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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이후 독립운동, 교육계, 국방분야에서 활동하며 사회에 기여한 청주의 인물. 충청지역의 근대 인물들은 외세에 의한 개항 후에 침략해 오는 일본 제국주의 세력과 대항하여 주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나라 안과 밖에서 목숨을 걸고 투쟁한 애국지사, 독립운동가, 의병장들이 많이 나왔다. 그리고 일제의 지배 아래에서도 겨레의 주권을 회복하고, 광복 후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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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청용리에 있는 김상남과 그의 며느리 김해김씨의 정려각.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반란군의 진영에 뛰어들어 반란군의 불충을 꾸짖다 희생된 김상남의 충절을 기리고, 세 차례나 손가락을 자른 피로 남편을 살린 김상남의 며느리이자 김여산(金如山)의 부인인 김해김씨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1883년에 세운 정려문이다. ㈜하이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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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주지역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복경(福景)이다. 집이 비록 가난했으나 어버이를 극진히 섬긴 효자이다. 병환중인 아버지가 추운 겨울에 잉어를 먹고 싶다고 하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서 드시게 하였으며,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손가락을 자른 피로 3일간 목숨을 연장시키기도 하였다. 마침내 부친이 죽자 묘소 옆에 여막을 짓고 3년상을 치렀다. 1875년(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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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내곡동에 있는 김우근(金祐根)[1812~1853]의 효자각. 김우근은 비록 집이 가난했으나 어버이를 극진히 섬긴 효자이다. 1875년(고종 12) 고을 유생 이태로(李泰老)가 그의 효행 사실을 정부에 알려 표창하도록 건의하였으나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뒤 광산김씨 문중에서 1933년에 효자각을 세웠다. 흥덕구에 있는 ㈜하이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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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충청북도 청원군 부용면 외천리에서 김성균(金成均)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일본 주오(中央)대학 재학 중 1944년 학도병으로 입대, 소위로 임관되었으나 일본의 패망으로 귀국하였다. 국방경비대에 1946년 입대, 1947년 제1연대장이 되었고, 한국동란 때는 제6사단장으로 참전하였다. 그 후 육군사관학교 교장, 국방부 합동참모본부총장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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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청주 목사. 남행으로 관직에 나아갔다. 청주목사 재임시에 보역청(補役廳)과 해원청(解寃廳)을 신설하여 군민(軍民)·승도(僧徒)의 폐를 제거하였다. 현재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구암리 가대울에 영세불망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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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유학자. 본관은 교하(交河)이고, 자는 명보(明甫)이며, 호는 금사(錦史)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신송리 출생으로 체화당(棣華堂)의 사촌동생인 서암(西庵) 노덕원(盧德元)의 12대 손이다. 어려서부터 어질고 총명하여 소년기에는 매은(梅隱) 오영호(吳榮鎬)와 소강(小康) 이인상(李寅尙), 남계(楠溪) 신창모(申昌模)의 문하에서 경학을 공부하고 스승의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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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밀양박씨(密陽朴氏)의 정려문. 여산송씨(礪山宋氏) 송현기(宋鉉器)의 부인인 밀양박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55년에 세운 정려문이다. 흥덕구 강서사거리에서 청주가로수길을 따라 경부고속도로 청주 IC 방향으로 약 3.3㎞ 가량 가면 오른쪽에 수의동 강촌마을이 있는데, 이 정려문은 마을 입구 공터의 왼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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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에 있는 박동명(朴東命)[1576~1636]의 정려각. 박동명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박춘무(朴春茂)[1544~1611]의 아들로 아버지를 따라 청주성 탈환에 공을 세웠고, 병자호란 때는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하던 중 경기도 광주(廣州)에서 적을 만나 싸우다 순절하였다. 이러한 박동명의 충절을 기려 1709년(숙종 35)에 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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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청주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 본관은 순천(順天)이고, 자는 경홍(景洪)이며, 호는 우당(愚堂)이다. 사인(士人) 박형규(朴亨圭)의 장남이다.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 동양촌에서 출생하였다. 창암(滄庵) 박노중(朴魯重) 선생의 문하에서 다년간 수학하여 사서(四書)와 삼경((三經)을 통달하였다. 1980년 향년 80세로 죽으니 문하생 일동이 묘비를 세웠다. 향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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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과 합격자,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백희(伯喜)이다. 대사헌 와촌(瓦村) 박문고(朴文古)의 5대손이며, 교관(敎官)에 증직된 박재근(朴在謹)의 아들로 청주 출신이다. 1816년(순조 16)에 무과에 등과하여 여러 번 선전관의 명망에 들어갔다. 어머니의 병으로 손가락을 잘라 효를 행했고 이러한 사실이 알려졌다.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행정(杏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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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 한금섬(韓金蟾), 이소사(李召史)의 정려문. 임진왜란 때 순절한 동래부사 송상현과 그의 두 소실이었던 한금섬과 이소사의 정절을 함께 기려 세운 정려문이다. 본래는 1595년(선조 28) 송상현만 정려되었으나, 1704년(숙종 30)에 두 소실이 정려됨에 따라 함께 모시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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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독립을 청원한 파리장서사건(巴里長書事件)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여종(汝宗), 호는 우석(友石)이다. 참봉 신현기(申鉉基)의 장남으로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서촌동 179번지[동촌로116번길 23]에서 출생하였다. 대사성을 지낸 지산(志山) 김복한(金福漢) 문하에서 다년간 수학하여 시문에 뛰어났다.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서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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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에 위치한, 연최적(延最績)의 충효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문. 연최적은 사헌부감찰로 재직 중 사직하였다가 다시 기용되었으나,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파직되었다. 1693년에 인현왕후(仁顯王后) 폐위의 부당성과 화를 당한 서인(西人)들의 용서를 구하는 여섯 가지 항목의 상소를 올렸다가 일곱 번의 심한 고문을 받아 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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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위치한, 송명휘(宋明輝)의 처 영일정씨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각. 여산송씨(礪山宋氏) 송명휘의 부인 영일정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41년(헌종 7)에 세운 정려각이다. 흥덕구 강서사거리에서 청주가로수길을 따라 경부고속도로 청주 IC 방향으로 약 3.3㎞ 가량 가면 오른쪽에 수의동 강촌마을이 있는데, 정려각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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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며, 충북지사를 역임한 행정가. 호는 가동(可東). 본관은 한산(韓山)으로 고려 말의 학자 인재공 이종학(李種學)의 19대손이다. 인재공은 목은(牧隱) 선생의 둘째 아들이니, 그는 명문의 후예로 청원군 오창면 백현리에서 태어나, 성장하였다. 15세까지 소학, 사서 등 한문을 수학하고, 그 후 신학문에 접하여 사립 보성중학을 거쳐 경성의학전문학교를 나왔다. 전문학교를 마친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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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에 있는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과 부속 강당. 목은영당(牧隱影堂)은 이색의 학덕과 청주에서의 유서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인 한산이씨 이붕해(李鵬海)와 그의 종형 이조해(李朝海)가 주도하여 1714년(숙종 40)에 청주목 산외일면 주성리(현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 60번지)에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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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본관은 안정(安定)이며, 효행으로 정려를 받은 나운걸(羅云傑)의 딸이자, 진사(進士)를 지낸 경주이씨(慶州李氏) 이혼(李渾)의 부인이다. 나씨는 어렸을때부터 성품이 정숙하였는데, 나이 22세가 되자 경주이씨 문중의 이혼과 혼인하였다. 효성으로 시부모를 봉양하고, 남편을 따랐는데, 남편의 등에 등창이 나서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다. 이에 나씨가 칼로 그 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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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있는 서원. 호서지방에서 보은의 상현서원(象賢書院)에 이어 두 번째로 건립된 서원으로, 1570년(선조 3)에 청주목 서주내면 유정리 안말마을(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 120번지[이정골로 115-8])에 건립되었다. 신항서원의 창건당시의 이름은 서원이 위치한 마을이름을 따라 유정서원(有定書院)이라 하였다가 1660년 사액을 받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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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세 충신을 모시는 사당. 조선 영조 때의 충신인 이봉상(李鳳祥)[1676~1728], 남연년(南延年)[1653~1728], 홍림(洪霖)[1685~1728]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삼충사(三忠祠)라고도 부른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반란을 일으켜 청주성으로 침입하자 당시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있던 이봉상을 비롯하여 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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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방서동에 있는 청주한씨(淸州韓氏)의 정려각. 청주한씨 문중에서 배출한 한준(韓峻), 한사영(韓士英), 한성(韓鋮), 한해점(韓海漸) 등 4명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의 효행을 기려 세운 정려각이다. 상당구 용암동 방서사거리에서 보은 방향으로 약 150m 지점 길가의 좌측에 있다. 가로 약 6.13m의 장대석 기단위에 정면 2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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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대성동에 있는 향교. 최초 창건은 고려 시대인 987년(성종 6)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태조 때 교육제도가 정비되고 전국의 각 지방에 향교가 설치될 무렵 재정비되면서 규모를 새롭게 하였다. 다른 향교와 마찬가지로 5성(五聖), 송조 6현(宋朝六賢) 및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을 배향한다. 원래는 동·서무에 나누어 제향하다가 현재는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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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외평동에 있는 최영장군의 영당. 고려 후기의 명장인 팔도도통사(八道都統使) 무민공(武愍公) 최영장군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으로 최영장군의 호인 ‘기봉(奇峰)’을 따서 명명한 사당이다. 1854년(철종 5) 철원최씨 후손들이 창건하였다. 1978년 도로건설로 인하여 원래의 위치에서 약 150m 떨어진 현 위치로 이건 복원하였다. 상당구 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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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주목사.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나아가 청주목사를 역임했다. 재임당시 청주목의 산동 세 개의 면을 사재(私財)로 진휼하였다. 그 행적을 기려 비를 세웠으나 조정의 명령으로 묻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