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1149
한자 扶餘鄕校
영어공식명칭 Buyeo Local Confucian School
이칭/별칭 부풍향교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의열로 21-4[동남리 445-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행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657년 - 부여향교 대성전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872년 - 부여향교 수선재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16년 - 부여향교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34년 - 부여향교 수선재·수직실 중수
문화재 지정 일시 1997년 12월 23일연표보기 - 부여향교 충청남도 기념물 제125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부여향교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현 소재지 부여향교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의열로 21-4[동남리 445-1]지도보기
성격 향교
양식 홑처마 팔작지붕
정면 칸수 3칸[대성전]|5칸[명륜당]|3칸[동재]
측면 칸수 3칸[대성전]|2칸[명륜당]|2칸[동재]
소유자 충청남도향교재단
관리자 부여향교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기념물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조선 전기 향교.

[개설]

부여향교(扶餘鄕校)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조선 시대 공립 교육 기관이다. 부풍향교(扶風鄕校)라고도 한다. 건립 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으로 보아 조선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부여현의 북쪽 2리에 향교가 있었다고 한다. 『부여군향교지』에 기재된 구전에 따르면 현재의 부여향교는 약 200년 전에 부여읍 구교리에서 옮겨 세운 것이라고 전한다. 부여향교는 1997년 12월 23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2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위치]

부여향교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의열로 21-4[동남리 445-1]에 있다.

[변천]

부여향교는 『학교등록』에 의하면 1657년(효종 8) 3월 부여향교 대성전을 개수하고 이안제(移安祭)와 환안제(還安祭)를 지냈다고 한다. 1667년(현종7) 위판이 도난당하여 성묘에 대한 위안제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충청감사 임의백의 장계를 보면 부여향교 대성전에 모신 문헌공 정여창의 위판을 도둑이 훔쳐갔다고 한다. 위판 도난 사건은 수령과 재임에 대한 반발 혹은 유림과 수령 간의 갈등으로 판단된다. 부여향교에 전하는 자료 중에서 가장 오래된 자료는 『선생안』이다. 수록된 인물을 보면 18세기 전반부터 19세기 말까지 지속적으로 작성되었다. 향교의 유생록 『청금록』과 향교 건물의 중수 기록 「중수기」는 19세기 이후의 기록들이다. 『청금록』에는 모두 243명의 명단이 작성되었고 7개 항목의 절목이 기록되어 있다. 『청금록』은 1866년(고종 3) 다시 수보되었고 이름을 『동지록』이라고 명명하였다.

부여향교는 1872년(고종 9) 수선재를 중수하였고, 1895년(고종 32) 학교 관제의 실시에 따라 향교에서는 제사만 남게 되었다. 1916년 부여군수 안기선의 주관으로 향교가 크게 중수되었다. 1934년 수선재와 수직실이 중수되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수와 보수가 이루어졌다.

[형태]

부여향교금성산 자락이 서북쪽으로 뻗친 구릉을 배산으로 하고 있다. 주변은 민가로 둘러싸여 있고 정면으로 시가지와 넓은 들이 있다. 홍살문과 하마비가 세워져 있는 입구에 들어서면 외삼문이 있다. 외삼문은 명륜당과 대성전을 잇는 중심축에 두지 않고 서쪽으로 치우쳐 있다. 전학후묘의 배치로 명륜당 뒷마당 동쪽에 동재를 두고, 서쪽에 수직사 2동이 배치되어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전면 1칸은 퇴칸으로 하고 후면 2칸은 위패를 모시는 실내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의 팔작지붕이며 2고주 5량집 구조이다. 주춧돌은 커다란 자연석 덤벙주춧돌을 사용하였다. 기둥은 약한 배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이다. 동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홑처마의 팔작지붕이다. 외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솟을삼문 형식이다.

[현황]

부여향교에서는 전직 전교들로 구성된 ‘교유회’라는 친목 단체가 운영되고 있으며 향교후원회를 겸하기도 한다. 부여향교는 1925년 부여 사림들이 조직한 모성계에서 확보된 위토답의 수입으로 운영된다. 봄가을로 석전제를 지내고 있으며 매회 150명 정도 참여한다. 매월 삭망에 진행되는 분향제에서는 전교와 장의, 전직 임원 15명 정도가 참여한다. 또한 매년 청소년을 대상으로 유학 교육을 진행하여 전통문화를 보급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부여향교는 조선 시대 관학 기관으로 부여 지역의 교육과 교화를 위한 중심 기능을 담당하였다. 조선 시대 부여 지역 사족들의 동향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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