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1104
한자 皐蘭寺
영어공식명칭 Goransa Temple
이칭/별칭 고란사(高蘭寺),고란사(高欄寺),골란사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1-25[쌍북리 산1]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정선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수|중창 시기/일시 1028년연표보기 - 고란사 중건
중수|중창 시기/일시 1797년 - 고란사 중수
중수|중창 시기/일시 1932년 - 고란사 보수
중수|중창 시기/일시 1959년 - 고란사 보수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5월 17일연표보기 - 고란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98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09년 12월 24일 - 부여 고란사 석조입상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104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11년 7월 20일 - 부여 고란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보살좌상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8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고란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부여 고란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보살좌상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5월 17일 - 부여 고란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보살좌상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지정
현 소재지 고란사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1-25[쌍북리 산1]지도보기
성격 사찰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

[개설]

고란사(皐蘭寺)부소산성 북쪽의 백마강 연변에 있다. 법당 뒤의 암벽에 자생하는 ‘고란초’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암벽 아래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를 한 번 마시면 3년이 젊어져서 백제의 임금도 매일 마셨다는 전설과 함께 부여 8경 중 한 곳으로 유명하다. 부여현감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고관대작들을 접대하느라 지쳐서 ‘골란사’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알려진 곳이다. ‘고란사(高蘭寺)’, ‘고란사(高欄寺)’라고도 한다.

[건립 경위 및 변천]

고란사는 기원전 57년에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백제 아신왕[392~405] 대에 세워졌다고도 하지만,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 백제에서 세운 사찰이 백제 멸망과 함께 소실되었다가 백제의 후예들이 1028년(고려 현종 19) 삼천궁녀를 위로할 목적으로 다시 세웠다는 주장도 있다. 이처럼 백제 시대에 세워졌다거나 고려 현종 대에 다시 세워졌다는 것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고려 시대에 존재하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1236년 부령별초 전공열(全公烈)이 고란사 옆에 군대를 매복시켰다가 몽고의 기병과 싸워서 승리하였다는 기록도 있고, 고란사와 관련된 고려의 유물도 많이 존재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포함한 각종 지리지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인·묵객의 문집을 통하여 조선 시대 고란사의 존재가 쉽게 확인된다. 특히 이윤영(李胤永)[1714~1759]이 1748년(영조 24) 제작한 「고란사도(皐蘭寺圖)」에서 당시 고란사의 실제 모습을 추정할 수 있다. 다만, 지금의 고란사는 경내의 영종각에 있는 「고란사중수기(皐蘭寺重修記)」[1903]에 따르면 1902년 은산면 각대리에 있던 숭각사 건물을 옮겨 와서 세운 것이다. 1875년 편찬된 『호서읍지(湖西邑誌)』에 실린 『부여현읍지(扶餘縣邑誌)』에 보이는 것처럼 19세기 후반에 폐허로 전락하였으나 중수하여 방사 8칸과 누 1칸 규모를 갖추고 불상 3좌를 봉안하였다. 그 뒤, 1932년과 1959년에 다시 보수하여 단장하는 과정에서 일찍이 1797년(정조 21) 중수하였던 사실을 알려 주는 「고란사중건상량문(皐蘭寺重建上樑文)」도 발견되었다.

[활동 사항]

고란사는 매달 음력 1~3일에 초하루 신중 삼일기도, 7일에 용왕기도, 16일에 산신재 등의 법회를 개최한다. 2022년 7월 고란사불교문화원에 감로탱화를 조성하여 점안식을 봉안하였다. 점안식 당일 부여의 불교문화 발전을 위하여 출범한 부여불교사암연합회 및 백제 부여불교수륙대재보존회의 회장에 고란사의 주지승 태설 승려가 추대되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고란사낙화암과 함께 부소산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이지만, 명성에 비하여 규모는 크지 않다. 암반 위에 세워진 법당 건물은 팔작지붕에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왼쪽 2칸은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으며, 나머지 5칸에 마련된 극락보전에는 주존불인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극락보전 오른쪽에는 영종각이 있고, 극락보전 뒤편에 삼성각이 있다. 삼성각 왼쪽에 고란초가 자생하는 암벽이 있으며, 암벽 바위틈에서 고란사 약수가 나온다. 2022년 현재 고란사에 소속된 승려는 2명, 신도는 약 1,000가구이다.

[관련 문화유산]

고란사는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98호로 지정되었고, 전통 사찰로도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바뀌었다.

고란사 극락보전에 봉안된 삼존불 가운데 중앙의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오른쪽의 보살좌상은 크기·기법·특징 면에서 동일한 시기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양어깨가 모두 덮이도록 옷과 편삼을 걸치고 옷자락을 둥글고 투박하게 늘어뜨리고 있는 아미타여래좌상은 전형적인 조선 후기의 불상이다. 보살좌상은 대세지보살로 추정하여 아미타여래좌상의 오른쪽에 모셔져 있지만, 정병과 같은 대세지보살상의 특징이나 지물을 확인할 수 없다. 오히려 손의 위치가 대세지보살과 달라서 부처 왼쪽에 모시는 관음보살상일 가능성도 있다. 부여 고란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보살좌상(扶餘 皐蘭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 및 菩薩坐像)은 2011년 7월 20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바뀌었다.

국립부여박물관에는 고란사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부여 고란사 석조입상(扶餘 皐蘭寺 石造立像)[2009년 12월 24일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104호 지정] 2구가 있는데, 하나는 입불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좌불 형태이다. 모두 규모가 작고 보존 상태도 양호하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고려에서 유행한 보살상의 양식을 띠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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