸 김질간(金質幹)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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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있는 조선시대 율봉도찰방(栗峰道察訪)을 지낸 김하련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상당구 율량동 율봉공원의 율량동 고가 입구에 있는 4기의 비석 가운데 두번째 비석이다. 비석의 반 이상이 땅 속에 묻혀 있어 온전한 비석의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었으나 율봉공원으로 이전하면서 원래의 상태로 세웠다. 비신의 규모는 높이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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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일명 무신란)이 일어나 목사(牧使) 박당(朴鏜)은 도피하고 우후(虞侯) 박종원(朴宗元)은 성을 내주고 투항하니 역도의 무리들은 이인좌를 대원수라 칭하고, 신천영(申天永)은 병사(兵使), 권서봉(權瑞鳳)은 목사로 가칭하여 청주를 쉽게 점령해 버렸다. 청주성이 함락되었다는 급보를 들은 김천장은 진천 방면에서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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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에서 활동한 교육자.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에서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김천호는 제11대, 12대 충청북도 교육감을 역임한 교육자로 교육을 위해 헌신하다 2005년 6월 20일 새벽 충청북도 청주시 봉명동 교육감 관사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6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김천호는 1962년 4월부터 1978년 7월까지 주성초등학교,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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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청주 목사. 남행으로 관직에 나아갔다. 청주목사 재임시에 보역청(補役廳)과 해원청(解寃廳)을 신설하여 군민(軍民)·승도(僧徒)의 폐를 제거하였다. 현재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구암리 가대울에 영세불망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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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청주 지방의 항일투쟁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일찍이 애국계몽운동에 참가하여 1904년에 청주에 청남학교(淸南學校)를 설립하고 교육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안희제(安熙濟)·김동삼(金東三) 등 8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신민회(新民會) 계열의 비밀 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창립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3·1운동 후 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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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팔봉리 출신으로 초창기 한국근대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평론가 겸 소설가. 한국 낭만주의 문학의 거점이라고 할 수 있는 『백조』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최초의 근대 연극단체라 할 수 있는 ‘토월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23년 『개벽』에 처음으로 프로 문학 이론을 소개하였다. 이후 ‘카프(KAPF)’ 발기인으로 프로 문학 운동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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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의병. 본관(本貫)은 안동(安東)이며, 호(號)는 삼함당(三緘堂)이다. 지금의 청원군 오창면 출신이다. 1576년(선조 9) 진사(進士)에 급제(及第)하였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는 여러 고을에 격문(檄文)을 돌리어 의병(義兵)을 일으켰다. 의병 5백 명을 이끌고 충주(忠州), 죽산(竹山) 경계에 포진하여 관군과 함께 왜적과 싸워 크게 전공(戰功)을 거두었다. 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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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천성이 강직하고 효우(孝友)가 지극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일명 무신란)이 일어나자 그 해 3월 18일 발군(發軍)하여 적당을 소탕하기로 마음먹고 경기도 안성 죽산으로 향하여 3일간 머물렀으나, 그 뜻을 다하지 못하고 적당의 손에 살해되었다. 그 충절이 알려져 정려(旌閭)되어 충신문(忠臣門)을 세워졌고 아울러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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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력기원전후로부터 기원후 300년까지의 시기를 지칭하는 시대구분의 명칭. 한국고고학에서 사용되는 시대구분 명칭으로, 1970년대 초에 생겨났는데 초기철기시대에 뒤이은 시기를 말한다. 원삼국시대는 종래 고고학에서 김해(金海)시대, 웅천기(熊川期), 또는 초기철기시대 등으로 불려왔고, 역사학에서의 삼한시대, 군장국가, 성읍국가 등이 이에 해당되지만, 삼국시대의 원초기(原初期),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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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효부. 청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한득일(韓得一)이며, 안동인(安東人) 김현(金炫)의 처이다. 안동김씨 김현의 후처로 들어가 시부의 제사를 지성으로 모셨고, 시모를 효양으로 섬기어 주위의 칭송이 매우 컸다. 남편이 병이 들자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어 병을 고치는 데 힘을 쏟았고, 남편이 죽자 곡읍(哭泣)하기를 그치지 않더니, 다음날 목을 매어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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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주 출신의 무관. 1725년(영조 1)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728년 무신란에 역적을 토벌하여, 그 공으로 분무원종공신(奮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벼슬이 병사(兵使)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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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本貫)은 안동(安東)이며, 돈령(敦寧) 김복원(金復元)의 아들로 청주 출신이다. 효행이 뛰어났고 성리학(性理學)에 조예가 깊었다. 「삼재체용도(三才體用圖)」를 만들었으며, 암행어사김명진(金明鎭)이 이것을 보고 탄복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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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충청북도 청원군 북이면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청원군 북이면 면사무소 서기로 재직하던 중 1919년 3월 1일이래 각지에서 만세시위가 벌어지는 것에 자극을 받아 고향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하였다. 1919년 4월 1일 밤 8시경, 자신이 거주하고 있던 북이면 신기리 주민을 규합하여 근처 신대리 앞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에 다수의 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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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本貫)은 청풍(淸風)이며, 청주 출신이다. 벼슬이 통훈대부(通訓大夫) 행남부주부(行南部主簿)이 이르렀다. 형인 김호철와 함께 형제가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가 병석에 눕자 형제가 모두 손가락을 잘라 병을 치유하였다. 부모상을 당하여 생전의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예를 다하였다. 숙종(肅宗) 임금 때에 쌍효(雙孝)로 정려되었다. 뒤 사람이 그 정문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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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순조(純祖) 임금 때 사람으로 효성(孝誠)이 극진(極盡)하였다. 부친이 신체가 부어오르는 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였다. 백약(百藥)이 듣지 않아 걱정하던 중 주변에서 잉어를 써보라 하기에 추운 겨울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썼더니 차도가 있었다. 부모가 노환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고 홍시를 먹고 싶다고 하므로 친구 집이 있는 문경(聞慶)까지 120리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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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本貫)은 청풍(淸風)이며, 청주 출신이다. 동생 호설은 벼슬이 통훈대부(通訓大夫) 행남부주부(行南部主簿)이 이르렀다. 형제가 모두 효성이 지극하여 이름이 높았다. 부모가 병석에 눕자 형제가 모두 손가락을 자른 피로 병을 치유하였다. 그 뒤 부모상을 당하여 생전의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예를 다하였다. 숙종(肅宗) 임금 때에 쌍효(雙孝)로 정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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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孝子). 본관은 고성(固城)이며, 자는 사인(士仁), 호(號)는 용암(勇菴)이다. 부인은 파평윤씨(坡平尹氏)로 윤득규(尹得圭)의 딸이고, 남양홍씨(南陽洪氏)는 홍우섭(洪友燮)의 딸이다. 태종 때 문과에 합격하여 부수찬(副修撰)과 수원목사(水原府使), 삼도방어사(三道防禦使), 병조판서(兵曹判書), 체찰사(體察使)를 지낸 김희량(金希亮)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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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청주 출신으로 김공예(金公藝)의 현손이다. 어릴 때부터 타고난 얼굴과 모습이 웅위하고 힘이 장사였다. 무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으며, 1624년(인조 2)에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 인조 임금이 공주로 피난 갈 때 왕을 호종(扈從)하였던 공으로 선전관(宣傳官)에 특별히 제배되었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하였고,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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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묘호란 때의 충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이다.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의 서제(庶弟)인 김시약(金時若)이 아버지이다. 할아버지는 지평 김충갑(金忠甲)이다. 청주 출신이며, 동생 김규(金糺)와 함께 정묘호란 때 순절한 아버지를 따라 죽었다. 아버지 김시약은 1596년(선조 29) 충청도 괴산(槐山)에서 선봉장으로 창의하여 왜적을 격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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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자는 행원(行源)이다. 아버지는 양양부사(襄陽府使) 김수연(金秀淵)이며, 어머니는 좌승지 김희룡(金希龍)의 딸이다. 승지를 지낸 김세정(金世鼎)이 아들이다. 1613년(광해군 5)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615년 이이첨(李爾瞻)의 사주를 받은 정조(鄭造)·윤인(尹認)·이위경(李偉卿) 등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려 하자 고부천(高傅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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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청주 출신으로 1665년(현종 6) 을사년 무과에 합격하여 출사하였으며, 관직이 군수에 이르고 3개 군을 두루 거쳤으나 물욕이 없어 가족들의 배고픔을 면치 못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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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청주지방의 토호. 용두사 철당간을 완성하였다. 철당간을 세울 것을 발원한 이는 김예종(金芮宗)이었지만, 그의 뒤를 이어 김희일(金希一)이 완성하였다. 30단의 철통을 주조했으며 60척의 당주를 세웠다. 김예종의 종형(從兄)이었으며 당대등(堂大等)·정조(正朝)의 직을 띠었으며, 단은어대(丹銀魚袋)를 하사받았다. 당대등은 뒷날의 호장이었으며, 정조는 7품에 해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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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휴암동에 있는 마을. ‘진약’은 ‘자냐기’, ‘까죽나무배기’라고도 한다. ‘지냐기’는 ‘진약’에 접미사 ‘-이’를 붙인 ‘진약이’의 연철식 발음이다. ‘진약’은 ‘진약(秦約)’으로 쓰고 있으나 특별한 의미는 없다. ‘진약’은 ‘진야’와 관련되어 있다. ‘진야’는 ‘긴 벌판’아니면 ‘진 벌판’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아마도 ‘긴 벌판’으로 해석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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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원평동에 있는 미호천(美湖川)을 가르키는 하천. 전설에 따르면 ‘까치내’는 ‘흰 까치가 나타난 합수머리’로 해석된다. ‘까치내’의 ‘까치’를 조류의 ‘까치’로 본 것이다. 지금도 합수머리 근방에는 까치가 많이 날아든다고 한다. 까치내는 17세기 후반에 발행된『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 등과 같은 지리지에서는 줄곧 작천(鵲川)으로 나오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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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북쪽의 미호천(美湖川)과 무심천(無心川)이 합수하는 지점의 ‘까치내[鵲川]’에 얽힌 전설. 청주시에서 무심천(無心川)을 따라 서북쪽으로 난 제방을 따라 옥산 쪽으로 계속 가면, 오창 팔결에서 내려오는 미호천(美湖川)과 청주 시내를 흘러온 무심천(無心川)이 합수하는 지점에 이른다. 이곳을 ‘합수머리’라 하는데, 여기서 합수한 물이 흥덕구 원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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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석교동과 흥덕구 모충동을 연결하는 다리. 1969년 10월에 만들어졌던 것을 1997년 5월에 확장한 다리로서, 총연장 123m, 폭 35m이며, 상행 4차선, 하행 3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축조공법은 상부는 RC T-Beam방식, 하부는 라멘방식으로 건설되었다. 이 다리는 청주의 남쪽에 있는 다리라는 뜻으로 1932년에 처음 축조되었을 때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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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에 있는 산. 본래 ‘곶뫼’ 또는 ‘고지뫼’ 등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곶뫼’와 ‘고지뫼’의 선행요소인 ‘곶’과 ‘고지’는 산이 평야를 향해 죽 뻗어 나온 지형(쑥 튀어 나온 돌출부분)을 특별히 이르는 고유어이다. 뫼는 산을 듯하는 고유어로 지명에 따라 ‘메’, ‘매’등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따라서 ‘곶뫼’ 또는 ‘고지뫼’는 평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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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중동에 있는 마을. ‘꽃작골’의 명칭에서 ‘꽃작’의 어원이 분명하지는 않으나 ‘곶(串)’과 ‘안(內)’이 결합한 ‘곶안’이라는 말이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 마을이 길게 뻗어 내려온 산혈 안쪽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에 신빙성이 있다. ‘골’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골짜기의 줄인 말이거나 골짜기에 위치한 마을을 뜻한다. 그러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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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있던 고개. ‘꽃재’는 ‘꽃’과 ‘재’로 분석된다. ‘꽃’은 ‘곶’의 변화형이다. ‘곶’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 지명에 ‘古次·串’(*곶)으로 보이는데, 원래는 ‘입(口)’을 뜻했다. 그러나 현대 지명에서 ‘곶’·‘고지’·‘구지’·‘꼬지’·‘꽁지’ 등으로 나타나, ‘들판 쪽으로 산등성이가 쭉 뻗어 나온 곳’을 가리킨다. ‘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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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있던 고개. ‘꽃재’는 ‘꽃’과 ‘재’로 분석된다. ‘꽃’은 ‘곶’의 변화형이다. ‘곶’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 지명에 ‘古次·串’(*곶)으로 보이는데, 원래는 ‘입(口)’을 뜻했다. 그러나 현대 지명에서 ‘곶’·‘고지’·‘구지’·‘꼬지’·‘꽁지’ 등으로 나타나, ‘들판 쪽으로 산등성이가 쭉 뻗어 나온 곳’을 가리킨다. ‘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