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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산에서 거주한 열녀. 남편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서 음직으로 귀후서별제(歸厚署別提)·사헌부감찰·신창현감을 지낸 강희(姜僖)[1492~1539]이다. 자녀를 두지 못하여 강의(姜儀)[강희의 동생]의 아들 강응서(姜應瑞)를 입양하였다. 강희의 아내 나주김씨는 남편이 죽자 6년간 상복을 입었으며, 평생 빗질을 하지 않았다. 제사 때를 맞이해서도 초상 때와 같이 슬피 통곡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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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옛 건축물. 경기도 안산시의 고건축에는 주거건축, 종교건축, 근대건축물이 있다. 이 밖에 관아·객사·사직단·문묘·여단 등의 관아건축, 그리고 유교건축인 향교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등의 전란으로 모두 소실되었다. 주거건축으로는 청문당(淸聞堂)·경성당(竟成堂)이 있으며, 종교건축으로는 쌍계사 삼성각, 정려각 등이 전한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모두 조선시대에 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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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지역의 고대 역사에 관한 개관. 안산 지역은 서해안의 교통과 교역의 중심지로서 신석기시대부터 문화 교류가 있었으며, 삼국이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던 쟁패지였다. 신라는 마지막으로 이곳을 장악하면서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신라 말기에는 교역을 통해 세력을 키워온 김긍필이 지방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경기도 안산에서 인류의 자취는 신석기시대에 만들어진 조개무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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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군내면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조선 후기 영조 때 완성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이후 1842~1843년 간행된 『경기지(京畿誌)』나 1871년 간행된 『경기읍지(京畿邑誌)』에 수록된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 등에도 언급되어 있다. 조선시대 안산군의 관문에서 남쪽으로 약 4㎞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여지도서』에 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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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 지역에 거주했던 열녀. 남편 권이길은 본관이 안동이며, 평양판관으로 재직 중 정묘호란이 일어나 후금군과 싸우다 전사한 뒤 병조참의에 추증되고 정려가 내려진 충신이다. 권이길의 아내 예천임씨는 1594년(선조 27) 출생하였다. 호란을 당하여 전쟁터에 나가는 남편 권이길에게 붉은 비단옷을 입히고 말총으로 상투를 틀고, 망포를 쓰게 하는 등 여러 가지 표식을 만들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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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효자. 김계창은 아버지가 병환이 나자 변의 맛을 보아 병의 상태를 알아내고, 피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였다. 밤낮으로 아버지의 병환이 낫기를 하늘에 기원하였으며, 상을 당하매 정성과 예를 다하였다. 1822년(순조 22)에 정려(旌閭)가 내려지고, 아들 김집은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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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 지역에 거주하였던 효자. 본관은 의성(義城). 중종 때 문신인 문목공(文穆公) 김정국(金正國)의 9세손이며, 아버지는 헌납(獻納) 김한로(金漢老)이다. 김달명은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 강씨(姜氏)가 병이 나자 변을 맛보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드렸다. 추운 날 어머니가 생선을 먹고 싶어 하므로 부인과 함께 울면서 하늘에 기도하니 담비와 개가 생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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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 지역에 거주하였던 열녀. 김달명의 아내 양주조씨는 승지 김명겸(金鳴謙)의 손자이자 효자인 김달명의 부인으로 안산 지역에 거주하였다. 김달명의 아내 양주조씨는 『여훈(女訓)』·『소학(小學)』 등에 능통했을 뿐 아니라 효로써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다. 시어머니가 병이 들자 남편과 함께 병이 낫게 해달라고 하늘에 비는 한편, 산고기를 얻어 봉양하였다. 그 후 상을 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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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산 출신의 효자. 효자 김동은(金東殷)의 형이다. 김동려는 안산 지역 서쪽 두메산골에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여름에 아버지의 베개에 부채질을 한 한나라 황향(黃香)의 효행이 있었다. 성장하면서 농사에 힘쓰고 부모를 극진히 모셔 부모의 입에 맞는 음식으로 봉양하였다. 부모가 병환이 나자 하늘에 기도하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흘려 넣어 목숨을 수십 일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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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산 출신의 효자. 효자 김동려(金東礪)의 동생이다. 김동은은 안산의 서쪽 두메산골에서 살았다. 형과 함께 천성적인 효자로 칭송을 들었다. 부모를 섬김에 있어 도리를 다하였고, 모친이 종기로 고생하자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었고, 안질이 나면 혀로 핥았다. 모친이 돌아가시자 몸을 깨끗이 씻어드리고 눈을 감도록 하였고, 상례를 치름에 술과 고기를 먹지 않는 등 형과 같이 정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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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 지역에 거주하였던 열녀. 양인(良人) 김병집(金秉集)의 부인이다. 김병집의 아내 남양홍씨는 남편이 죽자 상을 마친 후 음식을 먹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841년(현종 7)에 정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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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장로(章老), 호는 성지당(姓支堂). 단종대 충신인 백촌 김문기의 5세손으로, 증조부는 충신 김현석이고, 할아버지는 효자 김충주이다. 아버지는 효자 김경남(金慶男)이며, 어머니는 염광염씨이다. 김약전은 1523년(중종 18) 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 너빌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나자 매일 종기를 빨아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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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대월면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조선 후기 영조 때 완성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이후 1842~1843년 간행된 『경기지(京畿誌)』나 1871년 간행된 『경기읍지(京畿邑誌)』에 수록된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 등에도 언급되어 있다. 조선시대 안산군의 관문에서 서쪽으로 약 10㎞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여지도서』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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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마유면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조선 후기 영조 때 완성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이후 1842~1843년 간행된 『경기지(京畿誌)』나 1871년 간행된 『경기읍지(京畿邑誌)』에 수록된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 등에도 언급되어 있다. 조선시대 안산군의 관문에서 서쪽으로 약 12㎞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여지도서』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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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자후(子厚). 증조할아버지는 찰방(察訪)을 지낸 박여헌(朴黎獻)이고, 할아버지는 호조참판을 역임한 박충생(朴忠生)이다. 아버지는 도승지를 지낸 박창(朴敞)이며, 어머니는 신임(愼恁)의 딸이다. 박종부(朴宗阜)[1600~1645]는 1633년(인조 11) 생원시에 장원 급제한 뒤 증광문과에 갑과 방안(榜眼)[전시의 갑과에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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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 지역에서 활동한 열녀. 이소사는 경기도 안산에서 생활하였다. 인조 때 정언, 헌납, 지평, 이조좌랑, 교리 등을 지낸 박종부(朴宗阜)[1600~1645]의 첩으로 출가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슬픈 나머지 음식을 먹지 않다가 장례를 치른 후에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열행(烈行)이 전해지자 나라에서 정문을 세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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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사람의 시체나 유골을 땅속에 파묻은 곳. 안산 지역에는 선사시대의 무덤으로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과 움무덤이 남아 있으며, 삼국시대의 분묘로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 고려시대의 분묘 1기가 조사되었으며, 현재 대부분의 분묘는 조선시대의 것이다. 조선시대의 분묘는 사족의 동향과 집성촌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나 1970년대 후반 도시화와 공업화로 인해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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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나무·돌·쇠 등으로 부처의 형상을 표현한 상. 안산 지역에는 안원사·원당사·수암사 등 조선시대 사찰이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폐사되어 절터만 남아 있다. 안산의 전통 사찰로는 화림선원과 쌍계사가 있으며, 쌍계사에 목조아미타불상이 있다. 칠보사에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석가여래좌상·동자상 등이 전한다. 쌍계사 목조아미타불상은 제작 시기가 조선 후기로 추정되며, 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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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성곡동에 있는 삼국시대 성 터. 해봉산은 바다에 접해 있는 해발 48m의 낮은 야산으로 생김새가 게의 발 모양이라 하여 해봉산(蟹峯山)이라고도 하며, 혹은 성두산(城頭山), 해운산(海雲山)이라고도 불렸다. 『안산읍지』[1895]에는 “성두봉 정상에는 성의 보루의 터가 남아 있다”라는 기록이 전하며,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1942]에도 “성두산에 둘레가 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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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적의 습격을 막기 위해 흙이나 돌로 쌓았던 구조물. 안산시의 성곽은 읍성과 산성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안산읍성은 고려 후기에 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성벽의 일부만 남아 있다. 안산은 서해안의 요지였기 때문에 외적 방어를 위한 산성이 많이 축조되었다. 현재 조사된 것으로는 성곡산성, 목내산성, 성태산성, 테미산성, 별망성 등이 있다. 해안가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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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지역에 오랜 기간 집단을 이루며 살아온 성씨. 안산 지역은 1970년대 후반부터 공업 단지를 조성하며 기존의 마을이 소멸되었다. 현재까지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는 가문은 그리 많지 않다. 조선시대 안산 지역에 사패지를 받아 오랫동안 세거한 성씨로는 진주유씨, 파평윤씨, 전주이씨, 해주오씨 등과, 순천김씨, 양주최씨, 남양홍씨, 김해김씨, 단성이씨 등이 집성촌을 이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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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 있던 5일장. 지금의 수암동 지역은 조선시대 안산군 관아가 있던 곳으로 군의 중심지로서 시장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에는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으며, 포구가 있어 시장이 형성되었다 한다. 해안 간석지가 개발되면서 포구가 폐쇄되고 읍내에 새로운 장이 형성되었으나 활성화되지는 못하였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조사된 『조선지지자료(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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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에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1. 조선시대 조선 말기에 간행된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에는 초산면(草山面)의 방축장(防築場), 대월면(大月面)의 산대장(山岱場)이 개설되어 운영된 기록이 있다. 그리고 “원래 안산에는 강이나 호수가 없지만 성곶과 원당 두 포구에 조수가 들고나기 때문에 장삿배와 고깃배가 왕래한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포구를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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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안산군에서 편찬한 경기도 안산 지역 읍지.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는 조선시대 경기도 안산군의 역사와 일반 현황을 담은 자료로서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말미에 안산군수 남계술(南啓述)의 지기가 있다. 이밖에도 안산 지역과 관련하여 편찬된 읍지에는 1842년에 간행된 『안산군읍지』 등 여러 읍지가 더 전한다. 본서의 저본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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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경기도 안산시의 역사. 안산은 예부터 서해안의 교통·교역의 중심지로서 다양한 문화가 교차하며, 풍부한 물화가 집산하던 곳이었다. 이러한 자연환경과 사회·경제적 배경을 바탕으로 학문·교육·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하였고, 외세에 대한 저항 의식이 높았다. 안산에서 인류의 자취는 신석기시대부터 찾을 수 있다. 신길동 신석기 유적, 초지동 별망 패총은 이곳이 신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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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의 별칭. 안산시가 별호(別號)인 연성으로 불리기 시작한 때는 1463년(세조 9)부터였다. 조선 초기 강희맹(姜希孟)이 안산의 별서(別墅)에 중국에서 가지고 온 연꽃을 심은 뒤부터 연성(蓮城)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에 의하면, 좌찬성 강희맹이 1463년 중추원부사로서 진헌부사가 되어 중국의 난징[南京]을 다녀오는 길에 중국에서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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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안산 지역에서 남편을 잘 섬기고 절개를 지킨 아내. 열녀는 위기에 처하였을 때 죽음으로써 정조(貞操)를 지켰거나 남편이 죽은 후 개가하지 않고 수절(守節)한 부녀자를 가리키며, 열부(烈婦)·절부(節婦)·절녀(節女)·정녀(貞女)로도 쓰인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임금의 유혹과 강압을 물리치고 남편을 위해 정절을 지킨 도미(都彌) 아내의 이야기와, 자신의 늙은 아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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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와리면을 소개하는 가장 빠른 기록은 조선 후기 영조 때 완성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이후 1842~1843년 간행된 『경기지(京畿誌)』나 1871년 간행된 『경기읍지(京畿邑誌)』에 수록된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 등에도 언급되어 있다. 조선시대 안산군의 관문에서 서쪽으로 약 12㎞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여지도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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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완산(完山). 자는 일경(一卿). 아버지는 호조참판을 지낸 이석(李晳),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이다. 이상기는 경기도 안산군 초산면 산현리[현 시흥시 산현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병환이 나자 변의 맛을 보아 병의 상태를 살피는 등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고, 병이 낫게 해달라고 하늘에 기도하였다. 그 효성의 지극함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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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산 지역에서 활동한 열녀. 이원발의 아내 전주최씨는 경기도 안산에서 생활하였다. 이원발(李元發)에게 출가하여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였으며 남편을 대할 때에도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영조 대에 정문(旌門)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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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잉화면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조선 후기 영조 때 완성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이후 1842~1843년 간행된 『경기지(京畿誌)』나 1871년 간행된 『경기읍지(京畿邑誌)』에 수록된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 등에도 언급되어 있다. 조선시대 안산군의 관문에서 서쪽으로 약 10㎞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여지도서』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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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4대 왕인 선조의 딸.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선조(宣祖)이며, 어머니는 후궁 인빈김씨(仁嬪金氏)이다. 인빈김씨는 사헌부감찰을 지낸 김한우(金漢佑)의 딸이며, 명종의 후궁인 숙의이씨(淑儀李氏)를 따라 궁궐에 들어가 생활하였다. 그러던 중 명종비 인순왕후(仁順王后)의 눈에 들어 14세 때 선조의 후궁이 되었고, 슬하에 4남 5녀를 두었다. 정안옹주는 넷째 딸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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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지역의 인문환경 및 자연환경을 비롯하여 지역 정보에 대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책. 전 근대 사회에서 특정 지역의 정보를 손쉽게 알 수 있는 자료로는 지리지와 읍지가 대표적이다. 지리지는 전국을 대상으로 일률적으로 편찬한 것이고, 읍지는 각 군현 단위로 편찬한 것이다. 지리지를 전국 지리지라고 한다면, 읍지는 군현 단위의 지리지라고 할 수 있다. 전국 단위의 대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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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초산면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조선 후기 영조 때 완성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이후 1842~1843년 간행된 『경기지(京畿誌)』나 1871년 간행된 『경기읍지(京畿邑誌)』에 수록된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 등에도 언급되어 있다. 조선시대 안산군의 관문에서 서북쪽으로 약 6㎞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여지도서』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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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의 사찰에 봉안된 부처·보살·성현들의 그림. 안산의 탱화는 쌍계사에 있는 6개의 그림이 유일하다. 현재 단원구 대부동 대금산 쌍계사에는 19세기 이후에 제작된 아미타불탱화·현왕탱화·신중탱화·지장탱화·독성탱화·산신탱화 등이 6개의 불화가 있다. 화기(畵記)가 있는 불화는 현왕탱화·신중탱화·지장탱화이며, 아미타불탱화는 원래 있었으나 현재 파손되었다. 쌍계사는 17세기 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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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신달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안산의 세거 성씨. 파평윤씨의 시조 태사공(太師公) 윤신달은 고려 태조를 도와 공을 세웠다. 안산에 살고 있는 파평윤씨(坡平尹氏)는 스스로 ‘안산윤씨’라고 칭할 만큼 가세가 번성하였다. 영천부원군(鈴川府院君) 윤사로(尹師路)와 영평위(鈴平尉) 윤섭(尹燮) 등 부마가 2인이고 이조판서 윤강(尹絳)과 윤강의 아들 좌의정 윤지선(尹趾善), 판서 윤지완(尹趾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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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지역에 있는 배가 드나드는 개의 어귀. 강이나 냇가 또는 좁은 바닷목에 배가 접안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설을 나루라고 하며 한자로는 도(渡), 진(津)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나루보다 규모가 큰 바닷가나 큰 강어귀의 접안 시설은 포(浦)라고 부르며 포보다도 규모가 더 큰 것은 항(港)으로 부른다. 또한 지리적 측면에서 나루가 강이나 냇가 등 내륙에 위치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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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안산 지역에서 부모를 섬기는 데 정성을 다한 자녀. 효(孝)는 예로부터 백행(百行)의 근본으로 강조되었으며, 가정질서의 기본이 됨은 물론 국가를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인식되었다. 효에 대하여 『소학(小學)』에서는 ‘부모를 지성으로 섬기는 것’이라 하였고, 『논어(論語)』에서는 ‘예(禮)에 어긋남이 없게 하는 것’이라 정의하였다. 또한 『효경(孝經)』의 첫 장에...